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김서방 잠깐 시간 좀 되나?(1)
"당연히 네가 더 소중하지"
"근데 왜요? 왜 어제 전화 안 했지?"
나는 그 말에 잠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땐 아내와 섹스를 하던 중이었으니까.
"아~ 아아 그렇구나! 어제 아내분이랑 잤어요? 그래서 전화를 못 걸었구나? 그죠?"
이래서 눈치가 빠른 아이는 싫다니까...
눈치가 빨라서 좋았던 네가 조금은 무서워졌다.
"..."
"말이 없는 거보니 맞나 보네요? 하, 어이가 없어서."
뭔가 몸이 떨린다 싶어 뒤를 힐끔 바라봤더니 수진이가 다리를 떨고 있었다.
처음 봤다. 수진이가 다리를 떠는 모습.
수진이도 그만큼 초조하고 짜증이 난다는 뜻이겠지.
나는 뭔가 말을 해야만 할 거 같은 충동에휩싸여 어떻게든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게 있잖아. 아내는 오나홀이야!
...미친놈인가?
"선생님, 정말 대단하신 거 알아요? 어쩜 그러지?"
수진이는 나를 매도하면서도 계속해서 다리를떨고 있었다.
분위기가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든 수진이에게 뭔가 말을 건네 이 답답한 분위기를 종식하고 싶었다.
그래서 입을 열려고 한순간 진동으로 바꾸어놓은 휴대폰이 울렸다.
위이잉.
"..."
정적.
순간적으로 세상에서 소리가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흐응. 아내구나?"
기분 탓인지 모르겠으나 갑자기 주변의 기온이 내려간 기분이다.
나는 휴대폰을 바라봤다.
`오늘은 언제 와`
씨발. 진짜로 아내였다.
이 개 같은 년은 왜 이지랄을 하는지 모르겠다.
매일 매일 매일 날 감시라도 하려는 생각일까.
테이블에 올려놓았던 내 휴대폰을 낚아채 가는 수진이.
신경질적으로 패턴을 풀려고 하지만풀리지 않았는지 나를 째려봤다.
"패턴 바꿨어요? 왜?"
나는 말없이 그녀가 내미는 휴대폰을 받아서 패턴을 풀어줬다.
수진이는 내 휴대폰을 가져간 다음 아무 말도 없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다시 적막한 분위기가 된 카페.
그 적막을 깬 건 또다시 진동하기 시작한 내 휴대폰의 진동음이었다.
"헤~ 결혼기념일이었어요? 말을 하시지."
그렇게 말한 수진이는 웃으면서 내게 휴대폰을 돌려줬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는 수진이.
나는 서둘러서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놔요."
"앉아."
"놓으라고."
"..."
"놔!"
나의 손을 뿌리치려는 수진이를 지금 놓아주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길 것 같아 힘을 줘서 당겼다.
그러자 수진이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나에게 가까워졌다.
나는 얼굴을 잔뜩 찡그린 상태로 신경질을 내는 수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앵두 같은 입술을 꽈악 깨물고있는 그 모습에 마음이 아파졌다.
내가 수진이를 이렇게 아프게 했다는 생각에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꼈다.
수진이의 뺨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수진이가 몸을 흠칫 떨며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나 때문에 화를 내고 슬퍼하며 짜증을 내는 수진이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꼈지만... 또 한편으론 그 모습에서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그녀의 그 감정은 나에 대한 애정의 반증이니까.
사랑스럽다. 너를... 가지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자 충동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수진이의 앵두같이 탱탱한 입술에 내 입술을 맞췄다.
"?!"
깜짝 놀라서 나를 밀치며 입을 가리는 수진이.
한겨울 같은 싸늘한 시선을 보내오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
수진이는 입을 가린 채 그대로 카페를 나가버렸다.
테이블에는 그녀가 먹다 남긴 커피와 트레이 만이 남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입술을 훔친 입술을 살짝 만져보았다.
입술에 살짝 묻어나는 립밤과 조금 씁쓸하게 느껴지는 커피 향.
우리의 첫 키스는 조금 씁쓸한 커피 맛이었다.
***
집으로 가는 길.
나는 결국 이런 상황이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
더 이상 수진이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
좀 개 병신 같지만, 수진이랑 뽀뽀하는 순간 아이 이름은 뭐로 할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녀는 첫 연애다.
평범하게 연애를 하고 평범하게 결혼하는 사람들은 결혼하기 전까지 몇 번의 연애를 할까. 한 3번씩은 하겠지?
