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9화 〉지랄났다 김준수!(2) (49/301)



〈 49화 〉지랄났다 김준수!(2)

딱딱하게 긴장된 분위기.


서로 누가 먼저 말을 꺼내야 할지 눈치를 보는 이 순간.

답답하고 숨이 막혀서 돌아버릴  같은 느낌이다.


시발. 아침에 있던 그 행복한 순간이 순식간에 이런 분위기로 바뀌니 미칠 것 같다.

장인어른이랑 독대했던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긴장 때문에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다고 느껴졌다.


에어컨이 쌩쌩 돌아가고 있음에도 등이 땀에 절어 축축해지기 시작한 게 느껴진다.

서로가 이 상황이 답답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함부로 입을 열진 못하고 있다.


다들 알고 있는 거겠지.


지금 입을 여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을 말이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입이  개라도 할 말이 없겠지.


이 지경이  직접적인 사유는 당신들의 딸이 저지른 불륜이니 말이다.


장모님의 얼굴을 살펴봤다.  얼굴은 좀 창백한 느낌이다.


다른 사람의 말 따위는 듣지 않는 태풍 같은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상식은 있나 보지.

혜정이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장인어른에게 들었겠지.


장인어른은 내가 `상식적인 행동`을 할거라 믿고 장모님에게  지경이 될 때까지 나와 혜정이 사이에 있던 일을 말하지 않으셨겠지.

그 결과가  창백하게 얼굴을 굳히고 있는 장모님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겠지. 장인어른을 보며 나와 좀 닮았다는 생각을 한 것처럼 장인어른 역시 그리 생각하셨겠지.

"그, 이번에 이야기는 다 들었습니다. 저희 아들이 이혼하겠다고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답답하던 분위기에서 먼저 입을 연 건 우리 아버지셨다.

"저는 아들이 알아서 하겠지 했는데 상황이 좀 복잡한 것 같아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오늘의 아버지는 뭔가 평소보다 말을 잘하셨고 또 한편으론 듬직한 느낌이 들었다.

"예."

장인어른이 고개를 살짝 숙이시면서 수긍하셨다.


"아들은 다른  필요 없이 협의이혼으로 하자고 합니다. 저도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인데 얼굴 붉힐 필요 없이 그랬으면 좋겠군요."

아버지는 할 말을 다 하시곤 목이 타셨는지 물을 들이켜셨다.


다시 조용해진 공간.

아버지가 말을 끝내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자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장인어른이 입을 여셨다.

"그..."


"협의이혼? 하! 양심은 있나 보네?"

혜정이가 장인어른의 말을 잘라먹고 입을 열었다.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노려보는 그 시선에서 흘러넘치는 감정을 읽은 순간 깨달았다.

올 것이 왔다는 것을.

"그게 무슨 소리니?"

어머니가 혜정이를 바라보셨다.

혜정이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비릿한 웃음을 보인 다음 날 노려보았다.


"왜? 내가 바람을 핀 건 말했는데 본인 이야기는  했나 보지?"


"뭐야?"

아버지가 혜정이를 바라보시다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셨다.


"저게 무슨 소리냐?"

"그게..."


"왜 못 말하겠어? 내가 말해줘? 아버님. 아드님이 맞바람 폈다고요. 그것도 여고생이랑. 오늘 아침에 들어온  보니 갈 데까지 간  같은데."


씨발.

그래. 올 것이 왔다.


식은땀이 흐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며 숨을 쉬기 곤란할 정도로 어지러웠다.


손에 계속해서 땀이 차올랐다. 땀을 닦아내고 어떻게든 진정하려 했으나  번이고 바지에 문질러도 땀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어지럽다. 현기증에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감각에 휩싸였다.


"저게 무슨 소리냐?"


아버지가 또다시 내게 의문을 표하셨다.


나는 그 의문에 변변찮은 대답을 들려줄 수 없었다.


혜정이가 한 말은 전부 사실이었으니까.

아버지의 눈빛이 시시각각 분노로 물들어갔다.


"너, 이 자식."


