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 엇갈렸던 자매와 새싹 탐구자 (2)
* * *
유민의 그러한 물음에,
시현은 유민을 빤히 바라보았다.
과거의 언니를 꼭 빼닮은 그 눈빛.
결코 꺾이지 않는 의지로 감싸여 있는 그 맑은 눈동자가 시현을 직시한다.
그 모습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유민에 대한 신뢰감이 퐁퐁 솟아나고 있었지만,
그녀는 애써 자신의 마음을 무시하며 냉정한 목소리를 뱉어냈다.
우선, 이야기를 듣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으리라.
“…얘기, 해 봐요.”
“네. 우선 언니 분과 처음 만났던 날부터”
시현의 허락이 떨어지자,
유민은 그녀의 언니와 있었던 일을 찬찬히 풀어놓기 시작했다.
서울의 솔루션에 필요한 재료를 사기 위해 공방에 찾아갔다가 처음으로 마녀를 만난 뒤,
신입이 마음에 든다면서 멋대로 블랙 카드와 함께 본인의 신상을 밝히며 약속을 잡게 된 일.
약속된 당일에 자신의 특수 스킬 밀크 솔루션을 들켜, 그와 관련하여 밀크 길드 창설 제의를 받게 되었으며,
회원 후보를 물색하던 도중 시현을 언급하자, 시영이 상당히 격한 반응을 보인 것과,
그녀에게서 시현을 솔루션 회원으로 만들고 밀크 길드에 영입시킬 것을 요청받은 일.
그리고, 시영에게 전해들은 동생과의 엇갈림까지.
유민은 그 모든 것을 빠짐없이 시현에게 전해 주었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밀크 솔루션에 대한 이야기가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밀크마스터는 그것을 숨기려 들지 않았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밝혀야 이야기의 진실성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고,
또한 유민에겐 반드시 시현을 솔루션 회원으로 영입시키겠다는 각오가 서려 있었기 때문이다.
“….”
유민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던 시현은,
갑자기 많은 정보를 받아들여 혼란스러운 듯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허나 안내원의 침착함으로 금방 머릿속의 혼돈을 정리해 낸 그녀는,
다시 유민에게로 시선을 향하며 말했다.
“일단, 당신한테 물어볼게요.
그 솔루션이라는 스킬, 진짜로 존재하는 거예요?”
온갖 여헌터들을 상대해 온 안내원으로서,
시현은 그들이 얼마나 헌터밀크의 등급 향상에 굶주려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등급이 오를수록 삶의 질이 높아지게 되니,
어찌 보면 헌터 등급보다 중요한 것이 헌터유의 품질 등급이었다.
헌데 그 헌터밀크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등급을 올려줄 수 있는 스킬이라니.
그 희귀성과 가치를 따지자면 적어도 A급 이상으로 책정될 것이 분명했다.
그런 전무후무한 스킬이 본인에게 존재한다고 주장한다면,
…물론 유민의 행실을 되짚어보았을 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지만, 어찌 되었든 꽤나 신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생각을 담아 유민에게 질문을 던지자,
눈앞의 사내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 그렇습니다. 직접 보여드릴 수도 있어요.”
“보여주다뇨?”
그 의아함이 섞인 물음에,
유민은 쓴웃음을 머금으며 답해 주었다.
“솔루션 회원 등록 조건은….
같은 사람의 헌터유를 3번 마시는 겁니다.”
“…!”
헌터유 3번 복용.
그 말에, 시현은 유민과의 만남에서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유민과 3번 만나게 될 동안, 그 때마다 유민에게 자신의 헌터밀크를 헌납하지 않았는가.
“그럼, 지금 나도 회원으로 등록이 돼 있다는 건가요?”
“네. 제가 등록을 거부할 수도 있었지만…
저는 반드시 시현 씨를 영입하고자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렇게 선언하며 자신에게 올곧은 눈빛을 쏘아 보내는 유민의 모습에,
시현은 귀를 붉히며 그의 시선을 슬쩍 피했다.
당사자의 허락 없이 멋대로 회원에 등록시킨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지만,
저토록 강렬한 의지를 품은 채로 자신을 원하고 있는 유민을 보고 있자면, 그러한 잘못에 대한 분노나 짜증보다는 괜한 설렘과 부끄러움이 먼저 시현의 머릿속에 가득 차게 되었다.
시현은 살짝 고개를 좌우로 털며 그런 풋풋한 감정을 날려버리려 노력했다.
그리고는 입을 열어 원래 화제로 복귀했다.
“뭐…. 그건 두고 봐야 할 일이고요.
아무튼, 뭘 어떻게 보여주겠다는 거예요?”
“아, 네. 잠시만요….”
그녀의 물음에, 유민은 재빨리 상태창을 불러 시현의 회원 정보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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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시현 (3급)
솔루션 버프 부여 중 ()
헌터밀크 생산량 17% 증가
헌터밀크 저장량 17% 증가
유방 감도 30%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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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미션을 해결하고 본래의 혜택이 정상적으로 제공되었기에,
시현에게는 솔루션 버프 역시 제대로 부여되어 있었다.
유민은 사람의 눈을 간단화한 표식의 빗금을 걷어내어, 버프를 가시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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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시현 (3급)
솔루션 버프 부여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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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의사가 상태창에 적용된 것을 확인한 유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현에게 말했다.
“상태창을 한 번 확인해 주시겠어요?
솔루션 회원들한테 부여되는 버프 스킬이 있을 겁니다.”
“상태창…?”
