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늑대 밀크와 두 번째 회원 (6)
* * *
“...으으.”
이내, 축 늘어져 있던 다희의 몸에 생기가 돌아왔다.
그것을 본 서울이 재빨리 유민의 넓은 등 뒤로 모습을 감추었다.
황금빛 눈을 끔뻑이며 흐릿하던 시야를 복구시킨 다희.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유민과 수유를 진행하던 그 장소 그대로였다.
자신이 깔고 앉아있는 것도 익숙한 그루터기였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런 생각에 약간 몽롱한 정신으로 기억을 되짚어보던 그녀는,
자신의 아랫배 안쪽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에 흠칫했다.
포근한 온기와 함께 소중한 곳에 채워져 있는 무언가.
어제 유민에게 진득하게 사정을 당했을 때와 똑같은 느낌이었다.
그와 함께 발정 상태에 의해 파편화되어 있던 기억을 짜 맞추는 데 성공한 다희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발정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던 자신의 상태를 확인한 유민이,
곧바로 꼬리를 잡아채서 그 이상한 기술로 자신을 발정하게 만든 뒤,
그루터기를 붙잡게 하고 후배위로 격렬하게 교미를 진행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내 몸 상태를 와리가리 하게 한 범인은.
다희는 곧장 황금빛 눈을 노랗게 번뜩여, 당사자 색출에 나섰다.
휙휙 돌아가던 늑대의 눈빛은, 이내 유민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 라임빛 시선과 마주할 수 있었다.
상대도 그것을 눈치 챘는지, 슬그머니 유민의 등 뒤로 숨어들었다.
그대로 벌떡 일어나서 서울을 자신의 앞으로 끌고 오려 했던 다희는,
자신의 어깨 위에 올라가 있는 유민의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고 멈칫했다.
마치 자신을 제지하려는 듯한 몸짓이었다.
“유민?”
“일단 진정해, 누나.”
유민은 그렇게 말하며,
밝은 회갈색의 머리칼 사이로 다희의 뒷목에서부터 등 아래까지 살살 쓰다듬어 주기 시작했다.
“아, 하아...”
유민의 부드러운 손길이 뒤를 쓸어내리자, 저절로 다희의 기분이 노곤노곤해져 왔다.
그와 함께 서울에 대한 짜증이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한숨을 내쉬며 그것을 느끼고 있자, 유민이 입을 열었다.
“화 좀 풀렸어?”
“화난 건 아닌... 어으, 아니. 화 덜 풀렸어.
좀 더 만져 주라. 아후으...”
그렇다고 서울에게 진심으로 분노한 것은 아니었기에 무심코 그렇게 말하던 다희는,
유민의 손길을 좀 더 오래 느끼기 위해 짐짓 화난 체를 하며 말을 바꾸었다.
다희의 그런 의도를 단박에 알아챈 서울이 그녀를 흘겨보았지만,
자신이 저지른 짓이 있는 지라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 두 사람의 심정을 알지 못하는 유민은,
다희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정성껏 뒷목과 목어깨, 날개뼈 사이의 중심선을 따라 그녀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날카롭던 눈매가 호선을 그린 채 반쯤 감겨들어,
게슴츠레한 눈으로 연신 흐으, 흐응. 하고 만족스럽게 그르렁거리는 암컷 늑대.
그렇게 몇 번이고 다희를 쓰다듬던 유민이, 다시금 그녀에게 물었다.
“이제 괜찮아?”
“으음... 뭐, 일단은. 얘기하면서 계속 해 줘.”
시간만 된다면 계속해서 쓰다듬어지고 싶었던 그녀였지만,
아직 던전의 공략이 덜 끝났기에, 다희는 아쉬운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하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에 유민은 그녀를 어루만지는 손길을 멈추지 않으며,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난 잘 몰라서 묻는 건데, 어떻게 된 거야?
서울 누나는 왜 다희 누나 꼬리를 당긴 거고?”
“흐으... 아니, 뭐 그냥... 그거지.”
이미 유민의 손길로 보상을 한껏 받게 되어 마음이 한참 전에 풀린 다희는,
무심히 서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화 안 낼 테니까 네가 말하라는 듯한 눈빛.
그것을 본 서울은, 유민 덕분에 다희와 드잡이 질을 하지 않게 된 것에 안도했다.
약간 다르기는 했지만, 자신이 일을 저지르기 전에 계산한 그대로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서울은 순순히 내막을 털어놓았다.
