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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화 〉 액체의 마녀와 포션 제조 (1) (95/116)

〈 95화 〉 액체의 마녀와 포션 제조 (1)

* * *

주말을 하루 앞둔 금요일.

다희와 서울, 유민은 다시금 블랙그레이 실키를 찾아 혼합 필드 던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래서, 그거는 좀 확정이 났냐?

그 뭐시냐, 안내원 영입한다는 거.”

앞서 걸으며 늑대 귀를 쫑긋거리고 있던 다희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유민에게 신규 회원에 대한 근황을 물었다.

거대한 묵빛 타워 실드를 등에 지고 있던 서울이, 그 물음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의 우윳빛 단발머리가 부드럽게 찰랑인다.

“새로 들어온다는 사람 얘기 나온 게 그저께인데요, 언니?”

“그른가? 난 유민이 만난 날에 바로 들어와가지고 감이 안 잡히는데.”

다희가 뒤통수를 긁적이면서 그렇게 말하자,

서울이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얼굴에 비쳐 보이며 한 소리를 했다.

“아니… 그건 언니가 급발진한 거잖아요.

누가 처음 만난 남자한테 하루 만에 그렇게 들이대요?”

허나 다희 역시 지지 않고 받아쳤다.

“아 뭘 급발진이야, 임마. 기회가 있을 때 잡은 거지.

쟤 같은 수컷이 이 세상에 또 있을 거 같아?”

“….”

그 말에, 서울의 시선이 스윽 유민을 향한다.

덩달아 다희 또한 유민에게로 눈을 돌렸다.

근황에 대해 답하려다가 누나들끼리 떠들고 있길래 그냥 입을 다물고 있던 유민은,

갑작스러운 어그로 포커스에 살짝 당황한 눈치로 두 헌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민을 빤히 쳐다보던 다희와 서울은,

거의 같은 타이밍에 고개를 저어 보였다.

백이면 백 흑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여헌터의 거유를,

그토록 맑은 눈으로 쳐다보며 그저 탐구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남자.

리퀴드 위치조차 감동시킬 정도로 순수한 탐구욕을 지니고 헌터밀크 외길을 걷는 남자.

남자의 본능조차 무시하는 광기로 헌터유를 탐하는 미친 탐구자.

거의 상식을 부정하는 수준의 타이틀이었다.

유민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녀들 또한 이런 사람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냐며 손을 내저었을 것이다.

“뭐, 쟤 말곤 없겠죠….”

“그렇지?

야, 유민.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 안내원?”

서울이 수긍하는 기색을 보이자, 다희가 유민을 불러 화제를 복귀시켰다.

그에 유민이 쓴웃음을 지으며 안내원­ 시현의 근황을 털어놓았다.

“솔루션은 확정인데, 파티에는 아마 안 들어올 것 같아.”

“그거야 뭐, 협회에서 일하니까….

잠깐만. 확정? 확정 났다고?”

“확정?!”

신규 회원의 가능성이 언급된 지 이틀 만에 그새 확정까지 지었다는 유민의 말에,

다희와 서울이 경악성을 내질렀다.

“아니, 야. 이틀 사이에 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거냐?”

“혹시 그냥 처음부터 확정이었던 거 아니야…?”

“그…. 어제까지는 확정 아니었는데. 문제가 해결돼가지고.”

그 대답에 다희가 헛웃음을 지으며 집업 주머니에 양 손을 집어넣고,

서울이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수완이 좋은 것에 기뻐해야 하는 건지,

유민의 곁에 여자가 늘어나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건지.

“나보고 진도 빠르다고 뭐라 할 게 못 되는 거 같은데….”

“으응…. 그럼 이제 3명이네? 2명만 더 있으면 밀크 길드 만드는 거야?”

“어….”

서울의 그런 물음에,

유민은 살짝 망설이는 듯한 기색을 취하며 옆머리를 긁적였다.

명백히 무언가가 더 있는 듯한 반응이었기에 두 헌터의 불안감이 가중되었다.

그리고 이내 유민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그녀들은 본인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던전 공략에서도 별다른 이벤트는 발생하지 않았다.

불릿 버드의 낙하 공격이 서울의 방패에 도탄되어 나무를 박살내는 바람에, 멀리 떨어져 있던 유민이 쓰러지는 나무에 깔릴 뻔한 해프닝을 제외하면 말이다.

바위 주위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꽃들은 언제나 분홍색이었고,

빅­오골계라는 오명을 얻었던 블랙그레이 실키는 도통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다희로부터 게으른 닭대가리라는 별명을 추가로 획득하게 되었다.

어제와 비슷한 시간,

다시 말해 이른 오후에 던전 공략을 끝마친 유민은 다시금 유선 마사지를 진행했다.

첫 날에 7분을 기록했던 마사지 시간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점차 그 한계가 늘어났다.

월요일 13분.

화요일은 마녀와의 대담으로 건너뛰었고,

수요일 16분.

목요일 20분.

그리고 평일 마지막인 오늘,

첫 날의 3배 이상인 24분을 달성했다.

이로서 총 80분.

요구 조건인 10시간 중에서 1시간 20분을 적립하게 되었다.

