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9화 〉계약 성립과 파티 사냥 (4) (59/116)



〈 59화 〉계약 성립과 파티 사냥 (4)

외뿔 토끼들이 그녀들의 지척까지 접근하게 되자,
서울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탱커로서 행동을 개시했다.

그녀는 왼팔에 장착된 묵빛 타워 실드를 들어올려,
그대로 쿵. 하고 땅을 내리찍었다.

방패에 담겨 있던 서울의 마력이, 그 움직임을 통해 파장의 형태로 넓게 퍼져 나갔다.
그것은 근거리에 위치해 있는 몬스터들을 자극하여, 서울에게로 관심을 집중시켰다.

세 마리의 싱글혼 래빗들이, 일제히 방향을 바꿔 서울에게 달려갔다.
뿔을 앞세운 일직선의 돌진 공격이 정직한 경로를 그리며 짓쳐들었다.

침착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울은, 발을 대각선으로 벌리며 균형을 잡았다.
그녀는 놈들의 공격을 방패 정면으로 정직하게 맞닥뜨릴 생각이 없었다.

서울의 방패가 교묘하게 각도를 틀었다.
그녀는 비스듬히 내밀어진 방패로 내찔러 들어오는 뿔을 빗겨내고,
동시에 상대를 짧게 밀쳐 튕겨냈다.

-터엉!

“■?”

상대에게 공격을 시도하던 외뿔 토끼는,
어느 순간 시야가 뒤집혀 바닥을 구르게 된 자신의 모습에 의문을 표하며, 알아듣지 못할 소음을 내었다.

패링.
서울이 방패의 내구도를 최대한 보존하여 유지비를 아낄  있도록 노력한 결과,
무게 조절 스킬 다음으로 숙련도가 제일 높은 기술 중 하나였다.

-텅! 카캉!

“■!”

“■!?”


짧은 순간에 패링이 연달아 이어지며,
외뿔 토끼들이 몸을 내던져 가며 감행한 공격이 실패로 돌아갔다.


“후욱...!”

녀석들이 바닥에 나동그라지고 있을 즈음,
때를 노리던 다희가 한번 거친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는 이내 꼬리를 위협적으로 세우고, 상체를 지면에 가깝게 낮추어 빠르게 돌진했다.
그 모습은 먹잇감을 노리고 달려드는 한 마리의 늑대와도 비슷했다.

놈들이 다희의 공격을 눈치 챘을 시점에는,
이미 그녀의 마력이 짙게 서려 있는 주먹이 그중 한 녀석의 코앞까지 들이밀어져 있었다.

-쩌억!

“■-!!”

“■?!”

부러진 외뿔 하나가 허공을 가른다.
다희의 주먹보다 한층 커다란 무언가에 직격당한 것처럼, 녀석의 안면이 크게 뭉개졌다.
한순간에 반죽음 상태가 된 외뿔 토끼의 갈색 몸체가 뒤로 퉁퉁 튕겨 나갔다.

동료들 중 하나가 늑대의 일격에 뿔을 잃고 쓰러지자,
몸을 일으킨 싱글혼 래빗 두 마리의 흉흉한 시선이 다희에게로 향했다.


-쿵!


허나 다희에게 신경을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마력을 담은 서울의 방패가 한   땅을 내려찍었다.

그렇게 몬스터들의 관심이 다시 서울에게 쏠리게 되는 순간,
이미 상황은 종료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C급 헌터의 각력이 실려 있는 흉악한 외형의 부츠가   마리의 뿔을 박살내 버리고,
어느  혼자 남게 된 외뿔 토끼가 죽기 살기로 땅을 박차고 서울을 향해 뛰어올랐지만,
그 필사의 뿔 공격은 너무나 간단하게 묵빛 타워실드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추진력을 잃고 공중으로 튕겨져 나가는 녀석의 몸체.
그 위로, 몬스터의 갑각이 덧대어진 부츠 발뒤꿈치가 낙하했다.

“■!!”


뻐억. 하고 시원한 타격음이 울려 퍼진다.
공중에서 다희의 발에 내려찍힌 토끼가 땅에 그대로 처박혔다.

전투를 시작한  얼마 되지도 않아,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린 세 마리의 싱글혼 래빗.

“■...!!”
“■■...!”

그럼에도 살기어린 눈빛을 결코 죽이지 않은 채,
토끼들은 어떻게든 헌터들에게 일격을 가하기 위해 쓰러진 몸을 일으키려 들었다.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바닥을 기는 녀석들의 머리 위로 다희의 부츠 바닥과 서울의 방패 모서리가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D급 평원 필드 던전의 첫 번째 전투가 마무리 지어졌다.

생명 반응이 사라져, 토끼 뒷다리 등의 부산물을 남긴 채 먼지가 되어가는 몬스터들.
다희와 서울의 장비에 묻은 핏자국 또한 모습을 감추었다.

그렇게 토끼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헌터의 표정은 뭔가 미묘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들 중에서 다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쓰읍. 뭔가 애들이 좀 빡세진 거 같다?”

다희의 말에, 서울이 방패를 거두어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힘이 세진  아니고... 좀 더 사나워진 느낌이에요.”

“뭐지? 던전이 그새 좀 바뀌었나? 그런 얘기는 없었는데?”

“다른 애들이 나와 봐야 알 거 같은데요.
유민아! 끝났으니까 부산물 챙겨!”

