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늑대 밀크와 두 번째 회원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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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소동이 있고 난 뒤,
그들은 다시 던전의 공략을 진행했다.
하늘의 거대한 이정표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헌터들과 짐꾼.
그 과정에서 화가 잔뜩 난 싱글혼 래빗들을 때려잡기도 하고,
이번엔 얌전히 바위에 앉은 다희에게서 헌터유를 짜내기도 하는 등.
다희와 서울, 그리고 유민은 평이하게 던전을 공략해 나갔다.
그러던 도중,
그들은 던전 공략 다음으로 중요히 여기고 있던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높이가 낮고 널찍한 바위.
그것뿐이었다면 평원 필드에 널려 있는 여느 바위들과 별 다를 것이 없었지만,
그 바위는 분명 특별하기 그지없었다.
바위 근처를 둘러싸듯이,
분홍색의 꽃들이 한가득 피어나 있었던 것이다.
혹시 튀어나올지 모를 몬스터를 경계하며,
그들은 그 널찍한 바위 근처로 걸음을 옮겼다.
꽃 앞에 쭈그리고 앉아 날카로운 늑대의 눈썰미로 생김새를 살펴본 다희는,
이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거네. 분홍바위꽃 맞아.”
분홍바위꽃.
서울의 4등급 솔루션에 사용되었던 재료이자,
3등급 솔루션 재료인 파랑바위꽃의 단서.
검은 마녀의 연금술 공방에서 이미 손질되어 있는 꽃을 본 것이 전부였던 유민은,
던전 안에 자라나 있는 분홍바위꽃이 퍽 신기한 눈치였다.
녀석들은 그 이름답게 바위 근처에만 잔뜩 자라나,
거칠고 투박한 암석을 분홍빛으로 화사하게 장식해 놓고 있었다.
주변의 땅 뿐만 아니라 심지어 바위 틈새 사이에서도 몇 송이씩 자라나 있는 것이,
생장 환경으로 바위를 선호하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바위 주변과 그 위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분홍바위꽃들을 찬찬히 살펴보던 유민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서울과 다희 또한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은 분홍이 아니라 파랑.
분홍빛의 무수한 꽃망울들 사이에서, 파란색은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바위 위에 올라앉아 꼬리를 느긋이 살랑거리며 그 밑을 내려다보던 다희는,
훌쩍 뛰어 유민의 곁으로 착지하며 말했다.
“바위 밑에라도 있는 거 아니냐?”
“그런 말은 없었는데...”
어제 열심히 정보를 찾아보던 서울이 그렇게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들은 바위를 살짝 들어 보기로 했다.
분홍바위꽃들 사이에 자리를 잡은 다희는,
넓적한 바위의 한 쪽을 붙잡고 힘을 주어 들어올리기를 시도했다.
“흡!”
쿠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다희의 주위로 땅거죽이 갈라졌다.
마치 무언가가 땅 속에서 솟아나오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
그 기현상에 흠칫 놀란 다희가 바위를 다시 내려놓자,
약간 갈라진 채 솟아 있던 바닥이 다시금 원 상태로 내려앉았다.
이 넓다란 바위는 그저 땅 위에 얹혀 있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곳에 몸을 숨긴 채, 그 일부만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바위꽃이 그 깊숙한 땅 속에 파묻힌 채로 자라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언니... 이거는 안 들어봐도 될 거 같은데요.”
“그르게. 꽃이 땅 속에서 자라진 않을 거 아냐.”
다희는 고개를 저으며바위를 들어 올리는 것을 포기하고,분홍바위꽃들 사이에서 빠져나왔다.
이후에도 혹시나 하는 낮은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셋은 그 주변을 샅샅이 살피며 파란색 꽃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허나,
바위꽃밭은 여전히 분홍색 일색이었다.
시야를 가득 메우는 현란한 색조에,
그들은 머릿속이 화려한 핑크빛으로 물들어 버리는 것만 같았다.
“없는데...?”
“에이씨, 그냥 꽃 하나 뽑아서 파랑색으로 칠해 버려?”
그런 다희의 투덜거림에, 유민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아닌 거 같아...”
“으응... 일단 가죠. 바위꽃이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결국 별 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채,
세 명은 분홍바위꽃밭을 떠났다.
다시금 전투와 헌터유 배출이 이어졌고,
이따금씩 분홍색 꽃이 피어난 바위가 눈에 띌 때마다 파랑바위꽃을 탐색했다.
그리고 마침내,
세 명은 D급 평원 필드 던전을 무사히 공략해낼 수 있었다.
허나 결국 파랑바위꽃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얻은 것이라곤 평범한 부산물과 헌터밀크뿐이었다.
사방에서 구름들이 모여들어 하나의 위치를 가리키는 던전의 끝자락.
그곳에서 마지막 몬스터를 처치하자, 게이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타원형으로 일렁이는 던전의 입구를 옆에 두고,
유민은 헌터밀크 보관용기의 뚜껑을 열었다.
