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0화 〉늑대와 헌터 마켓 (3) (40/116)



〈 40화 〉늑대와 헌터 마켓 (3)

“...”

다희는 입을 꾹 다물고 잠깐 동안 매장을 거닐며 머리를 식혔다.


자꾸만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던 늑대의 본능도 얌전히 제 자리를 지키게  무렵,
그녀는 상반신을 틀어 뒤에서 따라오던 유민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까 밀크마스터가 뭔지도 안 물어봤네.
정확히 뭐하는 직업이야?”

“그, 헌터밀크를 마시면 그 특성에 따라  받습니다.”


“흐음. 그래?”

유민의 대답에, 다희는 비음을 흘리며 늑대 귀를 까닥였다.

유민이 말한 버프가 그의 전부는 아닐 것이라며,
다희의 동물적인 감이 조언을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희는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 않고 다른 말을 꺼냈다.
괜히 파고들었다가, 오늘 처음 만나게 된 특별한 인연을 이대로 떠나보내는 것은 싫었다.



“그럼 아까 그... 냄새 맡은 것도, 직업이랑 관련이 있는 거고?”


“아뇨. 원래부터 헌터밀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핫,  너다운 직업이 걸려들었구만.”




진지한 분위기를 가득 두르고 헌터밀크의 향을 논하던 유민의 모습.
그것을 보았던 다희는 유민의 직업이 천직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헌터유 도핑 값도 많이 들겠는데, 그럼?
오늘 쇼핑해도 되는 거 맞어?”


“아... 네. 아직까지는 짐꾼이라 그렇게 버프가 필요하지 않아서요.”



그렇게 대답하며,
유민은 문득 자신의 앞에서 걷고 있는 늑대녀의 헌터유에 호기심이 생겼다.

등급은 어떠한지. 맛은 얼마나 고소한 것인지. 또 무슨 종류의 버프를 받게  지.


“...”



허나 이것을 곧이곧대로 물어봐도 되는 것일까.
이미 방금도 그녀의 면전에서 명함에다 코를 박고 향기를 음미하는 실례를 저지르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에 유민이 입을 다문 채 옆머리를 긁적이고 있자,
노란 금빛을 띠는 늑대의 눈동자로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다희가 씩 웃었다.


“눈이 맑으니까 뭔 생각하는지  보이는구만.”

“어, 네?”


“내꺼는 무슨 맛 날지 생각하고 있었잖아, 너.”


“...”



차마 아니라고는 할 수 없었던 유민이 정곡을 찔린 표정으로 눈을 피하자,
다희는 쾌활하게 웃으며 몸을 다시 앞으로 되돌렸다.


방금 전 자신의 헌터유 향기를 논할 때 유민이 보여 주었던,
진중하게 가라앉은 탐구자의 맑은 눈빛.

그것으로 자신의 가슴 쪽을 주목하고 있으면 당연히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지 않을까.

다른 남자가 가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면 당장 맹수의 살기를 쏘아 보냈겠지만,
자신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밀크마스터에게는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편견도, 욕망도 없이 그저 탐구심이 가득 깃들어 있는 전문가의 시선과,
그저 음욕으로 번들거리는 수컷의 눈짓.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늑대의 감각은,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둘을 아주 명확히 구분해 냈다.


뭐, 아니면 냄새 칭찬 같은  처음 들어 봐서 콩깍지가  것일 수도 있고.
다희는 그런 생각에 쓴웃음을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뭐, 3급짜리라 그렇게 맛있는 건 아냐. 뭣하면 나중에 나한테 사먹어 보던가.”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혹시 예약도 가능할까요?”

“어, 어?”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에 득달같이 따라붙어오는 유민의 목소리.


그에 순간 당황한 다희가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자신의 바로 등 뒤까지 성큼 다가와 있는 유민과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유민의 순박한 눈동자는 기대감에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다희는 서둘러 정면을  발걸음을 서둘러 유민에게서 슬쩍 거리를 벌리며, 떠듬떠듬 대답해 주었다.




“어... 그, 그래라.”

엉겁결에 유민과 헌터밀크 거래를 약속하게 된 다희는,
그의 진지한 눈빛을 동반한 돌격에 허를 찔려 살짝 달아오른 볼을 손으로 톡톡 두들겼다.


