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김서방 잠깐 시간 좀 되나?(2)
나는, 나는 아버지란 존재들이 너무나 거북하다.
아직도 아버지란 존재가 무섭고 어렵다.
그래. 나는 이 나이가 되었음에도 아직도 풋내나는 꼬맹이에 불과하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학창시절의과도할 정도로 엄하던 태도와 가끔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의 폭언을 내뱉는 것과 나의 삶을 망가트린 뭐, 그런 것들이섞여 있다.
나는 아직도 아버지와 화해도 못 했고 그렇다고 면상에서 욕을 하지도 못하기에 무뚝뚝하게 최소한의 대화만을 나누고 있다.
1년에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이 채 5분을 넘지 않겠지.
하지만 아버지는 경상도 남자시니까 이런 나한테서 별 특별함도 느끼지 못하시겠지.
당신이 힘들게 살았다며 나에게 공부를 강요하며 언제나 잔소리를 하던 사람.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했다.
학창시절엔 하루에 6시간 이상 잠을 자본 적도 없다.
그런 나에게 항상 격려가 아닌 잔소리와 신세 한탄, 폭언을 뱉던 아버지.
ㅡ 몸으로 빌어먹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 공부해서 좋은 대학가고 좋은데 나와서 편하게 살아야지.
성적이 떨어지면 욕설도 부지기수였다.
ㅡ 너는 씨발 남자 새끼가 자존심도 없냐? 너랑 노는 친구들은 다 이렇게 성적이 좋은데 이게 성적이 뭐냐?
내 성적이 그리 나쁜 것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좋은 편이었지.
성적이 바닥을 기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컨디션이 나빠서 성적이 조금 떨어졌을 뿐이다.
하지만 항상 전교 10등 안에 들다가 갑자기 성적이 떨어졌으니 아버지에겐 공부를 게을리 한 것으로 보였겠지.
그래서... 아버지가 싫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지도 않았고 입을 열면 잔소리에 목소리마저 커서 나에겐 공포의 존재였다.
가끔 감정이 격해지면 손이 나가는 일도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때가 왔고 나는 아버지에게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ㅡ 소설가? 이 새끼가!
ㅡ 딴따라 같은 새끼들 따라 한다고? 세상 살기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아버지는 내 뺨을 후려갈기시곤 얼굴을 붉히신 상태로 욕설을 퍼부으셨다.
아버지가... 너무나 무서웠다.
나는 어떻게든 그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나중에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인 다음 대학원을 나와 교수가 되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매우 기뻐하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조금 착잡한 표정이셨다.
그날 밤, 어머니는 내 방에 몰래찾아오셔서는 대학교수가 되어도 시간이 남으면 소설을 써보라고 하셨다.
나는 똑똑하니까 뭘 하든 잘할 거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내가 스스로 꿈을 접어버렸을 때 그렇게 미안하다 하시면서 우셨겠지.
어머니의 눈물, 아버지에 대한 증오.
나는 아직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장인어른은 나와 비슷한 유형의 인간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아내가 어디까지 말했을까?
원래 사람이란 건 불리한 건 축소하고 유리한 건 부풀리는 존재다.
아내는 불륜 사실을 숨기고 나의 부정만을 밝혔을 수도 있다.
나는 소설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눈이 뒤집혀서 나를 때리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장인어른을 만난다는 게 이렇게 두려울 수가 없었다.
이미 힘으로 제압할 수 있음에도 나는 아직도 아버지란 존재들이 어렵고 두렵다.
***
오늘도 카페에갈 수 없다는 카톡을 보내자 `...` 라는 카톡이 보내져 왔다.
미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걸 극복해야만 했다.
`내일은 꼭 갈게`
`...`
한참을 기다렸으나 `...`을 보내곤 다른 카톡을 보내오지 않는 수진이.
나는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래. 수진이도 복잡한 상황이리라.
수진이가 멀어질 것 같아 얼떨결에 붙잡고 그대로 키스를 해버렸다.
그리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하고 이틀이 지나버렸다.
지금 어떤 심정일까? 왜 그랬냐, 아내는 어떻게 됐느냐 묻고 싶은 게 많겠지.
답답하고 미치겠지만 내가 기다리라고 하니 초조하리라.
미안했다. 하지만 이 일은 꼭 마무리 지어야만 한다.
그러니 기다려줬으면 한다.
나는 잠시 화장실로 향했다.
쏴아아아.
물이 세면대로 쏟아지고 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세면대의 벽에 걸려있는 거울을 바라봤다.
초조해 보이는 겁먹은 어린애의 모습이 보인다.
용기를 내자.
괜찮다.
할 수 있다.
나는 각오를 다지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아내의 친가는 서울에 있다.
차가막히는 시간이다.
1시간 정도는 걸릴 거리.
식사할 시간일 테니 식당에서 만나자던 장인어른.
이럴 때에도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시는 어른스러운 대응을 하신다.
아내 친가 근처의 한정식 식당에 도착했다.
점원에 예약자임을 고하고 자리로 안내받았다.
장인어른은... 아직 안 오셨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장인어른을 기다리고 있으려니 발소리가가까워졌다.
