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 액체의 마녀와 포션 제조 (2)
* * *
“포션인가요?”
“그래요. 오리진 힐링 포션.
약속한 대로 그걸 주려고 해요.”
오리진 힐링 포션.
리퀴드 위치 본인이 직접 제조하는, 힐링 포션의 한정판.
그 효과는 보통 포션과 큰 차이가 없지만,
리퀴드 위치의 명성과 고급스러운 포션 병의 디자인 덕에 본래의 쓰임새보다는 사치품으로 인기가 많은 고급 포션이다.
허나 유민은 그러한 사실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저 솔루션에 요구되는 재료 중 하나이기에 필요로 할 뿐이었다.
그래서 오리진 힐링 포션을 구할 방도를 찾던 도중,
기묘하게도 포션의 제작자 본인과 약속을 맺게 되었다.
액체의 마녀에게 자신의 솔루션에 대한 비밀을 털어놓는 대신에,
그녀의 손으로 만들어진 포션을 지급받기로 약조했던 것이다.
그것을 기억해 낸 유민이 입을 열었다.
“포션이, 다 완성된 겁니까?”
포션이 완성되지 않았다면 그것을 자신에게 준다는 말 또한 성립될 수 없기 때문에 그저 확인 차 질문을 던진 것에 가까웠지만,
시영의 반응은, 뭔가 유민의 예상과 달랐다.
“으음… 아마도요?”
그런 애매한 대답과 함께 그녀는 슬쩍 짓궂은 웃음을 머금으며,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장난스러우면서도 약간의 쑥쓰러움이 담긴 듯한 그 모습에 유민이 의아함을 표할 무렵,
시영이 말을 이어나갔다.
“저번에, 오리진 포션은 내가 직접 만든다고 얘기했었죠?”
“네. 그래서 한정판으로 귀하게 취급된다는 말도 하셨습니다.”
“그래요. 뭐, 한정판 얘기는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고…
말보다는 직접 보여주는 게 낫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마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 뒤쪽의 벽에 달린 문으로 다가갔다.
그 거대한 가슴에 어울리는 큼직한 엉덩이가 검은 면바지에 감싸인 채 실룩였다.
잘록한 허리에서 이어지는 풍만한 하반신의 색정적인 뒷태를 뽐내며,
시영은 고개를 돌려 유민을 힐끗 쳐다보았다.
“따라와요. 안쪽으로 들어갈 거예요.”
“아, 네.”
그 자리에 멀뚱히 앉아 있던 유민은,
그제서야 스툴에서 몸을 일으켜 그녀를 따라 카운터 너머로 걸음을 옮겼다.
열린 문을 통과하여 벽을 넘어서자, 또 다른 공간이 유민을 맞이했다.
“외부인이 여기에 들어오는 건 아마 우리 신입이 처음일 걸요.”
벽에 세워진 진열장에 줄줄이 놓여 있는 색색의 앰플과 포션, 그리고 갖가지 재료들.
한 쪽에 위치한 책상 위에는 화학 연구실에서 볼 법한 각종 기구들이 놓여 있었으며, 그 반대편엔 휴식용으로 추정되는 길다란 소파가 있었다.
그리고, 유민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방 중앙에 놓인 투명한 용기였다.
드럼통만한 비커, 또는 냄비를 닮은 그것의 벽면에는 정체불명의 기호와 마법진 같은 것들이 하얀 색으로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현대적인 디자인의 삼발이 거치대 위에 올라간 채로,
거대한 크기만큼이나 굉장한 존재감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유민의 모습에,
마녀는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저건, 말하자면 그거죠.
보통 마녀 하면 떠올리는 그 가마솥 같은 거라고 보면 돼요.”
“아…”
고전적인 마녀 가마솥의 현대판.
그 설명을 듣고 유민은 단박에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현대식 마녀 가마솥 앞으로 다가간 시영은, 이내 진열장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형형색색의 액체가 담긴 몇 개의 앰플과 비커들이 허공을 건너서 그녀 옆의 보조 탁자에 사뿐히 안착했다.
“이걸 사용해서, 지금부터 오리진 포션을 만들 거예요.”
“이걸로, 말인가요.”
“그래요. 공장에서 자동화 공정으로 생산하는 건 이것보다 훨씬 복잡하긴 한데…
뭐, 오리진은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거니까 이거면 돼요.”
그렇게 설명을 마친 시영은, 이내 유민을 바라보며 그에게도 방금 전과 같이 손짓을 했다.
