〈 60화 〉둥지 짓는 김준수(3)
목요일
학원은 휴강이다.
오전 중으로 모든 가구가 배달되어 원하던 위치에 배치되었고 짐도 정리가 끝났다.
점심을 먹고 나니 하루 동안 써야 하는 모든 기운이 방전된 느낌
몸이 축 늘어져서 낮잠이라도 자고 싶은 기분이었다.
학원이 없으면 이렇게도 할 일이 없어지는 걸까
나는 잠깐 늘어져있던 몸을 일으키고 책상 앞에 앉았다.
시간이 남을때 내가 쓰던 소설을 마무리 지어야겠다.
이후의 전개는 어떻게 해야하나?
잠시간의 고민후 대충 문장들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강범수는 김혜지를 처음 봤을때부터 안좋은 감정을 품었지만 이제 지난 일이니 그냥 넘겨버린다.
김혜지는 그런 범수에게 어떻게하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리고 그와 함께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김혜지는 이기적인 인간이다.
그녀에게 생긴 아이가 범수의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오랫동안 아이를 핑계로 집안일도 대충했고 직장에서 일하는 것도 번번히 해본적이 없는 인간
그런 인간이 갑자기 일을 한다고 해서 능숙할리가 없다.
몇번이고 실수를 하지만 범수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범수
이전의 범수라면 난리를 피며 화를 냈을텐데 나이 때문일까 굉장히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천천히 범수에게 욕심이 생기는 혜지
혜지는 본인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범수가 만족할만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한다.
하지만 범수가 바뀐 가장 큰 이유라면 오후 3시가 넘어 가게에 나타나는 한 여대생 때문이다.
범수의 시선은 언제나 그녀를 향해있고 여대생도 천천히 범수에게 반해간다.
그 결과가 좋지만은 않았다.
여대생의 소설은 점점 범수의 영향을 받아 이야기가 현실성을 가지기 시작하며 내용에 깊이가 더해졌지만 그 만큼 많은 독자들이 싫어하는 전개로 나아갔다.
로맨스 판타지라는 것은 독자들의 대리만족을 시키기 위함이지 현실을 들이미는 것이 아니니까.
점점 트렌드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그녀의 소설과 떨어지는 구독률
흔들리는 여대생과 그런 그녀의 현실을 눈치챈 범수
둘의 관계가 잘되는 걸 보다못한 혜지가 내 아이가 당신 아이라는 폭탄발언을 해버리고 반쯤 파탄이 나는 둘의 관계
범수는 도망치려는 여대생을 붙잡고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가며 그를 거부하는 여대생
부모님의 반대, 미혼남이지만 아이가 있는 현실, 나이차 등등
하지만 범수는 미친놈 취급을 받든 개새끼 취급을 받든 상관이 없다며 그녀를 붙잡는다.
잠시간의 갈등이 있고 둘은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연인이 되며 이야기를 끝마쳤다.
나는 내가 써내려간 문장을 살펴본다.
분명히 프롤로그는 기똥찼는데 어째서 엔딩은 이렇게 미묘하고 재미가 없는 걸까?
전부 지우고 새로 쓰려다가도 어차피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연재로 올려버렸다.
다 올리고나자 묘한 만족감과 피곤함이 몰려들었고 편한 마음으로 커피라도 한잔 하자는 마음에 수진이에게 카페에서 보자는 카톡을 보내고 집에서 나섰다.
푹푹찌는 여름
아스팔트의 아지랑이가 눈으로 보일 정도다.
이 정도 더위면 거리가 가깝더라도 그냥 차를 타고 이동하는게 나아보였다.
내가 소설을 마무리 지으면서 왜 별로라고 느꼈을까?
아마 그 소설을 처음 쓸 때와 지금의 차이라면 내가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겠지.
나는 은연 중에 그녀와의 관계에 어느 정도 선을 긋고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느낀 운명이란 느낌의 감정과 그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현실에서 오는 갈등, 그럴수록 그녀에게 집착하고 빠져드는 열망
나는 결국 수진이와 연인관계가 되었고 그렇기에 가지지는 못하지만 떠나지도 못해서 오는 그 갈등에서 오는 감정이 충분히 담기지 않은 것이다.
결국 나에겐 수필조차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일까
하아... 분충으로서 글먹의 길은 어려운게 아닐까?
곧 날백수가 될 남자의 고민이 깊어져갔다.
***
"뭔가 이렇게 이른 시간에 만나는 것도 색다르네요."
