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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화 〉로그(2)

후흥~ 후흐흥~♪

수진이가 다리를 까딱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인다.

아무래도 내가 오랜만에 그녀의 소설을 읽고 댓글을 달았기 때문이겠지.

안도했다.

지금은 상당히 분위기가 좋은 느낌이다. 그래, 지금은 이걸 건네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수진이에게 내가 샀던 선물을 내밀었다.

"응? 이게 뭐예요?"

수진이는 내가 테이블에 올려놓은 물건을 손에 들며 물어왔다.

"생일선물. 뭔가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잖아. 그래서 지금 주는 거야. 아, 생일 축하해."

생각해보니 나는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도 안 했다.

어지간히도 그녀와의 데이트라는 것에 정신이 팔려있었나 보다.

아니, 하려고는 했지.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하려고 했다.

그럴 분위기가 아니어서 못했을 뿐이다.

"헤ㅡ"

수진이는  선물을 뜯어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귀엽다.

그렇게 대단한  아닌데.

로즈 골드 18k 귀걸이.

학생의 생일선물로 주기에는 조금 비싼  같지만, 평소에 귀걸이를 하지 않는 수진이에게 귀걸이를 선물하면 바로 달고 다녀줄 거라 생각하니 별로 비싼  같지도 않다.

아니, 애초에 수진이가 버는 수입으로 생각하면 싸구려겠지.

"와, 예쁘다. 선생님 센스 좋으시네요?"

수진이는 그리 말하며 자신의 손바닥에 귀걸이를 얹어놓고 빤히 바라보고 있다.

귀걸이를 자신의귀에 가져다 대고 나를 돌아보며 "어때요?" 하고 물어본다.

"너는 뭘 하든 예뻐."

채나윤, 아니 이수진.

머리를 거치지 않고 툭 하고 튀어나온 말.

그래. 너는 뭘 하든 예쁘다.

"악, 그 어, 고, 고마워요. 근데 귀걸이가 예쁘냐고 물은 건데..."

"예쁘니까샀지."

"..."

부끄러움을 속이기 위해 약간 퉁명스러운 답변을 했다.

분위기가 어색해져 헛기침하고 커피를 마시려니 수진이가 귀걸이를 다시 포장한 다음 가방 안으로 집어넣었다.

"학교 교칙으로 귀걸이는 못 하는데..."

약간 아쉽다는 듯 한숨을 쉬는 그녀.

지금 당장 볼 수 없는 건 확실히 조금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귀걸이는 나 자신에게 제약을 거는 것이기도 하다.

음습한 한남 자아를 가지고 있던 나는 민짜인 너를 취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일이다.

나는 생각을 고쳐먹은 후에 수진이의 선물로 귀걸이를 골랐다.

성인이 되어 내가 선물해준 귀걸이를 착용한 너를 옆에서 바라보고 싶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선물이다.

많이도 걸리지 않는다.

이미 5월 둘째 주가 지났다.

네가 다니는 학교의 중간고사도 끝났겠지.

6월의 학력평가 기간도 곧 다가온다.

응...? 그러고 보니 요즘 학교는  나가나?

비대면이라고 하지 않았나? 학원에도 권고조치가 내려진 거로 기억하는데 왜 수진이는 항상 교복을 입는 걸까.

"궁금한 게 있는데."

"네?"

"지금 온라인 학습 기간이지? 자율공부 마치면 학원에 오는  텐데 왜 굳이 교복이야?"

내 물음에 수진이는 작게 웃으면서 그것도 모르느냐는 말을 해왔다.

"마지막 고3인데 안 입으면 아깝잖아요. 이젠  입을 텐데."

그런가? 아~ 어쩐지 고3 중에  많은 학생이 교복을 입고 오던데 그런 이유였나.

"뭐, 솔직히 겨우 학원에 가는데 입고갈 옷으로 고민하고 싶지도 않고요."

그게 더 큰 이유인 거 같은데?

"그렇다고 체육복을 입고 갈 수도 없고... 그죠?"

그리 말하며 싱긋 웃는 수진이.

그리고는 주위를 잠시 둘러보고 여기를 바라보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한다.

"그렇게 제 사복이 보고 싶어요?"

어떤데요? 라며 속삭여온다.

간지럽다.

너의 머리카락이 내 귀를 쓰다듬는 게 간지러운지 너의 말이 내 마음을 간지럽히는 건지 모르겠다.