수진이는 19살이다. 올해가 지나도 20살이지.
미인에 성격도 좋고 돈도 많은 수진이는 앞으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 어떤 남자에게도 사랑받는 존재겠지.
그런 너에게 이런 아저씨가 갑자기 결혼이야기를 꺼내면 당황하리라.
이건 그냥 아저씨가 뭣도 모르고 폭주하고 있는 거지.
하지만 그런데도 상상하고 만다.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향하는 지금 이 순간.
집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환하게 미소 지으며 다녀왔느냐는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수진이, 바로 너라면?
그리 생각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입가가 씰룩였다.
네가... 내 아내였으면 좋겠다.
어느새 집에 도착하고 평소와 같이 집으로 들어갔다.
아내가 있다.
나는 방금까지 상상하고 있던 광경을 떠올렸다.
그러자 지금까지 했던 모든 행동이 다 우습고 하찮게 느껴졌다.
나는 벼르고 벼르고 또 벼르다가 마지막에 복수하려고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복수?어쩌면 달콤하고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딴 것보단 그저 수진이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녀를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혼이다. 아내를 쫓아내고 홀로 살아야지.
그럼 어때? 자취다.
6년 만에 다시 자취를 시작하게 된다.
내가 자취를 시작한다면... 이 재미없고 따분한 공간에 수진이를 초대할 수 있게 된다.
그래. 이혼하자. 지금 당장 이혼하는 거야.
나는 평소처럼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후 9시. 평소에 수진이가 소설을 연재하는 시간.
나는 서랍에 사진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거실에서는 아직 TV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아내는 아직 거실에 있겠지.
나는 아내에게 가서 이혼하자는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다.
위이잉 위이잉 위이잉.
그 순간 주머니에서 들려온 진동음.
전화다.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어머니`
어머니가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실까?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아들? 엄마야.`
"예,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은 아니고 그, 오늘 날짜를 보는데 결혼기념일이지?`
"예? 아... 뭐, 예."
`화해는 했고?`
"...잘하고 있어요."
`그래? 그럼 이번 추석엔 같이 내려오겠네?`
"..."
`아들?"
"아뇨. 방이라서 그런지 전파가 잘 안 통하나 보네요"
`그래? 아무튼 잘됐네. 몸 어디 아픈 덴 없고? 아직도 담배 피우니? 건강에도 안 좋은데 끊고...`
그렇게 주저리주저리 잔소리를 늘어놓으시는 어머니.
나는 예, 예, 예, 아니오, 아니오. 하며 어머니의 말을 받았다.
`응. 아들, 힘내고.`
"예, 들어가세요."
`그래~`
뚝.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휴대폰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손에 들고 있던 사진을 구겨 책상 구석에 있던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툭.
쓰레기통에 튕겨 바닥으로 떨어진 사진.
하! 씨발... 좆같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나는 변하고자 했다.
이제는 제법 튼실해진 몸과 변화하기 시작한 주변.
남들이 똑바른 길이라고 하는 그 길이 꼭 답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혼을 결심한 순간 어머니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미안하다며 정말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시던 어머니.
어째서 당신이 사과하십니까? 그 어렵던 시절 잘 해내 오셔서 아들 대학까지 보냈으면 잘하신 거지.
아버지를 원망한 적도 많았고 시간이 흘러 마음에 여유를 찾은 지금도 어느 정도 원망하는 마음은 남았다.
하지만 어머니를 원망한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라며 맞선을 밀어붙이시던 어머니의 말씀에따라 결혼을 했다.
나는 어머니께 좋은 아들이 되고자 했으니까.
그런 아들이 결혼하고 애 소식도 없고 최근 몇 년은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가지도 않았다.
그러니... 신경이쓰이셨겠지.
결혼기념일이니 좀 달라졌나 싶어서 근황이궁금하셨겠지.
죄송합니다, 어머니.
저는 당신을 원망한 적은 없었습니다.
항상 내 편이시던 당신을 원망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아주 조금 당신이 원망스럽습니다.
***
알람이 울려 잠에서 깼다.
나는 오늘도 아내가 차려준 밥을 먹고 집을 나서게 되겠지.
또 그런 하루가 시작되려고 한다.
나는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했다.
이상하네. 오늘따라집이 조용한 느낌이다.
최근에는 이 시간에 항상 TV가 켜져 있고 부엌에서 아내가 요리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늦잠이라도 자는 걸까.
그런 것치곤 요리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출근 준비를 끝냈다.