"네, 진짜입니..."


짝!

고개가 휙 돌아갔다. 아무래도 싸대기를 한  맞은 모양이다.

그렇게 깨달은 순간 뒤늦게 얼얼한 감각이 느껴졌다.

"너  개새끼가! 제정신이야!"

아버지가 내 멱살을 붙잡고 들어 올리셨다.


한  더 맞을듯한 분위기라 이를 악물고 있으려니 어머니가 아버지의 팔을 붙잡으셨다.

"준수 아빠! 기다려봐! 아닐 거야, 아니지. 준수야? 아니지?"

아버지의 분노, 어머니의 당황이 전해진다.


 상황에서 내가 뭐라고 말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이 상황이 어떻게 되진 않을 것 같다.

역시 친가에 내려갔던 그 날에 모든 설명을  해야 했다.

아버지에게 혼이 나는 것이 두렵다고 미루고 도망쳐서 오히려 최악의 상황을 만들었다.

장모님에게 혜정이의 불륜을 알리지 않은 장인어른을 일순간 어리석다고 생각했으나 나 역시 그리 다르지 않다.


아, 그러고 보니 정말 닮긴 닮았구나.


아버지에게 멱살이 잡힌 채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상태로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무섭긴 무섭다. 당장에라도 어머니의 손에 붙들린  손이 내 얼굴을 후려칠  같아 움츠러든다.


나는 38살이나 처먹었음에도 아버지가 무섭다.

아버지에게 또 한 대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을 움츠리고 있으려니 이 돌발적인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얼어있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살짝 돌리니 나를 비웃고 있는 혜정이도 보였다.

개 같은 년. 네년이 지랄만 안 했으면 이렇게 피곤하진 않았을 텐데.

"어딜 봐 이 개새끼야!  이 미친 새끼! 강사라는 새끼가 제정신이냐! 내가 널 그렇게 키웠어? 이 씨발새끼가!"


마침내 어머니를 떼어낸 아버지가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아버지의 오른손이 나에게로 향해오는 것을  순간 수진이가  염주가 떠올랐다.


맞은 얼굴이 얼얼했고 나를 비웃고 있는 혜정이에 대한 분노에 머리가 달아올랐다.


그래. 시발 이상하잖아.

이건 이상하지. 애초에 혜정이가 불륜을 저지르지만 않았으면 내가 이런 상황에 부닥치지도 않았겠지.

내가 잘못했냐? 잘못했지. 존나 잘못하긴 했어.


존나 개새끼도 맞지. 19살짜리 여고생이랑 만난다고 하면 10명 중에 10명이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할 거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도 없는 인간이 지랄한다면 그러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이리라.


하지만 당신이 나에게 이럴 자격이 있단 말인가? 우리 가정을 한순간에 망가트렸던 당신이?

애초에 당신이 조금만 더 제정신이었다면 보증도 안 섰을 것이고 그럼 사업이 망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럼  대학교수를 하고 있었겠지.

이런 또라이 같은 년을 만나지도 않았을 테고 수진이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도 않았으리라.

그런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아버지의 손을 붙잡았다.

약하다. 언제부터 이렇게 힘이 약해지셨을까? 역시 나이는 나이란 말인가.


 기억 속의 아버지는 이렇지 않았다.

기분이 나빠지면 윽박지르며 야단을 치고 가끔 손찌검하던 그런 존재.

그런 공포의 상징이 이젠 늙고 초라한 아저씨로 보이기 시작했다.


난 지금까지 이런 사람을 무서워하고 도망치고 있었단 말인가.

"이 개새끼가 손 안 놔!"


 팔을 뿌리치려고 하는 아버지의 일그러진 표정을  순간 이성이 끊어졌다.

혜정이에게 지랄발광했던 그날과 닮은 감각.

"씨발!!!!!!!!!!!!!!!!!!!!!!!!!"

 순간 방안이 정적에 휩싸였다.


