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액체의 마녀와 비밀 거래 (5)
* * *
틀어진 자매의 관계.
동생과의 사이를 조금이라도 회복하고 싶어 하는 언니.
고개를 숙인 시영의 그러한 진심은 유민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그런 마녀의 모습에,
유민은 조심스레 입을 열어 말을 건넸다.
“그, 지금 마녀님도 충분히 솔직하게 얘기를 해 주셨는데,
동생 분과도 지금처럼 이야기를 나누면 괜찮지 않을까요?”
유민의 물음에, 마녀는 고개를 살짝 들어올렸다.
얼핏 보이는 그녀의 입가엔 슬픔과 두려움 등이 뒤섞인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그럴 엄두가 안 나요.
우리 신입이니까 내가 이렇게 술술 털어놓는 거지,
시현이 앞에서는 불가능할 거예요.”
“...”
“당장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만 돌려 봐도, 벌써부터 숨이 턱 막히네요.
서 있으면 다리도 막 떨렸을 걸요.”
어떻게든 용기를 쥐어짜서 다가갔다가,
소중한 동생에게 다시금 거부당하게 된다면.
그 차가운 목소리가 또 한 번 자신의 심장을 찔러 버린다면.
시영은 두 번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탐구자로서의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려, 다시는 찾을 수 없게 될 지도 몰랐다.
그러한 공포에,
시현의 앞에 서는 상상만 하게 되어도 그녀는 금세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내가 왜 시현이가 일하는 협회 지부 근처에 공방을 차렸는지 알아요?
언젠가 여기서 마음을 다잡고, 달려가서 시현이한테 사과하려고 그랬던 거예요.
물론 잘 될 리가 없었지만요.”
“...그랬군요.”
그렇게 괴짜 연금술 공방의 비밀을 알게 된 유민은 쓴웃음을 지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순수한 감정을 동생에게 내비칠 수 없게 된 마녀.
그렇기에, 시영은 자신을 필요로 했다. 자신의 대리인이 되기를 원했다.
그렇게라도 동생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서,
솔루션의 회원으로 등록시키고 길드에 소속시키기를 요청했다.
그러한 제안은, 유민으로서도 나쁠 것은 없었다.
회원으로 등록할 만한 가치의 헌터유를 지니고 있는 시현.
그녀를 길드원으로 끌어들이고, 그로 인해 마녀의 소원권까지 얻게 된다면 일석이조였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시현이 유민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했다.
아무리 시영이 동생에게 사과를 하고 싶고, 자신 또한 이득을 보고 싶다고 해도,
시현 본인이 그들을 거부하게 되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억지로 솔루션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솔루션의 회원들은 행복해야 한다.
그것은 시현에게도 해당되는 일이었다.
“...일단,
다음에 시현 씨가 저를 부를 때,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고마워요...
시현이가 언제 부른다는 말은 없었어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피로 회복 효과를 원하니까, 본인이 힘들거나 할 때 연락을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후우... 맨날 얼굴이 피로에 쩔어가지고, 어떻게 도와줄 수도 없고...”
동생에 대한 걱정을 가득 담아 깊게 한숨을 내쉬는 검은 마녀.
이내 그녀는 다시 유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겠어요. 우리 시현이 케어도 잘 해주고요.
따로 더 궁금한 건 없어요?”
시영의 물음에, 유민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는, 시현의 설득에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질문을 던졌다.
“시현 씨는, 어떤 걸 제일 좋아했습니까?
마녀님과 관련된 것 중에서요.”
“...!”
예상치 못한 물음이었는지 순간 당황한 기색을 보이던 그녀는,
이내 진지하게 생각에 잠긴 채 과거를 회상하는 듯 했다.
“으으음... 나랑 관련해서 시현이가...”
그러더니,
곧 미소를 지으며 답을 내놓았다.
“같이 작업하는 걸 좋아했죠.
진지하게 재료 가지고 토론하는 것도 좋아했고...
내가 포션 실험한다고 엄청 집중하고 있으면 꼭 옆에서 지켜보기도 했어요.”
“그런가요.”
“그래요. 내가 왜 그렇게 바라보냐고 하면,
언니 집중하는 얼굴이 멋있다고 그러기도... 아.”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때를 추억하던 시영은,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이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고는 상체를 기울여 유민에게 접근하며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유민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의문을 표할 뿐이었다.
허나, 시영이 원하는 것은 그런 얼빠진 표정이 아니었다.
유민을 진심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신입.”
“네?”
“헌터밀크, 얼마나 좋아해요?”
그 물음에, 유민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달라졌다.
선한 눈빛이 깊게 가라앉고, 굳건한 의지를 휘감는다.
순박한 인상의 청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헌터밀크의 대가(大家)가 될 탐구자의 새싹이 앉아 있었다.
그런 유민의 모습에 시영은 숨을 삼켰다.
무언가에 인생을 걸고 임하는 자의 얼굴.
시현이 좋아하던, 그리고 과거의 자신 또한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무엇보다 좋...”
“바로 그거에요.”
“...네?”
그리 비장하게 대답하던 유민은,
마녀의 영문 모를 말에 탐구자 모드가 살짝 풀렸다.
그에 시영이 살풋이 웃어 보이며, 다시 상반신을 뒤로 물렀다.
“뭔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거기에 몰두하는 모습.
시현이는 그런 걸 좋아했어요.”
“아...”