유민은 순간 자신도 끌려가는 건가 싶어 흠칫했지만,
곧 자신의 옆에 놓여 있던 정수기용 물통이 두둥실 날아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에 머쓱하여 뺨을 긁적이고 있자, 마녀가 큭큭 웃었다.
일부러 유민에게 장난을 친 모양이었다.
동생을 제외하면, 시영은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이리 친근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허나 그것을 알 리가 없는 유민은, 그저 시영이 이전보다 밝아졌다는 감상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제 건너편으로 가 봐요, 우리 신입. 재밌는 거 하나 보여 줄게요.”
“아, 네.”
유민이 걸음을 옮겨 그 거대한 유리 가마솥 너머로 시영을 마주하자,
리퀴드 위치는 이내 포션 제조를 시작했다.
그녀가 손짓을 하자,
정수기용 물통의 뚜껑이 스르르 열리더니 그 안에서 물이 저절로 솟구쳐 나왔다.
그 물줄기는 이내 허공을 유유히 헤엄치며 가마솥 위에서 똬리를 틀더니,
이내 마녀의 능력이 해제되었는지 정상적인 물리 법칙에 따라 가마솥 안으로 쏟아졌다.
헌데 물은 그 안에 고이지 않고, 무언가의 힘에 이끌려 정중앙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는 동그랗게 구를 이루어 가마솥 한가운데에 둥실 떠올랐다.
“…!”
그 신비한 광경에 유민이 눈썹을 들어 올리고 있자,
마녀는 짙은 미소를 머금으며 나머지 재료를 차례차례 투입했다.
“핵심 재료들은 이미 다 이런 식으로 추출해 놔서,
지금은 그냥 섞기만 하면 돼요.”
앰플의 뚜껑을 개봉하여 가마솥 안에 색색의 액체를 쪼르륵 붓고,
비커에 들어 있던 초록빛의 진액을 흘려 넣었다.
그것들은 모두 가마솥 가운데에 둥둥 떠 있던 물의 구체로 섞여 들어가, 그 안을 온갖 색상으로 물들였다.
“이제부터가 진짜예요.”
이내 액체의 마녀가 가마솥의 벽면 어딘가를 손끝으로 지그시 눌렀다.
그러자 그 곳을 중심으로 벽면에 새겨져 있던 온갖 문양과 마법진을 통해 푸른 빛줄기가 퍼져나갔다.
시영의 마력을 머금게 된 그 하얀 선과 동그라미들은, 이내 신비로운 자색으로 은은하게 빛을 발했다.
그 단계에 도달하자, 가마솥 안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평화롭게 둥실둥실 떠 있던 구체가, 돌연 스스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가속에 가속을 거듭하여 맹렬한 속도로 자전하는 형형색색의 구체.
이내 그 안에서 색이 뒤섞이며 거무튀튀한 빛을 띠게 되었다.
허나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구체에서 조금씩 수증기가 새어나왔다.
그 증기에 색을 담아 내보내기라도 하듯이, 구체의 색이 점차 옅어지기 시작했다.
검은색은 회색으로, 회색은 다시 연회색으로.
그러다가 돌연 붉은 기가 돌더니, 점차 적색을 띠기 시작한다.
그녀가 가마솥에서 손을 떼어 마력의 주입을 멈추었을 때,
구체는 고급스러운 진홍색이 되어 있었다.
리퀴드 위치 사의 힐링 포션과 동일한 색상이었다.
“후우, 됐네요.
어때요? 리퀴드 위치가 포션 만드는 걸 본 소감이.”
“…되게,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잊지 못할 것 같네요.”
견학생의 솔직한 감상평에, 마녀가 픽 웃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작게 저어 보였다.
“그 말은 고맙지만,
포션 제조는 아직 안 끝났어요.”
“네?”
그 말에 유민이 얼빠진 물음을 던지자,
마녀의 입가에 그려진 미소가 더욱 진해진다.
“문제 하나 내 볼까요, 우리 신입?”
“…문제, 말입니까?”
마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가마솥 안의 진홍빛 구체를 가리켰다.
“지금 이 포션에서, 빠진 재료가 뭘까요?”
포션에서 누락된 재료를 묻는 마녀의 문제에, 유민은 의문을 표했다.
일개 F급 헌터가 힐링 포션의 재료를 파악하고 있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네…? 저는 힐링 포션 재료를 모르”
그렇기에 당연히 모른다는 대답을 하려던 유민은,
문득,
머릿속에 번개 한 줄기가 관통하고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그녀가 만들고 있는 것은, 평범한 힐링 포션이 아니다.