"아, 왔는가?"
"오, 오랜만입니다. 장인어른."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말고 앉게나."
"예."
장인어른을 따라 들어온 종업원이 메뉴판을 보여주며 메뉴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나는 대충 메뉴판의 메뉴를 가리키며 주문을 끝냈다.
"장인어른. 그, 술은 어떻게 하십니까?"
술이라는 소리에 잠깐 솔깃하시고 눈을 빛내시는 장인어른.
장인어른은 에잉 소리를 내시더니 "필요 없네"라고 말씀하셨다.
"자가용이지? 자네가 그런데 나 혼자 마실 수도 없지."
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적막한 공기.
무슨 말을 꺼내야 좋을지도 모르겠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초조하다. 이 답답한 공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데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요즘 혜정이와 뭔 일이 있었나?"
장인어른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 고혜정.
그래. 아내의 이야기를 해야지.
"혜정이가 지금 집에 있습니까?"
"그래. 지난밤에 갑자기 뭔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는 들어와서 뭔 말인지 물어도 말이 없네."
"..."
어색한 분위기, 어색한 대화.
아내는 짐을 싸들고 회사에 출근했다가 그대로 친정으로 갔나 보다.
집에서 왜 왔느냐고 물어도 대답은 안 한 모양이지.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아내가 바람을 피워서 맞바람을 폈습니다.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입을 열려고 하니 입이 차올라 입이 다물어졌다.
손이 땀으로 끈적해져서 점원이 가져온 물수건에 연신 손을 문질렀다.
초조해서 뭔가를 안 하면 미쳐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떻게 운을 뗄까 한참을 고민하고 있으려니 장인어른이 먼저 입을 여셨다.
"예전에... 아내랑 크게 싸웠던 적이 있다네."
"장인어른께서 말입니까?"
굉장히 의외다.
"그래, 화가 났었거든."
물을 한 모금 마신 장인어른은 이어서 당신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집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었네. 그래서 고백했지. 10번 찍어안 넘어가는 나무가 있나? 나는 계속 사귀어달라고 따라다녔고 결국엔 이렇게 좋다고 하는데 사귀어도 괜찮겠다 싶어서 만나보겠다는 생각이 생겼다더군."
약간 부끄러우신지 목덜미를 긁적이시며 헛기침을 하고 다시 입을 여시는 장인어른.
"그렇게 만나다가 결혼하고 부부가 되어서였네. 아내가 너무 고집불통인 거야. 사람이 말을 해도 잘 안 들었지. 내가 뭐라고 한마디 하려고 하면 사람이 변했네, 사랑이 식었네, 그러더군."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다.
그런가, 아내는 장모님을 닮은 건가.
"하다 하다 너무하다 싶어서 고함을 쳤지. 제발 정도껏 하라고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어리냐고. 어른이 됐으면 철좀들라고 다그쳤지."
하아~하고 한숨을 쉬시는 장인어른.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위가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며 운을 떼시는 장인어른.
나라면 그게 가능할까? 정말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판 싸우고 울고불고 이혼한다고 떼를 쓰는 아내를 어찌어찌 달랬어. 혜정이가 옆에서 엉엉 울고 있는데 다 큰 어른이 이러면 어쩌나 싶었지.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했네. 뭐, 부부관계란 게 그런 거 아니겠나? 한 명이 잘못하면 한 명이 받아주고 그런 거지."
종업원이 들어와서 잠깐 대화가 멈춘다.
식사가 차려진다.
"들게."
"예, 장인어른."
우리는 그렇게 잠시 말을 멈추고 식사를 했다.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겠다.
"내 탓이네. 어찌 자네 탓을 하겠나?"
"예?"
"혜정이가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나는 혜정이한테 화를 내본 적도 없고 회초리도 들어본 적이 없어."
"..."
"마냥 귀엽고 예뻐서 오냐오냐 키워서 그렇다네. 좀 멋대로인 구석이 있지."
"예..."
"괜찮네. 말해보게."
장인어른은 침착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로 나를 바라보셨다.
나는 장인어른의 배려와 따뜻한 시선에 용기를 냈다.
"그게..."
나는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왜 이런 상황이 됐는지를 설명하려면 여지껏 있었던 이야기를 전부 말해야겠다는생각이들었다.
그녀가 불륜을 저질렀다고만 고하기에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신 장인어른에게 못할 짓을 하는 기분이었고 내 불륜을 고하기에는 나 자신이 떳떳하지 못했다.
아내한테도 들려준 적이 없던 학창시절부터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장인어른은 내 이야기를 들으시며 그저 고개를 살짝씩 끄덕여주셨다.
아버지와의 불화, 소설가가 되고자 했지만 좌초됐던 일, 대학에서 집안이 휘청했던 사건, 대학원을 포기하고 지금의 일자리를 잡게 된 일.
아내와 맞선을 한 이야기.
아내와 만나면서 느꼈던 점, 결혼하고 느꼈던 일들.
아내와 점점 어긋나기 시작했던 일.