그리고 다짐했다.
유민의 앞에서, 생각 없이 헌터유 이야기를 꺼내들지 말자고.








본격적으로 재킷 탐방에 나선 다희와 유민의 여정.
그것이 마무리되기까지는 그닥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지갑 사정으로 살 수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의 실용성까지 갖추고 있는 녀석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민 혼자서 매장을 돌아다녔다면 꽤 시간을 지체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늑대식 전투법으로 인해 의류 매장 단골손님이 된 다희가 있었다.




“이거 괜찮네. 입어 봐.”

“아, 네.”


제  드나들 듯이 매장 이곳저곳을 누비며 유민에게 어울릴 만한 재킷을 쏙쏙 골라내던 다희는, 이내 옷걸이에 걸린 검회색 재킷을 하나 집어 들었다.


편히 움직일 수 있도록 디자인된 가죽 재킷.
흉부와 복부, 팔 등등 여기저기에 주머니가 붙어 있어,
누가 봐도 짐꾼들이 입고 다닐 만한 녀석이라는 것을 알게끔 되어 있었다.

꼬리표에 붙은 설명을 읽어보니 역시나.
유민이 아까 전에 구입했던 카고 바지와 마찬가지로,
주머니 부분만 몬스터 가죽으로 보강해 놓은 짐꾼 에디션이었다.



“짐꾼들 옷이 다 이렇지 뭐. 주머니 많고 튼튼하면 장땡이야.”

이 바닥이 그렇다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그녀는 유민을 탈의실로 등 떠밀었다.

탈의실 안에서 트레이닝복 상의를 벗어 그것을 상반신에 걸친 유민.
가죽 재킷은 그의 건장한 체형에 무리 없이 들어맞았다.


늑대의 시각 덕분인지는 몰라도 다희의 눈썰미는 썩 괜찮은 편이어서,
지금껏 그녀가 골라준 옷을 시착해 보는 동안, 적어도 사이즈에 있어서는 불편함을 겪지 않았던 유민이었다.



“...”




유민은 재킷을 입은 채로 잠시 거울을 바라보다가,
 카고 바지를 꺼내어 자신의 하반신에 대 보았다.


상의에는 많은 주머니. 하의에는  많은 주머니.
군복이라도 되는 것 마냥  이곳저곳에 주머니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의류 제작자들의 마지막 양심인지,
옷과 주머니가 자연스레 어울리도록 디자인이 되어 있어 그렇게 끔찍한 패션은 아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작업용이라는 가정 하에 유민이 내놓은 감상이다.
이런 것을 일상에서 입고 돌아다니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조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다시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온 유민.
자신의 북슬북슬한 꼬리를 붙잡고 털이 엉켜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던 다희는, 그가 탈의실에서 나온 것을 보고 꼬리를 튕기듯이 엉덩이 뒤로 휙 되돌렸다.

“사이즈는 맞을 텐데. 어때?”


“이걸로 하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탐스러운 무브먼트에 잠깐 시선이 끌려가던 유민은,
다희의 물음에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구매 의사를 밝혔다.

계산대에서 검회색 재킷을 구매한 유민이 그것을 가방 안에 넣자,
다희가  웃으며 유민의 어깨를 탁탁 두들겼다.

“헌터용 장비도 갖췄으니까 이제 신입에서 초짜로 승급했구만.”


“그런가요?”

“그런 거지. 흠. 근데 너 신발은?”

다희의 물음에, 유민은 자신이 신고 있는 운동화를 내려다보았다.
 써먹을 정도로 낡은 것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일반인이 사용하는 기성품이었다.

앞으로도 헌터 일을 하려면 바꾸기는 해야겠으나,
아쉽게도 유민에겐  이상 장비 구매에 사용할 수 있는 여유 자금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유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중에  벌면 마저 사야죠.”


“뭐? 신발 살  없어?”


꼬리를 바짝 세운 다희의 물음에, 유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습에 다희는 잠깐 집업 앞주머니에 꽂고 있던 손을 꼼지락거리더니, 이내 씩 웃었다.
그녀의 북슬북슬한 꼬리가 여유롭게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되지. 신발이 얼마나 중요한데?
따라와. 내가 좋은 놈으로 구해 줄게.”

“네? 그러실 필요는...”

