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족쇄(1)
"김 서방 오랜만이야~"
"예, 장모님. 어서 오세요."
"그래그래, 뭐해? 빨리 들어와! 네 집이잖니, 이 계집애야."
드륵드륵.
얼마 전에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갔던 혜정이가 돌아왔다.
혜정이와 눈이 마주치려고 해서 곧장 고개를 돌려버렸다.
"들어오세요."
"그래그래, 아우~ 역시 우리 김 서방은 똑 부러진 사람이네. 집이 아주 깨끗해. 쌓아놓은 쓰레기도 없고."
장모님은 제집을 드나들듯이 성큼성큼 집안으로 들어와선 여기저기 둘러보기 시작했다.
나는 아내 방을 제외한 거실이나화장실, 내 방은 깨끗이 해놓은 상태였다.
"아니, 김 서방.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안방은 좀 치우고 살아야지! 이게 뭐야 이게!"
아내 방은 장모님이 오신다는 소식에 정리하려고는 했으나 밤이 늦은 시간이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치워야겠다 생각해서 미뤄뒀었다.
아침에 일어나 치우고 있으려니 장모님이 너무 일찍 찾아오셔서 다 치우지 못했을 뿐이고.
"역시 남자들은 집에 여자가 없으면 안 된다니까. 금방 어지르고 말이야. 우리 바깥양반도 내가 동창회라도 갔다 온다 하면 집을 어지럽히고 정말 남자들은 문제라니까 문제."
무슨 개틀링건인줄 알았다.
본인이 할 말만 하는 인간.
불편하다.
상대방의 말은 듣지도 않고 본인의 말만 속사포처럼 내뱉는 사람.
남들에게 자신이 옳고 너는 틀리다며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사람들 특유의 언행.
이미 분가하여 엄연히 남의 집인데 제집처럼 들어와선 방안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매우 불쾌했다.
우리 어머니는 당신이 찾아오시면 아내가 불편해한다고 결코 찾아오려고 하지 않으셨는데 말이다.
"김 서방 아침은?"
"먹었습니다."
"그래? 역시 김 서방은 주말에도 빠릿빠릿하네. 우리 바깥양반은 주말만 되면 늘어져서 잘 일어나지도 못하는데 젊다는 게 참 좋아 그지? 아, 우리 양반도 예전에는 이렇게 빠릿빠릿했는데 말이야."
그리 말하며 뭔가 가지고 오셨는지 주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장모님.
"뭐, 별건 아니고. 김 서방도 이제 나이가 있잖아? 결혼하고 산다는 게 힘들어. 서로 싸우기도 하고 그렇고. 근데 애가 있으면 안 싸우거든. 내 말뜻 알지?"
장모님이 테이블에 뭔가를 올려놓았다.
한약으로 보인다.
"우리 그이도 사람이 변했는지 언제부터 잔소리도 늘고 예전처럼 빠릿빠릿하지도 않고 그러다가 혜정이생기고부터는 그렇게 뭐라고 안 하더라고. 애가 있어야 사람이 열심히 살아. 그러게 진작에 애부터 낳지 그랬어, 어? 그랬으면 이렇게 싸울 일도 없잖아."
장모님은 그리 말하며 나와 혜정이를 보며 잔소리를 시작하셨다.
닮았다. 아내와 많이 닮았어.
장인어른이랑 대학교 때 만나서 결혼하셨고 혜정이를낳았다고 하셨으니 이제 환갑이 가까우시겠지.
환갑잔치한다는 이야기는못 들은 거 같으니 조금 더 젊을 수도 있고 아니면 요즘 환갑을 누가 챙기느냐며 넘겼을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나이인데도 염색을 주기적으로 하시는지 흰머리가 눈에 띄지 않고 얼굴에 화장품도 찍어 바르셨다.
운동도 하시는지 허리도 굽지 않았고 건강해 보이신다.
쯧. 귀찮은 인간.
그렇게 본인 몸에 관심이 많으면 상대방도 배려할 줄 알아야지.
***
"드세요."
"아이고 김 서방 요리도 잘하고 완전 일등 신랑감이야! 일등 신랑감! 요즘은 그렇게 요리 잘하는 남편이 인기라며? 요리도 잘하고 집안일도 잘하고 완전 복 받았네, 이년아!"
장모님이 얌전히 밥을 먹고 있던 아내의 등을 두드리셨다.
별건 없다.
아내를 주방에 세우기고 뭣했고 여기까지 찾아온 장모님이 밥을 차려주신다는 상황도 묘해서 내가 점심을 준비했을 뿐이다.
메뉴도 평범하다.
밑반찬은 미리 만들어뒀고 메인메뉴로 닭도리탕을 했으며 국으로는 조금 시원하게 무채 계란국을 준비했을 뿐이다.
닭도리탕은 조금 손이 들지만 무채 계란국은 만들기도 쉬운 요리라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다.
