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둥지 짓는 김준수(1)
"있잖아"
"네?"
"그, 요즘 소설로 욕먹고 있잖아?"
"아"
준범이 집으로 향하는 길
나는 요즘 너무나 신경쓰였던 일을 물어보기로 했다.
"분양 말하시는 거죠?"
"어, 그거"
"하아~ 실수했어요. 설마 그 정도까지 반응이 격렬할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내쉬는 수진이
"왜 그런거야?"
"몰라서 물어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어?"
"하아... 제 소설 어떠냐고 물어봤더니 별로인 것처럼 반응 하셨잖아요."
"뭐여, 나 때문이었어?"
"그냥 단역으로 등장시킨거 뿐인데 시끌시끌 완전 도배가 되서 한동안 확인도 안했어요."
"뭔가 미안하네"
"알면됐어요 알면"
그렇게 말하고 왜 이렇게 사람이 눈치가 없을까라며 드라이플라워가 담긴 통을 쓰다듬는다.
아니 그게 내탓인지 어찌알어?
"남자들은 왜 이렇게 하렘을 좋아하는 거에요? 선생님도 좋아해요?"
"글쎄"
하렘을 왜 좋아하냐고?
현실에선 모르겠지만 소설에선 웬만한 필력이 안되면 1인 히로인에게 금방 질린다는게 가장 큰 이유겠지.
작가가 설정한 히로인이 독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으면 안팔리는 것도 큰 이유일 것같다.
아 그건 있겠네.
"히로인이 많이 나오면 한마디 씩만 해도 분량 날먹 쌉가능이니까?"
"뭔가 딱 분충같은 마인드네요. 분충은 용서하지 않아욧!"
"하하"
수진이는 오늘 참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친구들이랑 대화하다가 그런 이야기가 나온적은 있지."
"뭐요?"
"이 여자랑 결혼해서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해 알아보는 방법"
수진이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게 뭔데요?"
뭔가 사뭇 진지한 느낌인데? 그냥 뻘소리로 끝낼려고 했는데 말이다.
"이 여자가 야동배우면 죽을 때까지 이 여자만으로 칠 수 있겠다 싶으면 결혼하라던데"
"..."
어이가 없다는 시선이 날아온다.
"남자들은 나이 먹어도 다 그런 이야기만 하고 사는거에요?"
"2명 이상 모이면 거의 무조건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그럼 모이면 무조건 야한 얘기한다는거 아니에요?"
"잘 아네"
"..."
더욱 더 어이가 없다는 시선이 느껴진다.
근데 뭐 어쩌나? 남자는 2명 이상 모이면 그런 이야기 하는게 국룰이다.
학력이든 재력이든 남자들은 똑같다고
"그래서 선생님은 어때요?"
"응?"
"저 하나로 죽을 때까지 가능하겠어요?"
때마침 신호가 걸리고 잠시 정차를 한 후 수진이를 바라보니 그 눈빛이 사뭇 진지했다.
나는 수진이와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본다.
아프지만 최선을 다해서 나를 품어줄려고 노력했던 수진이와 나를 질투해서 여왕님처럼 나를 취조하고 괴롭히던 수진이
하지만 처녀답게 묘하게 어리숙해서 중간중간에 흐름이 끊겼었지.
그 갭이 상당히 좋았다.
아직 못 본 모습이 많이 남았겠지.
"오늘 같이만 해주면?"
그렇게 말해준다.
수진이는 지금에서야 굉장한 일을 했다는 자각이 있었는지 그 유리통을 꼬옥 움켜잡고는 몸을 웅크린다.
***
준범이의 집까지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로 짐 옮기실 거에요?"
"아니, 내일 청소업체 부르고 가구도 좀 사고 옮겨야지. 네 말마따나 음식이 상할수도 있으니 반찬이나 미리 넣고 집에 데려다줄게."
"그럼 이참에 친구분께 인사라도 하는게 어떨까요?"
"인사? 굳이?"
"선생님이 신세 지고 있으니까 제대로 인사는 하고 싶어서요."
"테에엥, 수진마망..."
"후후후 뭐에요. 그게"
우리는 준범이의 집으로 함께 올라가기로 했다.
"뭐야 왔냐?"
대충 그렇게 하면서 날 맞이하는 준범이.
"그래, 아 얘가 수진이다."
"안녕하세요."
"어? 아 안녕하세요."
서로 고개를 숙여보이는 수진이와 준범이
나는 수진이를 데리고 자연스럽게 집안으로 들어갔다.
준범이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야, 너 잠깐 일로 와봐라"
손짓을 하는 준범이
나는 뭐지 이새끼? 싶은 심정으로 준범이한테 다가갔다.
