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내 여친은 xxx!(2)
"안녕하세요 어머님"
"어 그래, 준범이니? 미안하다. 많이 불편하지?"
"아뇨, 어차피 집도 넓고 준수가 누구한테 피해주고 그런애는 아니잖아요."
"고마워"
"아뇨 아뇨. 자 어서 들어오세요."
준범이가 어머니를 맞이해서 거실로 불러들인다.
나는 처음에 내가 나가서 맞이하려다가 뭐라고 말을 꺼내야할지 몰라서 소파에 앉아있었다.
어머니가 들어오신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서 어머니를 맞이한다.
"어서오세요. 올라오실때 안 힘드셨어요."
"아니야. 서있지 말고 앉아"
"네"
우리는 그렇게 소파 앞 테이블에 앉았다.
러그가 깔려있었는데 준범이는 미리 방석도 준비해서 깔아두었다.
친절한 녀석이다.
"밥은 잘 먹고다니고?"
"예. 잘 챙겨먹고 있어요."
"학원에 무슨일은 없고?"
"예. 잘 다녀요."
"그래?"
잠시 말이 멈춘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하시는거 같은데 좀 부담스럽기 하실거다.
"많이 더우셨죠? 이거 드세요."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에 시원한 냉커피와 다과를 준비해주는 준범이
"고마워. 준범이 다컸네"
"에이 아주머니. 저도 이제 나이가 38살인데요."
"어른들 눈에는 자식이 다 커도 아이로 보이는거야"
그렇게 말하며 냉커피를 조금 마시는 어머니
어머니가 준범이랑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를 돌아보신다.
"준범이는 어디까지?"
"알건 다 알아요."
"그래?"
"그래서 여기 그냥 있으라고 한거고요. 솔직히 좀 부담스럽기도 했고"
"그러니?"
어머니는 잠시간 테이블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긴듯한 느낌이었다.
"저기 준수야"
어렸을적 나를 부르던 호칭. 어느새 아들이라고 부르셨지만 내가 국민학교를 다닐땐 준수라고 불러주셨던 기억이 난다.
"네"
"엄마가 많이 생각을 해봤어. 혜정이라든지 이혼이라든지 지금 준수가 처한 상황이라든지"
그렇게 운을 떼시는 어머니
"솔직히 이해가 잘되지는 않더구나."
이해를 바라지는 않았다.
1년 전의 나한테 너 1년후에 여고생이랑 바람난다고 말하면 돌았냐는 말이 먼저 나왔을 것이다.
"준수는 손이 안가는 아이였으니까. 공부도 곧 잘했고 말도 잘들었고 예의도 발라서 주변에서 아들 정말 잘 낳으셨다고 그랬으니까."
"네..."
나도 커피잔만 쓰다듬는다.
어머니와 얼굴을 마주치면 뭐라고 해야할지 머리가 새하얗게 변할듯한 기분이었다.
"처음엔 많이 당황도 했고 아니라고 생각도 했는데... 준수니까. 우리 아들이니까 믿어볼려고"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시면서 내 손을 잡으셨다.
"엄마가 아니면 누가 우리 아들 믿어? 난 우리 아들이 삿된 마음으로 그렇게 함부로 살았다고는 생각 안하거든... 그러니까 말해줄래? 만난다는 아이가 어떤 아인지, 그리고 어떻게 만났는지"
어머니의 손은 냉커피가 든 머그컵을 잡고 있었던 탓인지 조금 차가웠다.
하지만 내 손에 얹어진 이 손에서는 냉기보다 따스함이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저 그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시는 어머니
언제나 부드럽게 나를 지탱해주시는 어머니의 그 표정을 보니 나도 무겁던 입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혜정이와 만나 결혼하고 점점 악감정이 쌓이고 결국은 그날처럼 지랄을 해버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짧게 숨을 들이키시는 어머니
하지만 아직 나의 이야기는 끝나지않았다.
천천히 하지만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 우리 둘의 관계
어느날부터 필요이상으로 몸을 꾸미기 시작한 혜정이는 갈수록 밖으로 겉돌았고 점점 출장이란 명목으로 집을 비우는 숫자가 늘기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조심스럽게 하지만 조금씩 과감하게 변해가기 시작한 혜정이
나는 이참에 이혼할때 돈이라도 뜯어내자는 생각에 뒷조사를 한 것까지 이야기를 했다.
