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액체의 마녀와 비밀 거래 (4)
* * *
이름이 유사하기에 혹시나 했는데,
설마 정말로 가족이었을 줄이야.
유민은 그런 생각에 얼떨떨해 하며 입을 열었다.
“...동생이요?”
“그래요. 동생.
내가 시현이보다 한 살 많아요.”
그렇게 대답한 마녀는,
자신의 호기심을 그 볼륨 가득한 윗가슴마냥 대놓고 드러내 보였다.
“근데에... 우리 신입이 동생을 어떻게 알아요?”
그 물음에 유민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알겠다는 듯이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겨 보였다.
“아아, 그러네.
시현이는 협회에서 일하니까, 헌터 등록할 때 만났겠구나.”
허나 다시금 의문을 표하며, 마녀는 유민에게 몸을 바싹 내밀어 왔다.
그 커다란 젖가슴이 진격해 오며 자신의 몸과 맞닿을 듯이 흔들거렸다.
“근데, 보통 안내원이 이름까지 알려주나...?
어떻게 된 거에요, 우리 신입? 시현이랑 무슨 관계인가요?”
“그, 설명 드리겠습니다.”
무언가에 꽂힌 듯한 검은 마녀의 박력.
그에 유민은 무심코 한 걸음 물러서게 되었다.
“그래요. 빨리 말해 봐요.
아, 그러고 보니까 의자도 안 주고 있었네. 미안해요.”
마녀는 그렇게 재촉하며, 가볍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카운터 뒤쪽에 있던 문이 벌컥 열리더니,
등받이 없는 자그마한 의자 스툴이 휙 날아와 유민이 서 있는 자리 옆에 사뿐히 안착했다.
스툴을 뱉어낸 문은 다시 덜컥 닫혔다.
원리를 알 수 없는 그 현상에 유민이 머릿속으로 물음표를 한가득 띄웠지만,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기에 의자를 자신에게로 끌어와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마녀 또한 유민을 따라 의자에 앉은 뒤,
그는 안내원이자 마녀의 동생인 최시현과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풀어놓기 시작했다.
밀크마스터의 밀크 감별사 스킬을 확인하기 위해 그녀의 헌터유를 마셨던 일.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고 대신 명함을 주며 다음을 기약한 일.
주말에 자신을 불러내서 피로 회복의 목적으로 다시금 착유와 수유를 진행한 일.
그 모든 것들을 마녀에게 설명해 주자,
시영은 놀랍다는 듯이 그 신비로운 기운이 담긴 자색 눈을 동그랗게 떠 보였다.
“어쩐지 요즘에는 좀 얼굴이 밝아 보인다 싶더니...
우리 신입이 케어해 주고 있었던 거였어요?”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세상 참 좁네요, 진짜로.
아무튼 그건 고마워요. 내가 맨날 보고받으면서 속이 탔는데.”
“보고받는다는 건...?”
낌새가 이상한 그 단어에 유민이 무심코 그렇게 묻자,
흠칫한 마녀가 그에게 내밀고 있던 몸을 뒤로 빼며 손을 설레설레 내저었다.
“아... 말이 헛나왔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허나,
이내 씁쓸한 미소를 옅게 머금는 그녀.
“...아니.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닌데.”
“...?”
“뭐어... 아무튼. 그래요.
시현이는 내 동생이고, 자매 지간이에요.”
마녀는 다시 의자에 털썩 엉덩이를 붙였다.
그 움직임에 거대한 젖가슴이 크게 출렁이며 압도적인 무브먼트를 선보였다.
“그래서, 동생 얘기는 왜 꺼낸 거예요?”
“아... 솔루션 회원으로 괜찮은 사람을 생각해 보다가,
시현 씨가 생각났습니다.”
“으응? 시현이를 솔루션...
아, 맞다. 시현이 것도 마셨다고 했었죠?”
방금 전 유민에게 들었던 시현과의 이야기를 떠올린 마녀는,
기대감을 담은 눈빛으로 유민을 바라보았다.
“그럼 밀크마스터로서 어땠어요? 우리 시현이 밀크는?”