오직 리퀴드 위치 본인만 만들 수 있는 오리진 힐링 포션.
그것이 가마솥 안의 구체에게 붙여질 명칭이었다.
유민은 그것을 자각함과 동시에,
그녀가 알려 주었던 오리진 힐링 포션의 비밀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헌터, 밀크.
마녀님의 헌터밀크가 빠졌습니다.”
“그래요. 정답이에요.”
유민의 대답에 싱긋 웃어 보인 그녀는,
구체가 들어있는 유리 가마솥 주위를 빙 돌아 유민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발을 내딛을 때마다, 거대한 유육이 묵직하게 출렁이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헌터유에 젖은 하얀 천이 착 달라붙어 짙은 분홍색이 투과되어 보이는 유륜과 유두가, 젖가슴의 움직임에 위아래로 흔들리며 유민의 시선을 잡아 끈다.
“오리진 힐링 포션에는, 제 헌터밀크가 들어간다고 했죠.
보통은 미리 짜 놨다가 지금 같은 마지막 단계에 투입해요.”
“그런가요.”
유민의 곁에 서서 그렇게 설명을 마친 시현은,
마치 무언가를 찾는 듯이 고개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무척이나 애석하다는 투로 말했다.
“으으음… 근데 어쩌죠?
깜빡하고 미리 짜 놓지를 않았네요…?”
“…네?”
액체의 마녀는, 유민에게 슬쩍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마녀의 커다란 유육이 그의 팔에 닿을 듯 말 듯 했다.
“헌터밀크가 없으면,
오리진 포션을 완성시킬 수가 없는데… 그쵸?”
“어, 음. 그렇죠.”
다시 한 발짝, 거리가 좁혀진다.
거대한 젖가슴의 옆 부분이 건장한 남성의 팔에 살짝 짓눌려 뭉개진다.
그 부드럽고도 탄력 있는 감촉에 유민이 움찔하거나 말거나,
시영은 느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 태연한 모습과 달리, 그녀의 귀는 상당히 붉어져 있었다.
“사실, 나 혼자 이걸 짜내는 게 좀 힘들거든요.
왜일 거 같아요?”
“…크기, 때문인가요?”
“잘 알고 있네요?
열심히 내 가슴만 쳐다봐서 그런가…?”
“그건…”
또 한 발짝.
그녀의 웨이브진 검은 머리가 유민의 어깨를 간지럽힌다.
유민의 팔이, 마녀의 거대한 젖가슴에 거의 파묻히다시피 짓눌린다.
그 자극에, 거의 한계에 달해 있던 마녀의 젖샘이 헌터밀크를 찔끔 내보낸다.
탐스럽게 발기되어 있는 통통한 유두에서 퓻, 하고 희끄무레한 액체 몇 방울이 튀어나가 유리 가마솥의 벽면에 점점이 묻었다.
“으음… 아무래도 젖샘이 슬슬 꽉 찬 거 같은데요?
우리 밀크마스터 의견은 어때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거 큰일이네요.”
그런 말과 다르게 느긋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시영은 젖가슴을 유민의 팔에 꾹꾹 눌러 댔다.
그럴 때마다 퓻, 퓨븃. 하고 마녀의 헌터밀크가 옷자락을 뚫고 조금씩 쏘아져 나감에,
유민이 침을 꿀꺽 삼켰다.
시영은 그런 유민의 뜨거운 시선을 무시하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오리진 포션을 만들어야 되는데, 밀크를 미리 짜놓질 않았고…”
“지금 헌터밀크를 짜내자니 혼자서는 번거롭고…”
“그 와중에 젖샘에는 밀크가 가득해서 그냥 놔두면 아플 것 같고…”
“무지 곤란하네요. 으으음. 큰일 났네요.”
한껏 발기된 유두에서 연신 헌터밀크를 퓻퓻 뿜어내며,
마녀는 그렇게 유민에게 다 들리도록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옆으로 꺾어 유민을 올려다보았다.
요염한 미소를 머금은 입술 사이로,
나긋한 목소리가 주륵 흘러나와 유민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유민.”
“…네?”
“좋은 방법이 떠올랐는데,
해 볼 생각 없어요?”
언젠가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은 느낌에,
유민은 며칠 전에 그녀에게서 들었던 밀크 길드 제안을 떠올렸다.
하지만,
마녀의 신비로운 자색 눈에는,
그 때의 유민이 볼 수 없었던 열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이번엔, 정말로 좋은 거…
해 보지 않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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