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액체의 마녀와 비밀 거래 (2)
* * *
“...네?”
“내가 만드는 포션이에요, 오리진은.”
그에 유민이 속으로 물음표를 띄웠다.
리퀴드 위치 본인이 직접 만드는 포션이라니.
그렇다면 지금껏 유통되고 있던 힐링 포션들은 무어란 말인가.
그런 유민의 의문을 읽어냈는지, 마녀가 말을 이어나갔다.
“시중에 풀리는 것들은 당연히 직원들이 기계로 만들어요.
내가 혼자서 그걸 언제 다 만들고 앉아있어요?
물론 재료 배합법이랑 추출기 같은 건 내가 검수해서 만든 거니까 효과는 똑같지만.”
“아...”
하기야, 전국으로 유통되는 그 많은 물량을 혼자서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유민은 마녀의 말에 납득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씩 내가 직접 만들어서 한정판 타이틀 달아놓은 게 그 오리진인데,
일반 포션보다 좀 더 효과가 좋은 거 말고는 별 다를 게 없어요.”
그냥 이름값이랑 포션 병이 이뻐서 귀한 거지.
마녀는 약하게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을 덧붙였다.
그에 유민은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효과가 조금 더 좋은 것뿐이라면,
솔루션은 어째서 굳이 오리진을 콕 찝어 원하는 것인가?
솔루션으로 제조하는 포션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기에 잘 모르겠지만,
그 약간의 회복 효과 차이만으로 포션 제조의 성공과 실패가 나뉠 수 있나?
그런 생각에, 유민은 진지하고도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오리진의 다른 차이점은, 정말로 없습니까?”
“...으응?”
헌데,
마녀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유민의 말에, 그녀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인 것이다.
검은 마녀는 유민의 진중한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이내 못 당해내겠다는 듯이 피식 웃어 보였다.
“밀크마스터라 그런지, 이런 쪽은 감이 좋네. 우리 신입...”
그런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듯 말하던 마녀는,
본인의 거대한 가슴 위로 한쪽 손을 살짝 얹어 보였다.
“그래요, 뭐어... 신입한테만 특별히 알려 줄게요.”
그리고는,
유민의 귀가 번쩍 트일 만한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오리진에는,
내 헌터밀크가 약간 들어가요.”
“...!”
그 말에 유민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리퀴드 위치의 헌터유가, 오리진 힐링 포션에 첨가된다니.
저 거대한 젖가슴에서 짜내어진 액체가 오리진에 포함되어 있다는 말인가?
그에 유민은 흠칫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납득한 듯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솔루션이 어째서 오리진 힐링 포션을 지목했는지,
이제 알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유민의 그러한 반응에, 마녀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내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흘려냈다.
“그래서... 이제는 좀 믿음이 가요, 우리 신입?
내가 사칭이 아니라는 게?”
“...”
그 말에,
유민은 잠시 침묵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눈앞의 검은 마녀가 가짜일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다.
그녀가 정말 사칭범이라면,
굳이 정보를 자신에게만 한정하고 통제하려 들지 않았을 것이다.
리퀴드 위치가 직접 만들었다는 그 이름값만으로,
그저 효과가 조금 더 좋을 뿐인 포션이 돈 주고도 구하지 못할 한정판이 되는데.
그런 가치를 지닌 유명세를 전혀 활용하지 않고,
이런 작은 공방이나 간간히 운영하면서 위장 신분까지 사용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무 이득도 없이 오직 F급 짐꾼 한 명만을 골탕 먹이기 위해,
고급 헌터 명함까지 만들고 온갖 정보를 달달 외운 괴짜 사칭범.
취미로 신분을 숨기고 공방을 운영하는 리퀴드 위치 사의 주인.
어느 쪽이 더 신빙성이 높냐고 묻는다면,
그 누구라도 후자라고 대답하리라.
그런 결론을 내린 유민은,
이내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 사과를 건넸다.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최시영 헌터님.”
“사과할 것까진 없고, 그냥 마녀님이라고 불러요.”
검은 마녀는 손을 내저으며 그렇게 답했다.
그리곤 한 시름 덜었다는 듯한 기색으로 만족스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어... 그럼 이제 좀 얘기가 되겠네요.
아까 어디까지 말했더라... 아, 내 밀크가 오리진에 들어간다고 했었지.
아무튼 간에, 오리진 힐링 포션은 그렇게 만들어요.
진짜 가끔씩만 만드는 거니까 시중에서 구하려면 많이 힘들 걸요.”
“그런가요...”
리퀴드 위치 본인을 앞에 두고도 포션을 구할 수 없다니.
그녀에게 직접 제작 의뢰를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오리진 힐링 포션은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인 한정판이다.
소모품이 아니라 사치품에 가깝다.
솔루션을 제외하면 F급 짐꾼일 뿐인 자신이,
그 의뢰의 대가로 무엇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유민이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자,
마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으으음. 그래서 몇 병이나 필요한데요?”
“아... 한 병이면 됩니다.”