올해 뒷조사가 되고 만나는 남자의 가정도 박살낼려고 돈을 줘서 뒷조사한 것까지
말했을때 어머니의 눈은 심히 떨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만난게 수진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는 아직 하꼬작가로서 글을 쓰는 것을 포기하지 못했음을 전했다.
몇번 글을 써봤지만 전혀 읽히지도 않는 소설.
아무래도 아버지 말마따나 재능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자조적인 웃음을 짓는다.
"준수야..."
어머니가 매우 슬픈 눈으로 바라보신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는 달라졌으니까
비가오던 날
나는 우연히 어떤 한 학생이 내가 가장 즐겨보던 소설의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큰 관심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나와의 대화를 소설속에 녹여낸 순간 느꼈던 잘 모르겠는 그 감정을 어색한 말로 어떻게든 전하기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수진이와 어떻게 만나고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떻게 친해져갔는지 전했다.
수진이가 편부모 가정인걸 알게되어 혜정이와 불륜남의 가정을 박살내는걸 그만뒀다는 이야기까지 전부 전했다.
수진이가 나를 받아주고 결혼의사까지 밝혔다는 것도 들려주었다.
"그럼... 그 아이의 부모님은 이걸?"
"아직 모르시죠. 아마도 지금 전하면 난리가 날거고 그러면 수진이 수능에도 안 좋을테니까요."
제법 이야기를 길게 했는지 머그컵 속의 얼음들이 제법 작아져 있었다.
"그랬구나"
"예, 뭐 그렇게 됐어요. 아마 수진이가 학생이든 사회인이든 저랑 동갑이든 연상이든 같은 상황이었으면 똑같이 반했을거에요."
그것만큼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 수진이란 아이를 좀 만나보고 싶은데 그건 힘들겠지?"
"별로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네요. 수진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도 봐야겠고"
"그래. 그래도 다행이야."
다행이야 다행이라면서 가슴을 쓸어내리시는 어머니
혹시라도 내가 이상성욕으로 여고생을 사랑하고 있는건 아닌지 범죄적인 뭔가를 저지르고 있는건 아닌지 확인을 하신 모양이다.
"아버지는 어때요?"
"괜찮아"
전혀 괜찮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준수야. 아직도 아버지가 많이 밉니?"
"이젠 별로 아무런 생각도 없어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다가 가는거죠 뭐"
나는 그렇게 어머니의 눈을 피했다.
아버지에 대한 화제는 언제나 피하는 화제다.
"준수야. 아버지도 많이 어렵게 사셨어."
"..."
그렇게 아버지에 대해서 입을 여시는 어머니
아무래도 오늘은 어떻게든 나와 아버지를 화해시키는 것이 본론인것 같았다.
어머니는 천천히 아버지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6남매에 막내로 태어나서 중학교 밖에 못나온 아버지
머리가 좋으셔서 공부에 대한 미련이 있었지만 먹고살기 바빠서 일부터 배웠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어머니와 만난건 회사였고 후배로 들어온 어머니가 실수를 할때마다 화를 내지않고 무뚝뚝하게 도와주시는 모습에 반했다고 하신다.
결혼을 하고 어찌저찌 자리를 잡아서 내가 태어나고 사업을 하시면서 틈틈히 공부를 하셨다는 아버지.
아직 공부에 미련이 남았다는 것에서 나는 아버지가 자녀인 나에게 자신을 겹쳐보셨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는 형제분들이랑 사이가 안좋았다더라. 마지막에 아버님이 돌아가셨을때 재산때문에 싸웠다고 하는데 아버지가 말이 많은것도 아니잖니?"
그래서 내가 외동인 걸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늦둥이었고 아버지의 아버지 즉 내 할아버지는 아버지보다 더 무뚝뚝한 성격이라 자녀랑 부모의 관계에 어려움을 많이 겪으셨다면서 아버지를 변호하는 어머니
난 잘 모르겠다. 나는 내 아이에겐 그렇게 안 할 것 같은데 말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 결국엔 보증의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 아버지가 보증선 사람이...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친해서 힘들때 많이 도와준 분이라더구나. 그래서 그러셨대"
그렇게 말하고 준범이가 자리를 피해 들어간 방문을 슬쩍 바라보는 어머니
그래. 나에겐 준범이같은 녀석이 한 번만 도와달라고 찾아온 격일까
이해는 된다. 이해는 되지만 납득이 되는건 아니다.
