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6화 〉 늑대와 24시간 미션 (1) (106/116)

〈 106화 〉 늑대와 24시간 미션 (1)

* * *

========

3급 솔루션 진행 중

­ 밀크마스터와 2m 이내 간격 유지 :

연속 24시간 (미달성)

­ 특제 영양 육포 1인분 섭취 (미달성)

========

당사자가 자기는 왜 육포냐고 투덜댔던 특제 영양 육포 같은 경우,

블랙그레이 실키의 등장 확률이 상당히 낮은 탓에 아직 제조를 시도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

제조법을 살펴보면 그 커다란 오골계를 사냥하는 즉시 부산물에 마력을 주입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헌터 마켓에서 구입해 보았자 돈 낭비일 뿐이라 운에 기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러나 24시간 간격 유지 조건 같은 경우에는 약간 사정이 달랐다.

조건 자체는 단순해서 언제든지 시도할 수 있었지만, 던전에 입장하는 평일에는 이 조건을 완전히 충족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시피 했다.

자신은 짐꾼이고 다희는 파티의 딜링을 책임지고 있었기에,

던전 공략 중에는 전투가 발생할 때마다 불똥이 튀지 않기 위해 2m 너머로 멀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24시간 동안 던전의 출입을 지양해야 했고,

그것은 헌터들의 정비 기간인 주말에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 쉬운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난이도 높은 조건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유민은 샤워를 마치고 나와 냉장고에서 헌터밀크 한 병을 들이켰다.

싱그러운 달콤함이 느껴지는 것을 보아하니 유서울의 것이 틀림없었다.

냉장 보관되어 그 향이 상당히 줄어들기는 했으나,

헌터밀크에 누구보다 진심인 유민이 서울과 다희의 헌터유 맛 차이를 구분해내지 못 할 리가 없었다.

빈 병을 냉장고 맨 아래 칸으로 옮겨 두고, 유민은 옷을 입었다.

집 안이라 속옷 차림으로 있어도 별 문제는 없었지만, 이제 곧 누군가가 유민의 집으로 찾아올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바로 24시간 조건이 붙은 솔루션의 당사자인 다희였다.

처음에는 유민이 다희의 집으로 찾아가겠다고 했지만,

유민의 집을 지금껏 가본 적이 없다며 한사코 이리로 오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이다.

언제나의 트레이닝복 차림이 된 유민이 잠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자,

타이밍 좋게 초인종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에 현관으로 다가가서 문을 열어 주자,

회갈색 늑대 귀와 꼬리가 인상적인 다희가 문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평상복이나 다름없는 트레이닝 집업과 짧은 레깅스­ 스패츠로 몸을 감싼 그녀.

커다란 골반과 그 아래로 이어지는 두터운 허벅지가 극상의 조화를 이루는 압도적인 허벅지의 실루엣이 여실히 존재감을 드러낸다.

물론 유민은 그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그저 다희의 눈을 마주하며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왔어, 누나?”

“그래. 나 왔다.”

다희 또한 그를 향해 씨익 웃어 주고는,

유민의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오…. 이게 바로 사내새끼 집인가? 신기하다 야.”

“별 건 없어….”

인생 처음으로 남자의 집에 들어가 보게 된 다희는 황금빛 늑대 눈을 반짝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파트너로 점찍은 남자의 보금자리에 들어왔다는 흥분감에, 늑대 꼬리가 신나게 살랑거린다.

자신의 원룸보다 훨씬 좁기는 했지만, 다희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이곳저곳에 배어 있는 유민의 냄새에 가득 둘러싸이게 되어,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지게 되었다.

“거기 앉아, 누나.”

“매트리스네? 잘 때 안 불편하냐?”

“나름…? 난 적응돼서 괜찮아.”

“그래?”

유민이 가리킨 매트리스에 커다란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다희는, 자신의 옆 자리를 탁탁 두드렸다.

“너도 일로 와서 앉아라.”

“거기에? 난 누나 앞에 앉으려고 했는데.”

“뭐 하러 맨 바닥에 앉어? 빨리 와 임마.”

그렇게 말하며 북슬북슬한 늑대 꼬리로 매트리스를 찰지게 팡팡 두들겨 대는 다희의 모습에,

유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옆에 붙어 앉았다.

다희에게서 풍겨 나오는 곡물과 견과류의 향기가 유민의 후각을 자극한다.

다희가 유민의 목어깨에 팔을 둘러 어깨동무를 하며 몸을 더 가까이 붙여 오게 되자, 그 고소한 냄새는 한층 강렬해지며 유민으로 하여금 군침을 돌게 했다.

“흐응…. 스읍, 킁킁….”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희는 고개를 꺾어 유민의 목덜미 근처에 코를 가져다 대고 그의 냄새를 맡아 댔다.

샴푸와 바디워시 등에 섞인 수컷의 체취가 다희의 꼬리 움직임을 점차 느릿하게 만들었다.

“…누나?”

“걔랑 같이 있으면 이렇게 대놓고 냄새 맡기 힘드니까…. 흐으, 이거지.”

황홀감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유민에게 딱 달라붙어 마음껏 수컷의 냄새를 탐하는 다희였다.

그에 쓴웃음을 짓고 있던 유민은,

이왕 이렇게 된 김에 그녀가 좀 더 편한 자세를 취하게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저번처럼, 내 위에 앉을래?”

