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피곤한 안내원과 밀크 테라피 (3)
* * *
여느 때와는 다르게,
회원을 등록했음에도 당사자에게 버프가 바로 제공되지 않고,
갑자기 긴급 미션이 제공되었다.
그 비정상적인 상황에 유민은 순간 당황했으나,
곧 냉철함을 되찾고 서둘러 상태창을 열었다.
========
[밀크 솔루션]
○ 고유 스킬
밀크마스터의 본분이자 모든 것.
▶ 헌터밀크의 품질 상승을 위한 솔루션을 순차적으로 제공한다.
▶ 조건 충족 시 신규 회원을 등록할 수 있다.
▷ 현재 회원 수 : 3
▷ 유서울 (3급)
▷ 강다희 (3급)
▷ 최시현 (3급) [!]
조건 A : 동일한 생산자의 헌터밀크 3회 이상 복용
???
========
3명으로 늘어난 회원 수.
그 밑에 표기된 회원 목록에도 시현이 추가되어 있었다.
허나 그녀의 옆에는, 마치 경고를 하듯 느낌표가 그려진 표식이 붙어 있었다.
불길함이 느껴지는 그 모양을 노려보던 유민은, 이내 시현의 회원 정보를 열람했다.
========
▽ 최시현 (3급) [!]
=긴급 미션 진행 중=
‘밀크 테라피 0.5’를 처방하여 정신력 회복 (미달성)
밀크 테라피 0.5 처방법
1. 처방자의 손바닥에 적당량의 헌터밀크를 도포한다.
2. 밀크마스터의 기술을 응용하여 해당 부위를 자극한다.
[뒷목 / 하복부]
주의 :
처방 중에 헌터밀크가 소진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보충할 것.
========
밀크 테라피라는 것을 통해 시현의 정신력을 회복시키는 미션이 주어졌다.
시현에게 부탁받은 대로 평범하게 젖을 쥐어짜는 것만으론 부족할 만큼,
그녀의 상태가 꽤나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다행히도 미션의 난이도가 그리 어렵지 않은 듯 했기에,
유민은 이를 곧장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그는 시현의 유육을 쥐어짜던 손길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올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현 씨.”
“하아… 후으… 왜, 요?”
“정신력 회복용으로 새로운 기술을 배웠는데,
시현 씨한테 써도 괜찮을까요?”
“…”
그 말에, 시현은 허공에 두고 있던 시선을 유민에게로 옮겼다.
누군가를 떠오르게 만드는, 그 진중한 눈빛과 마주한 그녀.
검은 욕망도, 음습한 수작의 기색도 없이,
그저 자신의 피로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 하고자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이었다.
그래. 순수한 의지.
유민의 회색 눈동자뿐만 아니라, 한 때 자색의 그것에서도 볼 수 있었던.
“…그래요.
한 번 써 봐요.”
그런 유민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던 시현은, 이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녀는 왠지 모르게 귀가 살짝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알겠습니다.”
시현의 허락이 떨어지자,
유민은 곧장 작업에 들어갔다.
시현의 머리맡에서 베개를 빼내어 뒷목 아래에 빈 공간을 만들고,
그녀가 입은 헐렁한 와이셔츠의 똑딱이 단추를 아래까지 끌러내어 아랫배를 드러냈다.
셔츠의 길다란 아랫단에 가려져 있던 속옷까지 같이 노출되는 바람에 시현이 흠칫했지만,
유민의 얼굴에는 그 어떠한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하반신 쪽엔 관심조차 없다는 듯이 아예 시선 자체를 주지 않고 있었다.
남자라면 으레 존재할 욕망에 전혀 휘둘리지 않고 오직 작업에 집중하는 그 모습에,
그녀는 얌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묘한 눈빛으로 유민을 바라보던 시현은,
돌연 신음성을 작게 흘렸다.
“흐읏…!”
착유를 하지 않았던 그녀의 반대쪽 젖가슴을,
유민이 한 손으로 쥐어 잡아 쭈욱 밀어 올리듯 짜낸 것이다.
아직 젖을 짜내지 않아 탐스럽게 영글어 있는 유두에서 퓨뷰웃. 하고 헌터밀크가 공중으로 쏘아져 나온다.
그렇게 사출된 밀크는 이내 아래로 낙하하여,
미리 대기하고 있던 유민의 손바닥에 흩뿌려졌다.
한두 번 정도를 더 반복하자, 이내 그의 손바닥이 헌터밀크로 흥건해졌다.
유민은 그 위에 다른 쪽 손을 겹쳐 조심스레 문질러,
헌터유가 두 손바닥에 고르게 도포되도록 했다.
이내 두 손을 펼쳐, 그 표면이 헌터밀크에 촉촉해진 것을 확인한 유민.
그는 허리를 살짝 숙이고, 두 팔을 양 쪽으로 뻗었다.
한 손은 뒷목으로,
다른 손은 하복부 아랫배 쪽으로 향한 것이다.
헌터유로 젖은 유민의 양 손이 이내 두 부위의 맨살과 맞닿게 되자,
그 감촉에 시현이 어깨를 움찔 떨었다.