학원이 휴강해서 평소보다 더 이른 시간에 카페에서 만나게 되었다.
역시 수진이도 학원에 다니는 것은 피곤했는지 휴강이라는 것에 묘하게 기쁜 반응을 보인다.
"학원 다니는거 많이 피곤해?"
수진이는 타이핑을 치던 손을 멈추고 으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사르륵 스치며 나를 돌아보는 느낌이 나는 수진이
"공부하는거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기는 할꺼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글쎄? 아무튼 난 좀 그렇던데"
"학원 쉬니까 심심했어요?"
"어, 뭘해야할지 모르겠더라."
이게 그 워커홀릭인가
내가 그렇게 말하자 수진이는 응?하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뭐지?
"그런거 치고는 뭔가 하신거 같은데"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본인의 휴대폰을 보여준다.
"아"
내가 올린 소설을 봤나보다.
뭐 스토리 전개는 어느 정도 틀을 잡아놨었고 평소에도 메모장에 틈틈히 적었었기 때문에 25편 정도의 단편으로 결말을 내는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25편이라... 좀 짧네요. 좀 더 길게 써주셨으면 했는데"
"별로 안 떠오르더라고. 프롤로그는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원래 소설은 프롤로그가 가장 힘이 들어가는 법이에요. 후반부에 무너지는 작품들도 많잖아요."
그렇긴하다.
아마 웹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어떤 식의 이야기를 쓸까? 하는 생각을 늘 하고있을 것이다.
밥을 먹던지 씻던지 잠을 자던지 아무튼 평범한 일상생활을 영위하던 중 갑자기 앗!하고 반짝이는 뭔가가 떠오르겠지
그렇게 앗하고 떠오른 아이디어는 생각보다 빛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수진이와의 만남을 통해 이거다!라고 느끼고 써내려간 저 애매한 완결의 소설처럼 말이다.
처음엔 세상에서 이렇게 재밌고 끝내주는 프롤로그를 쓴 사람은 내가 처음일꺼야, 내 소설은 진짜 끝내주는 것 같아!라는 느낌으로 시작을 하겠지.
프롤로그를 써내려가서 반응을 엿보고 반응이 좋으면 그렇게 연재를 시작하는 것이고 반응이 구리면 나는 재밌는거 같은데 하면서 리메이크를 도전하거나 그대로 절필을 하겠지.
연재를 시작했으면 이젠 후반부의 스토리를 짜맞춰 나가야한다.
하지만 아마도 여기서 갈리는 것이다.
앗하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순간적이다.
그것을 제대로 완결까지 짜임새있게 맞춰서 결말을 내는 것.
그것이 작품의 완성도고 작가의 기량이라는 것이겠지.
나는 그것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러니 나는 하꼬작가인 것이다.
애초에 저 25화를 쓰는데 걸린 시간이 4개월이 넘었다.
웹소설 작가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일일연재가 기본이다.
나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 그 자리에서 몇 만자고 써내려갈 자신은 있으나 그게 100화, 200화를 넘어서는 장편으로 넘어가는 순간은 아마 타이핑을 하는 시간이 그저 고통으로만 느껴지겠지.
그리고 그건 곧바로 작품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작가 본인이 읽었을때 재미없는 작품만큼 초라해지는 작품은 없는 것이다.
"뭐, 본인들도 쓰다보니 그렇게 된거겠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잠시 그녀를 뒤돌아봤다.
수진이는 매우 조용했다.
내가 갑자기 올린 그 소설의 뒷 이야기들을 빠른 속도로 읽어보고 있는 중인 듯하다.
얼마 전에 내가 올렸던 4천자 분량의 이야기를 5분에 걸쳐 천천히 읽던 모습과는 상당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나는 그저 조용히 기다렸다.
수진이는 잘나가는 기성작가다.
그런 수진이가 읽어주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내가 쓴 허접한 문장을 보여주는 것에서 오는 거부감이 상상을 초월했다.
아마 한번이라도 글을 써본 사람은 알 것이다.
본인은 나름 잘쓴거 같다는 생각으로 올린 글에 작가를 죽이려고 드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물어뜯는 인간들에게서 느껴지는 악의
수진이는 그런 사람은 아닐텐데 소설을 보느라 침묵을 지키는 수진이가 너무나 무섭게 느껴졌다.
나는 하꼬작가이면서 동시에 독자다.
