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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화 〉 피곤한 안내원과 밀크 테라피 (1) (80/116)

〈 80화 〉 피곤한 안내원과 밀크 테라피 (1)

* * *

다음 날에 다시 모이게 된 파티원 셋은,

미리 예약해 두었던 곳의 게이트로 걸음을 옮겼다.

D급의 평원­숲 혼합 필드 던전.

이 곳은 말 그대로 평원과 숲이 뒤섞여 있는 곳이었다.

숲 가운데에 탁 트인 공간이 나온다거나,

그 성질이 완전히 섞여서 평지에 나무 등의 식물들이 애매하게 듬성듬성 자라나 숲 미만의 무언가가 되기도 하는 던전이었다.

이번에는 후자에 가까웠기에,

유민은 완전한 숲의 모습을 이루지 못한 던전의 풍경을 신기한 눈초리로 둘러보았다.

숲이라 하기엔 시야 확보가 기묘하게 잘 되고,

평원이라 하기엔 땅 위로 솟아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세 명이 모두 들어오자 게이트가 닫혔다.

그것을 확인한 서울은 등 뒤에 매고 있던 묵빛 타워실드를 바닥에 쿵 하고 세웠다.

“이제 던전 들어왔으니까 얘기 좀 하자.

유민아. 그래서 어제는 어떻게 된 거야?”

“그래. 쟤가 자꾸 언니 시즌 2 될 수도 있다고 그래서,

지금 존나 궁금하다 야.”

“시즌 2까진 아닌데...”

그 말에 쓴웃음을 지은 유민은,

어제 공방을 나서기 전에 마녀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회원들한테, 마녀님의 정체에 대한 얘기를 해 줘도 괜찮을까요?’

‘으응? 그럼 얘기 안 할 생각이었어요? 앞으로 한 배 타게 될 텐데.

밖으로 안 새어나가게만 하면 상관없어요.’

솔루션 회원들에게는 자신의 진짜 신분을 알려 주어도 좋다는 마녀의 허락.

그것을 기억하고 있던 유민은 이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말하는 건, 누나들만 알고 있어야 돼.”

“그래.”

“그건 솔루션 때부터 그랬는데, 뭐.”

그런 유민의 당부에,

두 헌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자신들이 진행하고 있는 밀크 솔루션부터가 매우 비밀스러웠기 때문이다.

허나,

이내 유민의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은,

어찌 보면 밀크 솔루션이라는 스킬보다 더더욱 충격적일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

“일단,

그 연금술사분은 리퀴드 위치야.”

“그래? 리퀴드 위치...”

“엉? 그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리퀴드 위치라는 단어를 잠시 곰씹어 보던 그녀들은,

이내 표정에 경악이 가득 들어차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그 리퀴드 위치? 힐링 포션 만드는?”

“아니, 씹, 너 지금 리퀴드 위치라고 그랬냐?”

하물며 일반인들도 그 포션제조기업의 명성을 알고 있는 마당에,

던전을 직접 공략하고 다니는 헌터들이,

그녀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파급력을 모를 리가 없었다.

부상을 빠르게 치유하는 힐링 포션.

힐러들의 스킬보다는 치유 효과가 떨어지지만,

그들은 반수 이상이 병원에서 근무하거나 개인 치료소를 운영하고 있다.

던전 공략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힐러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에,

힐러를 고용하지 못 하는 많은 헌터들은 반드시 힐링 포션을 지참했다.

그렇기에,

힐링 포션을 개발한 리퀴드 위치는 대다수의 헌터들에게 있어서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헌데,

유민과 단번에 친분을 가지게 된 그 괴짜 연금술사가,

리퀴드 위치 사의 수장인 액체의 마녀라니?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두 헌터는,

감당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한 지극히 일반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칭 아니야?”

“사칭이네.”

익히 예상하고 있던 그들의 리액션에,

유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아냐. 얘기를 들어 보니까 진짜였어.

명함도 되게 고급진 걸로 받았고.”

“에이씨,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뭐 까만색 명함이라도 받았냐?”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그렇게 말해 오는 다희의 물음에,

유민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명함 검은색이던데.”

“...어어?”

그에, 다희의 눈이 커다랗게 뜨여진다.

복슬복슬한 늑대 꼬리가 놀람을 담아 꼿꼿이 치켜세워졌다.

그녀의 옆에 있던 서울 또한 비슷한 반응이었다.

물론 서울에겐 꼬리가 없었지만.

“블랙카드를 받았다고...? 진짜로?”

“유민아, 마력 넣는 것도 봤어?”

“어? 응. 내 바로 앞에서 그러던데.”

유민의 대답에, 두 사람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얼굴에 만감이 스쳐지나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더니, 이내 해탈한 듯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래... 뭐, 괴짜들끼리 잘 맞은 걸 수도 있지.”

“허 참, 이게 왜 진짜냐?”

“...왜? 명함이 까만 게 어때서?”

영문을 모르는 유민이 그렇게 묻자,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던 다희가 되물었다.

“검정 바탕에 뒷면 등급은 금색 맞지, 그거?”

“맞아. 되게 반짝거렸어.”

“하이씨, 그럼 빼박이네.”

그렇게 투덜거리듯이 중얼대던 다희는,

이내 집업의 앞주머니에 두 손을 꽂으며 말을 이었다.