허나,
이내 유민이 뒷목과 아랫배를 조심스레 쓰다듬듯 어루만지기 시작하자,
살짝 경계어린 그녀의 표정이 스르륵 풀려나갔다.
“아…”
각각의 손에서 흘러나온 밀크마스터의 마력.
그리고 그 표면에 얇게 도포되어 있던 헌터밀크.
두 요소가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며,
기분을 저절로 노곤하게 만들어 주는 따스함을 뒷목과 아랫배에 전달한 것이다.
그 상냥한 열기는 이내 시현의 온몸을 타고 느긋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스트레스에 지쳐 있던 자신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듯한 느낌에, 그녀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흐물흐물해지는 의식 속에서,
시현은 자신이 폭신하고 따듯한 구름 위에 누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들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그녀의 볼을 간지럽혔다.
편하다. 기분 좋다. 따스하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가로이 휴식을 즐기는,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그런 시현의 옆에는,
웨이브진 검은 머리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그녀의 언니는 자색이 담긴 눈꼬리를 부드럽게 휘어 보였다.
예전처럼 순수한 미소와 함께,
시영은 시현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시현은 그 기분 좋은 감촉에 배시시 웃으며,
어느 새 눈가에 맺혀 있던 물방울을 주르륵 떨구었다.
자신이 알던 언니는,
더 이상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현은 기억 속의 그녀라도 붙잡아 보려는 듯이,
입을 열어 자그맣게 목소리를 흘려냈다.
“언니… 나 많이 힘들었어.”
처음에는, 그저 기뻤다.
언니의 노력이 마침내 보답을 받았기에,
셀 수도 없는 시도 끝에 결국 힐링 포션을 만들어내고야 말았기에,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주고, 지켜보았던 동생으로서 너무나도 기뻤다.
언니가 정말로 자랑스웠다.
“얼굴을 못 봐도, 얘기라도 같이 하고 싶었어.”
언제부턴가 언니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적어지기 시작했다.
언니가 항상 앉아 있었던, 연구실을 겸한 그녀의 방은 점차 비어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걱정스럽고, 또 외롭기는 했지만, 그것을 내색하기는 힘들었다.
이제야 빛을 보기 시작한 언니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꾹 참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 헌터로서 던전을 공략했다.
“언니랑 또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고, 울고, 웃고.”
하지만 언니와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기만 했다.
몸이 멀어지자, 마음도 같이 멀어진 것일까.
각고의 노력 끝에 등급이 올라도,
장시간의 전투로 한계에 도달한 젖샘의 격통을 견뎌가며 보스 몬스터를 잡아도,
헌터 업계의 공무원이나 다름없는 헌터 협회에 취직해도.
언니는 그저 잘 됐다. 좋겠네. 다행이다. 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자신의 생일에도, 부모님의 기일에도,
언니는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춘 적이 없었다.
그 시점에서 자신은 깨달았다.
내가 알던 언니는, 이제 더 이상 없다.
함께 의지하고, 웃고 떠들며,
작은 실험 하나에 일희일비하던 순수한 그녀는 사라졌다.
전화 너머에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언니가 아니었다.
그녀는 리퀴드 위치 사의 수장인 최시영이었다.
“그냥… 함께하고 싶었어. 그렇게, 예전처럼.”
언니를 잃은 것에 밤새 울었다.
슬퍼하고, 절망하고, 후회했다.
눈물과 함께 모든 감정을 침대보에 쏟아낸 뒤에야,
자신은 결심할 수 있었다.
언니가 최시영이 됐다면, 나 또한 최시현이 되자.
더 이상 동생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녀에게, 타인이 되어 주도록 하자.
그렇게 해서 언니가 편해질 수 있다면.
최시영으로서 정상에 올라설 수 있다면.
그녀의 동생이었던 사람으로서,
마지막으로, 언니를 도와주자.
“언니랑, 동생으로.
가족으로 남아있고 싶었어.”
고백하듯이,
어리광피우듯이,
응석부리듯이.
시현은 그렇게 마음 속 깊은 곳의 응어리를 꺼내놓았다.
옆에 앉아서 그것을 묵묵히 듣고 있던 언니는,
이내 부드러운 손길로 시현의 상반신을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그대로 시현을 자신의 품에 안아 주었다.
뒷목을 쓰다듬으며,
등을 토닥이며,
따스한 온기를 가득 전해 온다.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걸치고 있던 시현의 뺨은, 눈물에 가득 젖어 있었다.
이내 천천히,
주변의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폭신하고 따스한 구름도, 산들바람도 모두 흩어진다.
하지만,
자신을 껴안고 있는 언니의 손길만큼은 무척이나 생생했다.
그녀를 놓치기 싫어,
시현은 언니의 목어깨에 팔을 두르고 꼬옥 껴안았다.
허나,
깨닫기 싫어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은 그저 환상이고,
자신의 품에 있는 사람은 언니가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온몸에 포근히 전해지고 있는 따스함을,
마음을 사르르 녹이는 온기를 놓아주기 싫었기에,
시현은 작게 훌쩍이며,
한참 동안 상대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