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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화 〉 엇갈렸던 자매와 새싹 탐구자 (3) (92/116)

〈 92화 〉 엇갈렸던 자매와 새싹 탐구자 (3)

* * *

“언니 분께서 예전의 그 마음을 되찾을 수 있도록 제가 도와드린다면,

길드에 소속될 의향이 있으십니까?”

“…!”

그 물음에, 시현의 눈빛이 흔들린다.

언니에게 예전의 마음을, 그 솔직함을 되찾아 주겠다니.

자신이야 당연히 언니와 예전처럼 지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제 3자인 유민이 해낼 수 있다는 말인가?

시현은 그러한 의문을 담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떤 방법으로요?”

“우선, 언니 분을 시현 씨와 대면시키려 합니다.

두 분의 관계 회복이 우선이니까요.”

유민의 말에, 시현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자신에게 말 한마디 제대로 못 건네는 사람을 무슨 수로 자신의 앞에 끌고 올 것이며,

그렇게 대면을 한다고 해서 관계가 개선되리라는 보장은 또 어디에 있는가.

심지어 상대는 A급 헌터이자 리퀴드 위치.

강제로 불러낸다고 해서 순순히 따라 줄 인물이 절대 아니었다.

“상대가 상대인데,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여러 의미가 담긴 그 물음에, 유민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다시금 진중한 분위기를 두르며 입을 열었다.

“시현 씨를 만나기 전에,

언니 분이 제게 해 주었던 조언이 있습니다.”

“…?”

“진실된, 순수한 감정으로, 힘껏 부딪혀 달라고.”

언젠가 마녀의 입에서 나왔던 그 말을 내뱉으며,

유민은 올곧은 눈으로 시현을 마주보았다.

예전의 언니와 닮아 있는 맑은 눈동자. 가슴을 괜히 두근거리게 하는 그 눈빛에,

시현은 귀를 살짝 붉히면서도 애써 시선을 피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요?”

“그 조언 그대로,

언니 분에게 부딪혀 보려고 합니다.”

탐구자의 굳은 의지로 이루어진 불꽃을 회색 눈 속에 담은 채,

유민은 시현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언니 분과 비슷한 길을 걷는 사람으로서,

진심을 다해 설득해 볼 생각입니다.”

욕실을 빌려 간단히 씻은 뒤 시현의 집에서 빠져나온 유민은,

곧바로 언니 쪽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연락을 줄곧 기다리고 있었는지, 곧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

[…어떻게 됐어요?]

수신 버튼을 누르고 스마트폰을 귀에 대자마자, 상대가 그렇게 다그쳐 묻는다.

그녀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여기까지 긴장감이 전해지는 듯한 그 물음에,

유민은 속으로 쓴웃음을 머금으며 답했다.

“지금, 공방으로 가도 될까요?

밖에서 말씀드리기엔 조금 그래서.”

[아, 응. 그래요. 열려있으니까 얼른 와요.]

짧게 통화를 마친 유민은,

마녀의 연금술 공방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방금 전 시현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좋아요.

언니를 오늘 여기로 데려와서 얼굴 맞대고 솔직하게 대화할 수 있게 해 주면,

당신의 제안, 모두 받아들일게요. 솔루션도 길드 영입도.’

‘그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언니 마음을 하루아침에 그 정도로 바꿔 놓을 수 있으면, 당연히 믿어 줘야죠.’

동생을 만나기 두려워하여, 유민을 대신 그녀에게 보내어 자신의 뜻을 전하려 했던 언니.

허나 유민은 본래의 역할만을 수행하기보다는,

아예 자매의 관계를 개선시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창설될 밀크 길드의 미래를 고려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언가에 인생을 걸고 있는 탐구자로서, 동료의 방황을 좌시할 수 없는 마음 또한 있었다.

자신을 위해, 그리고 자신과 관계되어 있는 이들을 위해,

반드시 마녀를 설득시켜 보리라.

유민은 그렇게 굳은 다짐을 마치고,

어느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춰 세웠다.

실내의 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불투명한 유리문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마녀와 결판을 지을 장소, 연금술 공방의 입구였다.

그 유리문에 가까이 다가가자, 여느 때처럼 문이 스르르 열려 손님을 맞이했다.

편의점을 닮은 공방의 실내로 들어서는 즉시, 유민은 카운터 쪽으로 발을 옮겼다.

이내 카운터 뒤쪽에 앉아 있는 마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녀는 초조한 듯이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카운터를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공방 안에 들어오자마자 손님의 존재를 눈치 챘을 테지만, 지금의 마녀에게는 그럴 만한 여유도 없어 보이는 듯 했다.

마녀는 그제야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유민이 온 것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켜, 카운터에 손을 짚고 그에게 상반신을 들이밀었다.

“우리 신입! 어떻게 됐어요?”