“으응. 그냥 내 앞에서 그렇게 둘이 꽁냥대고 그러니까... 좀 장난치고 싶어져서.
미안해, 언니.”
“후흐, 그냥 질투했다 하면 되지... 뭐 그리 돌려말하냐.”
“윽...”
유민에게 쓰다듬어지느라 살짝 풀린 말투로 그렇게 서울의 정곡을 푹 찌르자,
서울이 움찔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뭐, 덕분에 유민이랑 던전 안에서 교미도 해 보게 되고, 좋다 야.
고마우니까 특별히 용서해 줄게?”
“으이이...!”
유민의 정액이 들어차 있는 아랫배를 슥슥 쓰다듬어 보이며,
다희는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그렇게 서울을 약 올려 댔다.
그에 서울이 뭔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분함을 표출했지만,
모두 자신의 업보였으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양 주먹을 꽉 쥐고, 유선 마사지가 예정된 오늘 밤을 기약하는 수밖에.
“...얘기 끝났으면 빨리 가자, 유민아. 다희 언니 그만 쓰다듬고.”
“어우, 유민이랑 너무 열심히 해서 허리에 힘이 안 들어가네?”
“이씨, C급 헌터가 무슨 섹... 그거 했다고 힘이 빠져요!?
전 밤새 해도 멀쩡했거든요!”
능글거리는 다희의 말에,
순간 울컥한 서울이 쉽게 입에 올려선 안 될 말을 내뱉고 말았다.
“...밤새 했었냐?”
“읏...”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말에 눈을 치켜뜬 다희가 그렇게 되묻자,
순간 서울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하지만 이미 이렇게 된 사이에 무얼 숨기겠냐는 생각으로,
이내 당당히 사실임을 시인했다.
“...뭐, 그렇죠! 유민이네 집에서 새벽 될 때까지 했는데요?”
“아니, 그건 좀 부럽네이씨...”
그렇게 중얼거리던 다희는,
고개를 스윽 돌려 유민을 바라보았다.
유민은 그녀의 입가에 진득한 미소가 맺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유민아. 같은 회원인데 평등해야 되는 거 아니냐?
오늘 너네 집 가면 되는 거지?”
“어?”
서울이 그 말을 듣고 화들짝 놀라 득달같이 외쳤다.
“무, 뭔 소리에요, 언니! 그 때는 솔루션 때문에 그렇게 된 거였는데!”
“아, 농담이야 이 년아. 평일은 던전 돌아야 되는데 어떻게 밤을 새.”
“...”
다희는 그냥 해본 소리였다는 듯이 손을 내젓고는, 그루터기에서 몸을 일으켰다.
회색 탱크탑 자락을 다시 내리고 집업을 똑바로 걸친 뒤,
그녀는 유민의 어깨를 탁탁 두드리며 걸음을 옮겼다.
“슬슬 가자. 게이트 아저씨가 뭐라 하겠다.”
“아, 응. 서울 누나. 가자.”
“으응...”
옆에 세워 두었던 방패를 들어 등에 지고,
유민과 함께 자연스레 다희의 뒤를 따르는 서울.
이내,
그녀는 다희가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닫고 소리를 질렀다.
“주말에도 안 돼요, 언니!”
“에이씨, 이걸 못 넘어가네.”
“어? 뭐가?”
서울의 외침에 다희가 아깝다는 듯이 혀를 찼다.
유민이 영문을 모른다는 듯이 그렇게 묻자,
다희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몸을 빙글 돌려 뒤로 걸으며 유민과 서울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럼 물어보자. 왜 안 된다는 거냐?”
“말했잖아요! 그건 솔루션 때문에 유민이랑 합의 하에 그렇게 한 거라고요!”
“솔루션이 밤새 교미하는 거였어?”
“그건 아니지만...! 부작용 때문에 그랬어요!”
“아하. 회원은 행복해야 되는데,
부작용 때문에 그러질 못 하니까 유민이 책임져 줬던 거였네?”
유민의 발언을 기억하고 있던 늑대의 날카로운 정리에,
서울이 순간 말문이 막혔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좋아. 그럼 유민이한테 물어 볼까? 야. 유민.”
“응?”
“내가 너랑 밤새 교미 못 해서 슬프다고 하면, 그것도 책임져 주는 거냐?”
“...!”
“?!”
