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화 〉모래성(2) (18/301)



〈 18화 〉모래성(2)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바로 어제 만났음에도 나는 이 시간이 매우 오랜만인듯한 기분이다.

잔잔하게 들려오는 카페의 배경음악과 수진이가 내는 타이핑 소리.

그것만으로도 커피가 평소보다 더 마일드하게 느껴진다.

탁ㅡ.

키보드를 두드리던 수진이가 타이핑을 멈춘다.

흐릅.

커피를 한 입 마시는 수진이.

"선생님."

"응?"

"다리 좀 그만 떨어요."

"아, 아~ 미안."

나는 어느새 다리를 떨고 있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아, 아~ 그렇다.

몸과 마음이 항상 같은 결과를 낸다고는 할  없나 보다.

금연이 힘들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몰랐다.

나는 담배를 많이 피우는 타입도 아니었다.

하루에 반 갑, 하루에 반 갑정도만 핀다.

그런데 담배를 피지 않았다고 이렇게 초조하고 떨리는 건가.

수진이는 오늘도 열심히 작가로서 소설을 쓰고 있다.

하지만 나는  되겠다.

금단 증상이 벌써 나타나기 시작했는지 손이 덜덜 떨리는데 다리마저 떨고 있었나 보다.

이 상태로는 글을 쓰는 게 불가능하다.

낙타... 낙타가 보고 싶다.

인한 강사에게 다 주지 말고 하나만. 한 대만 빼고  걸 그랬나?

아니면 나도 천천히 줄여서 올해를 기점으로 끊을 걸 그랬나.

갑자기 후회되기 시작했다. 내가  그랬을까.

커피를 마시고 있으려니 담배가 더 떠오르는  같다. 커피&담배.

그 달콤 씁쓸함엔 인생이 녹아있다.

나는 달달 떨고 있는 손을 차분하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신에게 기도를 바치듯 서로 겹친다.

수진이에게 들키지 않고 싶다. 약한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다.

"응?"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계속 앉아만 있는 것이 이상했던 걸까?

집중력이라도 끊겼는지 수진이는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보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

킁킁.

뭔가 냄새를 맡는듯한 소리.

"선생님. 오늘은 담배 안 피우셨어요?"

아, 알겠냐? 그렇구나, 그렇구나.

너한테 생색을 내고 싶어도 뭔가 쪽팔려서 말하진 않았지만 과연, 먼저 알아주는구나.

 별것 아닌 것들이 너무 고맙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어, 이제 금연하려고."

"예?"

"금연, 이젠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고 커피를한 모금 마셨다.

수진이가 다시 고개를 원위치시킨 듯한 감각이 느껴진다.

사르륵 내 어깨를 흐르는 수진이의 머리카락.

"저, 때문인가요?"

응?

"전 별로 상관없는데..."

갈수록 작아지는 웅얼거림.

너에게서 들리는 소리는 단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데 머리가 멍해서 평소보다 감각이 둔하다.

하지만 왠지 알 거 같다.

들썩들썩.

아니, 움찔움찔.

그녀가 떨고 있다.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느낌.

"잠, 잠시만..."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뜨는 수진이.

약간 당황한 듯이 자리를 피하는 그녀의 옆얼굴이 얼핏 보였다.

아, 그래.  얼굴이다.

말로 하지 않아도 좋다. 나는  얼굴이 보고 싶었다.

인생의 거의 절반을 함께해 온 담배를 끊었다.

담배는 생각보다 엄청 끊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그걸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감정.

어떤 감정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굉장히 기쁠 거 같긴 하다.

오늘 아침에 아내가 차려줬던 식탁이 떠오른다.

오랜만에 부엌에 서서 요리를 하려고 하니 냉장고에 정상적인 반찬 따윈 없었겠지.

그것을 보곤 고민에 빠진 아내는 즉석밥과 즉석 국을 준비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나를 위해 음식을 차려준 그녀.

나에 의해 누군가가 변한다는 감각.

그것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되어버린 사람이라도 그 행동이 기껍게 여겨진다.

이런 관계도 그러한데 서로가 어느 정도는 호감을 품은 남녀 사이에서의 일.

