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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화 〉늑대와 헌터 마켓 (5) (42/116)



〈 42화 〉늑대와 헌터 마켓 (5)

자신이 하반신에 걸친 스패츠가 애액으로 질척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다희는,
살짝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유민의 뒤를 따랐다.

매장의 옆으로 이동한 유민과 다희.
그들은 또다시 묘한 분위기에서 헌터밀크 용품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


다희는 유민의 옆에 서서, 그를 힐끔힐끔 곁눈질했다.
유민은 정체불명의 원통형 기계를 앞에 두고, 거기에 달려 있는 꼬리표를 읽어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희는 자신의 애액으로 질척해진 고간이 괜스레 자꾸만 신경 쓰였다.

발정기에 돌입하기 바로 직전, 의도치 않은 자극이 주어져 실패로 돌아간 탓에,
다희의 몸은 불완전 연소 상태로 미묘하게 달아올라 그녀의 얼굴에 붉은 기를 돌게 했다.


그렇기에,
암컷 늑대의 몸뚱아리는 조금의 계기라도 주어진다면 바로 불타오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마리의 짐승이 되어 무슨 일이라도 저지르는 것이 아닐까.
그런 위기감에, 다희는 아까보다 몇 걸음 떨어져서 유민과 거리를 두려 했다.


허나 마음속의 늑대가 계속해서 다희를 살살 유혹하고 있었다.
유민에게 자신의 암컷 냄새를 전해주자며, 자꾸만 발을 움찔거리도록 만들었다.
그럴수록 다희는 이를 까득 악물고, 냄새를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원래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으면,
반대로 더욱 더 그것이 머릿속에 남아 사라지지 않게 되는 법이었다.

냄새. 유민.


자신의 냄새와. 그것을 좋아하는 유민.
자신은 지긋지긋한데, 이게 그렇게 좋은 것일까.


유민. 냄새.

그러고 보니,
유민의 냄새는 어떤 느낌일까.

그렇게 헌터유를 좋아하니,
헌터밀크 특유의 달달한 냄새가 몸에 배어 있지 않을까?




“...아오.”




 흐르듯이 떠오른 궁금증에, 다희는 이마를 탁 치듯이 손으로 짚었다.
 판국에 대체 유민의 냄새를 왜 신경 쓰는 것인가.
물론 늑대 수인으로서 조금, 아니. 굉장히 궁금하기는 하지만, 타이밍이 심히 나빴다.

별별 생각으로 인해 자꾸만 달아오르려는 몸뚱이에 고통 받고 있던 다희는,
피할 수 없다면 정면 돌파해버리겠다는 마음으로 유민에게 말을 걸어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가만히 있으면 자꾸 엄한 생각이 솟아오른다.
그렇다면 차라리 다른 곳으로 의식을 돌리는 것이 나으리라.

이러한 판단으로, 다희는 유민에게 슬쩍 다가가 헛기침을 하며 대화의 장을 열었다.


“크흠. 유민. 그거는 뭐 하는 물건이래냐?”


“아, 이거?”




다희의 물음에,
유민은 아주 진지한 분위기로 본인이 살펴보고 있던 커다란 원통형의 무언가를 설명해 주었다.



“스티밍 머신이라고,
헌터밀크에 공기를 집어넣는 기계래.”


“엉...? 거기다가 공기를 왜 넣어?”


“맛과 향을 더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는데.”

“...”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게 되었다.
물론 유민의 설명이 지루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유민의 설명에 담겨 있던  가지의 키워드가 그녀의 귀에 닿자,
버튼이라도 누른 듯이 곧바로 내면의 짐승 회로가 맹렬히 작동하게  것이다.


향을, 부드럽게.
누구의 향을? 무엇의 냄새를? 무슨 목적으로?

마음속의 늑대가 자기 자신에게 육하 원칙마냥 그런 질문을 던져 댔고,
이내 그것을 바탕으로 다희의 머릿속에서 가상의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다희는 집업의 지퍼를 열어젖히고,
적당히 커다란 유육을 쥐어짜 자신의 젖을 배출한다.
고소한 냄새가 풍기는 희멀건 액체가 보관 용기에 차곡차곡 담겨진다.


다시 상의의 지퍼를 올린 다희는,
그것을 스티... 어쩌고 기계에 집어넣어 헌터유에 공기를 주입한다.

난폭하리만치 고소했던 향이 부드럽게 중화된 결과물.
다희는 꼬리를 사랑스럽게 흔들어 대며, 그것을 자신의 파트너에게 건네준다.

그러면 파트너- 유민은 진중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들어, 향을 음미한다.
한 모금을 조심스럽게 마셔  유민은, 가공된 헌터유를 탁자에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오리지널이 훨씬 낫다며, 그는 다희에게 달려들어 상의를 풀어헤친다.
다희는 무슨 짓이냐며 떽떽거리면서도 저항의 몸짓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저 요망한 움직임으로 복슬복슬한 꼬리를 살랑거린다.


유민은 다희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옷자락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가슴팍에 코를 박는다.
 행동에 다희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유민의 머리에 손을 올려 자신의 품으로 당긴다.