다희와 서울의 조합이 이 곳의 몬스터들과 상성이 좋았는지,
던전에서 별별 행동을 다 했는데도 다행히 예약한 시간이 조금 남은 덕에,
이 자리에서 바로 실험 겸 회원 등록을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서울과 다희는 헌터밀크 병을 손에 든 채,
실험을 시작하려는 밀크마스터를 지켜보고 있었다.
혹시나 밀크의 주인을 헷갈리지 않도록,
자신의 것을 들고 있어 달라고 유민이 부탁한 것이다.
유민이 지금 마시려 드는 서울의 헌터밀크 한 병을 제외하고,
서울의 손에 들려 있는 1병, 다희가 두 손에 하나씩 쥐고 있는 2병.
그리고 나머지 1병은 다희의 집업 주머니 안에 들어가 있었다.
유민은 최종 확인을 위해 유리병의 입구를 코에 가까이 가져다 대고 향을 맡았다.
헌터밀크 특유의 달콤함이 가득 묻어나오는 향기.
이는 분명 서울의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곧바로 헌터밀크를 입 안에 흘려 넣으며 실험을 개시했다.
싱그러운 단맛과 그 사이에 숨어 있는 감칠맛이 유민의 혀를 감싸 돌았다.
“다희 누나.”
“자.”
텅 빈 보관용기의 뚜껑을 닫고 다희에게 다른 헌터밀크를 받아들며,
유민은 상태창을 열어 밀크 감별사 스킬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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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 감별사]
○ 패시브 스킬
▶ 헌터밀크 복용 시 해당 헌터밀크의 생산자를 확인 가능하다.
▶ 복용한 헌터밀크의 특성과 복용량에 따라 일시적인 버프를 부여한다.
버프 부여 중 (유서울)
힘 8% 증가
지속 시간 : 1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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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프는 정상적으로 부여되어 있었다.
다희와의 수유 이후로 헌터밀크를 입에 대지 않고 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유민은, 다희의 헌터유가 들어 있는 보관 용기를 개봉했다.
이내 유민의 비강을 자극하기 시작하는 고소한 향기.
그 냄새만큼이나 고소한 맛이 주를 이루는 풍미를 느끼며,
유민은 단숨에 두 번째 헌터밀크까지 복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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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프 부여 중 (강다희)
힘 4% 증가
민첩 4% 증가
지속 시간 : 1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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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밀크의 생산자가 바뀌자,
버프의 효과 또한 갱신되었다.
연구를 통해 예상한 바에 의하면,
방금 전의 복용으로 조건 A의 달성 횟수가 2회로 증가한 것이다.
“...음. 다희 누나.”
“옜다.”
약간의 간격을 두고,
유민은 다희에게 세 번째 헌터밀크를 받아들었다.
중복된 복용을 통한 조건 달성.
성공하지 못 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추측을 확신으로 바꾸는 것에 의미를 둔 시도이다.
다시금 느껴지는 견과류와 곡물의 체향.
그렇게 용기의 내용물을 모두 비워냈음에도,
상태창은 아무런 메시지를 출력하지 않고 잠잠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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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프 부여 중 (강다희)
힘 4% 증가
민첩 4% 증가
지속 시간 : 1시간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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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생산자의 헌터밀크 복용으로 인해 지속시간이 추가된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중복 복용으로 조건 A를 달성하는 것이 실패로 돌아간 지금,
이제 남은 과정은 하나뿐이다.
서울과 다희의 것을 번갈아 마심으로써,
다시 한 번 버프를 갱신하여, 마지막 1회의 달성 횟수를 충족시키는 것.
“서울 누나.”
“응.”
유민의 부름에, 서울이 손에 들고 있던 헌터유 용기를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아 뚜껑을 열어젖힌 유민은, 4번째 헌터밀크를 들이켰다.
약간의 달달함이 느껴지는 풍미를 느꼈으면,
이제는 다시 고소함을 맛볼 차례였다.
“누나?”
“엉. 이게 마지막이지?”
“아마 그럴 거야.”
다희의 물음에 유민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마지막 헌터밀크를 손에 들고, 그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이것으로 회원 등록을 성공한다면, 그것이 최고의 시나리오다.
연구를 통한 추측을 모두 확신으로 바꾸고,
추가 과정이 불필요하게 됨에 따라 더 이상의 헌터밀크 낭비를 방지할 수 있다.
허나 등록에 실패하게 된다면,
상당히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하지만 괜찮다.
그 또한 결국에는 해결이 가능할 뿐더러,
그에 대한 고민은 진실을 맞닥뜨린 후에 진행해도 충분할 것이다.
“...”
스멀스멀 올라오는 긴장감을 찬찬히 가라앉히며,
밀크마스터는 승부수를 던졌다.
유민의 입 안에 잠시 담겼다가,
금세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고소한 헌터밀크.
보관 용기를 가득 채우고 있던 그것이,
밀크마스터의 뱃속으로 모두 사라졌다.
잠시 눈을 감아, 다섯 번째 헌터유가 남기고 간 뒷맛을 음미하던 유민.
그는 이내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리고,
기쁨에 가득 찬 미소를 지었다.
[조건 A를 달성했습니다.]
[생산자 ‘강다희’를 3급 회원으로 등록할 수 있습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실험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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