아내에게 그동안 쌓여왔던 불만들을 증오하듯이 토해내 버린 일.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장인어른은 헛기침을 한번 하시고는 물을 마시셨다.
"그랬구만. 허, 참 이건..."
지금부터가 본론이다.
괜찮다. 장인어른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어른이니까.
마음을 다잡고 장인어른에게 우리가 이렇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외견에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쓰기 시작하는 아내에게서 느꼈던 묘한 점.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해 서로를 병풍 정도로만 바라보던 우리는 그렇게 점차 멀어져갔고 아내는 점점밖으로 겉돌기 시작한 점.
나는 아내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혹시? 라는 생각에 뒷조사했다는 것과 그 결과 아내의 외도에 대한 증거를 잡아버렸다는 이야기를 쉬지 않고 말했다.
한참을 이야기하고 나니 목이 메어 물을한입 마시니 부들부들 떨고 계시는 장인어른이 보였다.
"그래서?"
장인어른은 계속 말하기를 촉구하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내의 외도는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모르지만, 최소 6개월 이상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
아내에 대해서 완전한 증오와 분노, 역겨움에 가까운 감정이 있었다는 것.
아내에게 외도증거를 들이밀고 언제든지 이혼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다가 차마 꺼낼 수가 없었다는 것.
어머니가 떠올라서 주변에 대한 체면 때문에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해 질질 끌었다는 것.
그러다가 나도바깥으로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것.
그녀와 만나기 시작하며 내가 살아왔던 삶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는 것.
나를 인정해주고 나를 존중해주는 사람을 만나자 나도 모르게 아내와 비교하며 점점 더싫어지기 시작했다는 것.
그녀와 밖에서 만나다가 일이 꼬여 애매하게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술김에 아내를 덮쳤다는 것.
오히려 그 순간부터 아내가 나랑 마주하더니 기특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
나는 아내와 평범한 가정을 연기하면서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이혼하자고 이야기를 꺼내려다가 어머니한테서 걸려온 전화에 고할 수 없었다는 것.
그러다가 아내가 집을 나가버렸다는 것.
그 모든 것을 다 말했다.
정적이 감도는 방안.
장인어른은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있어서 어떤 표정인지 모르겠다.
쾅!
갑자기 들려온 큰소리에 몸이 움찔 떨렸다.
장인어른이 주먹으로 식탁을 내리치신 모양이다.
나는 물끄러미 장인어른을 바라보았다.
장인어른은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 계셨다.
"미안하네, 자네에게, 정말 미안하네."
"장인어른."
손을 내밀며 뭐라고 하려는 나를 막아 세우는 장인어른.
"내 탓이야. 내가, 내가 아비구실을 못해서."
"아닙니다, 장인어른. 그게ㅡ."
"그만두게... 그래서 그 만난다는 사람이랑은 어떤 관계인가?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사이인가?"
"..."
어떤 관계일까?
같이 소설을 쓰고 커피를 마시고 데이트도 한 번 하고 카톡도 주고받고 전화도 하는 사이.
일전에는 얼떨결에 키스도 한 사이이다.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주게나"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이는 장인어른.
"장인어른 고개를ㅡ"
"모두혜정이 잘못이지. 알고 있네. 그런데 나는 지금 자네가 굉장히 밉다네. 이건 번지수가 잘못된 거 잘 안다네. 그런데도 나는 지금김 서방. 자네가 정말 밉다네."
장인어른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 눈은매우 매서웠다.
난 이 눈을 본 적이 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땐 국민학교였는데 이땐 선생 중에 정말 무식한 인간들이 많았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선생에게 뺨을 맞고 넘어지다가 책상에 이마를 찧어 머리에서 피를 줄줄 흘렸던 사건이다.
그날 교실은 뒤집혔고 그 아이의 부모님이 학교에 찾아왔었다.
씨발놈의 새끼, 개새끼, 미친새끼를 찾으며 자신의 아이를 다치게 한 교사를 찾던 아버지와 다친 아이를 감싸 안던 어머니.
교사들 모두가 튀어나와 `진정하세요 누구누구 아버님` 이라며 난리가 났었다.
장인어른의 눈은 그때 자신의 아이가 다쳐 이성을 잃은 아버지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늦었으니 이만 일어나지. 아무튼, 다시 한 번 생각해주게. 혜정이가 그렇게 펑펑 우는 모습은 본 적이 없어. 아마 혜정이한테는 아직 자네가 필요한 거야. 서로 조금만 더 시간이 필요한 거야."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니 꽤 늦은 시각.
나는 전신의 힘이 쏙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아내가 나를 필요로 한다고? 펑펑 울었다고?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이혼, 아내, 수진이.
머릿속이 복잡하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
위이잉.
카톡이 왔다.
`지금 많이 바빠요?`
수진이다.
그 순간 나는 얹혀있던 것들이 싹 하고 내려가며 속이 편안해진 기분이 들었다.
수진이가 부른다.
그것만으로 이렇게 기분이 편안해지고 행복하다.
수진이랑 짧게 주고받는 카톡으로도 이런 기분이 된다.
죄송합니다. 장인어른.
정말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