“받아 둬, 받아 둬. 괜찮은 신입한테 투자하는 거라고 생각해.”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래. 바로 그거지.”


밝은 회갈색 늑대의 인도에 따라,
유민은 다시 매장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너 바지 뭐 샀다고 했지?”


“카고 바지입니다.”




다희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하는 유민.
그러자, 갑자기 그녀가 발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그런 다희의 모습에,
유민은 자신이 바지를 잘못 구매한 건가 하는 생각으로 덩달아 걸음을 멈췄다.

이내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밝은 회갈색 머리를 흩트리며 중얼거렸다.



“...아오. 불편해서  참겠다.”

“네?”

몸을 유민에게로 홱 돌린 다희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냥 말 놔. 편하게.
이름으로 부르든, 누나라고 부르든 알아서 해.”


“갑자기 그렇게는...”

옷을 구매하면서 있었던 잠깐의 신변잡기를 통해 자신이 연상임을 알게 되었던 다희는,
이름과 누나의 양자택일을 걸면서 그렇게 존대를 버릴 것을 요구했다.

오늘 처음 만난, 그것도 F급 짐꾼과 C급 헌터 사이에 말을 놓으라는 요청.
그에 유민이 당황스러운 기색을 표하자,
다희는 알만하다는 듯이 쓴 미소를 머금으며, 답답한 표정으로 자신의 명치 부근을 탕탕 쳤다.




“씁... 그러게. 난 네가 어떻게 말하든지 상관없는데,
내 안에 들어가 있는 멍멍이가 자꾸 불편하다고 난리를  댄다.”



다희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늑대의 본능.
이미 반쯤 유민을 파트너로 점찍어 놓은 그 녀석이, 왜 자꾸 예비 파트너한테 존댓말을 쓰게 하느냐면서 길길이 날뛰며 다희의 신경을 박박 긁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어찌어찌 눌러 참고 있었지만,
결국 그녀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그래, 이 자식아.
파트너 운운하는 꼴이 마음에 안 들지만, 지금만큼은 일단 넘어간다.

속으로 그렇게  다희는,
이런 부탁을 하는 것 자체가 멋쩍다는 듯이 뒤통수를 벅벅 긁어 댔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유민에게 한 발짝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나도 어지간하면 참을라 그랬는데... 그게 안 되네. 미안하다.
으음. 그래도 오늘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안 될까...?”



꽤나 간절한 투가 묻어나는 다희의 말에, 유민은 그녀가 늑대 수인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녀의 말을 그대로 해석하자면,
다희에게 늑대의 본성 같은 것이 숨어 있고, 마음속의 그것은 자신이 그녀에게 존대를 하는 것을 매우 불편해한다는 것이었다.

그 본성의 존재는 다희만이 알고 있기에 약간은 신빙성이 떨어지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그녀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C급 헌터가 뭐가 아쉬워서,
거짓말까지 해 가며 F급에게 말을 놓아달라고 간절하게 부탁을 하겠는가.

이것은 오히려 자신에게만 이득일 뿐이었다.
F급 헌터에 불과한 자신이, C급 헌터와 말을 놓을 정도로 친근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외모와 다른 착한 마음씨로 신입 헌터에게 기꺼이 도움을 주고,
유민의 탐구욕을 불러일으켰던 고소한 향의 헌터밀크까지 지니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 봐도, 그녀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

그 본성이라는 것이 왜 자신에게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늑대의 마음을 인간이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그렇게 결론을 내린 유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결정지은 사항이니 더 이상 망설일 것은 없었다.



“알았어, 다희 누나.”

“...”



삽시간에 친근한 투로 변한 유민의 대답에,
살랑거리던 늑대 꼬리의 움직임이 순간 멈췄다.



“...어후우.”



그리고는 ‘편안’ 이라는 단어가 얼굴에 아른거릴 정도로 늘어진 표정을 짓는 다희.
카리스마 넘치던 날카로운 인상은 어디로 가고, 순한 강아지같이 귀여운 모습이 슬쩍 드러났다.
그녀의 북슬북슬한 꼬리 또한 부드럽게 내려간  편안함을 드러냈다.

이내 원래의 얼굴로 돌아온 다희가 씨익 하고 멋진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들어 자신의 등 뒤를 가리켰다.

“좋았어. 그럼 신발 맞추러 가자.”

“그래.”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