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카페에서의 우연한 만남(2)
나는 강사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수강생들에게 강의를 하며 살아왔다.
그런데도 나 자신에 대해 입을 여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어떻게 운을 떼면 좋을까.
너무 몰입하면 감정적인 발언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안 된다.
나는 네 앞에선 어른스러운 모습만 보이고 싶다.
진정하자. 이건 강의랑 별로 다르지 않다.
단지 그 대상이 단 한 명뿐인 강의일 뿐이다.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고 마음을 다스렸다.
"나도 한때는 문학 소년이었거든."
"문학 소년이요? 문과 나오셨어요? 히히."
그녀는 오늘도 참 웃음이 많다. 귀여운 것.
"아버지가 경상도 사람이었어. TV는 바보상자라고 당신 방에 치워두고 책만 보라고 했거든. 독자라서 집에서 같이 놀 사람도 없어서 정말 책만 봤어."
"그래요?"
"응. 그런데 그렇게 여러 책을 읽다 보니 준범이라고 고향 친구놈이 한 명 있는데 이 녀석이 뭐 재밌는거 보냐? 하면서 책상에서 책을 읽고 있던 내 책을 가져가더라고."
"아, 반에 꼭 한 명씩 있죠. 일진 같은 거였어요?"
"아니 인싸였는데."
"풉!"
그녀는 갑자기 침을 내뱉으며 콜록거렸다. 그리고는 냅킨으로 입을 가리고는 한참을 웅크리고 있었다.
"괜찮니?"
"풉풉, 아하하하하하! 선생님이 인싸라는 말 쓰니까 엄청 이상한 거 알아요?"
"나도 아직 30댄데?"
"아하하하하하!"
좋아. 상당히 괜찮은 분위기다.
"그놈이 난 놈이었어. 운동이든 공부든 요령이 있어서 뭐든 잘하고 취미도 휙휙 바뀌던 놈이거든. 그 녀석은 내가 보는 소설이 요즘 웹소설마냥 판타지소설인 줄 알았나 봐. 제멋대로 빌려 가고는 얼굴을 찡그리며 '개노잼소설 보지 말고 형이 재밌는거 빌려줄게.' 라면서 내 책상에 책을 얹어놓았지."
나는 커피를 마시며 머릿속으로 다음에 꺼낼 이야기를 정리했다.
"다 보고 도서관에 반납 좀 해달라며 떠나가는 준범이는 아무래도 도서관까지 가기가 귀찮았던 게 절반 이상이었을지도 몰라. 아무튼, 그 녀석이 전해준 소설이 10권이 넘어서 학교에서 다 보질 못해서 결국 집까지 가지고 갔어. 그리고 그날이 처음으로 밤을 새운 날이야."
"오, 그렇게 문학 소년이 된 거에요?"
"뭐, 아무래도 소년들의 꿈이란 건 그렇게 시작되는 거지."
"멋지다고 생각해서 말씀하신 거 같은데 완전 틀딱같은 거 알아요?"
모르는데?
"흠, 아무튼 그때부턴 흔히들 장르소설이란 걸 많이 읽었어, 무협지만 빼고. 그렇게 계속해서 읽다 보니 나도 이 정돈 쓰겠다 싶어서 대충 이런저런 소설에서 여러 소재를 끌어서 노트에 대충 내용을 끼적이기 시작했지. 그랬더니 준범이 녀석이 재밌다면서 너 소설가 해보는 게 어떠냐고 해서 그것도 나쁘진 않겠다 생각했지."
"근데 왜 무협지만 안 봐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나도 모르게 무협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버렸다.
수진이가 나와 나눈 이야기를 소설에 써준다는 것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고양감을 준다.
하지만 굳이 나의 치부를 드러낼 필요가 있을까?
아버지는... 그 새끼는 정말 개새끼다. 왜 그런 새끼가 내 아버지일까.
너에게 나의 이 추악한 감정을 내비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 나의 아픔을 보듬어주길 바라고 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얼떨결에 무협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게 아닐까.
"선생님?"
내가 딱딱하게 굳어 아무말도 하지 않자 이상하게 생각했는지 나를 부르는 목소리.
나는 국어강사다. 기계 김준수. 언제나 듣는 별명이잖는가? 오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최대한 감정을 지우고 평범하게 말해보자.
"아버지가 무협지를 좋아했거든."
"아..."
아무래도 나는 기계 김준수가 되지 못했나 보다.