"...올라오실때 힘드셨죠? 태워다 드릴게요."
"그래..."
나는 더 이상 대화는 필요없다는 식으로 어머니를 태우고 부천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그 동안 별 말씀이 없었다.
***
"그래서 어머니랑 잘 이야기했어"
'그래요? 다행이네요.'
"뭐가? 또 뺨이라도 한대 맞을 줄 알았어?"
'아뇨. 어머님이 헤어지라고 하시는거 아닌지 걱정돼서요.'
"헤어지라고 해도 안 헤어질건데 뭐"
'...히히'
뭔가 기뻐보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손가락질 받을거야, 미친새끼라고. 욕먹을거야, 변태새끼라고. 싸대기도 맞겠지, 제정신이냐고. 그래도 상관없어'
낮게 목소리를 깔고 그런 말을 해오는 수진이
"기,기억력이 상당히 좋구나"
'여긴 로마도 아니고 너도 공주님은 아니잖아. 왕실도 없고 의무도 없어'
"제발 그만하는 레후"
'아하하하하!'
전화기 넘어서 빵터져 아하하하하며 웃는 수진이
'아하하... 선생님 부끄러워요?'
"어, 그러니까 그만해"
'아, 아직 들려주고 싶은게 많은데'
"그만하는데스"
'아하하! 선생님은 진짜 재밌는 사람이에요.'
"그래?"
'그리고 진짜 멋진 사람이고요.'
방금까진 뭔가 알 수 없는 기분이었는데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린다.
'저요, 선생님 많이 좋아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니었어?"
'그냥 들어봐요.'
"어, 어"
'선생님이 이렇게 말해줬을때 아, 이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
'선생님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았으니까요. 체면을 신경쓰신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요. 체면이든 뭐든 다 버려도 저만 사랑한다는데 어떻게 안 반해요?'
"그럼 그전까지는 별로였어?"
'아뇨, 그냥 더 좋아진거죠. 이젠 선생님이 절 좋아하는 것보다 제가 더 좋아할걸요?'
그렇게 말하면서 수줍게 웃는 수진이
내 속을 떠보고 싶은건지 갈수록 부끄러운 말들을 잘도 한다.
"그건 아닐껄?"
'맞을걸요. 아무튼 내일 시간되면 같이 좀 가요.'
"어딜?"
'선생님 전셋집이요. 짐 아직 남았죠?'
"괜찮겠어? 책이라서 조금 무거울텐데? 그냥 집에서 쉬어"
'아뇨. 마지막으로 한 번 둘러보고 싶어요. 선생님이 살던 집'
집에는 그년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솔직히 좀 그렇긴하다.
아니, 장인어른이 제정신이시면 딸내미를 전셋집에 계속 살게는 안하겠지.
딸내미가 외간남자 불러다가 좆빨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거기 계속 살라고 하긴 좀 무리가 아닐까 싶다.
어차피 집주인은 방 뺀다고 하면 신나서 얼른 빼라고 이사비용도 챙겨줄 것이다.
근처에 다른 전세는 가격이 다 올랐으니 우리가 나가면 싱글벙글 전세가를 올리든 반월세로 전환을 하든 그렇게 하겠지.
아마도 짐을 다 빼버리면 다시는 찾아갈 일도 없을 것이다.
다시는 찾아가고 싶지않다.
이번 주말을 마지막으로 챙길건 다 챙기고 남은 가구들은 집주인에게 처분 좀 해달라고 부탁하고 와야겠다.
"수진이가 가고 싶다면 가는거지 뭐. 열심히 부려먹을 거니까 그렇게 아십쇼"
'네~'
나와 수진이는 몇시에 어디서 만날지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차가 있으니 내가 수진이를 태우고 와서 집으로 향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수진이는 내일보자며 연신 즐거운듯한 느낌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지 모르겠다.
수험생이랑 너무 자주 만나고 다니는게 아닐까 싶다는 생각에 주말에 부르는 것에 거부감이 든다.
체면을 버렸다고는 해도 아직 나는 강사고 수진이는 학생이기도 하고 수진이의 미래에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기도 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