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화 〉늑대와 헌터 마켓 (2) (39/116)



〈 39화 〉늑대와 헌터 마켓 (2)

C급의 헌터.
컴뱃 울프(Combat Wolf) 강다희.


그녀는 자신의 하반신이 얼마나 육감적으로 발달되어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사실 그녀가 자신의 몸에 별 관심이 없다고 해도, 그것만큼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녀를 발견한 남자들은 백이면 백,
다희의 압도적인 골반과 실한 허벅지에 음심이 깃든 시선을 주었기 때문이다.

늑대의 동물적인 감각에 의해, 다희의 몸은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저질스러운 욕망이 담긴 눈빛에는 그녀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곤 했다.


그러면 다희의 하반신을 훑고 있던 그들은,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그녀의 살기에 찔끔해 고개를 돌리고 마는 것이다.


그녀는 그런 욕망어린 시선에 질린 나머지,
옷을 껴입거나 해서 아래쪽을 감추려는 시도를 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매력적인 존재감을 뽐내며 우아하게 이어지는 하반신의 라인은, 결코 옷가지  개로 쉽게 가려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더해, 다희는 옷을 두세 겹 이상 아랫도리에 둘둘 감싸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늑대처럼 날뛰는 그녀의 전투 스타일에도 제한이 생길 뿐더러,
각성으로 인해 자신에게 새겨진 늑대의 본능이 격렬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껏 그녀의 눈으로  왔던 남자는 둘 중 하나이거나, 둘 다에 해당되었다.

자신의 하반신에 헤벌레하여 인중을 늘리거나,
날카로운 인상에 쫄아서 꼬리를 말거나.


하지만,
오늘 만나게 된 신입 헌터 김유민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

트레이닝 집업과 반바지형 레깅스- 스패츠를 입고 있어,
아래쪽의 매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다희의 모습.

그것을 제대로 눈에 담아 인식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동자에는 어떠한 어둠도 담겨 있지 않았다.
유민은 그저 순수하고 진지한 눈빛으로, 자신에게 정중히 사과를 건넬 뿐이었다.


자신의 날카로운 인상이 어쨌냐는 듯, 눈을 똑바로 마주쳐 오는 그 담대한 시선.
그에 다희는 불쾌해지기는커녕, 저도 모르게 꼬리를 반갑게 살랑거리고 말았다.

이 남자는 뭔가 다르다. 무언가 특별하다.
그런 생각에, 다희는 유민에게 흥미가 생겼다. 그와 좀 더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역시나 그는 자신이 마주했던  어떤 사람들보다 특이했다.

다만,
그 사실을 이런 식으로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경건한 분위기를 두르고 명함에 묻은 자신의 체취에 집중하는 그의 모습에,
다희는 얼굴을 붉게 물들인  유민에게 삿대질을 하며 입을 뻐끔거렸다.

“야...! 너,  지금  짓거리...!”

자신이 뭐라 말하거나 말거나 여전히 명함에 코를 박고 있는 유민.

머리를 뜨겁게 달구는 수치심에 안절부절못하던 다희는,
이를 까득 악물며 유민이 들고 있는 명함을 낚아채기 위해 손을 뻗었다.

“...윽.”


하지만,
유민의 손으로부터 채 한 뼘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그녀의 손길이 멈췄다.


문득 머릿속에 슬그머니 떠오른 물음 하나가, 다희를 망설이게 했다.

자신의 일부를, 자신에 대한 것을,
저렇게 한없이 순수하고 진지한 태도로 받아 주는 사람이 있었던가.


수인형을 신기하게 여기는 사회가 아니라고 해도,
그에 대한 편견은 은연중에 존재하고 있었다.


지능이 낮다든지, 머리만 쓰다듬으면 넘어온다는 등의 루머.
그저 머리에 짐승의 귀가 달리고, 등허리 아래에 꼬리가 달린 것뿐인데,
순수한 인간 각성자보다 격이 떨어지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타인으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부추겨 그녀를 괴롭히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강렬하고 독특한 헌터유의 향기였다.


평범하게 달달한 향과 궤를 달리하는, 난폭하리만치 고소한 내음.