6일을 소비하여 10분의 1 가량을 진행했으니 단순 계산으로 60일이지만,

그 6일 안에 7분부터 24분까지 장족의 발전을 거두었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빠른 시일 내에 조건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회원들의 욕구 해소 작업까지 마친 유민은 그런 결론을 내리며,

최근 자주 들렀던 연금술 공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던전 공략 후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뒤에 휴대폰을 확인했을 때,

일정이 끝나는 대로 공방에 방문해 달라는 시영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내 마녀의 공방에 도착한 유민은 저절로 스르르 열리는 유리문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허나,

으레 유민을 맞이하던 그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

그에 의문을 표하면서 카운터 쪽으로 다가간 유민은,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는 카운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공방으로 오라더니 정작 초대한 당사자가 보이지 않는 그 상황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유민은 이내 마녀에게 연락을 취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그 때,

카운터 뒤에 굳게 닫혀 있던 문이 덜컥 열렸다.

“왔어요, 우리 신입?”

그리고, 유민이 찾고 있던 이가 열린 문틈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웨이브진 검은 머리가 어깨 아래로 흘러내리고,

머리 위에는 나비 장식이 달린 머리띠가 씌워져 있다.

공포에 떨며 표정을 굳히던 어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신비로운 자색 눈동자에는 여유가 넘치고 있었다.

팔에 대충 걸치듯이 입고 있는 어두운 색의 카디건과,

거대한 유육의 절반을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는 하얀색 오프 숄더 셔츠.

탐스러운 윗가슴과 그 사이의 깊은 가슴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인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 압도적인 광경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던 유민은,

문득 자그마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젖가슴의 첨단에 매달린 옷자락이, 이전보다 더 많은 습기를 머금고 있다.

가슴의 크기와 잘 어울리는 큼직한 유륜과 통통한 유두의 실루엣이 거의 그대로 비쳐 보였다.

달콤한 헌터밀크의 향기 또한 한층 진해진 상태로 유민의 비강을 건드려 댔다.

헌터유에 누구보다 진심이던 유민은,

시영의 상태를 단번에 파악해 낼 수 있었다.

마녀의 커다란 가슴 속 젖샘에는,

헌터밀크가 가득 들어차 있던 것이다.

그에 유민은 무심코 눈빛을 깊게 가라앉히고, 탐구자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유민의 모습에, 마녀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유민의 뜨거운 시선이 자신의 가슴을 향하고 있다는 것과,

자신이 지금 헌터밀크를 줄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 것까지 전부 꿰뚫고 있었지만,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고 그저 카운터 쪽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일단 거기 앉을래요?”

“아, 네."

미리 카운터 앞에 놓여 있던 스툴에 유민이 자리를 잡자,

마녀는 그의 건너편에 서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는, 유민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여 보였다.

“우선, 이 말부터 해야겠죠.

고마워요. 유민. 정말로 감사해요.”

“…!”

“유민이 아니었으면, 동생과 영영 대화 한 마디 못 하고 평행선을 달렸겠죠.

유민 덕분에 가족을 되찾을 수 있었어요. 고마워요.”

“아닙니다. 저는 그냥 옆에 있어 드린 것밖에…”

“유민.”

쑥스러움에 입을 열어 그렇게 둘러대는 유민의 말을 시영이 끊어낸다.

숙였던 허리를 펴며 고개를 들어 올린 그녀는, 신비로운 자색 눈빛에 진중함을 담아내고 있었다.

“유민이 옆에 있어 줘서, 내가 거기까지 갈 수 있었어요.

그렇게 손을 잡아 줘서, 시현이에게 사과를 할 수 있었어요.”

“….”

“우리 새싹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들이에요.

그러니까 겸손해하지 마세요. 신입은 그럴 자격이 있어요.”

“…알겠습니다.”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는 유민의 모습에, 마녀는 만족스레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는 카운터 뒤의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뭐어… 우리 신입이 돌아가고 난 뒤에는, 사실 별 거 없었어요.

그냥 지금껏 쌓였던 이야기 좀 하느라, 밤새 얘기하고 수다 떤 게 전부예요.”

“…피곤하지 않으세요?”

“이 정도로 뭘요. 나도 시현이도 멀쩡하니까 걱정 마요.

가까운 시일 내에 아마 이사도 할 것 같네요. 같이 살 수 있게.”

“예전처럼…. 말입니까.”

“그래요. 예전처럼.”

그렇게 답하는 시영의 눈빛은, 행복과 기쁨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아직 초심을 완전히 되찾은 건 아니지만,

뭐, 우리 신입이 도와준다고 했으니까 걱정은 없네요.”

마녀가 짙은 미소를 그리며 농담조로 그런 말을 던졌지만,

유민은 그것을 결코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탐구자의 옛 순수함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동행을 약속한 새싹 탐구자의 맹세는,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는 곧바로 진중한 분위기를 두르며, 고개를 엄숙히 끄덕여 보였다.

“네.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읏.”

굳은 의지가 담긴 눈빛으로 자신을 똑바로 마주해 오는 그 모습에,

여유로이 웃던 마녀의 얼굴이 슬쩍 발갛게 달아올랐다.

자신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던 손아귀의 온기가 다시금 떠오름에,

느긋하게 박동하던 자신의 가슴이 열렬히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흠, 으흠…!”

마녀는 유민의 시선을 슬쩍 피하며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몇 번 헛기침을 하여 가슴 속의 열기를 털어내고는, 태연한 척 입을 열었다.

“무, 뭐, 그으렇겠죠…?

으음, 아, 아무튼 간에…. 신입을 오늘 부른 이유는 따로 있어요.”

“그렇습니까?”

“그래요. 저번에 약속했던 거 있잖아요?”

“저번에….”

잠시 기억을 되짚어 보던 유민은, 깨달았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포션인가요?”

그 물음에,

시영 또한 마주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요. 오리진 힐링 포션.

약속한 대로 그걸 주려고 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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