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뒤틀림(1)
"죄송해요..."
결국, 이후의 데이트를 하지 않고 조금 일찍 돌아가게 되었다.
분위기를 망쳐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수진이.
"뭐 그럴 수도 있지."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흥얼거리던 그녀의 콧노래와 둠칫둠칫한 음악이 흘러나오던 차에서 자동차의 엔진음만 들리는 적막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즐거웠는데. 정말 재밌었는데.
오늘의 데이트는 정말 재밌었지만... 그 결말은 최악이었다.
서울에 도착하여 수진이가 내 차에 올라탔던 그곳에 내려줬다.
고개를 숙이고는 내가 떠날 때까지 지켜보는 수진이.
트렁크에는수진이에게 선물하기 위해 준비한 개별포장된 19송이의 장미와 귀걸이가 있다.
데이트가 성공적으로 끝나 좋은 분위기가 되면 너에게 선물하기 위해 준비했던 것들이다.
조금 어두워져 아무도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게 되는 시간.
꼭 세상에서 잘려나와 우리 둘만이 남은 것 같은 그 순간에 이 선물들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 전하지 못했다.
"바람을 피던 아빠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왜 우리 가족을 버렸을까..."
대화에 흐름상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수진이의 입에서 내뱉어진 순간 나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날... 도망치려던 나를 붙잡던 수진이가 떠올랐다.
수진이는 그저 나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찾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내가 멋대로 멀어지려고 하니 분리불안을 느낀걸까.
멀어지려던 나를 붙잡던 너의 작은 용기.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정말 사랑이었을까.
아니, 아니겠지.
수진이는 나를 아버지와 겹쳐본 것 같다.
내가 소설을 쓴다는 것을 알게 된 너는 알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가정이 있으면서 다른 여자에게 끌리는 남자의 마음을.
자신과 어머니, 오빠를 버리고 떠나버린 아버지의 마음을.
나는 너에게 훌륭한 교재였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내 처지가 너무나 우스워 보였다.
아내의 외도를 보며 비웃고 우월감을 느끼던 내가 병신처럼 느껴졌다.
그년은 만나는 놈이 썩어 비틀어진 고목같은 새끼라도 아무튼 사랑의 범주에서 물고 빨며 즐기고 있을 테니까.
나는? 사랑이라고 믿어 의심치않던 그녀의 모든 행동에 의구심이 싹튼다.
집 앞에 도착했음에도 함부로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지금 그년의 얼굴을 보면 이성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초라해진 내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근처에 술집으로 들어갔다.
소주를 1병 시키고 씁쓸한 감정을 소주 한 잔에 털어 넣었다.
맛없는 안주, 맛없는 술, 씁쓸한 인생에 씁쓸한 소주.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이건 차인 게 아니니까.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다.
나는 너에게 고백하지 않았고 너도 나의 고백에대답하지 않았다.
너는 월억킥, 나는 헤밍웨이.
우린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 씁쓸한 감정은 착각이다.
아직 아무것도 아닌 관계인데 사귄다는 착각을 하던 나.
너에게 계속 마음을 표현하며 너의 마음이란 이름의 연못에 파문을 만들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던 나.
나는 착각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하..."
웃음이 나온다.
그래서 뭐 어쩔건데? 포기하려고? 그럴수는 없다.
나는 이제 네가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왜 내 앞에 나타났지.
설레게 만들었으면 책임을 져라.
손에 닿을락 말랑, 내가 먼저 거부했는데도 다가온 건 너다.
왜 다가왔는지 이젠 솔직히 모르겠다.
정말로 소설의 영감 때문에 다가온 걸까.
그럴 거면 왜 그렇게 날 들었다 놨다 한 걸까.
마지막 한잔을 비운 나는 스팸 문자에 위이잉 울리는 휴대폰을 바라본다.
"하하."
휴대폰을 한참 바라보고 있으려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수진이가 쓴 소설은 총 6작품.
그 주인공들의 공통점이 이제야 머릿속에 떠오른다.
요즘 웹소설의 주인공들은 불행 포르노라도 찍는지 전부 어디에 하자가 있어서 그러려니 하고 넘겨버렸었지.
...수진이가 쓴 소설들의 주인공들은 전부 가족이 없거나 편부모 가정이었다.
수진이는 단지 허구인 소설인데도 행복한 가정을 자아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
소주를 한 병 더 시킬까 생각하다가 내일도 학원에는 가야 한다는 생각에 반쯤 들어올린 손을 내린다.
