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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화 〉 액체의 마녀와 비밀 거래 (3) (77/116)

〈 77화 〉 액체의 마녀와 비밀 거래 (3)

* * *

“좋은 거요...?”

그 말에 유민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마녀의 커다란 젖가슴으로 향했다.

밀크마스터의 진중한 눈빛이 윗가슴에 그대로 꽂혀들자, 마녀는 미지근한 웃음을 머금었다.

안타깝게도 지금 할 이야기는 그의 예상과 살짝 거리가 멀었다.

“일단...

헌터밀크도 전문 유가공업체가 있는 건 알고 있죠?”

“아, 네.”

유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유 등의 유제품을 판매하는 유가공업체가 있듯이,

헌터밀크를 다루는 헌터유가공업체 또한 존재하고 있다.

유민과 서울이 만남을 가졌던 헌터밀크 쉐이크 카페도,

헌터유를 업체로부터 정기적으로 공급받고 있다.

밀크 쉐이크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도록 헌터유에 일정한 가공을 거친 것이다.

헌터들은 업체들과 계약을 맺고 자금과 지원을 받는 대신,

본인이 생산한 헌터유는 모두 헌터유가공업체의 소유가 된다.

그렇기에 헌터유가공업체를 일컫는 또 다른 명칭이 있었으니,

바로 밀크 길드(Guild)다.

누구보다 헌터밀크에 진심인 유민이 그들의 존재를 모를 리가 없었다.

“밀크 길드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2대 길드도 잘 알겠네요.”

2대 길드.

그 말에 유민이 쓴웃음을 지었다.

헌터유를 가공하는 작업은 일반적인 유가공업체의 기계로 불가능하다.

액체 조작 등의 관련 능력자들만이 헌터유를 다룰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가공 작업의 진행이 가능한 밀크 길드는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그들을 일컬어 2대 길드라고 칭하며, 국내 밀크 시장의 양강 체제를 이루고 있다.

나머지 길드들은 관련 각성자들을 소유하지 않아 가공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2대 길드가 능력자들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타 길드들보다 한층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기에,

관련 능력으로 각성한 이들은 자발적으로 2대 길드의 문을 두드리는 일이 허다했다.

그렇기에 나머지 업체들은 헌터유의 가공을 포기하고,

그 대신에 품질 관리 등의 기타 서비스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말하자면 가공 없는 가공업체들인 것이다.

물론 앞서 말한 2대 길드도 관련 서비스를 모두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그러한 반쪽짜리 길드들을 헌터들이 선택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기에 이 나머지 업체들은,

헌터유의 등급이 낮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2대 길드와 계약하지 못한 헌터들이 찾는 곳이었다.

2대 길드와 그 외의 업체들, 그리고 개인 판매자들.

현재 헌터밀크 시장의 구조는 이러했다.

유민도 처음에는 2대 길드에 찾아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지만,

자신의 능력에 의해 온갖 견제와 위협을 당할 것이 분명했기에 깔끔히 포기했다.

“알고 있죠.

한 때는 그 쪽으로 갈 생각도 했는데, 너무 위험할 것 같았습니다.”

“잘 생각했네요.

둘 중 어딜 가도 밸런스가 깨져 버리니까,

상대 쪽에서 가만있지 않았을 걸요.”

그와 함께,

마녀는 약간 쓰게 웃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신입은 이미 한 번 위험할 뻔했어요.”

“네?”

그 말에 유민이 당혹감을 표했다.

위험할 뻔했다니? 그녀에게 정보를 노출한 것을 말하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또 다른 무언가를 잊고 있었던 것인가?

혼란에 빠진 유민에게, 마녀가 정답을 알려 주었다.

“헌터 협회 데이터베이스에 떡하니 밀크마스터. 라고 등록되는데,

2대 길드가 궁금해서라도 신입을 조사하려 들지 않을까요?”

“...!!”

“물론 우리 신입이 솔루션 스킬을 숨기고 있으면 되겠지만,

지금까지는 너무 정보를 여기저기 흘리고 다녔어요.”

그녀의 말이 맞았다.

방금 전만 해도 눈앞의 검은 마녀에게 솔루션의 정체를 반쯤 들키지 않았는가.

저번 주부터 오늘까지, 자신은 너무나 안일하게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2대 길드가 시영처럼 자신의 행적을 캐내어 조사하게 된다면...

자신은 분명히 위험해질 것이 뻔했다.

그런 생각에 유민의 표정이 바싹 굳었다.

허나,

마녀는 걱정 말라는 듯이 손을 내저어 보였다.

“너무 걱정 마요. 방금 말했잖아요, 위험할 ‘뻔’ 했다고.

데이터베이스에는 그 다음 날에 올라가니까,

내가 신입이랑 처음 만난 시점에는 아직 유민의 정보가 등록되질 않았어요.”

“...마녀님하고 처음 만났을 때, 말입니까?”

“그래요. 신입한테 명함 받았잖아요?

그 때 직업명에 밀크마스터, 이렇게 적혀 있는 거 보고 직감했어요.

아, 이거 그냥 놔두면 귀중한 새싹 하나 밟히겠다. 하고.”

“...”

“그래서 바로 내가 연막을 쳐 놨죠.

길드들이 데이터베이스 뒤져 봐도 다른 직업으로 나올 걸요.”

자신이 몰랐던 사이에, 그런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인가.

당사자에게 말도 없이 위장막을 씌워 버리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마녀의 견제 덕분에 2대 길드의 시선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니,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에 유민은 시영에게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마녀님...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알면 됐어요.

