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5화 〉진흙탕(1) (35/301)



〈 35화 〉진흙탕(1)

"잘 먹을게."

"응."

입가에 미소를 그리는 혜정이 아니, 아내.

우리는 어제 부부가 되었다.

나는 결국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크게 달라질 건 없다.

아내가 집을 뛰쳐나가기 전의 관계로 돌아갈 뿐이다.

너는 기특한 아내를 연기하고 나는 평소와 같은 남편을 연기할 뿐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이 상황은 언제라도 파탄 날 있는 상황이라는 걸.

아내의 변덕으로 언제든지 끝장날 수 있는 상황이다.

벼랑 끝에 몰려있는 상황.

아내는 돌아갈 곳이 있다.

이혼하고 일을 그만두더라도 나름 잘 사시는 부모님의 곁으로 돌아가면 되겠지.

하지만 나는?

지금 다니는 학원을 그만두고 나면 나에게 뒤는 없다.

부모님은 결국 다시 일어서셨고 노후 준비를 하고 계신다.

하지만 생활에 여유는 없다.

이제 40인 아들내미가 갑자기 백수가 된다면 아무런 도움을 주시지 못한다.

그래. 직장을 잃는다는 것은 결국 내 인생이 끝장난다는 뜻이다.

완전히 외통수다. 만약 이 좆같은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고 발광을 해도 아내가 학원에 찾아가서 입을 터는 그 순간  경력은 순식간에 박살 난다.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강사가 학생에게 손을 대었다? 범죄행위가 없었다고 해도 그런 강사를 뽑아주는 학원 따위는 없다.

디지털 사회다.

나란 존재의 신상은 순식간에 퍼져나갈 것이고 그 순간 나는 사회적으로 매장된다.

막막하다.

아내가 뛰쳐나가기 전과 똑같은 식사를 하고똑같은 대화를 나누고 있음에도  목에는 보이지 않는 목줄이 매여있다.

언제나 반듯하고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던 내가 이성을 잃고 증오하며 질투하는 모습에서 쾌감을 느낀다는 아내.

싸이코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하지만 너도 어쩌면 나랑 같은 고민이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서오는 강한 쾌감.

내가 수진이의 소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을 때 느꼈던  상상을 초월하는 쾌감.

 감정에 비슷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언제나 받들고 공주님처럼 모시던 남자들과 달리 너를 막 대하고 화풀이를 하는 거친 남자의 모습을 보이는 내가 마음에 들었던 걸지도 모르고.

이젠 너를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밥을 입으로 넣고 있는지 코로 넣고 있는지도 모른 채 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서려 했다.

"여보~ 하고 가야지."

톡톡.

자신의 입술을 두드리는 아내.

이가 갈린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오물이란 오물을 섞어 썩어버린 물체를 얼굴에 뒤집어썼다면 지금 내가 짓고 있는 표정이 되리라.

나는 이를 꽉 깨문 상태로 아내의 입에 입을 맞췄다.

"아하하!"

미친년.

"잘 다녀와요~"

나는 아무 말 없이 문을 닫고 걷기 시작했다.

괜찮다. 곧 나에게 먼저 이혼 이야기를 꺼내겠지.

나를 사랑하는  같다고? 웃기지 마라.

그런 거 믿지 않아.

***

평소와 같이 강의를 하다 보니 학생들의 집중력이 떨어진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나는 시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벌써 여름인가 봅니다. 엄청 덥네요. 집중력도 떨어진 거 같으니 5분간 쉬었다 하죠."

다들 철퍼덕 책상에 엎어진다.

나는 이 5분 동안 잡담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뭐라고 해야 할지모르겠다.

그래서 나도 더우니 좀 쉬어야겠다는 이야기를 꺼내고자리에 앉았다.

다들 멀뚱멀뚱 날 바라보다가 몇몇은 칠판을 바라보며 판서를 하고 나머지는 책상에 고개를 처박고 쉬기 시작했다.

몸에 힘을 빼고 한숨을 쉬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나를 멀뚱멀뚱바라보는 수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나는 가슴이 옥죄는 듯한 아픔이 느껴져 고개를돌려버렸다.

나는 수진이를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처한 상황이 그녀의 삶을 망가트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은... 지금은 도저히 너를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도망치기로 했다.

오늘은 볼일이 있어서 먼저 돌아가겠다는 카톡을 보냈다.

수진이는 바쁘면 어쩔 수 없다는 카톡을 보내왔다.

`자기 전에 연락주세요.`

그 카톡을 본 순간 내가 처한 상황도 잊어버리고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너무나 사랑스럽다.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가슴이 아팠다.

나는 수진이를 배신하고 있다.

수진이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불륜을 저질렀던 아내와 몸을 섞고 있다.

이 모든 걸 던져버리고 너에게 갈 수도 없다.

그 결과는 더욱  상처  것을 아니까.

내가 도대체 뭘 그리 잘못했단 말인가.

