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액체의 마녀와 포션 제조 (6)
* * *
잠시 후,
다리에 힘이 돌아오게 된 마녀는 슬그머니 엉덩이를 유민의 하반신에서 떼 내었다.
그 모습을 본 유민은, 마녀가 쓰러지지 않도록 거대한 젖가슴을 붙잡아 지탱해 주고 있던 두 손을 회수했다.
“….”
시영은 가슴에서 느껴지던 유민의 온기가 사라지게 되자 아쉬움을 느꼈지만,
그보다 훨씬 강렬한 감정이 마녀의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수치심, 또는 부끄러움이었다.
유민의 기술에서 비롯된 열락에 푹 빠져, 착유를 열심히 도와주고 있는 새싹 탐구자에게 대놓고 음탕한 움직임으로 엉덩이를 비벼 대며 유혹하던 자신의 모습.
그 순간이 머릿속에 떠오름에, 상당한 자괴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허나, 마녀는 이내 정신을 다잡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아무리 유민이라도 자신의 행동에 담긴 의도를 눈치 챘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 자신은 자연스럽게 보상에 대한 말을 꺼내고,
탐구자의 덕목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쌓여 있는 욕구를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과 함께, 마녀는 오프숄더 셔츠 자락을 다시 끌어올려 젖가슴의 반절을 그 안에 집어넣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 시영의 귓가에, 유민의 목소리가 닿았다.
“마녀님, 괜찮으십니까?”
“으, 으응?”
그 물음에,
마녀는 저도 모르게 말을 살짝 더듬었다.
유민의 어투가, 여전히 평온하면서도 진중함을 잃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유민에게 저지른 것에 대하여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듯이, 그 목소리에는 부정적인 감정이 하나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에 마녀는 속으로 경악성을 내질렀다.
엉덩이를 그렇게 비벼 대며 유민의 그 곳을 집요하게 자극해서 몇 번이나 꿈틀거리게 했는데도, 그는 마치 본인의 남성기가 별개의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아무런 동요를 일으키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그 굳건한 의지에,
마녀는 어이를 상실하는 것을 넘어서 일종의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름 유민의 성욕을 해결해 준다는 명목으로 자기합리화를 마친 참인데,
이렇게까지 반응이 없다면 은인에 대한 보상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
그 보상을 다른 방향으로 제시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미 진득한 욕망이 머릿속 한 구석에 심겨진 마녀는 그 사실을 무시해 버렸다.
반드시, 유민이 한 번이라도 성욕을 의식할 수 있게 만들어 보리라.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스스로도 약간 의구심이 들기는 했지만,
시영은 애써 긍정적인 마인드로 그렇게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요. 신입도 괜찮은 거죠?”
“네…?
아, 네. 그렇게 어려운 작업은 아니라서 괜찮습니다.”
혹시 몰라서 떠 보듯이 던진 물음에도, 태연한 목소리로 엉뚱한 답을 내놓는 유민.
그에 마녀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것으로 엉덩이 유혹은 완전히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거 다행이네요….
일단 포션부터 마무리 지을게요.”
유민에 대한 것은 잠깐 뒤로 미루고,
마녀는 그리 말하며 눈앞의 유리 가마솥에 집중했다.
유민 또한 살짝 옆으로 비켜서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마녀의 현대식 가마솥 안에는,
아까와는 사뭇 다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 안에 들어가 있는 헌터밀크 방울들은, 진홍색 구체에 곧장 흡수되지 않은 채 그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기만 했다.
착유 절정에 의해 헌터유가 대량으로 분출되었기에,
그 희멀건 방울들은 구체 주위로 크고 작은 고리를 여럿 생성하며 공전하고 있었다.
그 신비한 모습을 목격한 유민의 눈이 살짝 커진다.
힐끗 눈을 돌려 그런 새싹 탐구자의 반응을 살핀 마녀는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까처럼 놔두면 헌터밀크가 너무 많이 들어갈 거 같아서,
설정을 좀 바꿔 놨어요.”
“그렇습니까?”
“그래요. 이제 저기에서 적당량만 투입하고, 나머지는 밖으로 빼내는 거예요.”
설명을 마친 시영은,
가마솥 안에서 다수의 고리를 이루어 회전하는 헌터밀크 방울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내, 그녀는 유리 가마솥 벽면에 새겨져 있던 마법진 하나에 손을 대어 활성화시켰다.
그러자, 헌터밀크로 이루어진 고리 몇 개가 작게 좁혀들더니 그대로 진홍빛 구체에 흡수된다.
유민은 상당히 부드러운 색조로 변한 구체를 바라보며, 저기에 혀를 대 보면 우유 섞인 딸기 맛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진지한 눈으로 거의 다 완성된 포션을 바라보고 있는 유민에게,
마녀가 한 마디를 툭 던졌다.
“마셔 볼래요?”
“…네?”
순간 자신의 머릿속이 읽힌 줄 알고 흠칫하며 그리 대답하는 유민.
그 당황 섞인 반문에 마녀가 피식 웃으며 마법진의 활성화를 멈추고 위를 향해 살짝 손짓했다.
구체와 섞이지 않고 여전히 그 주위를 빙빙 돌던 헌터밀크 방울들이, 마녀의 그 손짓에 가마솥 위로 끌려나와 하나로 뭉쳐진다.
“이거 말하는 거예요.
밀크마스터한테 한번 맛 평가를 들어 보고 싶은데, 어때요?”
