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화 〉헤밍웨이와 월억킥의 창작활동(2) (10/301)



〈 10화 〉헤밍웨이와 월억킥의 창작활동(2)

어제와 다를 것 없이오늘도 평소와 같은 강의를 한다.

조금 변형된 문제도 있고 새롭게 출시되는 유형도 있어 신경을 써야하지만 언제 판서할 시간을 주고 언제 강의가 끝날지 머릿속에서 이미 정리가 끝난 상황이다.

그러니 출제유형이 바뀌어도 나의 강의는 바뀐 듯이 바뀌지 않는다.

어제와 오늘이 같은 인간이란 걸 몸으로 보여주는 듯한 행위.

얼마전엔 이 모습을 그녀에게 보여준다는 게 몹시도 두렵고 무서웠다.

너에게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여친 앞에서 가오를 잡는 남자친구가 것처럼 말이다.

그래. 나는 그런 촌스러운 짓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는 알아주고 있다.

내가 이것뿐만이 아니란 것을 너만이 알고 있다.

나도 네가 그저 일개 학생이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다.

너무 멀리 돌아왔을 뿐이다.

어제처럼 그저 말 몇 마디면 모든 것이 끝났을 그저 그런 사건에 일생일대의 사건처럼 고민하고 갈등하고.

 사춘기의 청소년들 같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래. 어쩌면 나는 어제 그녀와 대화를 하고 있던  아닐 수도 있겠다.

나는 어제 그녀와 마주친 그 순간부터 청춘을 하고 있다.

탁.

분필을 내려놓는 순간 띵하며 익숙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난 늘 하던 대사와 함께 강의실을 빠져나간다.

빠져나가는 순간 그녀와 잠깐 눈이 맞는다.

싱긋

그렇게 미소를 짓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나는 아무 반응도 없이 그저 강의실을 빠져나간다.

혹시 모른다. 어디에서 우리들의 일탈이 들킬지.

조심 또 조심해야지.

***

타닥타닥.

소설을 쓰는 그녀는 매우 공격적이다.

나에게 말 걸지 마시라는 느낌이 전신으로 표출되는 듯하다.

소설을 쓸 때의 소설가란 다들 이런 것일까?

무섭다. 타닥타닥 내리치듯이 두드리는 키보드의 소음이 귀에 들어올 때마다 작게 움찔움찔 몸이 떨린다.

"인사."

"응?"

"무시하지 마요. 쪽팔리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는 전사에서 다시 소설가가 되었다.

설마 교실에서 반응을 안 해줘서 삐쳤다는 건가?

귀여워. 귀여운데 상황과 장소는 가려야지.

"선은 지켜야지. 선은."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하시는 건가요?"

하아.

한숨을 내쉬는 소리와 내 어깨를 그녀의 머리카락이 청소하듯이 좌우로 왔다갔다한다.

절래절래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는 그녀의 모습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그려진다.

오늘의 그녀도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매력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그녀.

쓰고 싶다. 당장 그녀에 대해서 쓰고 싶다.

나는 그런 강한 충동을 느꼈다.

그렇기에 나는 등에서 느껴지는 인기척과 어깨에서 사륵사륵 소리를 내는 머리카락을 의식적으로 머리 한쪽으로 치워둔다.

***

베짱이 강범수는 알바생에게 일을 맡겨놓고 그녀가 소설을 쓰러 오면 그녀의 뒤편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녀의 눈이 나를 바라보는 것은 두렵다.

나의 주름지기 시작한 이마보다 넓고 남자다움이 물씬 풍기는 나의 어깨의 감촉을 그녀가 느꼈으면 좋겠다.

그녀의 뒤에 앉은 그는 조용히 노트북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녀도 그가 노트북을 두드리는 소리를 무언가감미로운 멜로디를 듣는 것처럼 듣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선 노트북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지금의 그에게 자신의 귀속으로 파고들어 오는 다른 노이즈는 들리지 않는다.

그녀와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이렇게 서로 저는 여기에 있습니다 라며 인기척을 전해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충족감을 느낀다.

주변에서 우리를 보면 그냥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로 보이려나?

하지만 강범수에게 있어서 이 장면은 다르게 보인다.

근사한 레스토랑의 한편에 자리한 피아노.