선생님에게 자식의 성적을 묻는 학부모와도 같은 모습에,
유민은 작게 미소를 지으면서도 진중한 분위기로 답해 주었다.
“현재 제가 솔루션을 진행하는 회원들과 비슷합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요.”
“그래요? 으으음...”
솔루션 회원으로 영입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유민의 대답.
그에 시영은 손가락으로 카운터 위를 톡톡 두들기며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했다.
그러더니, 이내 유민에게 말했다.
“그럼 내가 우리 신입한테 의뢰 하나만 해도 돼요?”
“의뢰요?”
리퀴드 위치인 그녀가 자신에게 특별히 의뢰할 만한 것이 있는가.
그런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유민에게,
시영은 의뢰의 내용을 읊어 주었다.
“시현이를 회원으로 만들고,
앞으로 만들 길드에 소속시켜 줘요.”
“마녀님의 동생 분을, 말입니까?”
“맞아요.
그렇게 해 주면,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뭐든 한 가지 부탁을 들어줄게요.”
리퀴드 위치의 소원권이라니.
보상의 스케일이 생각보다 어마어마했기에,
유민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서둘러 마녀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 왜 그렇게까지 동생 분을 길드에...?”
“...”
유민의 물음에, 마녀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시영의 그늘진 얼굴에서 영문 모를 슬픔이 묻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이내 다시 유민을 바라보며,
검은 마녀는 입가에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요. 우리 신입이 내 동생 얘기를 해 줬으니...
나랑 시현이 이야기도 들려줘야겠죠?”
“...!”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시영은,
곧 천천히 입을 열어 운을 띄웠다.
“그냥 좀 흔한 자매 얘기에요.”
“예전엔 서로 없으면 죽고 못 살 것처럼 사이좋았는데,
이젠 연락도 잘 안 하는... 아니, 못 하는 상태죠.”
자매간의 관계가 급격하게 악화된 것은,
그녀가 각성하고 난 뒤였다.
리퀴드 위치.
대가를 지불하여 액체에 특수한 효과를 부여하거나,
그 자체를 수족처럼 다루는 등의 능력을 지닌 직업.
“그렇게 각성하고 나니까... 해 보고 싶던 게 있더라고요.”
“포션.”
“단순한 치료제 같은 게 아니라,
정말 마법 같은 효과를 주는 포션을 만들고 싶었어요.”
당시에는 헌터가 부상을 입을 경우,
치유 관련 각성자에게 도움을 받는 것 이외에는 상처를 빠르게 낫게 할 방법이 없었다.
“세상 돌아가는 거에 관심이 많았으니까...
느낌이 딱 온 거죠.”
“포션. 상처를 치유하는 포션...
힐링 포션을 만들면 분명 대박이 날 거라고.”
그 때부터 시영은 힐링 포션의 제작에 온 힘을 쏟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각성한 시현도,
헌터로 활동하면서 열심히 이런 저런 재료들을 구해 오며 언니를 도왔다.
어떤 것이 문제인지 서로 머리를 맞대며 진지하게 피드백을 하기도 하고,
잘 되는가 싶더니 펑 터져서 얼굴을 그슬리게 되어, 그에 깔깔 웃기도 하고.
비록 작업은 고되었지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함께 하는 가족이 있었기에 즐거이 임할 수 있었다.
“힘들지만 좋았죠. 시현이랑 잘 지냈으니까...
첫 시제품이 나왔을 때는 둘이서 손잡고 막 방방 뛰고 그랬는데.”
그 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잔잔한 미소가 시영의 입가에 떠올랐다.
허나 그것도 잠시, 다시금 얼굴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힐링 포션이 대박을 치고 난 뒤였어요.”
성공적으로 만들어진 힐링 포션은,
그 혁신적인 성능으로 여기저기서 주문 요청이 쇄도했다.
시영은 그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어마어마한 추진력으로 발돋움해 나가기 시작했다.
작은 창고와 몇 안 되는 인원부터 시작하여,
힐링 포션 제조 공장을 세우기까지.
