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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화 〉계약 성립과 파티 사냥 (3) (58/116)



〈 58화 〉계약 성립과 파티 사냥 (3)

그렇게 우여곡절이 많았던 주말이 지나가고,
유민은 월요일을 맞이했다.

주머니로 도배되어 있는 가죽 재킷과 카고 바지.
그리고 작업용 부츠.

트레이닝복 입은 백수에서 평범한 저급 짐꾼으로 진화한 유민은,
현관 앞에 놓여 있던 커다란 가방을 집어 들어 등에 매었다.

그는 옷매무새를 잠시 가다듬고,
재킷 앞주머니에 들어 있는 목장갑까지  확인한 뒤 집 밖으로 나섰다.

장갑과 가방은 처음에 쓰던 것을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다.
고난이도 던전에서는 부산물을 챙기기 위해 특수한 장갑이나 가방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특별히 주의 사항을 전달받은 것도 없으니, 유민은 일단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이번 역은 XX공원, XX공원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지하철 두세 정거장을 지나 도착하게 된 자그마한 공원.
이 곳에, 오늘 유민이 처음으로 파티 공략을 진행하게 될 던전의 게이트가 위치해 있었다.

D급의 평원 필드 던전.
유민이 앞서 경험했던 지하실이나 동굴 같은 폐쇄형이 아니라,
광활한 공간으로 사방이  트여 있는 개방형이었다.

다희와 서울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이 던전은 D급 중에서도 하위의 난이도에 속하기에  E급에 가깝다고 한다.
C급과 D급 헌터의 2인 파티로도 충분히 공략이 가능한 곳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분홍바위꽃이 무성히 자라나는 던전이기도 했다.

물론 서울의 솔루션에 필요한 바위꽃의 색상은 분홍이 아니라 파랑이다.
허나 어제 검색을 통해 찾아낸 정보들 중에,
분홍바위꽃 사이에서 언뜻 푸른색의 꽃을 본  같다는 소문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소문에 불과하기에, 그 신빙성은 꽤나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해당 던전이 세 사람의  공략 대상으로 적절한 곳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러므로 파랑바위꽃에 대한 소문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다희와 서울 그리고 유민은 이 평원 필드 던전을 택하게 되었다.

파란색의 꽃을 발견하면 그야말로 최고이지만,
파랑바위꽃을 찾지 못하더라도 던전의 공략에 의의를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가능하다면 다희의 솔루션 회원 등록까지 던전 안에서 끝마친다.
그것이 오늘 유민의 핵심 목표였다.

솔루션에 대해 생각하며 잔디 사이로 놓인 길을 조금 걷다 보니,
유민은 어느새 공터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유민이 이전에 경험했던 F급 던전의 게이트 주변에 비해, 꽤나 사람이 많아 보였다.
 중의 대다수는 여성 헌터들이었다.

그리고,
여헌터들이 모인 곳에는 반드시 헌터밀크의 향이 풍길 수밖에 없다.

사방이 트인 공원이라 냄새가 그렇게 짙은 것은 아니었지만,
헌터밀크에 누구보다 진심으로 임하는 유민의 후각은 그것을 날카롭게 캐치해 냈다.

여러 헌터들에게서 흘러나오는 달달한 헌터밀크의 혼합향을 음미하며 주변을 살짝 두리번거리던 유민은, 이내 원하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사람이 아니라 사물이었다.
여러 병장기를 지닌 헌터들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눈에 띄는, 묵빛의 대형 타워 실드.
누군가의 등에 매어진 그것의 위아래로 우윳빛 머리칼과 투박한 안전화가 빼꼼히 튀어나와 있다.

그 옆에는,
밝은 회갈색의 풍성한 머리칼을 지닌 인물이 복슬복슬한 늑대 꼬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어제 헌터 마켓에서 보았던 옷차림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유민이 그렇게 늑대 수인 헌터- 강다희를 바라보고 있자,
다희는 이내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는지 늑대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더니, 정확히 유민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슥 돌렸다.