왜  인생은  모양이란 말인가.

죽도록 고생해서 이름만 들으면 누구라도 하는 일류 대학을 나왔다.

1티어는 되지 못했지만 2티어는 된다고 생각하는 강사가 되었다.

억대 연봉은 아니더라도 내 또래의 평균 연봉보다는 훨씬 많이 번다.

할 만큼 했잖아.

 만큼 해왔는데 왜 나는 상대적으로 거지가 되어있고 처한 상황마저 거지 같은 거냐.

"... 사님?"

비틀비틀.

몸에 힘이 없다.

어찌어찌 강의준비실이내 자리에 앉았다.

"준수 강사님?"

그제야 나는 몇 번이고 나를 부른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인한 강사님?"

"도대체 무슨 일이세요? 안색이 너무 창백한데."

당신의 눈에도 내가 그리아파 보이는건가.

"여름감기인가요?"

여름 감기... 여름 감기.

여름 감기가뭐였더라?

"얼른 집에 가셔서 푹 쉬시죠."

나에게 몸조심하라는 말을 꺼내곤 퇴근을 종용하는 인한 강사.

 집으로 돌아가라고?

 집엔 아내가 있다. 아내가 있단 말이다.

하... 웃긴다.

내가 처한 상황이 너무나 웃음이 나왔다.

나는 스스로 거미집을 향해 날갯짓하는 나비의 형국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어도 뭘 어떻게 해볼 수도 없다.

"예, 예."

나는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

평소보다 1시간 일찍 도착하니 아내도없었다.

나는 평소의 남편이 되기 위해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아내가 퇴근하고 다녀왔다며 인사를 하곤  입술에 입을 맞춰왔다.

역겨웠다.

"음~ 오늘도 참 맛있네."

"그래."

나는 남편을 제대로 연기하고 있는 걸까.

혹시라도 아내가 지금의 나에게 불만을 느낀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 삶이 박살난다면... 그래도 수진이만 무사하다면 그래도 된다.

그 정도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고생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런 위험도 따라오는 행동이었으니 내 잘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수진이는 안 된다. 수진이는 수능을 앞둔 고3이다.

소설 연재를 멈추고 수능에 집중해야 할 매우 중요한 시기다.

수능은아주 사소한 것으로도 점수가 달라지는 예민한 시험이다.

평소에 쓰던 펜이 아니라거나 평소에 앉던 의자와높낮이가 다르다는 그런 사소한 이유만으로도 점수가 달라질 정도로 매우 섬세한 시험이다.

그런 중요한 시험을 앞둔 그녀를 힘들게 해선 안 된다.

이것은 나의 잘못이다.

내가 우유부단하고 멍청했기에 일어난 상황이다.

수진이를... 끌어들여선 안 된다.

내가 참으면 된다. 참으면 아내도 나에게 질려서 떠나가겠지.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수진이를 만나러 가면 되는 거다.

참자. 참는 거다. 참는 건 잘하니까. 지금까지 그리 살아왔으니까.

기계 김준수.

그래. 나는 기계 김준수다.

 정도는 충분히 연기할 수 있다.

샤워를 마친 아내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요즘 부쩍 성욕이 늘은 듯한 아내는 나를 계속해서 요구해 왔다.

나의 자지를 정성스럽게 애무하고 핥으면서 나를 올려다보는 아내.

정욕으로 물든 시선.

왼손으로는 자신의 보지를 만지면서  자지를 빨며 봉사를 해오는 아내.

능숙했다. 그래서 화가 났고 짜증이 났으며 그런데도 자지를 세우고 흥분하는 나 자신이 병신같이 느껴졌다.

아내가 나를 침대로 밀었다.

"선생님. 수진이 여기가 굉장히 뜨거워요. 섹스해주세요."

그리 말하며 내 배 위로 올라탄 아내.

나를 내려다보는 아내의 표정은굉장히 음란했으며 입가에 걸린 비웃음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릿했다.

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즐기는 있는 느낌이다.

내가 언제 터질지 성질을 긁고 있는 거겠지.

"하앙~ 하앙!"

아내가 열심히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자신의 페이스로 자신의 성감대를 찌르고 휘저으며 즐기고 있다.

점점 사정감이 차오른다.

"선생님 사랑해요. 수진이~ 선생님 아이가 가지고 싶어요."

자신을 수진이라고 부르며 나를 능욕하는 아내.

나는 도대체 이 인간의어떤 모습에서 수진이를 겹쳐봤던 걸까.

불쾌함과 쾌감에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아내의 얼굴에 희열이 번지기 시작했다.

울컥거리며 정액을 토해내는 자지.

아내는 내 위에서 가볍게 경련을 하며 절정을 맛보곤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잠시 숨을 고른 아내가 내 몸에서 내려왔다.

내 정액으로 가득 찬 묵직해진 콘돔을 벗겨내곤 내 자지를 정성스럽게 빨며 청소를 해주기 시작한 아내.