“어? 진짜로?”

서로를 바라본 채로 허벅지 위에 앉는 대면좌위 자세.

그녀가 냄새를 맡을 때 가장 좋아하던 그 자세를 권유하는 유민의 말에,

다희는 퍼뜩 고개를 들어 올리며 기대감으로 노란 눈빛을 반짝거렸다.

허나, 이내 머릿속의 욕망을 털어내려는 듯 고개를 작게 도리질치는 그녀였다.

“끄응…. 아니. 그건 나중에. 지금은 그냥 잠깐 맛본 거야.

그 뭐냐, 솔루션 얘기 해야지.”

지금 그렇게 유민의 품속으로 들어갔다간 오늘 일정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 하고 곧바로 분위기가 야릇해질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에, 다희는 어깨동무를 풀고 유민에게서 살짝 떨어졌다.

왜 기회를 걷어 차냐고 날뛰는 마음속의 늑대를 애써 진정시키면서 말이다.

“조건이 정확히 뭐라 그랬지? 3미터에 24시간?”

“2미터 이하 간격으로 24시간 유지야.”

“그래? 그럼 대충 너 키만큼만 유지하면 된다는 거네.”

고개를 주억이며 그렇게 말한 다희는, 집업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8시 12분. 아직 이른 아침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붙어서, 내일 8시까지 있으면 되는 거지?

지금 시간 측정 되고 있냐?”

“확인해볼게.”

다희의 물음에,

유민은 재빨리 상태창을 불러내어 다희의 회원 정보에서 솔루션을 확인했다.

========

3급 솔루션 진행 중

­ 밀크마스터와 2m 이내 간격 유지 :

연속 24시간 (미달성 ­ 0시간 08분)

­ 특제 영양 육포 1인분 섭취 (미달성)

========

자신과 다희가 만나게 된 시점부터 달성 시간이 적립되고 있음을 확인한 유민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잘 되고 있어. 지금 8분이야.”

“다행이구만. 그럼 나가자, 이제.”

“알았어.”

솔루션의 진행 여부 확인을 마치고, 다희와 유민은 매트리스에서 몸을 일으켰다.

사전에 미리 계획해 두었던 일정대로 움직이기 위함이었다.

아침부터 집을 나선 그들은 이내 다희의 집으로 이동했다.

일찌감치 정비를 맡겨야 하는 헌터 장비를 챙기러 가기 위함이었다.

여전히 다희의 고소한 헌터밀크 냄새가 가득 배어 있는 원룸.

미리 현관에 내어놓고 있던 다희의 장비들이 유민의 눈에 들어온다.

손등 부분이 단단한 재질로 덮여 있는 반장갑과, 곳곳이 금속과도 같은 소재로 흉악하게 덧대어져 있는 부츠 및 각반.

어디선가 커다란 종이백을 꺼내들어 그 장비들을 쑤셔 넣은 다희는, 그것을 한 손에 덜렁 든 상태로 다시 나가자고 손짓했다.

“…종이 찢어지는 거 아냐?”

“내가 설마 그냥 백화점 종이백에 이걸 담았겠냐?

헌터 장비 담으라고 만든 거라 튼튼하니까 걱정 말어.”

헌터 전용 종이백이라니. 정말 별 걸 다 만드는 듯싶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유민은 2m 간격을 유지하도록 주의하면서 얌전히 다희를 따라 나섰다.

재료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

헌터 마켓 근방에는 반드시 여러 직군의 공방들이 밀집되어 있기 마련이었다.

마녀의 그것과 비슷한 연금술 공방부터, 헌터 장비의 정비를 의뢰할 수 있는 무구 공방까지.

다희와 유민이 찾은 곳은,

그 중에서도 공방 거리의 상당히 깊숙한 곳에 위치한 어느 가게였다.

그렇게 크지 않은 공간의 내부 벽면에는, 건틀릿이나 각반 등 무투 계열 위주의 무구들이 여럿 진열되어 있다.

두건으로 머리를 싸맨, 상당히 과묵해 보이는 인상의 여주인이 카운터 너머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거 정비요. 내일까지 되죠?”

“됩니다. 내일 찾아오십쇼.”

그녀에게 장비를 맡긴 다희는, 유민을 옆에 끼고 헌터 마켓으로 향했다.

“저 양반은 돈만 제때 잘 주면 정비 잘 해줘.”

“어…. 원래 그래야 되는 거 아냐?”

“나 수인이라고 은근히 지랄하는 새끼들도 있었거든.”

“….”

그 대답에 유민의 표정이 굳어지려 하자,

다희는 픽 웃으며 뒷말을 이어 붙였다.

“근데 이 동네에서 인성 제대로 안 챙기면 어떻게든 나락으로 가더라.

방금 말한 걔들도 다른 애들 장비 만들 때 재료 떼어먹다 걸려서 훅 갔어.”

“아, 그래?”

“그니까 너도 착하게 살어.

솔루션 가지고 막 애들 협박하면 안 된다?”

“그걸로 협박을 어떻게 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남녀는 헌터마켓 안으로 진입했다.

백화점과도 같이 여러 층으로 나뉘어져 있는 마켓.

그 중에서도 3층에 위치한 의류 매장으로 걸음을 내딛는 그들이었다.

다희와 유민이, 처음으로 만나게 된 곳이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