노랗게 빛나는 늑대의 시선과,
밀크마스터의 회색 눈빛이 공중에서 마주쳤다.

“...!”


그러자 날카롭게 치켜 뜨여 있던 다희의 눈매가 순간 호선을 그리며 풀어졌다.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늑대 꼬리가 몸을 일으켜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주인을 만난 강아지와 흡사한 다희의 모습에,
거대한 방패를 등에 지고 있던 우윳빛의 헌터 또한 유민 쪽을 돌아보았다.

그렇게, 셋은 공원에서 하루 만에 재회하게 되었다.


“유민이 왔어?”

“왔냐? 어째 막내가 제일 늦어?”

“나름 빨리 나온 건데...”

이내 가까이에서 다희의 모습을 보게 된 유민은,
그녀의 옷차림이 결코 어제와 비슷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거기에서  더 변형되거나 추가된 쪽에 가까웠다.

평범한 스포츠웨어의 재질이 아니라 가죽에 가까운 것으로 제작되어,
운동 이상의 격렬한 전투에 적합해 보이는 디자인의 집업.

그 밑자락 아래로 허벅지 위쪽을 감싸고 있는 반바지 형태의 레깅스- 스패츠 또한 일반적인 나일론보다 한층 구조가 탄탄해 보였다.

무엇보다 유민의 시선을 끄는 것은,
운동화 대신에 다희의 발에 신겨 있는 부츠와,
 위로 연결되어 종아리 아랫부분을 보호하는 각반이었다.

곳곳이 금속과 비슷한 소재로 단단하게 덧대어져 있는 것이,
대충 걷어차도 상대에게 심각한 수준의 타격을 입힐 것만 같은 흉악한 모습이었다.

유민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아챈 다희는, 씩 웃으며 발을 들어 몇 번 굴러 보였다.

“맨 몸으로 던전 뛰려면 이 정도는 있어야지. 장갑도 보통 물건 아냐, 이거.”


그렇게 말하며 다희가 유민에게 손등을 내어 보였다.
어두운 색의 반장갑은 너클과 비슷한 형태로 단단한 재질이 그 위를 덮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사람에게 무턱대고 내지를 만한 물건은 아닌 듯 했다.

그 살벌한 형태를 목도한 유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누나도 진짜 헌터긴 헌터구나.”

“어제 명함도 줬는데 이제 와서 뭔 소리야, 자식아.”

그렇게 말하며 주먹으로 유민의 어깨를 툭 치려던 다희는,
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망설이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

“...에라이씨.”

“윽.”

그러더니 이내 몸을 휙 돌리면서 복슬복슬한 늑대 꼬리를 휘둘러, 유민의 복부를 찰싹 때렸다.
 모습에 서울이 헛웃음을 머금으며 핀잔을 주었다.


“뭐 해요, 언니. 그냥 어깨 한  치면 되지.”


서울의 물음에,
다희는 양 손의 장갑을 만지작거리면서 투덜거렸다.

“내가 이거 끼고 힘 조절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래, 임마...”

“...”


그 동안 다희가 어떤 인간관계를 겪으며 던전을 돌았는지 단적으로 드러나는 대답에,
서울이 순간 말문을 잃었다.
허나 서울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럼 앞으로 하면 되죠. 우리 이제 파티잖아요, 언니.”

“끙...”


살짝 가라앉았던 분위기를 그렇게 회복한 셋은,
이내 본인들이 예약했던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내원에게 확인을 받은  게이트에 들어섰다.

타원형으로 일렁이는 게이트를 통과하자,
그 너머에는 맑은 하늘과 함께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듬성듬성 자라나 있는 나무와, 땅 위로 낮게 드러나 있는 바위들이 눈에 띄었다.