“알았어!”

유민은 바위 뒤에서 그들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다가,
서울의 외침을 듣고 뛰어와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렸다.

목장갑을 끼고 바닥에 놓여 있는 토실토실한 토끼 뒷다리를 주워  유민.
그는 묘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에 들린 그것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다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던 목각 인형의 나무토막과 스켈레톤의 다리뼈 등을 보아 오던 유민이,
처음으로 생명력이 강하게 느껴지는 몬스터의 부산물을 접하게  것이다.

이미 핏기가 제거된 형태로 부산물이 나타나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유민은 그 뒷다리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에 어깨를 작게 으쓱하며,
유민은 두 헌터들에게 토끼 뒷다리를 들어 보였다.


“이런 건 어디에 쓰는 거야?”

“뒷다리? 보통은 식용이지.”

“먹을 만한데, 가끔 질긴  나와서 난 별로더라.”
아, 그리고 저기에 뿔도 하나 떨어진  같더만.”

“그래?”

닭다리보다 훨씬 큰 토끼 뒷다리는 과연 어떤 맛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가방에 뒷다리를 집어넣은 유민이 다희가 가리키는 곳으로 다가가니,
과연 토끼의 이마에 달려 있던  하나가 온전한 형태로 수풀 사이에 놓여 있었다.

아까 다희의 손발에 전부 박살난 것 같았는데.
아마도 부산물은 그와 별개 취급인 듯 했다.

유민은 끝이 뾰족하고 길다란 뿔을 집어 들어 가방으로 직행했다.
전리품을 모두 챙긴 유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헌터들에게 다가가자,
그는 서울이 방패를 바닥에 세워 두고 이리 저리 살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누나, 뭐 해?”

“으응... 탱커 역할 해본 지가 좀 오래돼가지고,
상태 괜찮은지 잠깐 보고 있었어.”

팔짱을 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희는,
서울의 말에 영 마땅찮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내 눈엔 멀쩡하다니까 그러네.
토끼 뿔 빗겨 쳤는데 스크래치 나면 그게 방패냐?”

“걔들 상태 생각하면 혹시 몰라요...”

“아니, 좀 빡친 걸로 뿔이 그렇게 단단해지겠냐고.”

“몬스터들이 화를 내?”


의문을 담은 유민의 물음에, 다희가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였다.


“몰라. 그 유니콘 놈들이 원래는 좀 순했는데,
뭘 잘못 먹었나, 원수진 것 마냥 미친 듯이 달려드네.”

“...”


다희의 말에,
유민은 문득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언뜻 보았던 유니콘 설화가 떠올랐다.

그것을 언급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는,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방금 만난 녀석들이 유독 난폭한 성질의 몬스터였을 수도 있고,
그녀들이 모르는 변화가 던전에 일어났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내가 누나들  경험을 가져가서 그런 걸 수도 있어.
라는 의견은 상대적으로 현실성이 부족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유민은 서울이 묵빛 타워 실드의 표면에 손을 대어 살살 쓸어 보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두 여헌터에게서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헌터밀크의 달달하고 고소한 향기를 음미했다.

그렇게 서울의 방패 임시점검이 끝난 뒤,
일행은 던전의 공략을 계속 진행해 나가면서 몇 번이고 몬스터들을 조우했다.

푹신거리는 초록색 양털뭉치를 부산물로 남기던 그린 램.
뒷발차기를 날리기 위해 펄쩍 뛰어올랐다가 다희의 일격에 격추당하던 점핑 디어.

그리고,
하나같이 막대한 분노를 품고 달려드는 싱글혼 래빗까지.

늑대의 난폭한 마력이 담긴 주먹을 직격당하고도,
토끼는 굳건한 집념으로 뛰어들어 서울에게 뿔을 내질렀다.

놈의 공격을 비스듬히 빗겨낸 서울은,
방패를 강하게 전방으로 밀어 치며 외뿔 토끼를 뒤쪽으로 튕겨 날렸다.
그 방향의 끝에는 다희가 허리를 비틀며 주먹을 내리꽂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퍼억. 하고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마지막 싱글혼 래빗이 먼지로 화하기 시작했다.
용맹한 토끼의 최후를 내려다보며, 다희는 어딘가 불편한 듯한 표정으로 목을 이리저리 꺾었다. 그리고는 이내 서울에게 한마디 했다.

“후우... 얘네 몇 번째지?”

“이번이 세 번째네요.”


방패를 힐끗 확인한 서울이 그것을 등에 둘러매며 대답했다.


“지금까지  얌전한 애들이 있었냐?”

“없어요, 언니.”

“허 참, 이게 뭔...”

서울의 말에 헛웃음을 지은 다희가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처음에 조우했던 놈들이 변칙 개체인 줄 알았더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
뿔이 하나 달렸다 싶으면 죄다 흉흉한 기세로 본인들에게 달려들어  것이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던전 공략에 있어서 영향을 크게 끼치는 요소는 아니었다.


“...끙.”

그보다,
지금의 다희에게는 더욱 중요한 용건이 남아 있었다.

싱글혼 래빗과 전투를 시작하기 직전부터 자신의 유방이 조금씩 답답함을 호소하더니,
이제는 젖샘이 한계에 달하여, 대놓고 신호를 보내며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헌터밀크를 배출해 내야 할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