웬만하면 헌터 명함도 막 뿌리고 다니지 마요.”

“명심하겠습니다.”

유민의 굳은 다짐에 만족스레 고개를 살짝 끄덕인 마녀는,

두 손으로 깍지를 끼며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무튼... 내가 제안하려는 건 이거에요.

나랑 같이,

그 헌터유가공업체... 밀크 길드를 하나 만들지 않을래요?”

“...”

유민은 잠시 턱을 쓰다듬었다.

그녀가 밀크 길드 이야기를 꺼낼 때부터,

유민은 대충이나마 그러한 제안을 예상하고 있었다.

밀크 길드의 창설.

분명 유민도 한 번쯤 꿈꾸고 있었던 일이다.

자신의 솔루션으로 1등급을 달성한 헌터들과 함께,

최고급 헌터유만을 다루는 프리미엄 밀크 길드를 운영하는 것.

상상만 해도 행복한 일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머나먼, 그리고 불투명한 미래였다.

일단, 유민은 마녀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 보기로 했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으신 겁니까?”

“그래요. 관심 있는 거 같네요?”

“제 꿈이기도 하니까요.”

“으으음. 좋네요. 밀크 길드를 어떻게 만들 거냐면...”

그녀의 계획은 이러했다.

그녀, 리퀴드 위치 최시영의 명의로 밀크 길드를 창설한다.

해당 길드는 굴지의 포션제조기업인 리퀴드 위치의 산하 길드가 되는 것이다.

길드의 창설과 초기 운영에 필요한 자금은 최시영이 부담하고,

이후 그 비율을 조금씩 줄여 길드 자체 소득만으로 충당이 가능하도록 한다.

사무직을 제외한 길드원의 구성은 소수 정예다.

헌터유의 가공이 가능한 리퀴드 위치, 최시영.

헌터유의 품질을 관리하는 밀크마스터, 김유민.

그리고 솔루션의 회원들로 구성된 소수의 헌터 길드원.

정보 통제와 더불어 유민의 솔루션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 계획을 듣던 유민은, 이내 감상평을 남겼다.

“...성공하면 프리미엄 브랜드가 되겠네요.”

“뭐어, 그렇죠.

소수 정예니까 당연히 양이 아니라 질로 승부하게 될 텐데, 우리한테는 솔루션이 있잖아요?

리퀴드 위치 이름값도 있고 하니, 고급화 자체는 어려운 게 아니거든요.”

그렇게 말한 마녀는,

이내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가장 큰 문제를 입 밖으로 냈다.

“문제는 솔루션을 받을 인원이죠.

특색 없는 어중이떠중이를 데려다 놓으면 차별화가 불가능하니까,

우리 신입이 인재를 잘 골라내야 돼요.”

“...”

그녀의 말에, 유민은 현재 솔루션을 진행 중인 두 누나를 떠올렸다.

4등급 시절부터 남다른 달콤함을 선사하던 유서울.

단맛을 찍어 누르는 강렬한 고소함이 특징적인 강다희.

두 사람 다 헌터유에 있어서 훌륭한 잠재력을 지닌 이들이었고,

그렇기에 솔루션의 회원으로 등록시켰다.

유민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솔루션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그러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으음. 유서울 헌터랑... 강다희 헌터였나요?”

“네. 두 사람 다 좋은 포텐셜을 가지고 있어요.”

“뭐어, 우리 신입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문제없겠죠.”

그렇게 고개를 끄덕인 마녀는,

다시 용건을 이어 나갔다.

“근데, 지금 당장은 길드 창설을 못 하겠네요.

아무리 소수 정예라고 해도 2명은 너무 적어요.”

“몇 명이면 되겠습니까?”

“최소 5명. 그것도 간당간당해요.”

“5명...”

그 말에, 유민은 작게 침음성을 흘렸다.

앞으로 3명이나 더 영입해야 하는 상황.

그는 지금껏 자신이 마셔 보았던 헌터유 중에서,

충분한 특색이 있었던 것을 하나둘씩 떠올려 보기 시작했다.

서울의 싱그러운 단맛.

다희의 고소한 감칠맛.

그리고,

안내원의 그윽한 쓴맛.

“...!”

주말에 피로 회복이라는 명목으로 안내원­ 최시현의 헌터유를 빨아 마셨던 것을 기억해낸 유민은, 머리에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헌터유 맛은 분명 특별했다.

향 좋은 커피와도 같이, 그윽한 쓴맛이 단맛과 적절히 어우러진 그 느낌.

유민은 그렇게 헌터 협회 안내원을 생각하고 있다가,

문득,

기시감을 느꼈다.

안내원의 이름이,

분명 최시현이었지.

그녀의 이름을 머릿속에 띄워 놓고,

유민은 눈앞의 검은 마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은,

최시영이었다.

최시현. 최시영.

너무나도 비슷한 이름.

리퀴드 위치라는 타이틀에 가려져 있어서,

그 유사성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 유민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마녀님?”

“으응? 왜요? 누구 떠오른 사람 있어요?”

마녀의 물음에 유민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게 아니라...

혹시 최시현이라는 분을 아십니까?”

마녀는 그 질문을 듣고,

곧장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마녀에게서 보았던 것 중에서 가장 격렬한 반응에 유민이 흠칫하고 있자,

그녀는 카운터에 손을 짚으며 몸을 유민에게로 기울였다.

“...우리 신입이 말하는 그 최시현이란 분이,

혹시 근처 헌터 협회에서 일하는 그 사람인가?”

“네, 맞습니다만...”

유민의 대답에,

마녀는 그 신비로운 자색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내 동생이에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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