나를 때리려고 하던 아버지도 그런 아버지를 말리던 어머니도  상황에 당황하여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한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그리고 나를 비웃으며 노려보던 혜정이도 모두 시간이 멈춘 듯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하지만  만큼은  만난 물고기처럼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개좆같은 새끼야! 니가 이렇게 키웠지 누가 이렇게 키웠어 씨발롬아!"


이미 이성을 잃어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감정이 시키는 데로 담아뒀던 무언가를 뱉어낼 뿐이다.


"대학교 입학금도 장학금이었고 기껏해야 2학기 등록금 준 게 대수냐? 개씨발롬아! 뭐, 공부 열심히 해서 성실히 살고 자녀가 부모의 거울? 좆같은 소리하지  씨발롬이!  같은 새끼 부모라고 생각한 적 없어!"


아버지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뭔지도  모르겠다. 이미 이성을 잃은 내겐 다른 사람을 살펴볼 여유 따윈 없었다.


"군대 졸업하고 3년간 자취하면서 월세 내준 적은 있냐? 등록금도 내가 벌어서 냈고 생활비도 내가 벌었어! MT나 OT는 갈 생각도  했고 알바만 하고 사니까 친구들도 떠나고! 개같이 굴러서 어떻게든 졸업하고!"

"대학교도 니가 보냈냐? 내가 공부해서 갔지. 뭐, 씨발 그렇게 잘해라 잘해라 하는 새끼가 보증을 서서 집을 말아먹어? 너나 잘해 씨발롬아! 보증 때문에 좆지랄나서 엄마가 아직도 허리 아파서 골골대는 거 안보이냐?  병신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알긴 알아?!"

난 이미 아버지의 손을 놨다.

 기억 속의 아버지라면 이 상황에서 얼굴을 붉히고 내게 손찌검을 하셨겠지.

하지만 아버지는 그저 멍하니 서서 날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씨발 학원만 10년 넘게 다녔는데 고딩한테 반해서 좆지랄한 적 한 번이라도 있어? 날 그렇게 못 믿어? 내가 저 씨발련이랑 계속 살라고?"


내 씨발련이란 발언에 장인어른이 몸을 흠칫 떠셨다. 몰라 씨발.

"저년, 저 씨발련 전셋집에 지 상사년 불러서 좆 빨던 새끼야. 집에 갔더니만 아주 씨발 앙앙거리고 있더만 씨발련들."

장인어른이 뻣뻣해진 고개를 돌려 혜정이를 바라보시더니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셨다.


"그래 씨발! 나 고딩 좋아하는 개씨발 변태새끼에 개새끼다. 근데 니가 나한테 그러면 안 되지. 니가 날  번이라도 자식새끼라고 생각한 적이 있긴 하냐?"


아버지의 창백해진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가 원래 이런 표정을 지으셨었나? 잘 모르겠다.

"난 씨발 친구 새끼들이 학교에서 TV 본 거 얘기할 때도 한마디도 못했어. 반에서  혼자! 친구들이 아빠랑 목욕탕 갔다는 얘기할 때도 입도 뻥긋 못했지. 아빠랑 주말에 놀러 갔다는 얘기가 나왔을 땐... 그냥 그게 부럽더라 씨발..."


모든 것을 다 토해냈다. 속이 후련했다.


"나... 걔가 고딩이라서 좋아하는  아니야... 그러니까 참견하지 마. 축복하라고도 안 해. 호적에서 파고 싶으면 파버려. 이런 병신새끼 꼴도 보기 싫을 거 아냐. 그런데  이상 참견 하진 마."

 말을 다했다고 생각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벙찐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혜정이가 눈에 들어왔다.


 씨발련이 문제다. 니가  새끼 좆만 안 빨고 다녔으면  지랄은 안 났다.


"야이 씨발련아 잘 들어. 니가 학원에서 지랄하면 너도  되는 거야. 니가 다니던 회사 가족경영이더라? 니가 열심히 좆 빨던 새끼 니네 회사 사장 새끼랑 가족이더라? 내가 그 새끼 와이프한테 사진 보내서 그 새끼 이혼당하면 잘도 가만히 있겠다?"