좀  부끄럽고 간질거리는 마음에 도망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초능력자가 아니어서 네 마음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네가 쓴 소설이 궁금하다.

네가 쓴 소설에는 나를 향한 감정이 담겨있을지도 모르니까.

...지금은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나와 너는 피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 시작이 어떤 감정이었든 결국 우리가 남남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날이 오겠지. 아니, 그렇게만들겠다.

아버지의 대신이 아닌 나라는 남자에게 빠져들 게 만들고 싶다.

금연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글을 쓰는 건 어려울 것 같지만, 몸을 움직이는 건 가능하다.

오늘은가는 길에 아령이나 문틀 철봉을 사가자.

아주 천천히 조금씩 변하는 거다.

화장실로 간 수진이를 기다리는 중에 휴대폰이 울렸다.

`오늘은 언제와?`

아내가 보내온 카톡.

나는 그 단출한 내용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애매한 시간대의 애매한문자.

언젠가 이런 카톡을 보낸 적이 있기는 했다.

그때는 아마 처음으로 집안에 다른 남자를 끌어들여 불안한 마음에 보낸 것이겠지.

이번은 아마... 다르다.

보낼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보낸 카톡이겠지.

던지면 내가 답장을 보내올까, 아니면 무시할까?

받아주면 어떻게 해야 하지를 한참고민하다가 눈 딱 감고 보낸 카톡.

아내의 행동이 머리에 그려지는 듯하다.

미련한 사람이다. 처음부터 그랬으면 내가 이러고 있지도 않을 텐데.

거의 비어있는 커피잔을 바라본다. 10분 정도면 끝날 시간.

`40분쯤 후에.`

그렇게 답장을 보냈다. 바로 카톡을 읽었는지 알겠다는답장이 돌아온다.

나는 피식 웃고 다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응?"

언제  걸까? 수진이가 내 옆에 서 있었다.

"...준범이란 분이세요?"

"아니, 아내."

"..."

수진이는 아무 말 없이 남아있던 거의 식은 커피를 다 들이켜곤 트레이를 들고 일어섰다.

아니 이게 이렇게 된다고?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수진이를 따라나섰다.

문자보다 10분보다 일찍 도착하게  것 같다.

"그, 잘 가렴."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상투적인 말을 꺼내봤다.

그러자 말없이 걸어가던 수진이가 나를 향해 돌아봤다.

얼굴을 찡그리며 잠시 말없이 바라보다가 휙 고개를돌려버리는 수진이.

"네!"

그렇게 짐짓 큰소리를 내고 떠나가는 너.

화가 좀 많이 났나 보다. 금연으로 벌었던 포인트가 전부 날아간 듯한 기분이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하늘을 들이키며 탄식을 내뱉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는데 왜  모양인 걸까?

나는 터벅터벅 차를 향해 걸어갔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

삑삐삐삐 삐리릭 철컹.

언제나의 도어락 소리.

 소리를 듣는 순간 하루가 시작되고 또 하루가 끝이 남을 실감한다.

이 도어락 소리를 한 번  들으면 수진이를 만날 수 있다.

얼른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도어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목을 조르던 넥타이를 풀며 거실로 들어섰다.

호호호 하하하 소리를 내며 떠드는 연예인들의 목소리가 TV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너희는 좋겠다.

바람이 부는 날도 웃기고 비가 내리는 날도 웃길 녀석들.

나는 거실을 지나쳐 내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으려고 했다.

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순간 내 눈에 들어온 붉은 색에 눈이 끌렸다.

뭐지? 고개를 돌려 방금 눈에 들어왔던 물건이 뭔지 살펴봤다.

처음 보는 꽃병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장미였다.

수진이에게 귀걸이와 함께 주려고 했던 장미.

귀걸이도 장미도 결국 건네주지 못했다.

장미는... 포기하자. 귀걸이라도 건네줘야지.

나는 거실을 지나쳐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조금 전엔 그냥 지나쳤는데 부엌에선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가 보였다.

나는 아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소파에 앉았다.

초조하다.

마지막에 잔뜩 얼굴이 일그러져 돌아가던 수진이의 그 모습.

화가 난 것처럼도 보이지만 그걸 넘어선 매우 불쾌한 표정.

표정은 처음 봤다.

