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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화 〉 마녀 밀크와 새로운 포지션 (5) (105/116)

〈 105화 〉 마녀 밀크와 새로운 포지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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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 시현이하고는 연락 됐어요?”

뭔가 화제를 다급히 돌리려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질문이었다.

그렇다고 마녀가 자신의 정액으로 무언가 수상한 일을 할 것 같지는 않았기에,

유민은 그 비커에 대한 의문을 일단 접어 두고 시영의 물음에 답해 주었다.

“아직 연락은 안 왔습니다.”

더 이상의 추궁 없이 그렇게 넘어가 주는 유민의 모습에,

마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래요? 언니 품에서 막 우는 걸 보여줘 가지고 창피한 건가?”

“동생 분이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뭐, 그렇겠죠. 시현이라면 그냥 쿨하게 넘길 것 같긴 한데…. 그게 유민이라면 또 모르죠?”

“…?”

무언가 능글맞은 그 말에, 유민은 그저 의문을 표할 뿐이었다.

부끄러움의 대상이 자신으로 지정된다고 해서 무언가 달라질 것이 있나?

그런 생각으로 고개를 갸웃해 보이는 유민의 모습에, 마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성적 욕구의 존재감도 겨우 깨우치게 만들어 준 이 새싹 탐구자한테 무엇을 바라겠는가.

“그냥 해 본 소리에요.

그럼 이제 일 이야기를 좀 해 볼까요?”

“밀크 길드 말씀이십니까?”

“그래요. 소속 헌터 5명 정도면 소수 정예로 길드가 돌아갈 수 있다고 했죠.

나도 솔루션을 받기로 했으니까, 그럼 이제 한 명 남은 건가요?”

마녀의 말에, 유민이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분명 헌터유의 가공을 맡겠다고 했었는데,

거기에 더해서 밀크 길드의 소속 헌터로까지 활동을 할 여유가 존재하는 것인가?

“네? 그렇지만 마녀님은.”

“으응? 왜요, 길드장은 얌전히 길드에나 신경 써라 이거예요?”

“아, 아뇨. 그게 아니라….”

“농담이고, 우리 신입이 뭘 걱정하는지는 알아요.

길드에서 제품으로 내놓을 헌터유 가공하는 것도 바쁠 텐데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마녀는 자신의 거대한 젖가슴 밑으로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사실 그렇게 힘든 건 아니에요.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제일 핵심적인 건 우린 소수정예라는 거예요.

가공할 밀크의 양이 그리 많지가 않으니까, 애초에 그렇게 바쁠 수가 없어요.”

“아….”

“물론 나는 본업이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여유가 없어지겠지만….

우리 신입이랑 요 며칠 동안 얘기하면서, 결심이 섰어요.”

“결심이요?”

무언가 비장해 보이는 듯한 마녀의 말에 유민이 의문을 표하자,

시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상당히 무거운 말을 던졌다.

“한동안, 회사 일에서 손 떼기로 했어요.

이왕 새 일 벌리는 김에, 제대로 해 보려고요.”

“?!”

그 리퀴드 위치가, 당분간 자신의 회사를 돌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언론이 들었다면 난리가 났을 법한 그 묵직한 발언에, 유민이 크게 당황했다.

“진심이십니까?”

“신입이 헌터밀크를 대하는 태도 이상으로 진심이에요.”

당당한 모습으로 그리 대답한 마녀는,

이내 헌터밀크에 대한 유민의 광기어린 진심을 떠올리고 슬쩍 자신의 말을 수정했다.

“으음…. 아니. 이상까진 아니고. 살짝 못 미치는 정도?”

“아뇨, 그, 얼마나 진심인지를 따지는 게 아니라….”

“아, 물론 아예 자리를 비우는 건 아니고. 대리인 세워서 보고는 계속 받을 거예요.

제가 그 자리에 있는 거랑은 좀 차이가 있겠지만요.”

걱정 말라는 듯이 손을 내젓는 마녀였지만,

유민은 여전히 표정을 굳히고 있었다.

자신이 괜히 바람을 넣어서 그녀와 그녀의 회사를 위기에 빠뜨리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진중한 분위기를 두르고 그렇게 말해 오는 유민의 목소리에,

마녀는 왠지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탐구자 동료로서,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해 주는 유민의 마음.

그 안에 가득 담긴 온기가 시영을 포근히 감싸 주고 있었다.

다른 남자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면 그저 위선이라고 생각하며 냉소적으로 넘겼을 테지만,

어째서인지 유민에게만큼은 전혀 부정적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기분 좋은 온기에 저도 모르게 따뜻한 미소를 가득 머금게 된 마녀였지만,

아쉽게도 유민이 자신을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기에, 마녀는 유민이 듣기에 다소 뜬금없어 보일 수 있는 말을 꺼냈다.

“헌터 업계에서는,

상처를 급속 치유하는 물약을 그냥 힐링 포션이라고 불러요.”

“네?”

“엄연한 우리 회사 상표명이긴 한데, 그냥 그렇게 인식이 굳은 거죠.

다치면 힐링 포션 마시는 게 일상이니까.”

“아, 네. 그렇죠.”