“너 신용카드도 블랙카드는 아무한테나 안 뽑아 주는 거 알지.”

“그렇지.”

“까만색 헌터 명함도 그런 거야.

헌터 중에서도 탑 클래스거나,

뭔가 개 쩌는 업적이 있거나 해서 거의 국가대표급 헌터쯤 돼야 협회에서 발급해 줘.”

“...!”

“그래서 그냥 블랙카드라고 부르는 거고.”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다희는 그렇게 말을 끝맺었다.

그에 유민은 멋쩍은 듯 옆머리를 긁적였다.

다희의 말대로라면,

자신은 이미 명확한 증거물인 그 검은 명함을 받고도, 계속해서 괜한 의심을 했던 것이었다.

그는 시영에게 한층 더 미안함을 느끼며,

어제 공방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재개했다.

파랑바위꽃에 대해 문의했으나 그녀 또한 알지 못하던 일.

오리진 리퀴드 포션의 정체와,

그 과정에서 밀크 솔루션 스킬을 공개하게 된 일.

리퀴드 위치가 계획하고 있는 밀크 길드.

그 소수정예 길드의 출범을 위해서 5명의 솔루션 회원을 모아야 한다는 것과,

빠른 시일 내에 한 명이 더 들어올 수도 있다는 소식까지.

그 모든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던 다희와 서울은,

한층 커진 듯한 스케일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내 말대로 사람 하나 느는 건 맞았네?”

“뭐 오리진 포션 만들어준다는 건 다행인데,

하루 만에 왜 이렇게 스케일이 커졌냐...?”

그녀들은 유민과 솔루션을 진행하려던 것뿐인데,

갑자기 리퀴드 위치라는 거물이 등장하더니,

그녀가 만들게 될 밀크 길드의 창립 멤버가 되게 생겼다.

물론 리퀴드 위치에다가 밀크마스터까지 보유하고 있으니,

길드의 미래는 거의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이 모든 것이 하룻밤 만에 일어나게 된 것이라 얼떨떨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창립되기도 전인 밀크 길드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으니,

이내 그녀들의 관심은 곧 영입될 예정인 뉴 페이스에게로 쏠리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 들어온다는 그 사람은 누구야?”

“아직 확정은 아닌데...

최시현 안내원님이라고, 우리 동네 헌터 협회 지부에서 근무하시는 분이야.”

유민의 대답에, 서울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협회 지부 안내원?

그 2층에, 좀 피곤해 보이던 그 사람?”

“맞아. 어쩌다 보니까 엮이게 돼가지고...”

“아니, 뭘 어떻게 하면 협회 사람이랑 엮이는데...?”

서울이 황망한 얼굴로 그렇게 묻자,

유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안내원­ 최시현과 있었던 일을 간략히 읊어 주었다.

첫 날부터 안내원의 가슴을 빨고, 그것을 계기로 정기적인 만남을 약속하게 되었다는,

황당하면서도 어이가 없어지는 그 스토리에 다희와 서울이 다시금 헛웃음을 흘렸다.

“세상에.”

“첫 날부터 어메이징했네, 유민이.”

“그래서... 어떻게 보면 제일 먼저 엮이게 된 헌터가 그 사람이야.”

“내 짐꾼 하기 전에 벌써 그런 일이... 잠깐만.”

황당하다는 듯 그렇게 중얼거리던 서울은,

이내 무언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 그 날 하루 만에,

안내원 분이랑, 나랑, 리퀴드 위치님을 다 만났던 거야?”

“...그러네?”

유민이 곰곰히 생각해보니, 서울의 말이 맞았다.

첫 날부터,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구나.

당일에도 그렇게 느끼기는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새삼스럽기 그지없었다.

유민이 그런 감상에 잠시 젖어 있는 동안,

다희는 이젠 놀랍지도 않다는 듯이 실실 웃을 뿐이었다.

“그래 뭐, 유민이니까.

아무튼 그 빅젖 안내원도 솔루션 시키겠다는 거지?”

그러더니, 약간 불안감이 섞인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혹시 그 사람도 너한테 홀린 거 아니냐?”

“언니처럼요?”

“아니, 난 홀렸다기보단...

...홀린 거 맞네. 아무튼 간에!”

본인에게 호감을 표하는 것이 아니냐는 다희의 물음에,

유민은 자신에 대한 시현의 태도를 잠시 되짚어보았다.

자신의 표정을 보고 놀라거나 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언니의 영향이 컸고, 보통은 퉁명스러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거기에는 그녀와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글쎄...

처음 만나자마자 그런 짓을 했는데, 호감이란 게 있을까?”

“...그렇긴 하네.”

다희는 유민과 안내원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첫 인상을 그런 식으로 박아 버리면 호감이 금방 생기려야 생길 수가 없었다.

그 정도면 아직 경쟁자로 취급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앞으로의 전투에 대비하기 위해 집업 주머니에서 손을 빼냈다.

“대충 얘기는 끝난 거 같은데, 슬슬 가자 이제.

그 겁나 큰 오골계 잡아먹어야지.”

“그래요. 어... 그 오골계 이름이 뭐라고 했지, 유민아?”

“블랙그레이 실키.”

“이름 참 거창하게도 짓는다야. 그냥 빅­오골계라고 해도 알아먹을 텐데.”

“그건 좀...”

실없는 잡담과 함께,

일행은 던전의 공략을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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