만날 때마다 새로운 너를 발견한다고 좋아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나에게서 정나미가 떨어져 떠나버릴 같은 불안감.

어떻게 하면 그녀를 붙잡아 둘 수 있을까.

"아직  안 먹었지?"

그렇게 운을 떼는 아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으로 갔다.

식탁에 차려진 것들을 살펴본다.

고깃집에서 먹을 수 있는 쌈장1, 된장1로 끓인 쌈장 된장찌개.

김치, 비엔나, 메추리알 장조림, 맛김, 멸치볶음.

너무나 평범한 집밥.

비엔나 볶음과 된장찌개를 제외하면 전부 반찬가게에서 사 왔던 반찬들이다.

하지만 그녀의 퇴근 시간을 고려해봤을 때  정도면 최선을 다한 것으로 생각한다.

밥도 즉석밥이 아니고 밥솥으로 한  보니 정말 바삐 움직였겠지.

어른이란 참 복잡한 존재다.

아이들처럼 싸운 다음  서로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이면 끝나는 일인데 그 한 걸음의 양보를  해서 이리 빙빙 에둘러서 전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존재들.

나는 조용히 식탁에 앉아 밥을 먹기로 했다.

"잘 먹을게."

"응."

나는 평소처럼 식사를 시작했다.

아내는 그런 나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본인도 식사를 시작했다.

내가 물을 마시기 위해 젓가락을 내려놓은 모습을 본 아내가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있잖아..."

"응?"

"장미... 예쁘네."

"뭐, 그렇지."

장미 이야기를 꺼낼 줄이야.

지금의 나는 평범하게 반응했을까? 그랬어야 하는데.

"왜 19송이야?"

나는 그럴싸한 변명을 떠올리곤 입을 열었다.

"검정고시 준비반. 성년의 날 학생들 주려다가 그만뒀어."

"왜?"

아내는 왜 아직 성년의 날이 아닌데 미리 장미를 준비했는지 묻지 않는다.

나는 내 생일조차 잊고 지나치는 경우가 잦은 남자다.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생각나면  순간에 행동해버린다.

아내의 생일선물도 생일이 1주일 이상 남았는데 미리 챙겨주던 그런 남자다.

"먼저 줘야 할 사람이 있더라고."

이런 카사노바 같은 생각이 떠오르다니 나도 아직 쓸만한 머리를 달고 다니나 보다.

아내는 식사하던 손을 멈추고 잠시 식탁만을 내려다보고 있다.

말없이 젓가락을 입에 무는 아내.

아내는 조심스럽게입을 열었다.

"그게... 누군데?"

마지막 확인작업.

아내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간절한 눈빛.

애절하다.

나보단 못하지만 그래도 인서울 대학은 나온 아내.

대기업은 아니지만, 적당히 월급은 챙겨주는 회사.

엄청 빼어나게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나이치곤 젊어 보이고 매력이 있는 여자.

그런 여자가 불안에 흔들리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TV 옆에 보란 듯이 장미를 장식해두고 자기 것이라며 말 없는 주장을 하면서도 꼭 확인을 해보고 싶은 걸까.

나는 어깨에 힘을 빼고 한숨을 쉬었다.

마치 그것도 모르냐는 제스처.

"알면서 왜 물어?"

그렇게 말하며 평소보다 부드러운 표정으로 웃어준 다음밥을 먹었다.

"응... 응..."

아내는 몹시 안도한 느낌으로 응... 응...  말만을 반복했다.

뒤틀리고 갈라섰던 우리가 다시 하나가 되는 감각을 느끼고 있는 걸까.

변하지 않는 남자. 변함없는 남자.

어떻게든 관심을 끌어보려 했는데 변함이 없던남자.

자신의 의도가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바뀌는 듯한 감각에빠져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행복한 가정을 쌓으려는 시도를 할 생각이겠지.

하지만  노력의 끝에 기다리는 것은 이혼이란 이름의 이별뿐이다.

가볍게 몰아치는 파도 한 번에 휩쓸려 망가져 버릴 모래성.

우리의 관계는 아무리 다지고 또 다져도 결국 그런 미래밖에 남지 않았다.

알면서  물어.

그 장미는 수진이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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