지금까지 다니던 던전의 난이도가 난이도인지라 누구 한 명이 다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던전 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유민의 짐꾼 가방에도 두 헌터들이 한두 병씩 가져온 힐링 포션이 보관되곤 했다.

그 정도로 리퀴드 위치 사의 힐링 포션은 이미 헌터 업계에서 기본적인 상비약으로 자리매김한 상태였다.

“다른 포션 회사들이 우리랑 비슷한 포션을 안 만드는 것도 그런 거예요.

우리네 제품은 이미 효과가 오랫동안 검증됐고, 계속해서 쌓이는 데이터로 연구진들이 제품을 개선하고 있으니까 그걸 따라잡을 수가 없는 거죠.”

그 말에 유민은 리퀴드 위치 사의 힐링 포션과 비슷한 효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지도 또한 그만큼 높은 포션의 존재 여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제품이 단 하나도 없음에, 유민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런 유민의 모습에 시영은 짙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특히 이런 치료 쪽은 헌터들 목숨이 달린 일이라서,

테스트 결과만 믿고 실전에서 사용했다가 헌터들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 날로 그 회사는 정리 들어가야 되는 거거든요.”

“…그렇겠네요.”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필연적으로 그 헌터와 함께하던 동료들의 원한을 사는 것은 물론이요, 더 나아가 헌터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낙인이 찍히게 될 것이다.

회사의 존폐 위기는 물론이고 목숨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닥친다고 생각하니,

유민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유민의 심정을 궤뚫어보기라도 했는지, 마녀는 큭큭 웃었다.

“힐링 포션이 꽉 잡고 있는 시장에 후발 주자로 들어가야 되는 그 진입 장벽이랑, 그런 여러 가지 위험 요소들 때문에…. 사실 우리 회사는 경쟁사라고 할 만한 애들이 없어요.”

물론 그 리스크는 나한테도 똑같이 적용되니까, 나도 여기까지 올라오기까지 무지 힘들었어요.

그런 말을 덧붙이며 시영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내, 그녀는 앞선 말들을 바탕으로 한 결론을 내뱉었다.

“그래서, 내가 다른 일 신경 쓰느라 자리 좀 비운다고 위험해지는 일은 없어요.

난 괜찮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본인을 납득시키기 위해 그토록 많은 설명을 곁들여 준 시영의 말에,

유민은 비로소 긍정을 표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회원 1명을 더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네?”

아직 무언가 할 말이 남은 듯한 그녀의 모습에 유민이 의문을 표하자,

마녀는 싱긋 웃으며 한 마디를 던졌다.

“다음 주에,

나도 같이 던전 들어가요.”

다음 날.

헌터들의 거의 공식적인 정비 기간인 주말이 시작되었다.

F급 짐꾼이자 밀크마스터인 유민은 아침 일찍 매트리스 위에서 눈을 떴다.

어제 그렇게 욕구를 해소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유민의 자지는 아침 텐트를 커다랗게 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 모습에, 유민은 이 또한 밀크마스터의 능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던전을 가지 않는 날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선, 며칠 전에 약속했던 두 헌터와의 뜨거운 시간이 예정되어 있었다.

유선 마사지 이후에 몇 번이고 다희의 침대 위에서 두 명의 욕구 해소 작업을 진행하느라 사실상 본질적인 의미가 없어지기는 했지만, 그들이나 유민이나 그닥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적인 약속보다 좀 더 중요도가 높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다희의 3급 솔루션 조건 중 하나인 24시간 미션이다.

유민은 화장실에 들어가 몸을 씻으며, 상태창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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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 솔루션]

○ 고유 스킬

밀크마스터의 본분이자 모든 것.

▶ 헌터밀크의 품질 상승을 위한 솔루션을 순차적으로 제공한다.

▶ 조건 충족 시 신규 회원을 등록할 수 있다.

▷ 현재 회원 수 : 3

▷ 유서울 (3급)

▷ 강다희 (3급)

▷ 최시현 (3급)

­ 조건 A : 동일한 생산자의 헌터밀크 3회 이상 복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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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등급이 3명.

무언가 안정감이 드는 그 숫자였다.

그에 만족감을 느끼며, 유민은 회원 목록을 눈으로 죽 훑었다.

시현의 옆에 붙어 있던 느낌표 모양의 경고 표식이 사라져 있었다.

밀크 테라피를 통해 긴급 미션을 해결한 덕분이다.

어젯밤에 날아왔던 시현의 메시지, 다음에 만나서 얘기하자는 그 짤막한 문장이 떠올라 쓴웃음을 짓는 유민이었다. 정말로 언니의 품에 안긴 게 부끄럽기라도 한 건가.

그런 생각은 접어 두고,

유민은 서울과 시현 사이에 존재하는 다희의 회원 정보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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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다희 (3급)

솔루션 버프 부여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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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급 솔루션 진행 중

­ 밀크마스터와 2m 이내 간격 유지 :

연속 24시간 (미달성)

­ 특제 영양 육포 1인분 섭취 (미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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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메인 이벤트인 연속 24시간 간격 유지 조건.

그것이 유민의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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