식탁 위에 올라와 있는 휴대폰과 지갑, 낙타와 지포라이터.
나는 지포라이터에 손을 뻗어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팅 탁 팅 탁 팅 탁.
너는 나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나?
네 앞에서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던 나에게서 부모말을 참 안 듣던 군대에 간 오빠의 모습을 떠올렸나?
팅 탁 팅 탁 팅 탁.
하지만 너는 큰 착각을 하고 있다.
물보다 피가 진하다는 말.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말.
수저를 들 힘이 있으면 남자는 선다는 말을 아는가?
나는 네 오빠도 아빠도 아니다.
팅 탁 팅 탁 팅 탁.
내가 네 앞에서 신사가 되는 것은 이미 선을 넘었지만, 최악은 범하지 않으려는 김준수란 인간의 최소한의 양심이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숙하고 겉은 깔끔하지만 속은 여린 그런 남자가 아니다.
나는 꿈속에 찾아왔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린다.
진정한 나는 싫다고 하는 너를 강제로 덮쳐서 선생님! 선생님!하며 두려움에 떠는 눈으로 날 밀어내려는 너를 강제로 범하고 싶어하는 남자다.
나는 수컷이다.
38살이나 먹은 남자에게 플라토닉을 바라지말아라.
너를 사랑하게 된 건 소설 때문만이 아니다.
나의 사랑에는 너의 소설과 성격, 외모 또한 포함되어있다.
나는 너와 섹스를 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탈이란 이름의 선은 담배를 제외하면 넘어본 적이 없는 남자다.
그러니 네 앞에선 한없이 무해해 보이는 것이다.
팅 탁 팅 탁.
보아라.
너를 생각하자마자 추잡하게 범하고 싶다며 꿈틀거리는 자지를.
너는 어떤 식으로 우는 걸까? 부끄러워서 입술을 깨물고 신음을 참을까? 아니면근처의 이웃들이 시끄럽다고 할 정도로 울면서 신음을 토해낼까?
팅 탁.
나는 그 모습이 보고 싶다.
***
트렁크에 들어있던 장미 다발을 꺼내 들고 귀걸이가 든 봉투는 조수석으로 던져넣는다.
학생다운 싱그러움과 막 피어난 꽃처럼 화사한 너에게 주기 위해 산 핑크 골드 귀걸이.
나중에 주자. 장미는... 이대로 냅두면 시들겠지. 들고 가자.
조금 전까지 네가 앉아있던 조수석.
은은하게 수진이의 향기가 남아있는 듯하다.
차 문을 닫고 터벅터벅 집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뜨겁게 달아오른 이마를 벽에 기대 열기를 시킨다.
난 술이 약하다.
우리 애비충을 닮아 1병만 마셔도 얼굴이 금방 달아오른다.
우리 애비충. 우리 애비충.
왜 나를 좀 더 멋지고 건강하게 낳아주지 않았나?
내가 좀 더 멋있었다면 수진이가 똑같은 태도로 나를 대했을까?
내가 수진이의 행동에 쓸데없는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있었을까?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벽면에 붙어있는 거울을 보니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보인다.
한순간에 5살은 더 늙어 버린 것처럼 보이는얼굴.
그래. 이런 나라면 수진이에겐 아버지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달라지고 싶다. 달라져야지.
아직 나는 30대다.
너는 오늘보다 내일 더 예뻐지지만 나는 오늘보다 내일 더 추해진다.
하지만 그걸 조금 더 늦출 수는 있다.
변하고 싶다. 돌아보게 하고 싶다.
그 감정이 가슴을 술렁이게 한다.
범하고 싶다.
너의 그 봄을 빼앗고 싶다.
나도 가져보고 싶다. 널 닮은 아이를.
여자로 태어난다면 요망한 아이가 될 거고 남자로 태어난다면 건방진 아이가 되겠지.
너의 봄을 너의 인생을 내가 가지고 싶다.
울컥울컥.
다시 반응을 보이는 나의 하반신.
나는 아직 30대라며 고개를 치켜드는 이 녀석.
흥분하고 있다.
나도 이 녀석도 정상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그래도 좋아.
띠띠띠띡 삐리릭 철컥 쿵.
나는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이미 밤이 가까운 시각.
"왔어? 윽! 술 냄새..."
아내다.
내가 술을 잘 못 마셔서 맥주만 좀 마신다는 것을 잘 아는 아내.