“그럼 내가 만들어줄까요?”
그 반가운 제안을 듣게 된 유민은 순간 얼굴에 화색이 돌았으나,
이내 다시 침착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 귀한 것을 자신에게 공짜로 내어줄 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 주시면 감사하지만...
그 값을 제가 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으응? 아니에요. 난 우리 신입한테 돈 받을 생각이 없는데.”
“...네?”
유민의 얼떨떨한 반응에,
마녀는 입꼬리를 슬쩍 들어 올려 웃어 보였다.
“대신, 그걸로 뭘 하는 건지 알려줘요. 빠짐없이.”
“...”
“아니, 아니... 내가 설마 우리 새싹님 앞길을 막을까봐?
그냥 궁금해서 그래요.”
그 말에 유민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곧바로 자신의 비밀을 캐내려 할 줄이야.
허나 유민이 솔루션의 발설에 대해 고민을 하기도 전에,
검은 마녀는 곧바로 그의 선택지를 없애 버렸다.
“거기다 나도 대충은 알고 있어요, 신입.
저번 주 목요일부터 유서울이라는 D급 헌터랑 같이 다니고 있잖아요.”
“...네?”
“근데 그 헌터, 이번 주에 등급 올랐네?
신입이 우리 가게에서 꽃 사간 지 3일 만에?”
“!!”
절대 대충이라고 할 수 없는 정보 수집에 유민이 경악하기도 잠시,
마녀는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 헌터를 만난 것도 목요일.
여기서 분홍바위꽃 사간 것도 목요일...
거기에 주말을 사이에 끼면,
등급 심사도 얼추 시간이 맞네요?”
유민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마녀는 딱딱하게 굳은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여전히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여기까지 얘기했는데, 말 안 해줄 거예요?
아, 물론 비밀은 지켜줄게요. 그건 약속.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 신입 앞길을 막으려는 게 절대 아니에요.”
“...”
계속해서 침묵하고 있던 그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상대는 거대 포션 제조 기업의 수장.
D급 헌터와 F급 짐꾼의 행적을 조사하는 정도야 간단했을 터.
이미 치명적인 정보들은 그녀의 손에 들어왔다.
그것이 퍼져나가면 헌터밀크의 등급 상승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이들의 표적이 될 것이 뻔했다.
자신이 계속해서 솔루션에 대해 침묵하고 고집을 피우며 상대의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그렇게 쫓겨 다니는 삶을 살게 될 수도 있으리라.
거기에 더해,
본인을 믿고 있는 다희와 서울에게 그런 식으로 피해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유민은 결국 체념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밀크마스터의 솔루션 스킬.
특정 조건을 충족해 회원으로 등록하고,
각자에게 개인 솔루션을 제공하여 헌터밀크의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오리진 힐링 포션은 솔루션이 제시하는 ‘힐링 밀크 포션’의 재료로 사용된다는 것까지.
그녀에게 솔루션에 대한, 그리고 오리진 힐링 포션과 관계된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던 리퀴드 위치 최시영은,
이내 미소를 머금으며 감상평을 남겼다.
“우리 신입이 비밀로 하려고 애쓸 만 했네요.”
“...”
“그리고... 되게 재밌는 스킬이네요, 그거.”
옅은 미소가, 진득한 웃음으로 바뀌게 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영은 오랜만에 즐거움을 한껏 느끼고 있었다.
처음 만날 때부터 심상치 않다 싶었더니,
역시나 자신의 눈썰미는 틀리지 않았다.
헌터밀크의 품질을 향상시켜 등급을 올려버린다는, 규격 외의 스킬.
헌터유의 대가(大家)를 꿈꾸는 새싹 탐구자에게 걸맞은 기술이었다.
유민의 입으로 직접 모든 것을 듣고 나니,
시영은 가슴 속에 불이 당겨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욕심이었다.
쭉정이들 사이에서 발견한 옥석이 훼손되지 않았으면 했다.
이 될성부른 새싹이, 누군가에게 짓밟히지 않고 찬란한 꽃을 피우도록 도와주고 싶다.
그가 어엿한 탐구자의 일원으로서 성장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고 싶었다.
그러한 기대감에 가슴이 설레어오는 것을 느끼며,
검은 마녀는 유민에게 호의를 담아 싱긋 웃어 보였다.
“약속대로 오리진 힐링 포션은 만들어 줄게요.
재료는 있으니까,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네요.”
“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제안하는 건데요.”
“...?”
무언가 또 다른 용건이 있는 듯한 마녀의 말에 유민이 의문을 표하고 있자,
그녀는 몸을 슬쩍 일으켜 유민 쪽으로 상반신을 내밀었다.
훤히 드러난 앞가슴의 커다란 볼륨과, 그 유육 사이로 깊게 파여진 가슴골이 한층 유민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검은 마녀는 신비로운 자색의 눈으로 유민을 빤히 쳐다보며, 나긋한 목소리를 흘려냈다.
“나랑 같이,
좋은 거 하나 해 볼 생각 없어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