유민의 말에 시현은 고개를 살짝 갸웃하면서도 본인의 상태창을 불러내 보았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자신의 스킬들을 주욱 훑어 내리던 시현은, 이내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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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 솔루션 : 회원 전용]
○ 고유 스킬
(밀크마스터 ‘김유민’에게서 공유됨)
▶ 헌터밀크의 품질 향상을 위한 솔루션.
▶ 밀크마스터에게서 솔루션을 제공받을 수 있다.
▷ 현재 회원 등급 : 3
▽ 버프 부여 중
헌터밀크 생산량 17% 증가
헌터밀크 저장량 17% 증가
유방 감도 30%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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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의 말대로, ‘회원 전용’ 태그가 붙은 밀크 솔루션 스킬이 추가되어 있었다.
스킬의 설명 또한 그가 앞서 말해 주었던 그대로였다.
정말로, 헌터밀크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스킬이 존재했던 것인가.
시현은 그에 크게 놀라면서도, 한 편으로는 납득을 할 수 있었다.
여자의 젖을 주무르고 빨아대면서도,
남자로서 응당 가지고 있는 검은 욕망을 단 한 조각도 내비친 적이 없었던 그였다.
그런 유민이라면,
그 무엇보다 헌터밀크를 중시하는 밀크마스터라면,
이러한 스킬을 소유할 만한 자격이 충분했다.
…누구보다 포션을 사랑하던 자신의 언니처럼, 말이다.
유민에게서 자연스레 언니를 연상시킨 시현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더 이상 자신을 마주볼 수 없지만,
같은 길드에 소속되는 방식으로라도 자신과 함께 하고 싶어 한다니.
“…그래요. 솔루션 스킬은 진짜였네요.
버프까지 부여된 걸 봤는데, 못 믿으면 그게 이상한 거죠.”
그렇게 말하며,
시현은 고개를 선선히 끄덕여 보였다.
“좋아요.
저도 솔루션을 받을게요.”
“정말입니까?”
별 어려움 없이 설득된 듯한 시현의 모습에,
유민의 얼굴에 순간 화색이 돌았다.
허나,
그녀의 표정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언니가 만든다는 그 길드에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다면요.”
“…!”
자신과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은, 당연히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우리는 가족이었고, 자신과 그녀는 언니와 동생이었으니까.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빠져 있잖아, 언니.
“저랑 마주치지도 못 하면서,
그런 식으로 소속만 같게 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어요?”
서로의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지도 못 하고 그저 겉돌기만 할 뿐인 관계라면,
그것을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자신의 마음을 곧장 부딪쳐 올 수도 없는 겁쟁이.
사무적인 관계에 파묻혀 예전의 모습을 잃어버린 멍청이.
솔직한 사과 한 마디도 못 하고, 따스한 포옹도 할 수 없는 그런 사람과는,
언니와 동생으로서 만나고 싶지 않았다.
시현의 입술이 삐뚜름하게 비틀렸다.
“언니한테 전해요.”
“나한테 얼굴 한 번 안 비추고,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 끌어들여서 자기 길드에 들어오니 마니 이딴 소리나 지껄일 거면,”
“그냥 앞으로도 남으로 지내는 게 낫겠다고.”
그녀의 냉소적인 목소리에,
유민은 숨을 작게 집어삼켰다.
시현의 말에 충격 받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어찌 보면 충격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으리라,
허나 그것은 부정적이라기 보단 긍정적인 쪽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동생의 대답까지 듣고 나서야,
마침내 ‘그것’의 실마리가 풀렸기 때문이다.
자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 속에서 답답함을 느끼던 이유를,
드디어 알아낸 것이다.
시영과 시현이 엇갈리게 되고, 지금까지도 관계가 회복되지 않은 것은,
시영의 망설임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다.
예전의 탐구자로서의 언니처럼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냈다면,
그 과정에서 마찰이 있을망정, 적어도 지금처럼 방치하는 것보단 훨씬 사이가 좋아졌을 것이다.
거기에서,
유민은 답답함의 근원을 찾아낼 수 있었다.
리퀴드 위치가, 검은 마녀가, 최시영이,
그저 포기하려고만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그 때의 열정을 되찾을 수 없다며 자책하기만 하고,
탐구자로서의 그녀를 완전히 내려놓으려고만 하고 있는 그 모습이,
자신의 안에 존재하는 약간의 가능성마저 공포에 사로잡힌 채 부정하려 드는 그 행동이,
어엿한 탐구자로 성장하고 있는 유민으로서, 참을 수 없이 불편했던 것이다.
탐구자로서의 동료였던 그녀가,
그 자리에 멈춘 채 방황하고 있는 것이 답답하고 안쓰러웠던 것이다.
문득 시영이 자신에게 했던 조언이 떠올랐다.
진실하고 순수한 감정을 드러내서,
힘껏 부딪혀 달라고 했었나.
아무래도 그녀가 말한 ‘감정의 충돌’을 받아낼 대상은,
시현 말고도 한 명이 더 존재했던 모양이다.
그에 유민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현 씨.”
“왜요.”
“옛날의 언니를, 되찾고 싶으십니까?”
“…!!”
그 물음에, 시현은 커다란 감정의 동요를 얼굴에 그대로 나타냈다.
애써 표정을 가라앉히려 노력하면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래요.
아까 들어서 알겠지만, 언니랑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니까요.”
“….”
“지금처럼 아무런 말도 못 하면서 거리만 좁혀 봤자, 우리 둘 다 힘들어할 게 뻔해요.”
“그렇군요.”
시현의 말에 긍정을 표한 유민은, 이내 진중한 눈으로 시현을 마주했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시현 씨.”
그리고는,
시현이 결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건넸다.
“언니 분께서 예전의 그 마음을 되찾을 수 있도록 제가 도와드린다면,
길드에 소속될 의향이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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