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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화 〉변화(2) (23/301)



〈 23화 〉변화(2)

일요일.

 하루가 끝난다면 다시 월요일이 찾아온다.

얼른  하루가 끝이 나면 좋을 텐데.

책상에 올려놓은 커피 쿠폰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보니 중에 1번 정도의 빈도로 가던 카페에 거의 매일같이 가고 있으니돈도 많이 쓰고 있다.

금연해서 다행이다.

계속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면 주머니 사정이 많이 어려울 뻔했다.

준범이가 이곳저곳에서 최대한 돈을 끌어모으라고 했던 게 얼마 전이다.

이미 나는 레버리지로 주식을 산 상태여서 매달 이자가 나가는 상태라 좀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내의 변화가 좀 반갑기도 하다.

매일 바나나, 요거트,후레이크에 우유를 먹으면 생각보다 지출이 엄청나게 크니까.

그러니 아내가 마트에서 쇼핑하자는 이야기를 꺼내도 그냥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이건 데이트가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지.

아내도 이 행위를 데이트라고 받아들이진 않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아내가 평소보다 힘이 빡 들어간 화장을 하기 전엔 말이다.

뭐하자는 거지?

나는 아내의 화장에 헛웃음이 나왔다.

조금은 더워지기 시작한 5월의 넷째 주 일요일.

나는 오늘도 모나미 같은 옷을 입고 있다.

셔츠와 면바지를 입고 있지.

하지만 그런 나와는 달리 아내는 완전히 맞선을 하러 나가는 여자처럼 몸을 꾸몄다.

타이트한 치마와 조금 하늘거리는 블라우스.

머리도 고데기를 사용해서 아주 정중히 손을 본  같다.

완전 풀 메이크업에 예쁜 옷을 골라 입은 아내의 모습은  맞선으로 만났던 그때를 떠올리게 했다.

그래. 아내는 매력적인 여성이다.

저렇게 꾸미고 다니면 아직도 남자들이 정욕을 느낄 정도로 매력적인 여성이지.

그 모습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못하는 것은 내게 다른 여자가 생겼기 때문이고.

"뭔 마트를 가는데 그렇게 꾸며?"

"아니... 뭐, 그냥?"

"그래?"

"응."

"괜찮네."

"그래?"

"응."

단조로운 대화.

이게 수진이라면 `응응 응  응가라도 싸요? 재미없게.` 라며 화를 내겠지.

그리고 이렇게 말할 거다 `이제 잠시간 응은 금지입니다.`

그러면  작게 웃으면서 `어.` 라고 받아치겠지.

그녀와의 대화가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아내가 저리 꾸민 것을 보니 데이트라고 생각하고 꾸민 것 같은데 난 그 옆에서 다른 여자를 떠올리고 있다.

그래. 나도  안다.

누군가는 날 보며 미쳤다고 하겠지.

하지만어쩌나. 나도 이러고 싶지 않다.

하지만 계속해서 수진이가 떠오르는 걸 어쩌나.

수진이만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미 중증이다.

아내는 내가 피식피식 웃는 것을 보더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짧게 웃었다.

동상이몽. 지금이  그런 상황일까.

나는 입가를 가리며 웃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봤다.

화장하지 않았을 땐 주름이 좀 보이기 시작했었는데 메이크로 가리고 나니 굉장히 젊어 보인다.

내 웃음을 보며 우아하게 웃는 그 모습은  자연스러워서 주변에서 우리를 본다면 행복해 보이는 부부로 보이겠지.

...내머릿속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새삼스럽게 너에게 묘한 죄책감과 동시에 쾌감을 느꼈다.

너는 이런 악동 같은 나를 모르겠지?

나의 웃음이 사실은 널 향한 것이아니란 것도 모를 거야.

서로 맞물리는 듯한데 전혀 맞물리지 않는 상황이 너무나 우습고... 즐겁다.

집을 나서려고 하자 휴대폰이 울렸다.

아내에게 한 손을 들어 올려 양해를 표하며 휴대폰을 꺼내 드니 액정에는 학원이라는 표시가 떴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준수 강사님. 아 이거 주말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무슨 일이시죠?"

`이번에 방역수칙에 따라서 강의실, 강의준비실을 비롯한 건물 전체에 방역을 하게 됐거든요.`

"그런데요?"

`그게... 정말 죄송한데 그냥 공기 중에 살균제 같은 것만 뿌리고 끝인  알았는데 책상이며 바닥이며  깨끗이 청소를 해야 한다네요.`

"아..."

