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계약 성립과 파티 사냥 (1)
유민의 진지한 눈빛에 당황하던 다희가 수건을 가져오겠다면서 재빨리 자리를 벗어난 이후,
서울은 그녀가 허둥지둥하는 모습에 킥킥 웃고 있다가,
이내 붉은 기가 어느 정도 가신 얼굴로 유민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시간은 좀 채워졌어?”
“아, 확인해 볼게.”
서울의 질문에 유민이 상태창을 열었다.
그녀의 회원 정보에서 3급 솔루션을 확인하자, 유민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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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급 솔루션 진행 중
- 유선 마사지 10시간(미달성 : 0시간 7분)
- 힐링 밀크 포션 복용 (미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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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미달성’ 이라고만 표기되어 있던 곳에, 시간 단위가 새롭게 추가되었다.
그 위치에 적힌 7분이라는 것은, 분명 유민이 서울의 유선을 집중적으로 자극하기 위해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던 짧은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비록 수행 난이도가 꽤나 높기는 했으나,
어찌 되었든 간에 유민은 조건 달성에 대한 해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 사실에 기쁨을 느끼며, 유민이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방금 마사지 했던 시간만큼 기록됐어.”
“...그, 깊숙한 데까지 막 간질거리는 그거?”
“맞아. 그걸 유선 마사지라고 부르나 봐.
왜? 느낌이 별로였어?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어렵긴 했는데.”
탐구심에 반짝이는 유민의 눈을 마주한 서울.
그 살짝 부담스러운 눈빛에 시선을 슬쩍 피하며, 서울은 그의 질문에 작게 웅얼거렸다.
“으응, 아니... 그, 별로라기 보단, 느낌이 되게 낯설어서...”
“그래? 음. 10시간동안 하다 보면 좀 나아질까?”
“안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길 바래야지. 응.”
그렇게 말하며 서울이 후드티의 가슴께를 무심코 살짝 만졌다가,
손끝에서 느껴지는 축축한 감각에 윽. 하고 미간을 좁히며, 젖지 않은 옷자락에 손을 문질렀다.
“근데... 앞으론 수건 같은 걸로 감싸고 해야겠다, 이거.”
“위에는 벗고 하는 게 낫지 않아?”
무언가 의도를 품고 있는 유민의 그런 물음에,
서울은 혹시나 해서 넌지시 유민의 마음을 떠 보았다.
“...왜, 누나 가슴 보고 싶어서?”
“아니. 유선을 그렇게 자극했을 때, 정확히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어서.”
“...”
남자로서의 욕망 대신에 탐구심이 그 자리를 채운 듯한, 아주 담담하기 그지없는 유민의 대답.
그것에 서울이 헛웃음을 머금으며, 그럼 그렇지 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유민은 유민이라는 감상만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될 때쯤,
다희가 수건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얘기하는 거 저기서 다 들었다, 이 헌터밀크에 미친 놈아.
자, 수건 받아라.”
“아. 고마워요, 언니.”
“거기서 들렸어?”
“고럼. 내 머리 위에 이게 장식으로 보이냐?”
다희는 그렇게 말하며, 머리 위에 돋아난 늑대 귀 양쪽을 몇 번 튕기듯 까딱여 보였다.
그 귀여운 움직임에 시선이 쏠려 있던 유민은, 문득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다희는 흥분 상태에 들어갈수록 헌터밀크의 고소한 향기에 당분이 섞여, 냄새가 더욱 풍부해진다.
이는 유민이 다희의 꼬리를 자극해봄으로써 증명된 사항이다.
그렇다면,
지금 다희의 밝은 회갈색 머리칼 위에서 쫑긋거리는 저 늑대 귀를 자극하게 될 경우,
과연 어떠한 현상이 발생하게 될 것인가?
만약 귀 또한 꼬리와 비슷한 결과를 도출한다면,
귀와 꼬리를 동시에 자극하게 되었을 때는 그 냄새의 변화가 얼마나 드라마틱해질 것인가?
헌터밀크에 관한 탐구심을 한껏 자극하는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니자,
저절로 유민의 눈빛에 진중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늑대의 감각으로 누구보다 빠르게 그것을 눈치 챈 다희가, 살랑이던 꼬리의 움직임을 멈칫했다.
그리고는 재빨리 상반신을 틀어 젖가슴 쪽을 가리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왜 또 그렇게 쳐다봐? 아직도 마사지에 미련 있어?!
