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 엇갈렸던 자매와 새싹 탐구자 (1)
* * *
폭력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격렬한 절정을 맞이한 시현.
그에 잠시 암전되었던 그녀의 의식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시현은 자신이 위를 보고 정자세로 누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침대에 본인이 깔아 두었던 수건 위로 몸을 눕힌 채,
흐릿한 시야로 익숙한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는 시현.
눈을 몇 번 깜빡거리던 그녀는,
자신이 어째서 이런 상태에 놓여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잠시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분명히, 욕구를 참지 못하고 유민을 덮쳐서,
첫 경험과 첫 키스를 대가로 자신의 정신 건강을 돌려받았다.
그러고 나서도 부족함을 느낀 나머지,
유민을 끌어안고 농밀한 키스를 퍼부으며 허리를 흔들기도 하고,
젖을 쪽쪽 빨리면서 자지가 쑤셔 박히는 수유 섹스를 즐기며 질내사정을 몇 번이나 받아냈다.
마지막엔 정액이 꽉 찬 자궁을 한껏 자극당해 꼴사납게 절정해서 의식을 잃어버리기까지.
그 여러모로 경이로운 과정을 머릿속에 하나씩 떠올리던 시현은,
팔을 스윽 들어 올려 자신의 눈가에 턱 얹었다.
미친 년.
처녀 딱지 떼자마자 아주 난장판을 벌였구나.
그 와중에 피로나 스트레스는 완전히 자취를 감춰서,
몸에 활력이 넘치고 정신 또한 매우 맑아져 있다는 것이 그녀의 어이를 상실시키고 있었다. 막 볼에서 윤기 흐르고 그러는 거 아닌가 몰라.
괜히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담아,
시현은 자신의 얼굴 위에 얹어 놓았던 팔을 휘둘러 침대를 내리쳤다.
파앙.
“?!”
그 경쾌한 파열음과 함께,
시현은 누군가 놀라서 숨을 집어삼키는 소리를 포착했다.
그에 덩달아 흠칫한 그녀는,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려 그 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볼 것도 없이, 유민이었다.
시현의 옆에 앉아 있던 유민은, 자신의 바로 옆 공간을 살벌하게 가르며 침대를 내려친 그녀의 움직임에 깜짝 놀라, 살짝 커다래진 눈으로 시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의의 앞부분은 시현의 헌터밀크에 반쯤 젖어 있었고,
시현이 끌어내렸던 바지춤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시현은,
하마터면 자신의 화풀이에 유민이 휘말려들 뻔했다는 것을 깨닫고 슬그머니 팔을 회수했다.
“…거기 있었어요?”
“어…. 네. 몸은 괜찮으십니까?”
“그건 내가 할 말인데…. 뭐 어쨌든, 난 괜찮아요.
그냥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회복됐어요.”
“아, 그건 다행이네요.”
“그래요.”
그 말을 끝으로,
둘은 잠시 어색한 침묵에 휩싸였다.
“…”
“…”
시현은 자신과 그렇게 특별한 사이도 아니면서 아주 정열적으로 몸을 섞게 된 유민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아 우물쭈물 대고 있었고,
유민은 이제 시현의 상태 이상도 해제되었으니 자신의 용건을 전달하기 위해 무슨 말부터 꺼내어 대화를 진행시켜야 할 지 잠시 고민하고 있었다.
먼저 생각을 마친 쪽은, 유민이었다.
“시현 씨, 죄송합니다.”
“…네?”
그렇게 사과의 말을 전하며 고개를 숙여 오는 유민의 모습에,
시현이 흠칫 놀라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 기술에 대한 부작용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로 시현 씨한테 사용해서,
이런 일을 겪게 해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
그 말에, 시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유민의 말대로, 뒷목과 아랫배를 자극하는 그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착유 및 수유만 진행했다면 오늘 자신의 욕구가 폭주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오늘은, 말이다.
피로 회복 작업을 진행하면서, 시현은 자신에게 그런 음란한 욕구가 계속해서 쌓이고 있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 따스한 온기를 주는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러한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지 못했을 테고, 다시금 피로와 스트레스에 파묻혀 욕구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 상태를 유지한 채 정기적으로 유민의 손길에 젖가슴을 쥐어 짜이게 되었을 경우,
욕구는 계속해서 차곡차곡 쌓여 올라가 결국 한계를 맞이했을 것이 분명했다.
결국 시간의 차이일 뿐이지,
시현이 그 욕구에 이성을 잡아먹히게 되는 상황은 동일하게 발생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유민이 옆에 없는 상태에서 그런 일이 생기게 된다면, 상당히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을 터.
이성을 잃은 자신이, 유민이 아닌 다른 이에게 달려들게 되는,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처지는 장면이 펼쳐지게 될 수도 있었다.
차라리 지금처럼,
이른 시점에서 폭주 상태에 돌입하여 유민과 몸을 마음껏 섞으며 욕구를 풀어낸 뒤,
그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고 앞으로의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
시현은 머릿속으로 그런 결론을 내리며,
자신은 괜찮다고.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유민을 다독이기 위해 입을 열려 했다.
“….”
그러다가,
돌연 움직임을 멈췄다.