시끌시끌한 손님들은 관객이 되고 노트북을 두드리는 그들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된다.

그들이 자아내는 노트북의 소음은 하나의 곡을 자아내는 하모니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에 울려 퍼진다.

그들은 본인들만의 이야기로 바쁘다.

질렸다며 이별을 고하는 저 여자처럼 과제 개 미쳤다며 교수 욕을 하는  학생처럼 아무도 이곳에 시선을 두지 않는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연주.

들어주지 않는 연주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누구의 마음에 어떠한 영향도 끼칠  없는 그냥 소음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는 그리고 당신은 느끼고 있겠지.

우리의 연주는 누가 듣지 않아도 된다.

오직 당신만이 들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렇게 푼수답게 서정적인 감정에 젖어 글을 써내려가던 그는 이젠 불혹의 나이가 되어버린 자신의 신체에 찾아온 요의를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급히 서두른다.

우당탕탕.

그녀의 집중력이 깨지고 그녀는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커피를 한 모금 머금고 그의 노트북을 보게 된다.

몇줄 쓰지 않은 별것 없는 스토리.

하지만 그의 진심이 녹아있는 스토리.

나이를의식하는지 최대한 젊게 보이려고 신경을 쓴 깔끔한 인상의 남자.

항상 몸에서 커피 향이 나는 부드러운 인상의 남자

그저 그렇게만 생각했던 남자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게 그가 불쾌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좀 더 알고 싶어졌다.

***

나는 수진이와 휴대폰 번호를 교환했고 어느새 카톡에 그녀의 이름이 떠오른다.

그녀는 나에게 소설이 다 완성되면 톡에 올려두라고 하였다.

공모전에 소설을 제출하는 수많은 하꼬 작가들아.

유료화가 되지 못하는 당신들의 두려움과 막연한 기대감이 이런 것일까?

나는 조심스럽게 내가  글이 담긴 메모장을 드래그해서 수진이의 카톡으로 올려놓는다.

 내 소설이전송될 것이고 수진이는 나에게서 받은 영감이 크게 작용한 소설을 쓸 것이다.

기대도 되는 한편 점점 갤러리에 말이 나오는 감정요소가 과잉이라는 글도 신경이 쓰인다.

그녀에게는 좋은 영향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존재 자체가 악인데 더 나쁜 악이라니 꼭 커피와 담배를 함께하는 커담 같은 느낌이다.

그녀가 커담을 하는 모습이라니... 상상도 되지 않는데 그런 모습은 평생 보고 싶지않다.

타닥이던 키보드가 멈추고 일정한 리듬으로 탁탁탁 한 버튼만을 누르는 소리가 잠시간 울려 퍼진다.

소설의 분량은 그리 길지 않았다.

13kb정도의 4천 자 정도의 분량의 길이.

1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그냥 쏟아지듯이 적어낸 나의 소설.

나의 문재도 버릴만한 물건은아니다.

적어도 너에겐 그럴 거다. 나는 그녀가 소설을 다 읽을 때까지 기다린다.

그녀는  글을  글자씩 곱씹어 먹듯 천천히 천천히 읽었다.

그 모습은 매우 재밌는 만화나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가 곧 다가온다는 것을 눈치채고 점점 읽는 속도가 느려지더니 앞부분으로 돌아가서 좋았던 부분을 다시 읽기 시작하는 나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그렇게 3~4분이면 다 읽을소설을 10분이라는 시간 동안 아껴서 읽은 그녀는소설을 다 보자마자 "잠깐 화장실" 이라고 말하며 후다닥 자리에서 도망쳤다.

이미 카페에 들어온 지는 상당한 시간이 지났고 이곳은 훈훈한난방이 틀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도망치듯이 후다닥 자리를 떠나는 그녀의 귀가 붉어진 것은 날씨 탓이 아니란 것이겠지.

생각없이 소설을 보여달라고 해서 보여줬는데 이건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내가 입으로 나의 감정을 그녀에게 드러내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국어강사이지만 국어강사라고 뭐든지 잘 표현한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글을  쓴다고 웅변도 잘하진 않는다.

PPT를 잘 만든다고 해서 그에 맞는 멋진 스피치가 되지는 않는 것이다.