그렇게준비를 마치고 나왔지만, 아내는 없었다.
나 혼자 밥을 먹기도 좀 그랬기에 아내를 찾아 나섰다.
똑똑.
아내의 방에 노크했다. 반응이 없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이내 문을 열었다.
아내의 방에 자진해서 들어가다니 이건 정말 오랜만이다.
방을 열고 들어가니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도둑이라도 들었는지 난장판이 되어있는 방안이었다.
급하게 회사에 나가야 할 일이라도 생겼나?
그런 거 치곤 방 상태가 너무 엉망이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고 거실로 나와 서둘러서 밥을 먹었다.
혼자 먹는 밥.
얼마 전까진 일상이었는데 오래전 일처럼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양치를 한 이후 다시 거울 앞에서 몸가짐을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충전 중인 휴대폰을 주머니에 챙기려고 방에 들어간 순간 나는 깨달았다.
쓰레기통에 던졌다가 바닥에 떨어졌던 사진.
귀찮고 짜증이 나서 그대로 방치한 상태로 침대에 누웠었지.
그런데 그 사진이 없다.
나는 퇴근 후에뭔가 먹는 타입도 아니고 쓰레기를 만드는 타입도 아니다.
그러니 쓰레기통도 아주 가끔 비운다.
그 쓰레기통에는 얼마 전에 포스트잇에 휘갈겼다가 외웠다고 생각해서 대충 던져넣었던 포스트잇이 있어야 한다.
그것도 사라져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바라봤다.
자정에보내져 온 카톡.
`선생님 자요?`
본적도 없는 카톡인데 1이라는 숫자가 사라져있다.
나는 탄식하며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이게 이렇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는데...
***
머리가 아프고 어떻게 해야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어찌어찌 강의를 끝마치긴 했는데 나는 평소와 똑같이 강의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머리를 진정시키려 하고 있는데 수진이에게서 카톡이 왔다.
`읽씹하는 거에요?`
그 내용을 보자마자 갑자기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수진이에게 미안하다고 톡을 보냈다.
오늘은 정말 미안한데 선약이 있다고 카톡을 보내고 절대 아내 때문은 아니라는 사족을 붙였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며 생각에 잠겼다.
결국, 우리의 관계에 끝을 고한 건 내가 아니고 아내였다.
실수였다. 술에 취해 정신이 나갔었다.
그런 상태로 수진이에게 품었던 욕정을 아내에게 토해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조금씩 아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너는 좀 더 기특해지려고 했겠지.
내 방에 들어와서 잠들어있는 남편을 깨우는 새댁놀이라도 하고 싶었나 보다.
그러다가 내방에 떨어져 있던 사진을 주웠다.
그 사진을 보고 화들짝 놀랐을 너를 상상한다.
너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당연히 내 휴대폰이 시선이 갔겠지.
하지만 내가 패턴을 바꿔서 잠금이 풀리지 않았으리라.
내 손에 지문으로 잠금을 풀려고 했으나 양손을 이불에 집어넣은 상태로 자는 사람의 손으로 휴대폰의 잠금을 풀려고 하면 잠에서 깰 위험이 있다.
그리 판단한 넌 주변을 둘러봤을 것이다.
그러다 발견한 쓰레기통에 들어있는 포스트잇.
너는 혹시 몰라 그 포스트잇에 그려져 있는 패턴을 내 휴대폰에 그려 넣었다.
그리고... 너는 내 비밀을 엿보고 말았다.
그래. 그런 것이다.
수진이와 나누었던 카톡을 너는 봤다. 봐버렸다.
너는 그 순간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졌겠지.
19송이의 장미, 술을 먹고 욕설을 내뱉으며 자신을 범하던 남편.
마트에서 뭔가 이상한 낌새를 보인 남편.
그리고 나와 마주쳤던 그 수강생, 수진이.
애초에 이상하지 않나?
생리대. 그건 인터넷으로 시켜도 오고 편의점에서도 판다.
어색해서돌아가? 대충 이해했다가 지금 와서 떠올려보면 뭔가 이상함을 알았겠지.
너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했고 그렇게 도망쳤다.
그렇게 된 거겠지.
나는 혹시라도 아내가 돌아올까 봐 소파에 앉아서 아내의 귀가를 기다렸다.
오후9시가 넘어도 돌아오지 않는 아내.
너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일까.
그렇게 아내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휴대폰이 울렸다.
`김 서방, 잠깐 시간좀 되나?`
장인어른의 카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