"음~ 정말 맛있네. 김 서방. 그래, 오랜만에 보니 살이 좀 오른 것 같은 데 보기 좋아~"
살이 아니고 근육입니다만?
"네. 담배도 끊고 운동도 하니까 식욕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금연이라고? 아이고~ 김 서방! 잘했어 잘했어! 담배 그거 비싸고 몸에도 안 좋은데 언제까지 계속하네 했네. 끊어라 끊어라 잔소리하면 껄끄러울거 같아서 말은 안 했었는데~ 정말 잘했어~ 김 서방!"
웃기고 앉았군.
별말 없던 장인어른이랑 다르게 장모님은 내가 담배를 피우려고 하면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으셨다.
"어머 어머, 확실히 운동했다고 하니까 뭔가 좀 달라 보이네~, 이년 이거 완전 밤에 좋아 죽었겠네! 아주 깨소금이 쏟아지겠어~ 아휴!"
짜증 난다.
혜정이를 바라보자 그냥 고개를 처박고 밥만 깨작깨작 처먹고 있다.
얼른 이혼했어야 했는데...
"으휴~ 부부는 닮는다더니 이년도 결혼하고 완전 숫기가 없어졌네. 왜 그래 이년아!"
왁자지껄.
평소와 달리 떠들썩한 식탁.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혜정이가 집을 나가고 적막해진 집이 외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니다. 이런 걸 바라진 않았다.
내가 원한 떠들썩함은 이런 게 아니었다.
화가 난다. 점점 머리에 열이 오르는 기분이다.
당장 꺼지라고 면전에 욕을 처박고 싶은 기분이었으나 어떻게든 화를 억눌렀다.
나는 상식을 아는 인간이니까 말이다.
모처럼의 주말인데 이렇게 불쾌한 기분이 될 줄 몰랐다.
차라리 평일이었다면 이리 짜증이나지도 않았겠지.
예전에는 강의하면서도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는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자문자답을 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다르다.
강의하는 것도 즐거워지고 있는 요즘이다.
내 강의를 듣고 웃어주는 학생들이 있고 그중에 수진이가 있다.
예전과 달리수업 후에 질문이 있다며 강의준비실로 찾아오는 학생이 많이 늘었다.
그중에는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를 생각하는 학생도 있었고 사담도 자주 나눈다.
학교에서 백일장을 여는 데 도움 좀 달라면서 본인이 쓴 글을 들고 와서 감상을 물어본 학생도있었다.
내가 얼마 전에 강사가 박봉이라 웹소설을 끄적여봤는데 영 별로였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내본 것이겠지.
나는 소설을 써온 학생에게 하꼬 작가한테 미래의 대작가님이 될지도 모르는 작가님의 원고를 평가하려고 하니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환한 미소를 보였던 그 학생.
그 학생은 웃으면서 잘 부탁한다며 고개를 숙였었지.
나에게 학원은 돈을 벌기 위한 공간이 아닌 소중한 장소가 되었다.
이제는 그곳이 불편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알차고 즐겁다.
거리두기니 방역이니 해서 주말엔 그곳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쉬울 정도로 말이다.
***
"이년아 할 말 있으면 충분히 나누고 짐은 내가 풀을 테니까."
장모님이 혜정이의 캐리어를 방으로 끌고 가서 짐을 풀기 시작하셨다.
혜정이와 단둘이 남은 거실.
"..."
혜정이는 아무 말이 없다.
나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장모님, 커피 드세요?"
"어, 김 서방. 그럼 아아로 부탁해요~"
그 나이에 `아아`라니 대단한 사람이다.
"네."
"너는?"
"같은 거로."
"그래."
나는 커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커피메이커로 아메리카노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건 혜정이가 사온 물건이다.
평소에 카페를 자주 찾아가던 혜정이는 결혼 이후에도 커피를 자주 찾았다.
커피도 한 두 푼이 아니고 집에서 해먹자고 하니 사온 물건이다.
나는 자판기 커피의 달콤함으로 커피를 즐기는 인간이다.
이걸 사용하는 건 아내밖에 없지.
싸우기 전엔 종종 이 커피메이커로 혜정이에게 커피를 타줬었지.
이걸 다시 사용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커피를 내리며 생각에 잠겼다.
장모님에 대한 생각.
장모님은 정말 파워풀한 사람이다.
꼭 어린애가 나이를 먹고 그대로 어른이 된 듯한 사람.
이제 환갑에 가까운 나이일 텐데 나이보다 10살은 더 젊어 보이게 다니시고 `아아` 같은 말을 하시는 사람이다.
나는 문득 장인어른이 떠올랐다.
너무 애처럼 군다고 철 좀 들으라고 했다가 크게 싸우고 혜정이 때문에 참고 살고 있다던 장인어른.
나는 우리 가정에 애가 없다는 사실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이혼 이야기를 꺼낼 수도있었는데 시간을 끌다가 이 꼬라지를 만든 거다.