그 말에 유민이 꽤나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자신은 솔루션 회원의 행복을 바라고 있다.
헌데 그 행복을 위해 자신과의 교미, 아니. 성관계가 필요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헌터밀크와 그 솔루션에 누구보다 진심인 유민으로서,
그가 내놓을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럼 해야지. 시간이 되는지는 따져봐야겠지만.”
“무, 뭐?!”
“그렇대는데? 유민이는 이런 놈이야.”
피식 웃어 보이는 다희의 말에 복잡한 표정이 된 서울은,
이내 유민의 한쪽 팔을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그, 그럼! 유민아!”
“어, 응.”
“유민이가 저 언니랑 밤새 그걸 했을 때 내가 슬프다고 하면,
그 땐 어떻게 할 거야?”
“어...?”
“아니, 야! 그걸 카운터치냐!?”
그 물음에 다희가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며 외쳤지만,
서울도 질세라 맞받아쳤다.
“제가 언니랑 유민이랑 만리장성 쌓는 걸 그냥 두고 볼 거 같아요?!”
“너도 유민이랑 했다면서, 임마!”
다희와 서울이 그렇게 티격대는 동안,
유민은 참으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회원 한 명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원하는데,
그렇게 하였을 때 다른 회원이 행복하지 못 하게 된다면.
솔루션 제공자로서의 자신은 어떠한 판단을 해야 하는가?
애초에 현실적으로 모든 회원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과연 솔루션을 진행하면서 가능한 일인가?
모두의 행복을 지키는 것은, 그저 자신의 희망에 불과한 것인가?
잠시 그런 비관적인 생각이 들던 유민은,
이내 그 어두침침한 것을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 자신의 신념을 채워 넣었다.
헌터밀크에 있어서 타협은 없다.
반드시, 이 한 몸 바쳐서라도 솔루션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
유민은 이내 걸음을 멈췄다.
덩달아 그 자리에 멈춰 서게 된 다희와 서울은,
유민이 두르고 있는 비장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흠칫했다.
“...!”
그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무척이나 진지한 상태였다.
이내 유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서울 누나.”
“어, 어?”
“내 욕심일 수도 있지만,
난 내 회원들이 모두 행복했음 좋겠어.”
“...”
유민이 손을 뻗어,
서울의 손을 살며시 맞잡아 쥐었다.
“어...?”
“다희 누나랑 밤새 해서 누나가 슬퍼졌을 때,
내가 누나한테 뭘 해주면 누나도 행복해질 수 있어?”
“어, 읏...”
서울의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그렇게 말하는 유민의 진중한 얼굴.
마치 자신만을 바라봐 주는 것만 같은 그 모습에 서울의 귀가 붉어지며,
무언가 풋풋한 소녀와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물론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다희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꼬리를 휙휙 저었지만,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입을 열어 끼어들지는 않았다.
“서울 누나?”
“아, 아니 그...”
유민에게 잡힌 손을 꼼지락거리며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던 서울은,
이내 고개를 휙휙 저어 대며 혼란스럽던 정신을 바로 세웠다.
정신 차려라, 유서울. 상대는 유민이다.
둘 중 한 명 고르라는 말에, 둘 다 책임지겠다고 선언한 그런 놈이란 말이다.
자신의 기분이 나아짐과 동시에,
다희를 견제할 수 있는 방법.
서울은 이내 그 해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럼 나도 껴 줘.”
“어?”
“저 언니랑 밤새 할 때, 나도 껴 달라고.
언니 혼자 뭔 짓을 할 지 모르니까, 나도 같이 할 거야.”
“...진짜냐?”
설마 했던 그것이 서울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다희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이리 당당하게 3P를 선언한다고?
그런 다희의 물음에,
서울이 눈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유민을 빼앗기지 않고 지켜내겠다는,
쉴더로써의 굳건한 의지가 서울의 눈동자에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을 본 다희의 눈썹이 슥 위로 올라갔다.
이 년 봐라.
“왜요? 못 하겠어요, 언니?”
“...”
그와 함께 자신에게 마무리로 던져진 도발에,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그녀는 이내 피식 웃어 보였다.
그것을 무시하고 유민과 단둘이 교미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마음속의 늑대는 그렇게 꼬리를 말고 도망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울부짖었다.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이다.
다희는 날카로운 늑대의 안광을 서울에게 쏘아 보내며,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주말에 시간 비워 놔라.”
“언니야말로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