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4화 〉파티 결성과 3급 솔루션 (5) (54/116)



〈 54화 〉파티 결성과 3급 솔루션 (5)

유민은 서울의 3급 솔루션에 대하여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다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다희 누나.”

“엉?”

“서울 누나한테는 허락을 받았는데,
누나한테도 미리 말을  줘야 할 거 같아서.”

“뭐? 무슨 허락?”

“아...”

유민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하는 다희와는 대조적이게,
서울은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대강 짐작하고 귀를 살짝 붉혔다.

“헌터밀크라는 게 가슴에서 나오는 거다 보니까,
솔루션을 진행하다 보면 누나 몸에 손을 대야 될 수도 있어.”

“흠... 뭐, 그렇겠네. 그래서?”


헌터밀크의 등급을, 품질을 상승시킬 수 있는 굉장한 솔루션이다.
당연히 솔루션의 지시 사항도 결코 평범하지는 않을 터.

그 정도는 대충이나마 예상하고 있었기에,
다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허나,
뒤이어 유민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희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근데 문제는, 그 수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몰라.
당장 서울 누나만 해도, 대놓고 ‘절정 금지’ 같은 게 미션 조건에 나왔고.”

“절... 어, 음.”

“...”

절정 금지, 라니.
내가 아는 그 절정... 오르가즘을 뜻하는  맞는 것인가? 그런 게 솔루션에 나온다고?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다희는 서울을 흘끔 곁눈질했다.

고개를 살짝 숙여 우윳빛 머리칼을 늘어뜨린 그녀.
 부드러운 하얀색의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상당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서울은 비록 유민과  일을 다 겪으면서 수치심의 역치가 드높아져 있기는 했으나,
타인의 앞에서 그런 과거가 공개되는 것에는 면역이 그다지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서울은 한껏 볼을 붉힌 채, 내적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수치심에 끙끙거리고 있는 서울의 모습을 엿보던 다희는,
차마 그녀에게 직접 사실을 추궁할 생각을 하지는  하고, 다시 유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나도 그런  나올 수 있다는 거냐?”

“맞아. 그것보다 더 심한 조건이 붙을 수도 있고.
뭐가 어떻게 나올지는 나도 몰라. 사전 데이터가 서울 누나 말고는 없어.”

“...”


유민의 말에 다희의 표정이 묘해졌다.
절정 금지만 해도 이미 평범한 수위를 넘어섰는데, 그보다 더한 것이 나올 수도 있다니.

그에 다희는 약간의 공포심까지 스멀스멀 올라오게 되었지만,
이내 금세 떨쳐 버리고 씩 웃어 보였다.

유민을 놓치기 싫어서 몸을 비비고 살을 섞으며 농밀한 교미까지 자행한 마당에,
이제 와서 수위 같은 것을 걱정해 보았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아니, 오히려 환영이다.
  과격한 조건이 나오게 된다면 그만큼 유민과의 접점도 많아질 것이고,
자신은 유민과 자연스레 관계를 진전시킬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다희는 그렇게 생각하며, 기꺼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뭐, 난 상관없어. 맘대로 해라.”

“...진짜로?”

“그래. 너랑 붙어있으려면 차라리 더 쎈 놈이 나오는  이득 아니냐?”

“어... 그런가?”


그녀의 말에 유민이 약간 미묘한 표정을 지었으나,
다희는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옆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서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쿡 찔렀다.

“아무튼 뭐, 미리 말해줘서 고맙다.
너도 임마, 그만 부끄러워하고 일어나.”

“앗, 찌, 찌르지 마요, 언니...!”

다희의 공격에 몸을 움찔거리며 투덜거리던 서울이 이내 고개를 들고 유민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쳐다보는 것이, 왜 그런 얘기를 해서 부끄럽게 만드냐고 항의하는 듯했다.

그에 유민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해, 서울 누나.
그래도 짚고 넘어가야 되는 얘기라 어쩔 수가 없었어.”

“...알아, 나도.”

“거 참, 부끄럼도 많아라.
이제 니 솔루션 얘기해야 되는데 벌써부터 그러면 어쩌냐.”

“뭐요? 아까 꼬리 잡혀가지고 제 앞에서 낑낑댔다가 부끄러워한  누구읍.”

능글대는 다희의 말에 울컥한 서울이 사돈 남  한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반격하다가,
다희가 다급하게 내뻗은 손에 텁 하고 입이 막혔다.

서울의 입을 강제로 봉인한 장본인이 부자연스럽게 웃으며 유민에게 손짓했다.

“하, 하핫. 이제 마저 얘기하자. 그래서 얘 솔루션이 뭐가 어떻다고?”

“으즈 그능 즘승으 드그즈그, 으? 응응 그르그, 으?”