치유 능력자들의 견제와도 같은 여러 위기들을 극복해 나가며,
그녀는 마침내 리퀴드 위치 사를 굴지의 포션제조기업으로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그제야 뒤를 돌아본 시영의 곁에,
시현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제조법 연구는 끝났고,
재료들만 있으면 포션을 찍어낼 수 있으니까,
그 때부터는 포션을 더 많이 팔아치우는 거에 집착했죠.”
“...같이 울고 웃던,
누구보다 나한테 힘이 됐던 내 동생을 방치해둔 채로요.”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고, 기업의 성장에 골몰하고.
리퀴드 위치 사의 대표로서 바쁜 시간을 보낼 동안,
시현은, 언젠가부터 자신의 언니와 대화조차 제대로 못 하게 되었다.
시영이 회사 숙소에서 살다시피 했기에,
얼굴 보는 것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누구보다 진지하게 포션에 대해 골몰히 생각하고,
실험의 성공 여부에 희비가 교차하던 시영은 더 이상 없었다.
언니! 나 등급이 올랐어! 이제 D급이야!
진짜? 축하해! 아, 8번 추출기에 문제? 미안. 끊어야겠다.
언니...! 나 보스 몬스터도 잡았어.
좋겠네. 나 회의 들어가니까 이만 끊어.
언니, 나 헌터 협회 취직했어.
그래. 잘 됐네. 나 바쁘니까 끊을게.
언니와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외로운 마음을 달래고 싶어서,
그렇게 좋은 소식이 있을 때마다 연락을 해 왔던 시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시영은 너무나도 쉽게 그녀의 손길을 뿌리쳐 버렸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동생 얘기를 조금이라도 들어줬어야 했는데.”
그렇게 마침내 회사를 안정된 위치까지 올려놓은 시영은,
그동안 잘 챙겨주지 못 한 자신의 동생을 떠올리고 전화를 걸었다.
시현아! 언니야!
...언니?
잘 지냈지? 되게 오랜만에 전화하는 거 같네!
...
들어 봐. 이제 우리 회사도 어려운 시기 다 넘겨서, 이제 너
기껏 전화해서, 한다는 소리가 회사 얘기야?
어, 어...?
끊어.
아직도 생생하게 뇌리에 박혀 있는 시현의 차가운 목소리를 떠올리며,
시영은 구슬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집, 나갔더라고요.
저한테 주소도 안 알려주고.”
불길한 마음에 서둘러 집으로 향했던 시영은,
아무도 없이 싸늘한 정적만이 감도는 실내를 마주하게 되었다.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흔적도 없이,
내부는 그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것을 본 시영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미, 늦어 버렸다는 것을.
“정작 나한테 제일 중요했던 건 따로 있었는데...
그걸 생각 못 하고 포션에 눈이 멀어 있었던 거죠.”
시영은 당장이라도 모든 걸 접어버리고 싶었다.
어딘가에 있을 시현에게 달려가 꼭 껴안고, 미안하다며 용서를 빌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은 굴지의 포션제조기업 리퀴드 위치 사의 수장이었다.
이제 와서 그만두기엔, 얽혀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렇게 시영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시간은 무심히 흘러갔다.
“조사를 했으니까, 시현이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요.
어디에 근무하는지도 알고, 어디서 살고 있는 지도 알죠.”
“아까 말했던 것처럼,
시현이 컨디션도 매일같이 보고받고 있어요.”
“그런데... 정작 만나지는 못하겠어요.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해야 될지를 모르겠어요.”
자신은 더 이상,
실험 하나에 울고 웃던 순수한 탐구자가 아니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부딪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유민에게 끌린 것이다.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한 탐구자의 눈빛.
한 때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담대한 탐구자의 의지.
그것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 지켜주고 싶었다.
자신처럼 초심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더는 솔직해질 수 없는 자신을 대신하여,
이런 식으로라도 어떻게든 동생에게 사과를 전하고 싶었다.
시영은 유민의 진중한 그 눈빛을 마주했다.
깊고 맑기 그지없는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이내, 순수함을 잃지 않은 눈앞의 탐구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웨이브진 검은 머리가 밑으로 흘러내렸다.
“부탁해요, 유민.”
“이렇게라도, 시현이와 함께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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