가마솥 위로 떠올라 있는 그 탐스러운 헌터밀크 덩어리를 홀린 듯이 바라보던 유민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포션을 맛보지 못 하는 건 조금 아쉬웠지만,
마녀의 거대한 젖가슴에서 짜낸 헌터밀크는 그 아쉬움을 채워 줄 대체재로써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좋습니다.”
“그래요. 그럼….”
긍정을 표하는 유민의 모습에, 마녀는 자신의 헌터밀크 집합체를 바라보며 유민 쪽으로 살짝 손짓했다.
그러자 거의 한 입 크기의 그 희멀건 구체가 유민의 얼굴, 정확히는 입을 향해 스르륵 날아갔다.
“그대로 입에 넣어줄 테니까, 아 하세요.”
“아, 네.”
유민이 입을 벌리자, 마녀의 헌터밀크 덩어리가 그 안으로 쏘옥 들어갔다.
“셋에 능력 풀 거니까 흘리지 않게 잘 받아 마셔야 돼요.
하나, 둘, 셋.”
“흡.”
시영의 구령에 따라, 타이밍을 맞춰 유민이 입을 다물었다.
그와 동시에 헌터밀크가 물리 법칙의 영향을 받아 아래로 쏟아졌다.
입 안에 한가득 고인 마녀의 헌터밀크로 혀를 적시게 된 유민.
이내 미뢰에 전달된 풍미가 미각 신경을 통해 쏜살같이 뇌로 이동하여 분석에 들어갔다.
헌터밀크의 베이스가 되는 단맛이 탄탄하게 기초 공사를 진행하고,
그 위로 그윽한 향을 지닌 쓴맛이 쌓이기 시작한다.
그녀의 동생인 시현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씁쓸함.
향 좋은 커피와 비견되는 그 맛이 유사하게 혀끝을 감돈다.
하지만 동생과 비교했을 때,
그 쓴맛의 비율에서 꽤나 확연한 차이점을 보였다.
동생 시현의 헌터밀크는 깊은 쓴맛이 풍미의 주된 부분을 차지하면서 그 사이로 기존의 달콤함이 스며들어 마치 커피의 시럽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허나, 언니인 시영은 그렇지 않았다.
단맛과 쓴맛 중에서 어느 하나가 맛의 방향성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헌터밀크의 달콤한 베이스와 그윽한 쓴맛이 서로 적절하게 어우러지며, 깊고도 부드러운 풍미를 지닌 맛을 형성해 내고 있었다.
커피로 비유하자면,
동생은 에스프레소에 물을 넣고 시럽의 단맛을 슬며시 섞은 아메리카노였으며,
언니는 에스프레소에 스팀 밀크를 넣어 부드럽게 쓴맛을 감싸는 카페라테였다.
그리고,
자매간에는 가장 큰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언니 쪽의 헌터밀크가, 훨씬 맛이 진했다.
이는 단순한 풍미의 차이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좀 더 본질적인 요소인, 품질의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었다.
그 모든 것들, 마녀의 헌터밀크 맛과 동생과의 차이점들을 한순간에 파악해 낸 유민은 어느새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그에 마녀가 순간 흠칫하고 있자,
유민은 엄숙한 분위기를 두른 채 시영을 똑바로 마주하며, 진중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마녀님.”
“어, 으음, 왜요…?”
“혹시, 2등급이십니까?”
그 물음에, 마녀의 신비로운 자색 눈이 순간 크게 뜨여진다.
그리고는 이내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걸 맛보자마자 알아요?”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그녀의 대답에,
유민은 서슴없이 입을 열었다.
“3등급보다 한층 풍미가 진했지만,
그 맛에 약간의 공백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
“밀크에 전체적으로 스며든 쓴맛은 동생 분의 것과 비슷합니다.
그렇지만 비율 면에서 차이가 있네요. 마녀님의 밀크가 좀 더 단맛의 비중이 높아서 풍미가 부드러운 편입니다.”
와인을 맛본 소믈리에와도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그렇게 맛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는 유민.
그에 마녀는 못 당해내겠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정말로, 밀크마스터라는 직업명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그래요. 알았어요. 아무튼 괜찮은 편이라는 거죠?”
“괜찮은 정도가 아닙니다. 아주 좋아요.”
그렇게 답하며,
유민은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오늘 마녀의 공방에 들어설 때부터 가슴에 품고 있던 용건을, 마침내 털어놓게 될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헌터밀크의 그 훌륭한 풍미를 느끼게 되고 나니, 더 이상 망설일 것이 없었다.
“마녀님.”
“으응? 왜요?”
“동생 분을 길드로 데려오면, 소원을 하나 들어주시겠다고 하셨죠.”
유민의 말에 눈썹을 슥 들어 올린 마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랬었죠.
근데 벌써 소원을 정한 거예요? 좀 더 생각해 봐도 괜찮지 않아요?”
“아뇨. 결정했습니다.”
“…!”
굳은 결심을 마친 그 올곧은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대답하는 유민의 모습에,
마녀의 가슴이 조금씩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무슨 소원을 빌려고 하는 것일까?
지금껏 참고 있었던 성욕에 대한 처리?
아니면 헌터밀크를 더 마시게 해 달라는 요청?
그런 건 소원권이 없어도 기꺼이 해 줄 수 있는데.
아니면 혹시 나랑, 그렇고 그런…
소원권의 사용을 앞두고, 시영의 머릿속이 온갖 생각과 망상으로 난잡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유민의 입이 열렸다.
“제 솔루션의, 회원이 되어 주세요.”
“…뭐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