유민은 문득,
그녀를 두 번째로 만났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자신의 표정을 보고 대경하여 벌떡 일어나기도 하고,
복잡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기도 했던 시현.
시현은 자신에게서 익숙한 누군가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었나.
그리고 그런 시현의 반응에서,
유민은 부정적인 느낌을 거의 받지 못했던 것을 기억해 냈다.
아니.
오히려 그녀는...
“...그리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응?”
“저번 주말에 시현 씨를 만났을 때...
시현 씨가 제 표정을 봤었습니다.”
“...!!”
신비로운 자색을 담은 시영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그녀는 눈빛으로 유민의 말을 재촉했다.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시현 씨는 분명히 저한테서 뭔가를 보고,
복잡한 표정으로...
그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아...!”
시현이 유민에게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그녀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과거의 시영.
동생과 함께 순수히 울고 웃으며,
포션에 그토록 진심을 담아서 노력하던 탐구자.
시현은 그러한 언니의 모습을 결코 잊지 않은 채,
지금까지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시영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녀의 손바닥이 영문 모를 습기에 축축해졌다.
앙다문 입술 사이에서 작은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안도감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시영의 감정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그저 슬픔. 미안함.
다시 그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나 늦어 있었다.
그 날의 순수함을 되찾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시현이 기억하고 그리워하던 과거의 자신은,
도달할 수 없는 저 너머에 버려져 있었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손에 의해서.
“미안해, 시현아... 미안, 해...”
작은 공방에,
주인을 찾지 못한 사죄가 작게 울려 퍼졌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능력을 사용한 것인지 금세 얼굴을 정리한 그녀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시현이 말고 다른 사람 앞에서 울어본 건 처음이네요.”
“...죄송합니다. 괜한 얘기를 꺼내서.”
“으응? 아니에요.
덕분에 우리 신입한테 약간의 팁이라도 줄 수 있게 됐으니까요.”
“네?”
유민의 물음에,
시영은 쓰디쓴 미소와 함께, 답을 내려주었다.
“시현이를 만나면,
그냥... 진심을 다해 주세요.
내가 시현이에게 할 수 없었던 몫까지,
솔직하고 순수한 감정을 드러내서, 힘껏 부딪혀 줘요.”
지금의 자신은 시현에게 해 줄 수 없는 것.
유민이라면, 그것이 가능했다.
탐구자였던 그녀는,
탐구자인 그녀를 그리워하는 동생을 위해,
탐구자로 성장하고 있는 그를 내세우고자 했다.
그에, 유민은 영문 모를 답답함을 느꼈다.
가슴 한 켠에서, 무언가가 불만인 듯이 유민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허나 그 이유를 아직 알 수 없었던 유민은,
그저 고개를 끄덕여 보일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공방을 나선 유민은,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의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새로이 추가되어 있는 시영의 전화 번호.
무려 리퀴드 위치와 개인 연락을 취할 수 있게 된 것이었지만,
유민은 별 다른 감흥이 없었다.
더 중요한 문제가 유민의 머릿속을 끊임없이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밀크 길드.
5명의 회원 수 충족.
그리고 시현과 시영.
두 사람의 관계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 하면,
밀크 길드 또한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유민은 직감했다.
하지만 혼자 이렇게 우두커니 서서 생각해 보아도 답이 나오지는 않았기에,
유민은 이내 다시금 걸음을 옮겨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울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상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민아! 다 끝난 거야?]
“응, 끝났어. 시간이 좀 늦었네...”
[에이, 마사지는 내일 하면 되지. 괜찮아.
나도 이제 막 집에 들어왔어.]
“누나들도 공방 돌아다녔어?”
자신들도 다른 공방에 방문해 보겠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던 유민의 물음에,
서울은 약간 망설이는 기색을 담아 답했다.
[으응. 돌아다니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이렇게 막 물어보고 다니면 소문 날 수도 있을 거 같아가지고.]
“...!”
그 말에, 유민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서울의 말대로, 파랑바위꽃을 찾아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자칫하면 자신들 모르게 어딘가에 피어 있던 바위꽃도 소문을 들은 이들에게 빼앗길 가능성이 있었다.
방금 전에 마녀가 유민에게 정보 흘리는 걸 조심하라고 당부하기가 무섭게,
골치 아픈 일이 터질 뻔한 것이다.
[그래서 그냥 냉장고만 알아보고 다녔어. 미안...]
“아냐, 누나. 잘했어.
이쪽은...”
거기까지 말하던 유민은, 입을 다물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길거리에서 떠들고 다닐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 내 쪽 얘기는 내일 던전에서 말해 줄게.”
[응? 왜 던전... 아.
그래, 알았어! 뭔가 알아내긴 했나 보네?]
그 말에 유민은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뭔가를 알아내기는 했지만,
공방에 들어오기 전에 예상했던 것을 훌쩍 뛰어넘는 스케일이었다.
“응. 뭐... 그렇지.”
[...뭔가 불안한데.
그 연금술사 좀 수상해, 진짜로.]
“아냐, 그런 거...”
[진짜 아니야?
진짜 그냥 평범한 연금술사 여자야?]
그 날카로운 물음에, 순간 유민의 말문이 막혔다.
허나 그녀의 정체를 이런 길가에서 당장 공개해서는 안 됐기에,
유민은 대충 얼버무리며 내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어어. 내일 얘기해 줄게.”
[야아! 자꾸 사람 불안하게 만들래!
이러다가 다희 언니마냥 갑자기 사람 하나 느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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