"뭐"
고개를 좌우로 살짝씩 틀어보는 준범이
"이 씨발새끼!"
탁!
머리를 한대 얻어맞는다.
"뭐여 씨발!"
"하 씨발 이새끼 존나 어이없는 새끼네 이거"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미친놈 쳐다보듯 바라보는 준범이
이 새끼가 돌았나?
"돌았냐?"
"애미 돌은건 니새끼고요, 니 목에 그거 뭐냐? 키스마크냐? 와 씨발롬. 이새끼 이거 진짜 미친새끼네? 넌 씨발롬아 친구집에 떡치고 여친 데려온다는 발상을 어캐했냐? 또라이새끼네 이거"
나는 그제야 수진이가 내 목을 열심히 빨았던 것에 생각이 미쳤다.
키스마크가 남았나
"떡치고 같은 샴푸랑 바디워시로 씻었지? 니들 존나게 조심해라. 눈치빠른 사람은 다 눈치채니까"
"어?"
"수진이 쟤 집에 돌아갔는데 몸에서 낯선 샴푸향이나 바디워시향 난다고 생각해보라고. 넌 씨발 여름이니까 모기라도 물렸다고 대충 둘러대면 그만인데 냄새는 안되니까"
"아..."
"피임도 아니 이건 알아서 잘하겠지. 아무튼 조심해"
"그래"
"아니, 그리고 상식적으로 떡친 다음에 집에 끌고 오지마라고 시발 존나 뭘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네"
"걍 그러려니 해라"
"미친새끼 빨리 꺼져!"
준범이는 내 엉덩이를 걷어찼다.
아 진짜로 그런가?
확실히 몸에서 다른 샴푸향이나 바디워시향이 나면 눈치가 빠른 사람은 알 수도 있겠다.
이건 주의를 하긴해야겠네
"그래서 뭐하러 데려왔어?"
"아니, 그냥 너한테 인사 좀 하고싶다길래"
"그래?"
준범이는 수진이한테 가서 뭔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낸다.
준수놈이 뭘 잘못하는게 없냐? 저딴 틀딱 만난다고 고생이 많다.
나쁜놈은 아니다. 그래도 괜찮겠냐? 등등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수진이는 선생님한테 말씀 많이들었다. 선생님을 도와주셔서 고맙다. 선생님이 너무 잘 대해주셔서 항상 좋다니 뭐니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듣고있으면 뭔가 듣기 민망한 이야기라 냉장고에 대충 밑반찬을 쑤셔넣고 수진이를 부른다.
"그만 가자"
"네~ 안녕히 계세요."
"그래요. 제수씨 다음에 볼때는 결혼식에서 보겠네~"
그렇게 말하며 준범이는 어서 꺼지라며 날 쫓아냈다.
"결혼식..."
수진이는 그 말을 듣고는 뭔가 생각하는 바가 있었는지 생각에 잠긴듯한 모습이었다.
***
"아 진짜 그럴수도 있겠네요. 조심해야겠다."
수진이에게 준범이에게 들었던 말을 전해준다.
"생각지도 못했어. 역시 딴따라야. 성능 확실하구만"
"네?"
"저놈 저거 지금은 혼자 사는데 학교 다닐 때 만해도 심심하면 여친 갈아치우던 놈이야. 모르긴 몰라도 단맛 쓴맛은 다 봤겠지."
"그래서 결혼 안 하시는 걸까요?"
"그렇겠지 뭐. 혼자서도 잘사는 놈이라서 굳이 결혼할 생각도 없나 보지."
"다행이에요."
"뭐가"
"선생님은 혼자서는 못사는 사람이라서"
"이게 그렇게 되나?"
"네"
확실히 혼자서는 좀 그렇긴하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아무도 없는 적막한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에 쓸쓸함을 느낀다.
대학교부터 그년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몇년이나 자취를 했는데도 20대의 혼자와 30대의 혼자는 큰 차이가 난다.
솔로로 사는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서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나는 수진이를 만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차를 몰았다.
"선생님. 어떻게 하실거에요?"
"뭐가?"
"소설, 완결 내실거죠?"
"완성은 할께"
"그래요?"
"소설에서 완성이란 이콜 연중입니다."
"개소리하면 맞는 수가 있어요."
"알았어"
또 뒷내용이 궁금하다고 멋대로 노트북을 뒤져보면 큰일이다.
그년이랑 관계에 도장도 찍은 마당에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다.
소설에 그년을 어떻게 녹여낼까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수진이도 내 사정을 다 알게됐으니 알아서 잘 걸러서 보겠지.