허나 서울은 입이 막힌 상황에서도, 아니꼬운 눈빛을 한  무언가를 계속 읊어 댔다.
늑대의 감각으로 그것을 용케 알아들었는지, 뺨을 살짝 붉힌 다희가 늑대 꼬리를 휘둘러 서울의 등짝을 후려쳤다.


-팍!

“야잇, 뭘 내가 짐승이 돼! 조용해 임마!”

“끄으! 으 즈끄 뜨르으!”

-찰싹!


복슬복슬한 꼬리에 등을 얻어맞은 서울이 눈을 치켜떴다.
그녀는 영문 모를 외침과 함께 손을 들어 훤히 드러난 다희의 허벅지를 찰지게 내리쳤다.

“악, 씹! 이년  존나 맵네!”

“...어, 응. 일단 두 사람 다 진정하면 시작할게.”

그리하여,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또   다희의 꼬리가 유민의 손아귀에 잡힌 뒤에야,
유민은 본격적으로 서울에게 3급 솔루션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제 진짜 얘기해도 돼?”

“으응. 미안...”

“씨... 왜 또 꼬리 갖고...”

“다희 누나?”

“...미안.”

유민의 진중한 눈빛에 찔끔한 다희가 목을 살짝 낮추며 사과하자,
이내 시선을 거둔 유민은 상태창을 열어 솔루션 스킬을 확인했다.

========
[밀크 솔루션]
○ 고유 스킬

밀크마스터의 본분이자 모든 것.

▶ 헌터 밀크의 품질 상승을 위한 솔루션을 순차적으로 제공한다.
▶ 조건 충족  신규 회원을 등록할 수 있다.

 회원 수 : 1
▷ 유서울 (3급)

- 조건 A : 동일한 생산자의 헌터밀크 3회 이상 복용
???
========

조건 A의 아래 항목은 아직도 모습을 드러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는   있겠지. 유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의식을 집중해 서울의 회원 정보를 펼쳐 보았다.

========
▽ 유서울 (3급)

솔루션 버프 부여  (<◎>)
헌터밀크 생산량 17% 증가
- 헌터밀크 저장량 17% 증가
유방 감도 30% 증가
========


4급의 버프와 비교했을 때, 헌터밀크의 생산량과 저장량이 2퍼센트 상승했다.
그리  차이는 없었기에, 유민은 거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다음 항목으로 넘어갔다.

대망의 3급 솔루션이었다.


========
3급 솔루션 진행 중
- 유선 마사지 10시간(미달성)
- 힐링 밀크 포션 복용 (미달성)

-힐링 밀크 포션 제조법-
재료:
① ‘오리진’ 힐링 포션 150ml
② 3등급 이상의 헌터밀크 300ml
③ 정제수 100ml
④ 파랑바위꽃 11송이

①과 ②와 ③을 잘 섞어, 혼합물 A를 만든다.
혼합물 A를 1시간 동안 약한 불로 끓인다.
(이 때, 5분 간격으로 ④를 1송이씩 투입한다.)
잔여물을 걸러내고 차갑게 식혀 완성한다.
========

4급보다 조건이 하나 추가된 3급 솔루션을 살펴보며,
유민은 입을 열었다.

“서울 누나.”

“응?”

“일단, 10시간짜리 유선 마사지가 있어.”

“마사지 10시간... 으응. 뭐, 괜찮네?”

가슴을 10시간이나 주물러져야 된다는 것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3급에서 2급으로 향하는 솔루션이라기엔 영 임팩트가 없었다.

그렇기에 서울은 유민이 말했던 ‘일단’ 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분명 3급 솔루션의 핵심이 되는 조건이 아직 남아있는  했기에, 그녀는 유민에게 넌지시 말했다.


“근데, 뭔가  중요한 조건이 있을 거 같은데...?”

“맞아. 이번에도 포션이 있어.”

“또?”

유민이 보기에도,
10시간의 유선 마사지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했다.
이번 솔루션 역시 중요한 것은 포션이었다.

허나,
4급 솔루션에서 요구했던 분홍바위꽃 포션보다는 한층 레시피가 복잡해져 있었다.
물론 이것 또한 제조법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정제수와 헌터유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처음 들어보는 재료들이기에,
유민은 서울과 다희에게 질문을 던졌다.

“재료 중에 ‘오리진’ 힐링 포션이랑 파랑바위꽃이 있는데, 혹시 뭔지 알아?”

“...그게 뭐야?”

“힐링 포션은 알겠는데, 오리진은  뭐냐?”

“파랑바위꽃도  모르겠는데...”


두 사람 모두  모르겠는 듯한 눈치였기에,
세 명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여 검색해 보기로 했다.
머리를 맞대고 말없이 액정만 톡톡 두들기는 소리가 다희의 방을 맴돌았다.

그리고, 그들은 검색을 통해 약간의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야. 오리진은 그거래는데? 힐링포션 한정판 같은 거.”