지하실과 동굴의 어둑어둑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만을 겪어 왔던 유민으로서는,
탁 트인 언덕 너머로 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평원 필드 던전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신기한 눈치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주변을 구경하는 유민.
다희는 그런 유민의 모습이 퍽 신선해 보였다.

“저렇게 보니까 초짜긴 초짜구나.
헌터유 얘기할 땐 거의 무슨 베테랑 뺨치는 분위기였는데.”

“유민이가 원래 좀 갭이 커요.
쟤 던전 처음 들어갈 때 되게 긴장해가지고, 제가 달래줬잖아요.”


서울의 말에, 다희는 잔뜩 겁먹고 덜덜 떠는 유민을 상상해 보았다.
뭔가 그다지 현실감은 없지만, 자신의 보호욕은 충분히 자극할 수 있을  했다.


“오... 개 쫄아있는 유민이...
군침 도네. 왜 난 못 봤지?”

“저번 주에 있었던 일인데 언니가 어떻게 알아요...”

“걍 해본 소리야.
야, 유민! 구경 그만하고 가자.”

“알았어, 누나.”

두 헌터와 짐꾼  명은 곧 초원의 한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가만히 다희와 서울의 뒤를 따르던 유민은, 차오르는 의문을 견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누나들?”

“응? 왜?”

“엉?”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그들에게, 유민이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 탁 트여 있는데,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아, 그걸 안 알려줬구나.”

“꽉 막힌 데만 다녔으면 모를 만 하지.”

두 헌터는 그런 유민의 의문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서울이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켜 보였다.


“유민아, 하늘에 구름 보여?”

“구름?”

그녀의 검지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들어 올린 유민은,
푸른 하늘에 길다랗게, 또는 점점이 펼쳐진 하얀 구름들을 볼 수 있었다.

“구름이 왜...?”

“걔들을  살펴 봐봐.”

서울의 말을 듣고 구름들을 유심히 훑어 본 유민은,
이내 그 불규칙해 보이는 녀석들에게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쪽으로, 가라는 거야?”

“맞아.”

유민의 말에 서울이 정답이라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구름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허나 그 모든 것을 전체적으로 시야에 담게 되면,
녀석들이 어느 한 방향을 교묘하게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늘의 거대한 이정표가 일러 주는 곳이, 바로 그들의 목적지인 것이다.


“되게 신기하네...”

“으응. 나도 처음에 그랬어.”

“뭐, 등급 더 올라가면 저런 것도 없다는데, 지금 생각할 거는 아니고.”


던전에 대한 경외감과 함께 유민의 의문이 풀리고,
일행은 구름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이동했다.

그러던 도중,
다희의 늑대 귀가 몇 번 쫑긋거렸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발걸음이 멈췄다.

선두에서 걷고 있던 다희가 그러한 반응을 보이자,
뒤에서 그것을 본 서울이 신속히 등에서 방패를 꺼내들어 왼팔에 장착했다.

늑대 꼬리를 위협적으로 치켜세운 다희가,
기세를 끌어올리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오른쪽에서 온다. 유민이 뒤로 빼.”

“유민아. 저쪽 바위 뒤로 가 있을래?”

“알았어.”

일행의 왼쪽,
다희가 말하는 몬스터의 방향과 반대로 떨어진 쪽의 바위로 유민이 재빨리 뛰어갔다.

그러는 동안 다희와 서울은 나름의 진형을 갖춰,
오른쪽의 언덕 너머에서 점차 모습을 드러내는 몬스터들을 향해 조금씩 나아갔다.

놈들의 정체는,
어린이만한 몸집을 지닌 갈색 토끼였다.

일반적인 토끼의 모습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듯한, 흉악한 인상을 지닌 토끼들.
녀석들은 모두 이마에 뿔을 하나씩 달고 있었다.

싱글혼 래빗.
헌터들 사이에선 유니콘 토끼라고도 부르는 D급 몬스터 3마리가,
발달된 뒷다리로 땅을 박차며 서울과 다희에게 돌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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