`혹시 강의준비실 책상 위에 중요한 서류나 전자기기 같은 물건들을 좀 정리해주실  있을까요?`

"예, 뭐 그래야죠."

`아!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없도록 하겠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죠. 그쪽 잘못도 아닌데.  가겠습니다. 네 네."

전화를 끊고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으니 아내가 나를 쳐다보며 조금 껄끄러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학원에서 오래?"

"어. 학원에서 방역한다고 책상에 올려둔 물건 치우라고 하네. 저번엔 그냥 공기 중에 뿌리기만 하면 된다고  찾아오지만 말라고 했는데 업체도 불러서 하려나 봐."

아내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진다.

"잠깐 다녀올 테니 집에서 기다릴래? 음... 차가 막힐 시간대도 아니니 1시간 10분에서 20분쯤이면  거 같은데."

"그래? 그럼 그냥 같이 가자."

"어?"

"학원 근처에도 마트는 있잖아? 같이 학원까지 가서 자기는 정리하고 나와."

"그럴까?"

그래. 굳이 한번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그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우리는 그렇게 일정을 바꾸었다.

차는 내 차를 타고 가게 되었다.

내 차가 SUV니까.

쯧. 이럴 때 도움이 되는구나.

이 녀석은 혹시 결혼하고 캠핑 같은 가족 행사를 하게 되면 세단으론 힘들 것 같아서 장만한 녀석인데.

아내가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했다.

아내를 조수석에 앉혀본 건 얼마 만일까?

기억도 안 난다.

아니.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그 자리는 얼마 전에 수진이가 앉았던 자리다.

내 소중한 공간에 남이 침입한 불쾌한 감각.

내 마음속에서 아내는 이미 타인이 되어 있었다.

***

"진짜 오랜만이다."

"뭐가?"

"당신 학원에 가는 거."

"그러네."

학원으로 향하는 길.

나는 언제나처럼 전방만을 주시하며 운전을하고 있고 아내는 그런 내 옆에서 옛날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저어어번에 놓고 간 서류가 있다고 보내달라고 했지? 모처럼 얻은 연차로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귀찮았어."

"언제적 얘기야?"

"글쎄...?"

"싱겁기는."

정말로 언제적인지  기억도 안 난다.

조금씩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을 때로 기억한다.

학원 강사에게 연차를 기대하긴 곤란하다.

같이 휴가를 보내기도 그렇게 쉽지 않았지.

어느새 연차란 본인이 쉬고 싶은 날에 쉬는 그런 날이 되었지.

아내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옛날 일을 떠올리고 있으려니 아내도 더는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조용해진 차 안.

하지만 이 정적이 부담스럽지는 않다.

아내는 이미 날 알 만큼 아니까 굳이 뭔가 말을 걸려고 노력하진 않는다.

내가 그렇게 수다스럽지 않다는 것을 아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겠지.

아내가 휴대폰을 꺼내고 차에 연결해서 노래를 틀었다.

나는 그 순간 수진이와의 첫 데이트를 떠올렸다.

수진이는 내 차에 함부로 손을 대는게 꺼려졌는지 휴대폰 스피커로 노래를 틀었었는데 아내는 자연스럽게 잭을 끼워 노래를 틀었다.

이상하게도  사소한 차이가 눈에 밟혔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아내가 틀은 노래에 잊혀 사라졌다.

귓속으로 파고드는 노래에 잡생각을 떨쳐내니 어느새 학원에 도착했다.

나는 금방 다녀오겠다는 말을 전하고 학원으로 올라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정리를 해두는 건데.

수진이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일요일이 너무나 기다려졌는데 지금은 일요일이 너무나 지루하고 짜증이 났다.

도대체 일요일은 왜 이리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걸까.

전국의 월급쟁이들에겐 미안하지만, 일요일이 얼른 끝났으면 싶다.

짐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와 다시 아내가 기다리는 차에 올라타고 근처에 있는 마트로 차를 몰았다.

학원근처에 있는 가장 큰 마트.

우리는 그곳에서 장을 보기로 했다.

"우리 집 근처에 있는마트랑 별 차이도 없네."

"그러게."

프랜차이즈니까직원만 다르고 다 똑같겠지.

골목상권이니 뭐니해도 역시 대형마트가 있다는 건 편한 일이다.

적어도 이 지루하고 불편한 쇼핑이 한 번에 끝날 테니까 말이다.