웬일로 네가 나를 반기는 것일까
그녀는 막 샤워하고 나온 듯이 약간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물기가 있는 머리. 향긋한 비누 냄새
날개뼈에 닿는 듯한 아내의 머리카락.
향긋한 비누 냄새, 머리카락...
아내가 그 순간 수진이로 보였다.
술이라는 기름이 녹슨 심장이란 엔진에 불을 붙인다.
수진아 수진아 수진아!
나는 그 순간 아내를 덮치고 있었다.
***
"윽!!"
짧은소리를 내며 나에게 덮쳐진 아내.
"여보... 뭐야 왜 그래취했어? 그러게 술도 못 마시는 양반이..."
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무런 변화 없는 아내를 연기하는 것인가?
좋다.계속 그렇게 해라.
아니 될 수 있으면 입을 열지 마라.
너는 지금 수진이다. 이수진.
나는 거친 손놀림으로 가슴을 움켜지고 목을 핥았다.
"김준수! 미쳤어!"
"왜, 우리 안 한 지 좀 됐잖아?"
미쳤다. 그러니까 조용히 좀 해줬으면 좋겠다.
머리가 왕왕 울린다. 수진이는 그렇게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나는 아내의 목을 핥다가 귓불을 이빨로 살살 깨물었다.
"응...!"
가볍게 반응을 보여주는 아내.
4년간이나 몸을 섞어왔다.
네가 좋아하는 체위도 알고 있고 애무도 충분히 알고 있다.
나는 아내의 귀에 사랑 대신 음욕을 속삭인다.
"나 지금 존나 꼴리거든. 아가리 닥치고 앙앙 소리만 내라고."
평소와는 다르게 거친 말을 쏟아내는 나.
평소와는 다른 나에게흥분했는지 아내는 점점 달뜬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적, 적어도 침대에서 해. 침대에서..."
점점 움츠러드는 아내.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네가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도 하지만 이 이상 없을 정도로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짐을내버려두고 그녀를 그녀의 침실로 데려갔다.
내 침실에는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이곳에 들어온 건2년만이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했을 때는 침실로 함께 머물 던 방.
화장대, 옷장, 침대와 커튼이 눈에 들어온다.
2년 동안 딱히 달라진 게 없는 방.
너는 여기서 내가 모르는 남자들한테 몸을 허락하고 달뜬 숨을 내뱉었겠지.
이 달뜬 숨을 내뱉는 입으로 그 모르는 남자들의 좆을 빨았을 것이다.
37살 여성의 농후한펠라치오.
"씨발."
아내의 입이 매우더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를 애무하는 손길이 멈추진 않았다.
섹스란 그런 약간 더러움마저 용서하는 것이니까.
아내의 쇄골과 목덜미를 핥고 귓불을 핥고 아내에게 나의 숨소리를 들려준다.
잔뜩 흥분해서 거칠어진 숨소리가내뱉어질 때마다 아내의 숨소리마저 거칠어진다.
입술을 포개고 혀를 밀어 넣는다.
살짝 끝부분이 닿은 나와 너의 혀.
그렇게 방황하던 우리의 혀가 서로에게 얽혀든다.
현란한 혀 놀림은 필요 없다. 숨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단단히 입술을 붙이고 그녀의 혀를 빨듯이 핥고 그녀의 윗니 바로 뒷부분의 잇몸을 핥는다.
그녀는 이곳을 핥아주는 것을 좋아한다.
"하아... 하아..."
달아오른 숨소리
나는 조금씩 탄력을 잃어가는 그녀의 가슴에 손을 뻗는다.
그녀는 주무르는 것보다 유륜 주변을 핥거나 꼬집듯이 자극을 주는 것을 좋아한다.
"아아, 아앙, 아아!"
그녀의 몸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수진이가 헐떡이고 있다.
자지가 팬티 너머로 축축한 무언가를 뱉어내고 있다.
그 불쾌한 감각에 팬티마저 벗어 던졌다.
"하아 하아 하아..."
미친 듯이 발기해서 빳빳해진 나의 분신을 바라보는그녀.
그녀는... 수진이는 매우흥분해서 달아오른 눈치이다.
하지만 아직이다. 성급하게 몸부터 들이미는 초보 짓을 하지 않는다.
진정한 삽입은 그녀의 입에서 단내가 올라올 때가 되어서야 한다.
제발 넣어달라고 흥분해서 애원하는 그 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
나는 조급하지 않다. 너의 처녀를 따먹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잘 풀어주지 않으면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너의 소중한 곳으로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