그 격렬한 움직임에, 마녀의 흉부에 달려 있던 거대한 봉우리 한 쌍이 위 아래로 묵직하게 흔들리며 그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평소의 오프숄더 셔츠가 아니라 목까지 올라오는 폴라 크롭티로 감싸여 있는 탓에 윗가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았지만,

옷자락이 상반신의 굴곡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기에 오히려 그 압도적인 실루엣이 한껏 강조되어 보이는 상태였다.

뭇 남성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만한 그 모습에 유민 또한 잠시 현혹 당했지만,

이내 자신이 이 곳에 온 목적을 상기하며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일단 진정하세요, 마녀님.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그래요.

후우, 이렇게 긴장한 건 오랜만이네요.”

유민의 말에, 그제야 감정을 가라앉힌 마녀가 약간 지친 얼굴로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러더니 이내 허공에 손짓을 하여 예의 등받이 없는 의자­ 스툴을 유민에게 가져다주었다.

유민이 거기에 앉아 시영을 마주 보자,

그녀는 유민을 빤히 바라보며 어서 얘기해 달라는 듯이 자색 눈빛을 반짝였다.

그에, 유민은 돌려 말할 것 없이 본론을 전달해 주었다.

“동생 분이, 솔루션 가입과 길드 영입에 대해 조건을 하나 걸었습니다.”

“조건이요? 아예 거부한 게 아니라는 거죠?”

“맞습니다.”

유민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시영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혹여나 자신의 얘기가 나오자마자 문전박대당한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유민이 전해 준 이야기는 그것보다 훨씬 양호했던 것이다.

“다행이야…! 엄청 다행이네요! 역시 신입한테 맡기길 잘했어요!

그래서 그 조건은 뭔가요? 제대로 된 지원?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어요.”

환한 미소로 그렇게 말을 다다다 내뱉어 오는 시영.

평소의 느긋함은 온데간데없이 흥분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유민은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이렇게 동생과의 재결합을 진심으로 기뻐하는데, 정작 다가가는 것은 두려워하고 있다니.

그러한 씁쓸함과 함께, 유민은 조심스레 시현의 요구를 전달했다.

“오늘, 언니 분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합니다.”

그 말에,

시영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 버렸다.

기쁨과 흥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당혹과 공포가 그 자리를 채워나갔다.

“…뭐, 라고요?”

잘못 들은 것이라 말해 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유민은 그녀에게 사실만을 전달하고 있었다.

“언니 분을 데려와서, 얼굴 맞대고 솔직하게 대화할 수 있게 해 주면…

솔루션이든 밀크 길드든 모두 받아들이겠다고 했습니다.”

“…”

시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깍지 낀 채 카운터에 올려 두었던 두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애써 묻어 두고 있었던 공포가, 두려움이 다시금 고개를 내밀었다.

자신 역시 동생을 만나고 싶었다.

얼굴을 맞대고, 예전처럼 얼싸안고 방방 뛰어 보고도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옛날의 그녀가 아니었다.

솔직한 감정을 제대로 드러내지도 못 하는 겁쟁이였다.

더 이상,

자신에게는 탐구자의 순수함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 아…”

“마녀님?”

“그건… 안 돼요. 불가능해요.”

고개를 떨구며 그렇게 중얼거리듯 말하는 시영.

유민은 그런 그녀를 담담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죠?”

“말했, 말했잖아요.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히고.”

“동생 분과 대화하는 게 무서워서 그렇습니까?

동생 분이 좋아하던, 예전의 본인이 아니라서?”

“…그, 래요.

난… 더 이상 옛날의 내가 아니에요.

시현이를 만나도, 분명히 도망치게 될 거예요.”

죄인이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듯이,

시영은 웨이브진 검은 머리를 아래로 늘어뜨린 채, 그렇게 괴로운 목소리를 토해냈다.

슬퍼하고, 두려워하며, 후회하는 마녀의 모습.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유민은, 이내 작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두 손을 뻗어 카운터를 가로질러,

하얗게 질려 있던 시영의 손을 천천히,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밀크 테라피를 응용하여,

미세한 마력을 그녀의 손에 침투시켜 혈색을 돌게 만든다.

“…!”

그 따스함에 흠칫하며 고개를 들어 유민을 바라본 시영은,

그늘져 있던 얼굴에 한순간 멍한 표정이 덧씌워졌다.

굳건한 의지로 맑게 빛나는 눈동자.

마음에 안정감을 보태어 주는 잔잔한 눈빛.

탐구자의 불꽃을 품은 눈으로,

유민은 시영의 자색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하고 있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새싹 탐구자의 진중한 목소리가,

탐구자였던 이의 마음에 찬찬히 스며들어 온다.

“두려울 때, 도망치고 싶을 때,

곁에서 마녀님을 지탱해드리겠습니다.”

그녀에게 힘이 되고자,

자신의 담대한 의지를 가득 담아 또박또박 말해 오는 유민.

그의 따스함이 맞잡은 손을 통해 마녀에게 전달된다.

“예전의 마음을 되찾을 수 있도록,

제가 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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