난 아직 솔루션 시작도 안 했잖아, 임마!”
“아니, 그건 아닌데...”
그렇게 다희와 유민이 대치 아닌 대치를 하던 도중,
서울이 다희의 외침에서 어떠한 키워드를 포착해 내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녀는 푹 젖은 후드티 위로 수건을 꾹꾹 누르며, 유민에게 말을 걸었다.
그로 인해 유민의 관심이 서울에게로 향하자, 다희가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 그러고 보니까 유민아.”
“어? 왜, 누나?”
“솔루션 시작한다는 말 듣고 생각난 건데,
우리 그 대가 얘기는 안 하지 않았어?”
“...아.”
“대가? 솔루션에 대가는 왜... 아니. 그렇긴 하네.”
서울의 말에 유민이 기억났다는 듯이 짧게 탄성을 흘렸다.
다희는 그것을 듣고 잠깐 의문을 표하다가, 이내 납득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밀크 솔루션은 헌터밀크의 품질을 상승시키는, 대단한 효과를 지닌 스킬이다.
그러한 것을 아무 대가도 없이 유민에게 받을 순 없는 것이다.
서울은 4등급에서 한 단계 상승하는 대가로, 유민에게 2번의 수유를 허락했다.
그 중에서 한 번은 던전에서 생산되는 헌터밀크를 그대로 빨아 마실 수 있게끔 해 준 것이었다.
사실 헌터유 품질 향상에 관한 대가라기엔 현실적으로 초라하기 그지없는 보상이었으나,
유민이 그것으로 만족했기에 어영부영 넘어가는 감이 있었다.
허나 이제는 그렇게 대충 넘어갈 수 없었다.
3등급에서 2등급으로 올라가는 만큼 그 가치는 더욱 커졌고, 회원 또한 늘어나게 되었다.
그렇기에,
밀크마스터와 솔루션 회원 간에 좀 더 체계적인 계약이 필요했다.
두 사람, 특히 솔루션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다희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주던 서울은 그러한 결론을 내리며 뒷말을 덧붙였다.
“이제 그냥 누나 가슴 빠는 걸로 끝날 문제가 아냐, 유민아.
너는 만족할지 몰라도, 나는 그렇게 못 해. 너한테 더 잘 해 주고 싶어.
유민이 덕분에 삶의 질이 달라지는 건데, 그렇게 퉁쳐 버리면 되게 부담스럽단 말야.”
서울의 설명을 듣고 있던 다희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뜻을 내비쳤다.
“...그래. 그건 쟤 말이 맞는 거 같다.
니가 아무리 헌터유에 미쳐 있다고 해도 이건 양보 못해주겠는데.
그렇게 좋은 걸 하게 해 줄 거면 우리도 보답을 할 기회를 줘야지, 임마.”
“...”
유민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두 여헌터의 말을 듣고 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나는... 그렇게 많은 걸 바라고 누나들한테 솔루션을 해 주는 게 아니었어.
그냥 좋은 헌터밀크를 접하고 싶어서, 헌터밀크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서 그랬던 거지.”
“...”
“근데, 누나들 말 듣고 보니까... 내가 좀 잘못 생각한 거 같아.
솔루션 받는 사람이 행복해야 하는데, 행복해야 좋은 헌터밀크가 나오는데...
정작 솔루션 자체를 부담스럽게 느끼게 되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잖아.”
엄숙한 분위기를 두른 채,
유민은 두 사람을 찬찬히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대가는 누나들이 결정해 줘.”
“...우리가?”
“서울 누나가 3등급으로 올라갈 때 내가 원했던 그거,
사실 내 나름대로 진지하게 생각한 대가였어. 그냥 퉁치는 정도의 그런 게 아니라.”
“아... 그, 미안해 유민아. 그렇게 말해서.”
유민의 말에 순간 눈이 커진 서울이 그렇게 사과를 건넸다.
허나 유민은 그럴 필요 없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저어 보였다.
“누나 잘못 아니야. 그런 말 안 해 줬으면 지금 뭐가 문제인지 몰랐을 걸.
그래서... 난 그렇게 막 큰 욕심은 없고,
그냥 다희 누나랑 서울 누나가 편한 마음으로 솔루션 받았으면 좋겠으니까,
이건 누나들이 결정하는 게 나을 거 같아.”
“...”