내 입에서 나온 이야기를 들은 수진이는 약간 어색한 표정이 되었다.
"아버지가 싫었어. 주변엔 아버지가 자상한 친구들도 왕왕 있었거든. 이상할 정도로 엄해서 아버지가 굉장히 싫었지."
"지금은요?"
"다를건 없지. 아무튼, 난 그렇게 문학 소년을 꿈꿔서 대학까지 국문학과로 갔어. 어렸을 때 책을 많이 읽은 덕인지는 모르겠는데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대학교에 갔지. 난 그렇게 군대도 다녀오고 대학교에 복학하면 막연하게 소설가가 되자고 생각했지."
지금부터가 고비다. 나는 잠시 호흡을 정돈했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했어. 흔히들 겪는 일이지. 보증을 섰더라고. 그렇게 지식인이 되어야 돈을 번다고 교육에 중요성을 강조하던 사람이 그렇게 한순간에 무너지더라고. 어머니는화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도 `준수야, 명문대도 나왔으니 대학원도 나와서 교수해야지. 대학교수하면서 원하는 소설 쓰고 살고 싶다며? 엄마가 힘낼 테니까 대학원은 꼭 가자...` 그렇..게 말씀하셨어"
목이 메어 말이 끊길 것 같다. 하지만 여기까지 이야기 했으니 끝까지 말하는 게 더 낫겠지.
이 이야기를 아는 녀석은 준범이 하나뿐이다.
슬픔은 나누면 약점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시기가 된다는데 너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잠시 호흡을 고른 나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머니가 고생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어. 나름 좋은 대학을 다니고 있었기에 가정교사 알바는 쉽게 할 수 있었으니 수업이랑 알바를 병행하고 수면을 줄이며 바쁘게 살았어. 그 덕에 한 3년간 소설에선 손을 떼고 살았지.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 대학을 졸업하고 보니 막상 뭘 해야겠는지 모르겠는 거야."
"그래서 강사인 거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정교사를 하면서 이 정도라면먹고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했거든. 가정교사로 평판도 나쁘지 않아서 대학을 졸업하고 1개월도 안 돼서 취직도 됐지. 그렇게 쭉 강사로 지내온거고."
그녀는 잠시 고개를 숙여서 양손으로 머그컵을 붙잡고는 한동안 그 온기를 느끼든 손가락으로 컵의 표면만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럼... 지금은 소설 안 쓰시나요?"
"응?"
잠시 주변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혹시 내가 소설을 쓰고 있다는걸아는 거냐?
오늘 이 만남도 사실은 의도한 거야? 나의 반응을 떠보려고온거냐?
프롤로그만 몇 줄 끄적인 그 이야기에서 날 특징 해냈나? 어째서지?
아니, 아니다. 지금의 이야기에서는 충분히 나올만한 흐름이다.
너무 긴장해서 과한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다.
진정하자.
"아,몇 번 써보려고 했는데 이젠 잘 안되더라고."
"네? 왜요. 잘 쓰실 거 같은데?"
잘 쓸거 같다는 게 무슨 뜻이지. 좋은 뜻이면 좋을 거 같다.
"예전 같지가 않아. 예전엔 동료를 위해 목숨 거는 주인공, 우정과사랑, 용기와 노력, 끈기 같은 고리타분한 게 인기였잖아."
"뭐 그렇죠. 일본만화 같은? 그런 뭐 그런 거죠."
"그래 소년만화 같은 그런 거지. 근데 요즘은 다들 먼치킨이니 뭐니 주인공이 킹왕쨩 투명드래곤 크와와왕하니까 뭐가 재밌고 뭐가 시원한지 모르겠어. 사람 만나서 다죽이고 여자는 트로피처럼 달고 다니고 말이지. 옛날 작품엔 그래도 노력이었는데."
"헐..."
그녀는 뭔가 신기한 동물을 본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고 있다.
약간 멍청해 보인다.
"선생님, 아잰데 말은 20대같이 하시네요. 킹왕쨩이니 투명드래곤이니 크와와왕이니 풉 아하하. 근데 요즘 애들은 킹왕쨩 같은 거 안 써요."
아, 고건 몰랐네.
"아무튼, 요즘 트렌드는 아무것도 없이 날름 날먹하는 녀석들이 주류잖아. 내가 그런 글을 써보려고 해도 나 자신이 재미가 없다고 느끼는데 좋은 작품이 나올리가 있나."