아이가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상상은 어렵지 않다.
온화해 보이지만 뭔가 세상에 미련이 없고 언제든지 떠날 것처럼 가벼운 공기를 몸에 두르고 계시던 장인어른.
하지만 화가 나면 그 순간 돌변하던 장인어른.
그 모습이 뇌리에 떠오른다.
아마 나의 미래도 장인어른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가 있었다면 그날 혜정이에게 싹싹 빌었을 것이고 그럼 혜정이도 겉도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러면 내가 수진이와 이렇게 가까워지는 일도 없었겠지.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듯한 기분이다.
내가 변화하기 시작한 건 3월의 끝자락 수진이를 만난 그 날부터다.
이제 2개월이 좀 넘게 지났다.
고작 2개월에 이렇게 삶이 평온하고 하루하루가 만족스럽다.
그런데 갑자기 2개월 전의 그 생활로 돌아가라고?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강사를 한 지는 10년이 넘었다.
고작 10년 만에 온몸에서 시체와같은 썩은 내를 풍기던 인간이었는데 아이라는 존재 때문에 그런 삶을 최소한 20년은 더 이어가야 한다.
아이를 기르며 행복하다고 자기 자신에게 최면을 걸며 늙어가는 나.
마음이 썩어 문드러지고 살고 싶다고 비명을 질러도 누구도 들어주지 않고찾아주지 않는 내가 떠오른다.
오한이 인다.
6월.
무더위가 기승이라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있는 집안.
충분히 시원할 텐데도 나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위이잉.
휴대폰이 울렸다.
카톡이다. 장인어른이 보내신 카톡.
`집사람이 거기 가 있나?`
`예.`
`잠깐만 기다리게 곧 가지`
***
"아니, 이 사람이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오길 찾아와! 내가 가만히 있으랬지!"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고그래, 소리를? 김 서방이 다 듣잖아."
"조용히 하고 얼른 나와!"
"시끄러워! 이웃 민폐야! 김 서방, 부부가 싸울 수도 있고 그런 거지. 언제나 응? 누가 져주고 그렇게 사는 거야. 김 서방은 똑똑하니까 우리 혜정이가 뭔가 맘에 안 드는 것도 있을 텐데 원래 결혼생활은 남편이 아내한테 이기려 드는 게 아니야."
"아, 글쎄 얼른 나오라니까!"
"아, 간다고 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소리를 치는지 원. 아무튼, 김 서방! 져주는 게 이긴다고들 하잖아? 가끔씩 져주고 그래. 혜정이도 잘 타이르면 알아 들을 거야? 야 이 푼수야! 엄마 갈테니까 김 서방한테 잘해!"
장인어른한테 끌려나가는 장모님.
장인어른은 장모님을 밖으로 밀어내고 잠시 나를 돌아봤다.
"...이렇게 돼서 미안하네. 혜정이랑은 이야기를 해봤는데 아내한테는 도저히 말을 꺼낼 수가 없어서 잠자코 있었더니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네."
"이해합니다."
"그동안 반성은 많이 했을 거야. 무조건 가서 싹싹 빌라고 앞으로 잘하라고 그렇게 말해놨네. 집에 불화가 생겨서 겉도는 것이야. 나는... 김 서방. 자네가 상식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고 믿겠네."
상식? 그게 뭔데?
"아니, 가자던 사람이 왜 안 나와?"
"그럼 이만 가지. 잘 지내게."
"예, 들어가세요."
쿵 위이잉.
도어록이 잠기고 적막함이 감돈다.
밖에서는 벌레가 울고 있다.
이제 여름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벌레의 소리.
나와 혜정이는 벌레 소리와 쌩쌩 돌아가는 에어컨의 소리만이 감도는 집안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TV도 켜지 않고 적막함 만이 감도는 집안.
혜정이가 먼저 걸어가서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나도 그녀를 따라가서 그녀의앞에 섰다.
뭐라고 해야 할까. 역시 이혼하자는 이야기를 꺼내는 게 좋겠지.
이제 이혼하자. 도장을 찍자. 서로 좋게좋게 헤어지자.
나는 바쁜 사람이다.
6월에는 학생들 모의고사가 있어서 대비를 해야 하고 끝나고 나선 문제풀이를 도와야 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1주일 정도의 휴가를 받고다시 여름방학 특강이 있다.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머리를 써야 할 일도 많다.
더 이상 나를 힘들게 하지 말고 내 눈앞에서 꺼져라.
그래. 강하게 나가자.그냥 꼴도보기 싫으니 꺼지라고 하고 이혼하자는 이야기를 꺼내자.
그리 생각하고 입을 열려고 했다.
"안 할 거야."
하지만 선수를 친 건 혜정이었다.
"뭐?"
"안 할 거라고 이혼."
혜정이는 탁해진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