"추릅. 쪽. 응~ 오늘도 좋았어, 여보~♡"

그리 말하며 애교를 부리기 시작한다.

행복하다는 듯한 그 표정과 행동이 너무나 가증스럽다.

나를 정말로 사랑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의 가슴에 머리를 얹고는 발기가 풀리기시작한 자지를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잠시간 누워있다가 화장실로 향했다.

내 몸에 달라붙은 정사의 흔적이 너무나 역겨웠다.

하지만 가장 역겨운 것은 그런 아내의 손짓에 흥분해서 정액을 토해내는 나 자신의 꼬락서니였다.

나는 내 몸에 스며든 불쾌함을 차가운 물로 씻어내려 했다.

하지만 좀처럼 불쾌함이 가시지 않았다.

***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라 배웠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배웠다.

나는 지금 배운 대로 행동하고 있는 걸까.

어지럽다. 머리가 무겁다.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있긴 한 걸까.

춥다. 여름인데도 내 몸은 감기에 걸린 것처럼 너무나 추웠다.

방으로 들어갔지만, 그곳도 그리 따뜻하지는 않았다.

이상하다.  방엔 에어컨이 켜져 있지 않은데 왜 이리 춥게느껴지는 걸까.

휴대폰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외통수다. 끝났다. 나 혼자서는 안 된다.

글러 먹었다. 이젠 한계다.

누군가...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다.

제발 누가 좀 살려줬으면 좋겠다.

이 답답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

베란다로 나갔다. 여름이 한창이다. 벌레의 울음소리와 도시의 소음이 귓속으로 파고든다.

한여름의 후끈한 열기가 몸에 스며들어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나는 베란다의 밖을 내다보았다.

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다.

저곳은 너무나 어둡고 빛도 한점 없어서 저곳에 내가 있다면 그 누구도 나를 찾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편안해 보이는 세상.

저곳에 나를 두면 얼마나 편할까.

남에게 예의를 차릴 필요도 없고 민폐를 끼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편안해 보인다.

나는 그만 쉬고 싶었다.

위이잉.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지금 주무세요? 왜 카톡 안 해요?`

수진이가 카톡을 보내왔다.

새까만 어둠 속에서 수진이가 보내온 카톡으로 반짝이는 휴대폰의 액정만이 눈에 들어왔다.

베란다에 기대 축 늘어졌던 몸에 힘이 돌아왔다.

편안해져? 지랄.

도망친 곳에 편안함 따윈 없다.

내 인생이 그리 만만했었나.

지금까지 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패배의 연속이었고 증오와 열등감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그런 상황에서 수진이를 만났다. 변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포기한단 말인가.

 된다. 아직이다.

그래. 진정하자. 진정하고 일단 수진이의 목소리를 듣자.

지금은 수진이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어, 이제 자려고. 미안 바빠서 깜빡했네."

`...선생님, 울어요?`

"어?"

`아니, 목소리가 좀 잠기셔서.`

"감기...인가 봐."

전화기 너머로 수진이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화라도 지금 선생님이 어떤 표정인지 알겠어요.`

"응?"

`안알랴쥼 말고요.`

"하하..."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던것 같다.

`집에 무슨 일 있어요?`

지금상황을 털어놓고 도움을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나이를 먹다 보니 하소연하기도 뭐하고 그냥 그러네."

`친구분들에게도 못할 이야기에요? 준범이라는 분이라던가.`

"준범이라..."

준범이한테 뭘 물어본다고 이 상황이 달라질까?

"말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안 하는  보단 낫겠죠?`

그런가. 안 하는 거보단 낫나?

나는 수진이와 잠시간 통화를 했다.

한여름임에도 덜덜 떨리던 몸은 어느새 한여름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조금 땀이 나고있었다.

전화가 끊어지고 생각에 잠겼다.

준범이? 준범이라. 그래. 준범이면 될지도 모르겠다.

준범이는 나보다 더 곤란한 상황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다니지 않으면 곧장 파탄 나는 상황에 부닥쳐있던 녀석이다.

공장에 다니며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했어야만 했던 녀석.

녀석은 그런 상황에서조차 기어 올라와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다.

너는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나는 내  몸 간수하기도 힘들었는데 말이다.

준범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재 시각은 자정이 조금 넘었다.

밤이 이른 사람이라면 잠이 들었을 시간.

`이 시간에 뭐냐?`

"..."

`여보세요? 여보세요? 씨발롬아 전화를 걸었으면 말을 하세요.`

"야, 시간 좀... 되냐?"

`뭐? 언제.`

"지금."

`지금? 너 씨발 지금이  신줄... 뭐여? 뭐 있냐?`

"..."

`우리 집으로 와라.`

뚝.

전화가 끊어졌다.

그래. 나는 글러 먹은 인간이다.

나 스스로는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도 모르겠고 그저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다.

 답답한 상황을 누군가 대신 해결해주길 바랄 정도다.

준범아. 너는 답을 알고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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