“그럼 좀 비싸겠네?”

“아니... 가격이 문제가 아냐.”


유민의 물음에, 다희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스마트폰 액정을 유민에게 들이대 보였다.
붉은 액체가 담겨 있는, 화려한 장식이 가미된 용기.
 사진 옆에 적혀 있는 하나의 문구가 유민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구매 불가.

유민이 두 눈을 의심할 필요도 없이, 다희의 목소리가 진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없어서  구한댄다. 지금.”

“어...?”

“유민아. 파랑바위꽃을 봤다는 사람은 있는데, 파는 데는 없는 거 같아...”

“...”


하나는 품절.
다른 하나는 존재조차 불투명.
힐링 밀크 포션 재료의 절반이 이 모양이었다.

약간의 성과라고 보기에도 애매한 그 결과에,
다희가 허. 하고 헛웃음을 흘리며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아니, 난이도 뭐야... 너네 4급 때도 이렇게 빡셌었냐?”

“아뇨...  때는 그냥 분홍바위꽃 물에 끓이기만 하면 됐었는데...?”

“...”


다희와 서울이 급상승한 난이도에 경악하며 그렇게 말을 주고받는 동안,
유민은 차분하게 머리를 굴렸다.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었다면  또한 분명 저들처럼 당황했을 테지만,
다행히도 유민에게는 아직 기대볼 곳이 남아 있었다.

“리퀴드 위치...”


최초의 포션이자 다른 포션들의 베이스가 되는 힐링 포션.
그것을 개발하여 유통시키는 포션 제조 회사의 이름이다.

그리고,
유민이 지난주에 연금술 공방에서 만나게 되었던 검은 마녀의 직업명이기도 했다.

물론 그녀가 힐링 포션 제조사의 주인이 맞는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는 상황.
그럼에도, 지금의 유민으로선 검은 마녀- 최시영을 찾아가 보는 것이 최선이었다.

유민은 모레, 화요일에 공방을 열 것 같다는 마녀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날에 공방을 방문해서, 오리진 힐링 포션과 파랑바위꽃에 대해 문의해 보리라.

그렇게 결론을 내린 유민은, 이내 입을 열어 서울에게 말했다.


“서울 누나.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보자.”

“응? 재료가 없는데 어떻게... 아, 마사지?”

“어떤 방식으로 해야 시간이 채워지는지도 아직 모르니까,
그것부터 먼저 확인해보는 게 나을 것 같아.”

“으응... 포션이 좀 그렇긴 한데, 알았어.”

찜찜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서울.
그런 그녀와 유민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보던 다희가 한마디를  던졌다.

“그럼 구경해도 되냐?”

“...네?”

그녀의 말에 멈칫한 서울이 그렇게 되묻자,
다희는 손으로 침대 시트를 팡팡 두드렸다.

“솔루션 하는  보고 싶으니까, 여기서 하자고.”

“아니, 그게 무슨...”

자신의 앞에서 유선 마사지를 하라는 말에 서울이 뭐라 항변하려 했지만,
다희는 담담하게 서울을 바라볼 뿐이었다.


“솔직히 말해 보자.
어차피 앞으로 별의별 조건들 다 나올 텐데,
그때마다 숨기고 창피해할 거냐?”

“...”

유민이 앞서 경고했듯이,
솔루션의 방향이나 수위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유선 마사지처럼 장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3급 승급 미션처럼 던전 내에서 야릇한 행위가 이뤄질 수도 있다.

어떠한 조건이 출현해도 이상하지 않은 마당에,
그 모든 것을 언제까지고 유민과  둘만의 비밀로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그런 뜻이 담긴 다희의 물음에, 서울의 말문이 막혔다.
 틈을 놓치지 않고, 다희가 고개를 작게 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생각만 해도 겁나 피곤하잖아, 그렇게 하는 건.
난 조건으로 교미가 나와도 너 앞에서 유민이랑  수 있어.
뭐, 쫌 부끄럽기야 하겠지. 근데 솔루션이 그렇게 나온 걸 어쩌겠냐?”

“읏...”

“차라리 당당해지자고, 우리.
이젠 같이 솔루션 받는 사이잖아.  그래?”

씩 웃으며 서울의 어깨를 두드리는 다희.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서울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투는 좀 거칠었지만, 결국 다희의 말에 틀린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서울은 눈을 돌려 유민을 쳐다보았다.
진중한 표정으로, 말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유민.
그 역시 다희의 의견에 동의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다희가 파티에 합류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어렴풋이 각오하던 일이기는 했으나,
이렇게 빨리 현실로 찾아올 줄이야.

서울은 그렇게 생각하며, 얼굴을 살짝 붉힌 채 수긍의 뜻을 표했다.

“...알았어. 여기서 하자, 유민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