지퍼가 내려간 집업 안에서 풍겨나오는 농밀한 암컷의 냄새.
그것을 한껏 콧속에 집어넣으며, 유민은 그녀의 젖가슴에 입을-



“근데 굳이 그럴 필요가... 누나?”

“...?!”

이제  클라이막스로 돌입하려는 망상에 저도 모르게 한껏 몰입하고 있던 다희.
자신을 부르는 유민의 목소리에 흠칫 놀란 그녀가 늑대 꼬리를 바짝 세웠다.

무언가 게슴츠레한 표정으로 노랗게 눈을 빛내며 자신과 기계를 번갈아 쳐다보는 다희의 모습에, 의아함을 표한 유민이 그녀를 불렀던 것이다.




“어, 어?  그래?”

“듣고 있어?”


다희는 잠시 동안 망상 속의 유민과 현실의 유민을 구분하지 못 하고 있었다.
그에 위화감을 느끼고 멍하니 서 있다가, 그녀는 강아지마냥 머리를 한 번 푸륵 털어냈다.
당사자 앞에서 이딴 응큼한 망상을 해 대는 자신의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렇게 고개를 흔들어 대도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다희의 눈앞에는, 아직도 자신의 젖가슴에 달려들던 머릿속 유민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것은 결코 떨쳐낼  없는 잔상과도 같았다.


그녀는 흐트러진 머리칼을 대충 정돈시키며,
유민의 눈을 살짝 피해 입을 열었다.
지금 유민의 진지한 눈빛을 마주했다가는  흥분하게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어어... 그래. 듣고 있지.  뭐시냐, 향을 부드럽게 만든다매.”

“응. 이것도 괜찮긴 한데, 나는 오리지널이 더 좋은 거 같아서.”


“...어?”

“누나 냄새처럼, 있는 그대로가 좋아.”

“무, 뭐?!”

허나,
유민이 절묘한 타이밍에 다희의 헌터밀크 냄새를 언급하는 바람에,
다희가 미처 머릿속을 정리할 틈도 없이, 그녀의 욕망 버튼이 다시금 눌려지고 말았다.


뇌리에 존재하던 망상 속의 유민과, 자신 앞에 서 있는 현실의 유민.
두 명의 의견이 한데 모여, 그녀의 귓가에서 겹쳐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오리지널'이 좋다며 외쳐 대고 있었다.


물론 유민은 다희에게 작업을  생각이 없었다.
그저 향을 부드럽게 만든다고 하니 다희의 고소한 냄새가 떠올라, 무심코 그런 감상을 내뱉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희는 유민이 자신에게 말해 주었던,
냄새에 대한 칭찬들이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던 상태였다.

가장 강렬하고, 인상적인 냄새.
자신의 매력을 형상화한 듯한 향기.


그렇기에 유민의  진지한 목소리는,
욕망에 잠식된 다희의 머릿속에서 점차 변형되어 들려오기 시작했다.


자신은 오리지널이 더 낫다.
있는 그대로의 누나 냄새가 좋다.

다희의 진하고 고소한 헌터밀크 냄새가 좋다.
다희의 농밀한 암캐젖 향기가 좋다.

다희에게서 풍기는,
있는 그대로의 진득한 암컷 냄새가 좋다.


“누나, 왜 그래?”

“...”




자신의 말에 다희가 격한 반응을 보이자 유민이 놀란 눈치로 그렇게 말을 걸었지만,
다희는 그저 잔뜩 흥분에 물들여진 늑대의 눈빛으로 유민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약간 벌려진 그녀의 입에서 거친 숨결이 조금씩 새어나왔다.


자신의 암컷 냄새를 한껏 예찬하는 유민의 진지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다희의 머릿속을 울렸다.
그것은 수컷에 잔뜩 굶주려 있던 암캐의 몸에 마구 불을 질러 댔다.

처음 만난 사이에 무슨 파트너 타령인가.
라는 명분을 내세워 애써 유민을 거부하던 다희는,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드는 흥분감에 조금씩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 만난 사이.
그게 과연 유민과의 관계를 망설일 만한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일까?


당장 유민도 자신과 처음 만난 주제에,
어떠한 편견도, 욕망도 없이 진지한 눈빛을 하고 자신의 냄새를 마구 칭찬하지 않았는가.

지금껏 얼굴 한 번 본  없었던 주제에,
이렇듯 자신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늑대의 본성을 자극하지 않았는가.


다른 남자, 다른 수컷들이 결코 할 수 없었던 것을,
유민은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태연하게, 몇 번이나 저질러버리고 있지 않은가.

우연으로 마주하게 된,
그 누구보다 나를 진심으로 대하는 우수한 수컷.


그래.
이것은 운명과도 같았다.
운명 앞에서,  만남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하핫.”

뜨거워진 몸으로 거친 숨을 내뱉으면서도,
이상하리만치 또렷한 정신으로 그러한 결론을 내리며,
다희는 크나큰 기쁨을 담아 밝게 웃었다.

그렇구나.
나는 오늘을 위해, 외로운 늑대의 삶을 살아온 것이었구나.
너를 만나기 위해, 지금까지 혼자 고군분투해왔던 것이었구나.

그렇다면 환영이다.
왜 이제야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인지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렇게 너와 함께하게 되었으니, 지금은 그것만으로 만족한다.

드디어 찾았다.
나의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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