***

아내가 쇼핑카트를 끌고 왔다.

그렇게 우리의 쇼핑이 시작됐다.

진짜 요리를 하는 집이 아니면  먹을 일이 없을 당근, 모든 요리의 기본이 되는 양파, 한국인이  먹는 마늘.

자주 끓여 먹는 된장찌개를 위한 두부, 애호박, 버섯.

가끔 채 쳐서 먹거나 오늘 메인 반찬인 불고기에 넣을 양배추까지.

체크리스트를 순서대로 따라가며 쇼핑카트에 물건을 채웠다.

"여보, 맥주는."

"먹던 거로."

"응."

옆에서 보면 우리는 어떻게 보일까.

아마 단란한 주말의 부부로 보이겠지.

"여보 담배는 안 사?"

그걸 이제야 물어보는 걸까?

뭐... 하긴, 집에서도 담배를  피우고 차에 담배 냄새가 나는 것도 싫어서 차에서도 담배를 안 피우니 모를 수도 있겠다.

"끊었어."

"어?"

"비싸기도 비싸고 요즘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그래? 잘했어~"

오늘 지어 보였던 표정 중에가장 진심이담긴 미소를 보이는 아내.

그래. 넌 담배를 정말 싫어했지.

냄새난다고 담배  끊으라던너.

수진이는 담배를 피우던 나도 이해해주는 느낌이었는데.

싫은 여자다.

그러니 굳이 한마디를 덧붙인다.

"요즘은 담배 냄새를 싫어하는 학생이 많아서."

"뭐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지."

아내는 내가 담배를끊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가 보다.

...수진이를 위해서 끊었다고 하면 그렇게 좋은 미소를 보여줄  있을지 모르겠다.

수진이라. 수진이가 보고 싶네.

현재 시각은 오전 11시.

아직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

이렇게 쇼핑을 끝내면 아내와 외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겠지.

낯설다.

내 생활반경에 아내가 들어와 있는 감각이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 일일까.

서로 냉전 상태가 되어 2년 동안 서로를 무시하고 살았으나 4년간은 서로 부부로서 살았는데 이렇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걸까.

뭔가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부천을 수진이랑 걸을 때는 마냥 기분이 좋았는데.

잠시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아내가 아! 하며 손뼉을 치며 두고 온 게 있다며 다시 무언가를 가지러 갔다.

나는 아내가 떠나간 방향을 쳐다보며 체크리스트를 들여다봤다.

살건 다  거 같은데?

"선생님?"

생각해보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너는 근처의 학교에 다니고 이 근처에 있는 학원 중 그나마 내가 일하는 곳이 가장 평판이 좋아서 다닌다고 했지.

이 근처의 아파트에서 산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래. 아파트에서 가장 가깝고 물건이 많은 마트는 충분히 너와 마주칠 수 있는 장소다.

"수진아?"

"어? 선생님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일요일인데?"

수진이는 내가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산다는 것을 안다.

굳이 이곳에서 장을 볼 필요가 없다는 것도 물론 알겠지.

"혹시... 내가 선생님 보고 싶다고 생각했더니 만나러 와주셨다거나? 막이래 아하하!"

놀랐다.

나도 아내와 마트에서 장을 보는 동안 계속 너와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나는 수진이에게 뭐라고 한마디를 건네려고 했다.

"아! 아직 계산 안 끝났지?"

입을 열려고 하자 들려온 아내의 목소리.

나는 입을 다물고 아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응?"

나의 어색한 태도가 신경이 쓰였는지 내가 방금까지 쳐다보고 있던 방향에 있던 수진이에게로 시선을 향하는 아내.

수진이와 아내의 눈이 마주쳤다.

"누구야?"

"어. 학원 수강생."

나는 당황하지 않고 잘 말했을까.

아,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지.

나는 수진이에게  아내와 이혼할 예정이라는 말을 꺼냈었다.

그런데도 같이 주말에 장을 보는 모습을 들켰다.

이상하지. 사실은 내가 수진이와 바람을 피우고 있는 건데 오히려 수진이에게 아내와 바람을 피우다가 걸린 느낌이 들었다.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이 상황엔 도대체 무슨 말을 꺼내야 하지.

"아내분이신가요?"

그렇게 말하며아내에게서 나에게로 시선을 옮기는 수진이.

그 시선은 굉장히 차가웠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줘.

아니야. 그런 게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내 입은 접착제로 붙여놓은 것처럼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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