그년에 대해 다루다가 수진이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조심스러운 점도 있었는데 그것도 이제 해결되었으니 마음 내키는 데로 쓰기만 하면 된다.
"그, 있잖아"
"네?"
"소설, 쓰던데로 써. 나 신경쓰지말고"
"..."
수진이가 내쪽을 바라보고 있는게 느껴진다.
"아..."
수진이가 뭔가를 떠올렸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걱정마세요."
미치겠구만
요 몇 개월 사이에 있던 내 모든 생각이 녹아있던 메모장이 넘어가 버렸으니 내가 뭔 말만 꺼내도 대충 알아먹는 느낌이다.
약점이 잡힌 것보다 더 껄끄러운 심정이다.
"지워주면 안될까?"
"이미 다 봤는데요?"
"끙"
"나는 수컷이다."
"흠흠"
"나는 너와 섹스를 하고싶다."
"그만해"
"범하고 싶다."
"아아아아아!!!!!!!!!!!!"
"아하하하하!!!!!!!!!!!!"
아무래도 그년보다 더 큰 족쇄가 생겨버린듯한 느낌이었다.
흑역사란 녀석들은 이렇게 생성되는 것일까
***
"오늘 고생많았어."
"아뇨. 전 좋았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머리를 귀 뒤로 넘기는 수진이
힐끔힐끔 여기를 바라보면서 뭔가 야릇한 분위기를 풍긴다.
쪽
나한테 키스를 하고는 마스크를 쓰는 그녀
"안녕히 가세요!"
"그래"
나는 수진이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다시 준범이의 집으로 돌아갔다.
수진이는 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볼때마다 어른스러워지는 느낌이다.
준범이의 집에 도착하고는 청소업체에 전화를 하고 전셋집 주인에게 방을 뺄 의사를 전한다.
"네, 네. 이사비는 필요없으니까 가구만 좀 처분해주세요. 네, 네. 감사합니다."
후우. 이제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는 상황이네
"뭔가 태풍같은 놈이네. 멋대로 왔다가 멋대로 꺼지고"
"외롭냐?"
"미쳤냐? 아무튼 그래서 이혼은?"
"이혼숙려기간인가 뭔가가 있어서 1달 있다가 법원에서 만나야 한다더라."
"결국은 얼굴을 보긴 봐야하네"
"어, 근데 나 오늘 그년 봄"
"어디서? 아 전셋집에 있었냐?"
"아니 짐 다 나르고 돌아갈려니까 마주쳤어"
"그래서?"
"뭐 좀 그런데 니도 다 눈치챈거 같으니까 말해주면 좀 좆지랄을 내고 왔거든"
"뭔데"
나는 잠깐 이걸 말해야하나 망설이다가 어차피 눈치깐거 걍 속 시원하게 말해버리기로 했다.
"그 뭐냐 그년 침대에서 했거든"
"예?"
"수진이랑 그년 침대에서 했다고"
"하"
준범이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왜 너같은 새끼를 만나나 했더니 끼리끼리 만나는 거였냐?"
"뭐 이 새끼야?"
"와 시발 진짜 개또라이네 이 새끼"
얼탱이가 없다는 듯이 바라보더니 미친새끼라고 낄낄거리기 시작하는 준범이
아니 솔직히 나도 존나 꼴 받았었으니 그 정도는 해줘도 되잖아?
"그년 그거 침대보는 순간 얼굴 존나 보고싶은데"
"인정하는 각이구연"
"와 시발 진짜 이게 그 법준수씨가 맞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솔직히 나중에 법원에서 얼굴 마주치는거 존나 기대됨"
솔직히 존나게 기대가 되기는 한다.
수진이가 도발했을때 부들부들 떨리면서 고개를 떨구던 그년
생각만해도 뭔가 역대급으로 짜릿짜릿한 쾌감이 몰려온단 말이다.
그 미친년이 집으로 남자 꼬드겨서 지랄 떨었던게 그런 느낌이었을까?
확실히 이런 기분이라면 중독될 것 같긴 하다.
이런 기분이었구나 혜정아
"그럼 내일 바로 나가냐?"
"그래야지. 어차피 컴퓨터랑 프린트 제외하면 큰 짐은 책 밖에 없으니까"
"뭐, 알아서해라."
그렇게 말하며 방으로 들어가는 준범이
1주일인가
많이 불편하긴 했을꺼다.
친한 친구든 가족이든 혼자 살다가 갑자기 남이 찾아오는 것도 불편한데 1주일을 눌러앉았으니 말이다.
말로는 지랄이니 개새끼니 미친놈이니 해도 고마운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