"그럼 요즘은 소설도 잘 안 읽으시겠네요."
"아 그래도 한 작품 읽고 있는 건 있지. '작가를 소설로 초대했습니다.' 라고 월억킥이라는 특이한 닉네임의 작가가 쓰는 소설이 정말 내 취향이거든."
흠칫.
내 말에 잠깐 움찔하는 수진이. 너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 저도 그거 읽어요. 재밌잖아요. 근데 그것도 양판소랑 설정은 또이또이한데 뭐 특별한 점이라도 있어서 읽으시는 거에요?"
그냥 별다른 반응은 없구나? 약간 당황하길 기대했는데...
"묘사가 섬세하거든. 지겨워질 장면은 과감하게 생략하면서 힘줄 부분은 꼭 힘을 줘. 특히 인물들의 감정선이 매우 현실적이어서 읽다 보면꼭 등장인물들이 살아있는 거 같아."
나는 왜 그 소설을 읽는지에 대해 한참을 중얼거렸다.
수진이는 아닌척하지만, 입꼬리가 슬쩍슬쩍 위아래로 움찔거린다.
귀엽다.
판타지 작가들이 심심하면 엘프들의 감정표현이 격해질 때 귀가 파닥인다고 했는데 그녀가 엘프였다면 나도 판타지 작가들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째깍째깍.
"으!"
이 늙은 나이에 머그컵 2잔의 커피는 과했던 걸까.
잠이 오지 않는다.
눈을 감고 침대에 몸을 뉘어도 멀뚱멀뚱 떠지는 눈동자.
오늘은 잠을 자긴 글러먹은 것 같다.
그래서 책상 앞에 앉았다.
예전부터 잠이 오지 않으면 잠들 때까지 눈을 감기보단 잠이 올 때까지 뭔가를 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니 나름 좋은 대학교를 나온 것이지.
어쩌면 그렇기에 수진이, 너를 만났는지도 모른다.
아, 씨발 뭔 생각을 하는 거지? 미쳤네 미쳤어.
새벽 감성이 뇌를 지배하는 듯한 감각.
안 된다. 이런 정신으로 책상에 앉으면 안 된다.
이렇게 새벽에 글을 쓰게 되면 난 한국의 배고픈 소크라테스에서 진짜 K-헤밍웨이가 돼버릴지 모른다.
그럼 또 엄준 아니 준범이 새끼가 오우! 오늘도 절찬 헤밍웨이 했네 헤밍헤밍하며 이상한 카톡을 보낼지도 모른다.
오늘은 오늘 있었던 일들만 잘 정리해서 마무리해놓자.
그거면 충분해.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정신이 없어서 수진이의 소설도 못 봤네.
나는 허겁지겁 소설을 찾아본다.
아, 오늘은 휴재인가. 휴재를 해서 죄송하다는 공지가 올라와 있다.
그러고 보니 일일 연재인데 나와 너무 오랜 시간을 보냈다.
미안하다. 매일 1만 명 이상의 독자들이 함께하는 그녀의 작품을 내가 휴재를 시켜버리다니...
유명연예인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의 팬들 반응이 그러할까?
휴재라는 이야기에 많은 독자가 분노를 표출하고 또 어떤 독자들은 아프면 푹 쉬고 오라면서 따뜻한 응원도 내비친다.
기분이 묘하다.
나는 지금그 누구보다 그녀에게 강한 영향을 주고 있는 사람이다.
평생 교차할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던 너와 나의 평행선이 내가 썼던 소설의 그 이야기처럼 아주 강하게 교차했음을 느꼈다.
그것에서 오는 참을 수 없는 우월감.
난, 정말로 구제불능이구나.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내일 그녀의 작품에서 나의 초라하던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가 될지가 가장 중요하지.
어쩌면소설에 들어간 작가에게도 나름의 사연이 있다는 전개가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던 주인공이 겪었던 참혹한 과거가 회상될지 모른다.
나는월억킥 작가님.
아니, 수진아.
너는 알고 있을까?
네가 무슨 생각으로 웹소설을 쓰는지는 모르겠다.
돈이 목적이거나 어쩌면 취미일 수도 있지만 네가 쓰는 그 한 문장 한 단어에 이렇게도 가슴이 뛰는 독자도 있다.
너의 그 웹소설은 지금의 나에겐 빛바랜 매일을 비춰주는 태양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