“흠.”
유민의 말대로,
등급 상승에 대한 대가를 진지하게 수유로 결정할 정도로 유민은 별 욕심이 없었다.
그가 솔루션을 통해 원하는 것은 헌터밀크에 대한 탐구욕의 충족이었고, 그것은 실시간으로 진행 중에 있었다.
따라서 유민의 의견은 꽤나 타당했다.
본인이 대가를 제시해 보았자, 그것은 솔루션에 비하면 필시 부족하기 그지없을 터.
그렇기에,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유민에게 합당한 보수를 주고 마음의 짐을 덜어내려는 당사자들이,
직접 그 보상을 결정하도록 하여야 그나마 옳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서울과 다희는,
서로 짧게 시선을 교환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둘 중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서울이었다.
“좋아. 그러면... 내가 주말 동안 미리 생각해 놨던 조건인데, 한 번 들어볼래?”
“엉? 미리 짜 놓고 있었냐?”
“그러니까 이렇게 계약이니 뭐니 얘기를 하죠, 언니.”
그렇게 말한 서울은 잠시 허공을 쳐다보며 머릿속을 뒤져보는 듯하더니,
한 손에서 검지만 펼쳐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일단 핵심은, 헌터밀크 수익에서 최소 30퍼센트 이상.
원한다면 돈이 아니라 헌터밀크로 줄 수도 있고.”
“음.”
“30퍼센트...?!”
별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다희와 다르게,
유민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큰 규모에 흠칫 놀라 저도 모르게 그리 외치고 말았다.
허나 서울은 그런 반응을 충분히 예상했다는 듯이, 어깨를 작게 으쓱해 보였다.
“헌터유 등급 향상이 보장된 계약인데, 최소한 이 정도는 해 줘야지.
난 이것도 적다고 생각하는데, 네가 부담스러워 할 까봐 낮춘 거야.”
“아니, 지금도 충분히 부담스러운데...? 누나 지갑 사정도 생각해야지.
적어도 절반으로 낮춰 주면-”
“여기서 뭘 절반을 빼, 임마. 15퍼센트 가지곤 안 돼.”
다희가 북슬북슬한 꼬리를 휘둘러 유민의 등짝을 후려치며 그렇게 핀잔을 주었다.
서울 또한 고개를 저어 보이며 거절의 뜻을 표했다.
“3등급 됐으니까 그 정도는 괜찮아. 냉장고도 다희 언니가 사준다고 했고.”
“그래도 이건...”
“그리고 지금처럼 자꾸 거절할 거 같아서,
협상안으로 하나 더 준비한 게 있지.”
“뭔 협상안?”
다희의 물음에,
서울은 잠시 그녀의 눈치를 살짝 보다가, 약간 머뭇거리면서도 확실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그, 던전 안에서...
헌터밀크 착유나 수유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
물론 수유는 아까 말한 30퍼센트 내에서 하는 거야.”
“...!”
“아니, 야. 그건...!”
던전 내 수유/착유 자유이용권.
파격적이라면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제안에, 유민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던전 안에서 가슴을 맘대로 물고 빨고 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말에 다희가 순간 당황했지만,
우리 입장을 생각해 보라는 듯한 서울의 말에 금세 꼬리를 내렸다.
“왜요, 언니.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요.”
“...아니, 그렇긴 한데.”
“유민이 눈 좀 봐요. 아하하, 엄청 초롱초롱해.”
맑은 밤하늘에 쏟아질 듯 흐르는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유민의 눈빛.
그것을 본 서울이 웃음을 터뜨리며, 유민에게 물었다.
“어때, 엄청나지? 헌터밀크 자유이용권. 갖고 싶지?”
“...응.”
언제나 헌터밀크에 진심으로 임하는 유민답게,
그는 결코 진심을 숨기지 못 하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런 유민의 모습에,
서울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당당히 선언했다.
“갖고 싶으면, 30퍼센트 수익도 같이 가져가야 돼. 절대 못 깎아줘.”
“윽...!”
“아니, 뭔 놈의 협상이 이렇게 진행되냐...?”
솔루션 제공자는 대가를 적게 받기를 요구하는데,
고객은 상대가 보수를 더 받아가도록 하기 위해 또 다른 보상으로 딜을 걸고 있다.
참으로 기형적인 협상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에,
다희는 쓴웃음을 흘리며 뒤통수를 긁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