내가 말로 그녀에게 품고 있는 감정을 말하라 하면 어떻게 표현될까?

이런 꼰대 아재가 이런 말 해서 정말 미안한데. 너를 사랑한다.

이정도의 표현이 되려나?

머리속으로 그녀에게 고백하는 나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도덕성이라는 단어가 머리 한편을 차지하고 여고생, 불륜, 해고 등등 안 좋은 생각이머릿속을 헤집어 입을 우물거리는 자신이 떠오른다.

글이란건 이렇게 편한데.

직접적으로 너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그런 단순한 말로는 나의 감정을 담아낼 수 없다.

사랑이란 단어. 무겁지만 짧은  단어.

내가 그걸 입으로 소리를  너에게 말하는 순간 너는 깜짝 놀라긴 하겠지만 어색한 표정을 짓겠지.

40에 가까운 아저씨가 중얼거리는 사랑 고백이라니 40대 여자가 중얼거리는 사랑 고백을 듣는다고 생각하니 나도 좀 징그럽다.

그러니 나는 기다리겠다.

내 입을 통해서 너에게 짧은 이 단어 사랑이라는 말을 내뱉을때 내가 그 무게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때까지.

네가 받아들이는 사랑과 내가 말하는 사랑이 같은 의미가 될 수 있도록 너에게 충분히 나의 모든 것을 전해주고 너는 그것을 받아들이며 각오를 다질 때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막 시작했지만, 누구한테도 떠벌릴 수도 없고 축복도 받지 못할 것이다.

너는 한때 선생님들에게 연애감정을 품는 학생과 같은 심정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너는 돌이킬  있지만 난 이제 아니다.

너는 내일도 모레도 아니 내년도 그 후도 10년이  지나도 너는 청춘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이미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중이다.

너에게 보여주는 오늘이 가장 젊어 보이고 멋있어 보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 너의 눈에 낀 콩깍지가 서서히 벗겨지기 시작할 것이란 것도 안다.

생각만으론 지금 당장 너의 외모, 너의 성격, 너의 재능 그 모든 것들을 독차지하고 싶다.

하지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까지 남은 시간. 약 7,200시간.

나는 그 시간을 기다려볼 생각이다.

너는 7,200시간 동안 더욱 예쁘고 매력적인 여성이 되어가겠지.

굳이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운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할거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D마트 타임세일처럼 점점 가격이 싸지는 내 모습이 콩깍지가 벗겨지기 시작하는 너의 눈에 들어 실망하게 될까  무서워진다.

나는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좀  늙고 너는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좀 더 아름다워지겠지.

미녀와 야수,

로미오와 줄리엣,

그 둘을 섞은 듯한기묘한 감정.

처음엔 그저  번의 연애로 끝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너와 함께하니 나는이혼이라는 말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남은 인생. 아마 이것이 마지막 연애가  것이다.

너는 다르다. 내가시작이지 마지막일지는 모른다.

점점 더 매력적으로 변해가는 너의 모습을 나는 인생의 마지막까지 내 소설에 담고 싶다.

그러니  입으로는담지 못하는 감정을...

몸은 늙었으나 마음은 성숙해진 안 팔리는 하꼬작가의 진심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아니다.

사랑했던 여성이 우연히 고3 여고생이었을 뿐이다.

나는 기다린다.

강범수와 같은 남자가 되기를 기다린다.

나는 2살 더 나이를 먹지만 여유가 있는 성인 남자가 되고 그녀는 여대생이 되어 계속해서 소설을 쓴다.

그래. 그녀는 그저 혼동을 주기 위해 주인공과 여대생으로 작품을 전개했다고만 생각하고 있겠지

하지만 조금은 달라

난 은연중에 몇 년 후 다시 만나는너와의 미래를 그리고 있던거야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너의  휴대폰을  순간부터 나는 너에게 이 이상 없을 정도로빠져들었다.

마지막에 마지막이 되어서야 너에게 그것을 설명해줄 것이다.

내가 이 소설의 마지막을 너에게 입으로 설명하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

그때가 되면 그제야 눈치챈 네가 눈을 크게 뜨고 놀라서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고백하고 싶다.

멀리 돌아온  인생에 새로운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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