…다른 남자들은 상상만 해도 그렇게 소름이 돋을 정도로 거부감이 느껴지는데,
어째서 유민과는 거리낌 없이 몸을 섞고 키스를 해도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거지?
왜 유민에게는,
자신의 몸을 허락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기만 하는 것인가?
어떠한 거부감도 없이,
그저 체온의 따스함과 농밀한 자극에 행복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에,
마음 속 깊은 곳의 심연은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한 마디를 던져 주었다.
그건 니가.
“…!!”
한순간에 시현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자신이 아무리 남자에 쑥맥이라지만,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남자에게 그런 감정을 품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심연의 목소리에 대한 반발심으로,
그녀는 이를 까득 악물고 두 손으로 침대 위의 수건을 콱 쥐어 잡았다.
그 분노 어린 몸짓에 유민이 흠칫 놀라 몸을 움찔했다.
유민으로서는, 시현이 이성을 잃고 자신과 몸을 섞은 것에 대해 막대한 수치심과 불쾌함을 느끼는 것이라고밖에 판단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에 유민은 자신의 행동을 크게 후회하며,
그대로 침대에 두 손을 짚고 바닥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처박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
유민의 비장한 외침에 정신을 차린 시현은,
갑자기 죽을죄를 지은 것 마냥 자신에게 넙죽 엎드리려 하고 있는 유민의 모습을 목격했다.
크게 당황한 시현이 얼른 손을 뻗어 유민의 어깨를 잡고 일으키려 들었다.
“뭐, 뭐하는 거예요! 괜찮으니까 일어나요 빨리!”
“제가 더 조심했어야 하는데…!”
“아니, 괜찮다니까! 일단 내 얘기 좀 들어보라고요!”
잠깐의 소동이 지나가고,
상황을 정리한 시현은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뭐, 아무튼 간에…. 차라리 잘 됐어요.
그 기술 안 받았으면 내 몸이 그런 상태인 줄도 몰랐겠죠.”
“하지만….”
“한 번만 더 그치만이니 하지만이니 이딴 소리 하면 진짜 화낼 거예요.”
“….”
유민의 오해를 푸느라 잠시 고생했던 시현이 그를 째려보며 일갈하자,
유민은 곧바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시현은,
수건을 쥐어 잡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기술이 부작용만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피로도 풀리고, 오랜만에 좋은 기분이었어요.”
그 말에,
유민은 퍼뜩 고개를 들어올렸다.
밀크 테라피를 진행하는 동안, 그녀가 중얼거렸던 말들을 기억해낸 것이다.
언니… 나 많이 힘들었어.
언니랑, 동생으로. 가족으로 남아있고 싶었어.
언니에 대한 시현의 진심.
그것을 머릿속에 떠올리던 유민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언니 분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
유민의 말에, 시현은 귀를 살짝 붉히고 고개를 숙였다.
가슴 속의 언니에게 털어놓았던 것을, 입으로 똑같이 중얼거린 모양이었다.
그녀의 뒷목을 쓰다듬고 품에 안긴 사람은 유민이었으니, 당연히 그 말들 또한 전부 듣게 되었으리라.
“그래요… 어쩌다 보니 말하게 됐는데, 잊어주세요.”
다행히 무언가 중요한 정보가 포함된 이야기는 아니었으니, 큰 문제는 없을 터.
시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발언을 잊어달라고 요청했다.
허나,
그에 대한 유민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그럴 순 없습니다.”
“…뭐라고요?”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고개를 들어 유민을 바라본 시현은,
작게 숨을 집어삼켰다.
그는, 여느 때보다도 진지한 분위기를 두른 채,
굳건한 의지가 휘감긴 눈빛으로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고 있었다.
자신의 말을 잊지 않겠다니? 어째서?
언니에 관해, 무언가 눈치 챈 것이라도 있는 건가?
그러한 시현의 의문에 답하듯이,
유민이 천천히 입을 열어 진중한 목소리를 흘려냈다.
“리퀴드 위치, 최시영.”
“!”
“시현 씨의 언니 분 맞으시죠?”
이 남자가 어떻게 언니를 알고 있는 거지.
시현은 그 기술에 취해 무언가 말실수라도 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에 재빨리 기억을 뒤져보았지만,
자신은 그저 언니와 함께 하고 싶었다는 요지의 독백만 내뱉었을 뿐이고, 그 과정에서 리퀴드 위치에 대한 것을 발설한 적은 없었다.
그에 시현은 눈빛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눈앞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유민의 말을 부정할 수도 있었지만, 그의 태도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자의 그것이었다.
자신에게는 그저 형식적인 확인 절차를 던진 것이나 다름없으리라.
“…당신이 그걸 어떻게.”
“저도 최근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
“…?”
쓴웃음을 지은 유민의 그러한 말에, 시현은 의문을 표했다.
최근에 알았다니? 언니가 요즘 공식 석상에 모습을 내보인 적이 있었던가?
허나 그녀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유민은 시현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한 문장을 입 밖으로 내었다.
“얼마 전에, 언니 분께 부탁을 받았습니다. 시현 씨에 관해서요.”
“…!”
여전히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한 채,
밀크마스터는 리퀴드 위치의 동생에게 자신의 진정한 용건을 드러냈다.
“제 얘기를, 들어주시겠습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