나 조차도 허접해 보이는 소설을 발견하면 개연성이니 스토리 전개가 엉망이니 아재냄새가 난다느니 하며 훈수를 둔다.
도대체 왜 독자일땐 스토리가 허접하고 개연성이 엉망이고 등장인물들은 기계같은지 5700자로 써내려갈 수 있으면서 작가가 되면 그게 안되는 걸까?
"선생님"
수진이가 소설을 보고 얼마나 시간이 지난지 잘 모르겠다.
정확한건 머그컵 속의 얼음이 어느정도 녹아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 10분 이상은 지난게 아닌가 생각된다.
수진이는 과연 이 소설에 어떤 감상을 남겨줄까
"어, 어땠어?"
가슴이 떨려온다.
흡사 수험생이 된 기분이다.
그래도 내 첫번째 완결작인데 후한 평가가 내려지기를 기대했다.
"그 뭐라고 해야하나..."
수진이는 음~ 소리를 내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지금은 커피보다 내 이야기의 평가를 해줬으면 좋겠다.
"좋았어요."
그렇게 말해오는 수진이
하지만 난 그게 좋다고 들리지는 않았다.
학교에서 교사들이 학생들 기죽지 말라고 괜찮았어 라고 하는 그런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 가슴이 아팠지만 과감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어디가 별로였어?"
수진이는 나를 슬쩍 돌아보더니 입을 달싹였다.
"초반부는 굉장히 좋았거든요. 뭔가 이렇게 가슴이 따뜻해지는 느낌의 도입부였고요."
확실히 나도 초반부는 좋게 썼다고 생각해
"주인공이 우산을 건네주는 부분도 좋았고 후에 둘이서 등지고 앉아서 노트북에 글을 쓰는 장면에서 웬지 두명이서 피아노로 하모니를 이루는 것 같다는 표현도 좋았어요."
그것도 내가 생각하기엔 최고로 잘쓴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뭔가 혜지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좀 어긋난 것처럼 느껴졌어요."
역시 그런건가
"혜지라는 인물 그년이죠?"
수진이의 입에서 그년이라는 저급한 단어가 나오자 뭔가 그날을 떠올리게 만들어서 몸이 긴장된다.
"어,어"
"급조해서 만든 캐릭터에요?"
"아니, 주인공이랑 히로인 두명이서 이야기를 전개하기에는 너무 심심하다고 생각해서 뭔가 스토리에 변화를 줄려고 넣었어. 로맨스물이란게 결국 사귀면 끝나는 느낌이라서 길게 쓰긴 좀 그런 장르잖아?"
"그렇긴 하죠."
"그래서 삼각관계도 많이 쓰는거고. 나도 그래서 넣어봤는데 잘 안됐어."
"캐릭터가 스토리랑 안 맞아서 그런거에요."
"응?"
"선생님이 쓴 소설, 최대한 밝고 활기찬 느낌으로 쓴다고 하신거 같은데 혜지라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전반부에 썼던 주인공의 밝은 면이 무너졌어요."
수진이는 커피를 한모금 더 마시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혜지라는 인물이 주인공에게 집착하는 모습도 많이 어설프고 아이라는 과거까지 생겨버려서 범수라는 가벼운 인물이 너무 무거워졌어요. 캐릭터가 입체적이 됐다기보다 무너졌죠. 여대생이 아이까지 있는 남자한테 반하는 것도 좀 그런거 같아요."
"역시 그렇지? 하아..."
이 소설은 처음엔 혜지라는 인물 속에 그년을 완벽하게 녹여낼 생각이었다.
혼자 죽지않겠다고 날 지옥끝까지 끌고 가려고 했던 그년의 증오
그날 나와 헤어지지 않겠다고 날 협박하던 그 감정에 따라 만들어진 인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그런 상황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않아서 애매하게 상황을 흐렸고 수진이에게 악영향을 주고싶지 않다는 생각에 내가 느낀 증오를 희석시켰더니 뭔가 애매한 인물이 되어버렸다.
씁쓸했다. 첫 작품이었는데 너무 박한 평가를 받으니 의욕이 꺾여버린다.
"저보곤 선생님 신경쓰지말고 쓰던데로 쓰라면서 본인은 그렇게 못하셨나봐요?"
그렇게 말하고는 히죽히죽 웃는 수진이를 보자 뭔가 욱하는 감정이 들었다.
"너도 막상 그년이랑 접해보면 나처럼 쓰기 어려울걸?"
"글쎄요?"
"그럼 한번 보여줘?"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