둘 다일지도 모르지.

그러니 들려준다.

"어,존나 예뻤거든."

"예?!"

내가존나 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 놀란 걸까 아니면 솔직히 표현한 거에 놀란 걸까.

수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몸을 슬쩍 움츠릴 뿐이었다.

말실수를 한 거 같아서 어떻게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

"그럼... 내일부터는 사복으로 올까요?"

하지만 내가 입을 여는 것보다 먼저 입을 여는 게 빨랐다.

사복. 사복이라... 괜찮을지도 모르지.

수진이의 사복 센스는 훌륭했으니까.

하지만 갑자기 사복을 입고 학원에 올 수진이를 상상해본다.

주위의 학생들은 수진이가 꺼냈던 말처럼 학원에  때 옷을 고르기 귀찮아서 교복을 입고 오겠지.

그중에서도 남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몇몇 학생들은 아예 체육복을 입고 올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학원에 오는 수강생들은 옷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수진이만 사복을 입고 온다라... 굉장히 눈에 띄는 존재가   같다.

수능이 코앞인 학생들은 터지기 직전의 폭탄이다.

아주 사소한 거로도 스트레스를 받는 그들에겐 수진이의 사복은 독이 될지도 모른다.

남자들은 잘 꾸민 수진이에게 호감을 던지고여자들은 분노와 질투를담은 저주를 던지겠지.

그건... 별로 보고 싶지 않다.

"아니, 네 말마따나 교복은 지금 밖에 못 보니까 됐어."

"피, 변태."

수진이는 나를 변태 강사라며 노래를 부르듯 몇 번이고 변태변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음, 말이란 건  어렵지.

 그저 네가 걱정되는 마음과 너의 사복을 나 혼자 독점하고 싶다는 약간 음습한 마음으로 그런 것뿐인데.

아니, 사복을 독점하고 싶어하는 마음도 변태의 마음이긴 한가?

***

우리들의 평범한 시간은 평범하게 흘러갔다.

나와 수진이의 관계는 변한 듯하면 서도 그리 변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조금 바뀐 점이 있다면 수진이가 생각하기에 잘 썼다 싶은 부분을 연재하기 전에 내게 미리 보여주기 시작했다는 점일까.

이전엔 절대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는데 이젠 실시간으로 내 반응을 살펴보고 싶은 모양이다.

솔직히 이렇게 등지고 앉아서 커피나 마시며 각자 소설을 쓰기만 하고 돌아가면 만날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너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한 걸까.

수진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꾸 수진이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시선이 향한다.

저 컴퓨터엔 연재분의 소설 말고도 또 다른 이야기가 많이 있겠지.

 중엔 나에 관한 이야기도 있을지도 모른다.

난 수진이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자리를  순간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난 38살이다. 이런 아저씨를 정말로 좋아하는지 아니면 나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건지... 확인하고 싶었다.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화장실을 쓰는 시간이 좀 더 길겠지.

시간상으로 2~3분 정도의 여유가 있으려나.

2~3분 정도로는 많은 것은 못한다.

인터넷 검색기록을 잠깐 뒤져보는 정도는 할  있겠지.

수진이는 데스크톱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  노트북에 모든 정보가 다 담겨있겠지.

꼼꼼한 사람들이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는 사람들은 종종 기록을 지우는데 너는 어떨까?

나는 수진이의 노트북을 몰래 훔쳐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트북의 바탕화면을 보자마자 눈이 찌푸려졌다.

바탕화면부터가 이미 뭐랄까 카오스다.

정리가 하나도 되어있지 않고 메모장과 폴더, 바로 가기 아이콘으로 가득하다.

아니, 지금은 이런 걸 보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나는 서둘러서 N이버를 켰다.

이 사이트는 검색기록이 남고 비교적 접근성도 높으니 반드시 뭔가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오. 수진이는 로그인을 해놓고 갔구나.

이건 도움이 된다.

N이버의 검색창에 마우스 포인트를 찍는다.

그러자 뜨기 시작한 검색 이력.

선생님과 제자.

나이차 커플.

소X섭 나이차.

그런 내용의 검색 이력이 떴다.

이건... 뭔가 보면 안되는 것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그래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이번엔 G글로 향했다.

30대 남자 밀당.

30대 남자 밀당 귀찮음.

연상연하 잠자...리?

"선생님."