혜정이가 당황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다가 몸을 움츠렸다.

그저 돈 지랄이라고 생각했던 행위가 이렇게 도움이  때도 있다.


이대로 끝났어도 혜정이가 학원에 찾아와 깽판을 치면 말짱 도루묵이니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도 혜정이의 약점이 있는 상황이니 지랄은 못 하겠지.


"나 학원 그만둘 거야 씨발련아. 너도 생각 잘해. 나보다 능력 좋은 새끼 좆 빨다가 버려져서 나도 좆되라고 매달린 거잖아 씨발아. 입만 열면 오지게 구라를 치네 개걸레같은 년. 그 새끼 이혼하면 너 짜르고 니가 취직하려고 할 때마다 지랄할 거다. 병신같은 년."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


뒷일? 몰라.

학원을 그만두고 수진이와 함께하겠다고 각오를 다진 순간 체면 따윈 버렸다.

체면 챙긴다는 새끼가 여고생이랑 섹스는 어떻게 하나?

속이 다 후련하다.


나는 마지막으로 장인어른을 바라봤다. 뭔가 말을 하려다가 그만뒀다.

슬슬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해서 더는 이 답답한 공기 속에 있고 싶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나오니 몇몇 구경꾼들이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고 종업원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황한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지나쳐 내 차가 세워져 있는 곳으로 향했다.

속이 시원했다. 도대체 이런 해방감은 얼마 만일까.


이렇게 시원하게 질러버릴 수 있는데 왜 지금까지 참아왔단 말인가.


아니, 아마 후회하겠지. 조금 지나면 난 지금 내가 저지른 행동에 대해 반드시 후회를 할 거다.

어머니가 굉장히 괴로워하시겠지.

그래. 어머니가 괴로워 하실 거다. 벌써 후회가 된다.

그런데 뭐, 어쩌겠나? 이미 저질러 버렸는데.

쌓아뒀던 응어리가 터져 나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젠 모르겠다.


차에 올라탔다. 이곳에 올 때 혜정이와 같이 타고 왔는데... 뭐, 알아서 하겠지.


상식적으로 그 지랄을 냈는데 집으로 바로 기어 들어오진 않으리라.

그래도 전셋집은 나와 혜정이가 절반씩 부담한 상태라 어떻게 나눠야 할지 모르겠네.

나는 앞날에 대해 생각하며 집으로 차를 몰았다.


상황이 해결되진 않았다. 그래도 뭔가 해냈다는 생각에 어깨가 들썩였다.

이제 저 미친년이랑은 영영 안녕이다.


아~ 존나 지랄났다 김준수!

그래도 어쩌나 이미 해버린 걸 아 ㅋㅋ.

나는 후회와 후련함을 반쯤 섞은 듯한 기분으로 집에 도착했다.


짐을 정리하고 나가야지.

그 걸레년이 다니는 회사랑  집은 가까우니 혹시 이곳에서 계속 살지도 모른다.

나가는 게 좋겠지. 혹시라도 어머니가 찾아올지도 모르니 나가야지.


지금은 어머니와 만나고 싶지 않다.


얼른 나가자는 생각에 짐을 싸기 시작했으나 짐 정리는 생각보다 금방 끝이 났다.

애초에 내 짐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가장 무거운 컴퓨터와 프린트를 옮기는 건 조금 힘이 들었지만, 나머지는 금방이었다.

차에 물건을 다 옮긴 다음 운전석에 앉아 에어컨을 틀었다.


땀이 식기 시작하며 한숨이 나왔다.

이제 떠나야지. 떠나자. 아내의 흔적이 없는 곳으로 떠나자.

그렇게 생각하며 액셀을 밟으려니 차에 생각이 미쳤다.

그러고 보니 이 차도 애를 낳으면 같이 캠핑을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거였는데.


이것도 아내의 흔적이라면 아내의 흔적이겠지.


벗어나려 해도 완전히 벗어나진 못하나 보다.

그래도 뭐... 됐다.

SUV가 없었으면 한 번에 짐을 옮기기 힘들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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