순간적으로 귀에 들리던 소음이 사라지고 한겨울에 밖에 나온 것처럼 몸이 덜덜 떨린다.

"뭐...하세요?"

나는 기름칠을 하지 않은 기계처럼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다.

수진이가 입가에 미소를 그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눈은 웃고 있지 않은데... 화를 내는 것보다 더 무섭다.

나는 천천히 수진이를 향해 몸을 완전히 돌리고 어떻게든 변명을 해보려고 했다.

"이게 그, 뭐냐 그거지."

무섭다.

무서운데 무슨 말이라도 꺼내지 않으면 더 무서운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니 뭔가 말은 꺼내야하는데...

"컴퓨터 정리  해야겠다. 바탕화면이라든지 컴퓨터 로그라든지."

빙글빙글 도는 머리로 뭔가 말을 뱉은  같은데 완전히 실패한  같다.

수진이가 으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악물고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으니까.

예쁜 여자는 화를 내는 것도 박력 있구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 자리로 돌아가 앉으려고 했다.

그러자 수진이가 내 양어깨를 강하게 눌러서 자리에 다시 앉게 했다.

"개변태강사."

"..."

"변태새끼."

"..."

"좋아요?"

"..."

"왜 말이 없으실까?"

"..."

"좋냐고요? 좋아요? 네? 네? 좋냐고?"

그럼 뭐라하나... 네, 조아연?

뭔가 좆되는 미래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고개를 수그릴 수밖에 없었다.

점점 더 쪼그라드는 나와 점점 더 흥분하고 있는 수진이.

"하아."

수진이가 한숨을 쉬곤 고개를 흔들었다.

숨쉬기조차 벅찬 답답했던 공기가 조금은 편해진 느낌이다.

나는 고비를 한 차례 넘겼음을 깨달았다.

그래. 너도 계속 화를 내려고 하니 힘들겠지.

이게 어른의 처세술이다.

최대한 미안한  고개를 수그리고 어쩔  몰라하는 느낌을 내면 대부분의 선생은 혼을 내다가도 한숨을 쉬며 다시는 이러지 말라고 하지.

그러니 너도 그만두렴.

솔직히 보지 마라, 하지 마라 하면 보고 싶어지고 하고 싶어 지는 게 사람 마음이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수진이의 눈치를 살펴보기로 했다.

"내놔요."

"응?"

"내놔봐요, 선생님 휴대폰."

"아니  휴대폰을..."

수진이는 나에게 손을 내밀며 휴대폰을 내놓으란 이야기를 꺼냈다.

아니, 여기서 휴대폰이  나와?

"빨리."

나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휴대폰을 수진이에게 건네줬다.

"패턴."

"..."

"빨리 풀어요."

나는 수진이에게 잠금을 푼 다음 수진이의 손에 휴대폰을 건네줬다.

"완전 아재네. 기역이라니기역자 흐응..."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휴대폰을 뒤져보기 시작한 수진이.

나는 수진이에게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그만뒀다.

지금 건드리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 두려웠다.

수진이의 입에서 음~ 이라든지 하... 라든지 하는 의성어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휴대폰에서 뭘 보고 있는 걸까.

이 체벌시간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시계를 보니 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체감 시간으론 거의 10분도 넘는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답답해서 커피를  모금 마시며 마음을 추슬렀다.

뭘 저렇게 열심히 뒤져보는 거지?

나는 컴퓨터엔 암호를 걸어두지만 휴대폰은 잠금을 해제할 때마다 이리저리 패턴을 그리는 게 너무 귀찮아서 대충 걸어뒀다.

내 아내가 내 컴퓨터를 뒤져볼 가능성은 있어도 휴대폰은 늘 내가 들고 다니니 그럴 가능성이 굉장히 낮기 때문이다.

컴퓨터의 로그를 지우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는 일인데 휴대폰은  품에서 놓지를 않으니 정리도 되어있지 않다.

그래서 뒤져볼수록 뭔가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초조함이 늘어만 갔다.

수진이가 휴대폰을 돌려준  그로부터 또 3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다.

"저 수진ㅇ..."

"카톡해요."

"응?"

"자기 전에 잘 자라고 해주세요."

그렇게 본인 용건만을 고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수진이.

아니 그게 왜 그렇게 되는 거지.

난 자리에 앉아 떠나가는 수진이를 멍하니 쳐다봤다.

어쨌든... 이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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