그 견과류와 곡물의 향연을 느끼게 된 이들은,
단순히 헌터밀크 향이 독특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대신에 그녀의 늑대귀와 꼬리를 연관지어 이야깃거리로 삼았다.
짐승형 각성자라 냄새도 짐승 같다는 식의, 편견에 물든 사고방식이었다.


그녀의 능력 자체는 뛰어난 편이기에, 던전 공략 파티에는 쉽게 참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수인에 대한 편견과 자신의 개성적인 향기에 의해,
알게 모르게 인간 이하의 것으로 취급되어 뒷담화의 대상으로 빈번히 지목되곤 했다.
거기에는 다희의 매력적인 하반신에 대한 여성 헌터들의 질투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늑대의 동물적인 감각은 시선뿐만 아니라 목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를 갈며 몇 번이나 파티를 옮겨 다니던 그녀는, 결국 솔로잉 헌터로 전향했다.

그렇게 남자들에게는 음습한 욕구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여자들에게는 냄새 이상한 짐승년 취급을 받던 나날.


다희는 유민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가 수인이라는  따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던, 그의 진중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본인의 오점이라고만 생각하던  냄새를,
저토록 신중하게 음미하고 있었다.


유민에게 뻗고 있던 손이, 힘없이 내려갔다.
오갈  없는 두 손을 집업의 앞주머니에 꽂고, 다희는 붉어진 얼굴로 꼬리를 살랑거렸다.

어떠한 편견도 없이 자신의 냄새에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고 좋아해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조금, 아니.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마음 속 어딘가가 따뜻하게 데워지는 느낌이었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도, 자신이 늑대의 본능을 지니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야이씨!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건데! 야!”

허나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어찌됐건 자신의 체취를 당사자 앞에서 대놓고 저렇게 감상하면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미동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냄새를 탐닉하는 유민의 모습에,
결국 수치심의 한계를 느낀 다희가 유민에게 달려들어 어깨를 거칠게 흔들어제꼈다.




“...!”



그 난폭한 의식 각성법에 정신을 차리고 눈을  유민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코앞에 놓인 명함을 바라보았다.

찰나의 시간 동안 본인이 저지른 짓을 되돌아본 그는, 황급히 명함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고 눈앞의 늑대녀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건넸다.




“그,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쪽으로 관심이 많아서, 저도 모르게 몰두하는 바람에...”

“...거, 참내.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닌데 그걸.”

참으로 정직하기 그지없는 유민의 멘트.
그것에 다희가 부끄러움을 털어내려는 것처럼 중얼거리듯 말하며 늑대 귀를 까닥이려는데,


갑자기,
유민의 진지한 목소리가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닙니다.”

“...어?”



순간 흠칫한 그녀가 유민의 얼굴을 바라보자,
다희는 유민의 탐구자 정신에 입각한 깊은 눈빛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윽한 고소함이 가득 느껴지는 그 매력적인 헌터유의 향기.
그것을 다른 사람도 아닌 당사자가 자학하듯이 폄하하는 것은,
헌터밀크를 진심으로 대하는 유민에게 있어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유민의 맑은 눈동자에 홀린 듯이 그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
유민은 다희의 자조적인 태도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강다희 헌터님이 소유한 헌터유의 향은,
제가 이제껏 느꼈던 향기 중에서 가장 강렬하고, 인상적이었습니다.”


“무, 뭐?”



갑자기 자신의 냄새에 대한 감상을 주르륵 늘어놓는 유민의 말에,
다희의 황금빛 눈동자가 지진을 일으켰다.
하지만 아직 유민의 입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늘이 초면인지라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조심스러울  있지만,
강다희 헌터님의 매력을 그 향기로 여실히 표현해낸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아니, 그... 잠.”


“강다희 헌터님은-”

“야이, 나도  좀 하자  자식아!”

유민의 진지한 칭찬 릴레이가 이어지자, 이제는 다희의 목까지 새빨개지려 하고 있었다.

뭐라 말을 꺼내지  해 더듬거리던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그렇게 일갈하자,
개성적인 헌터유 향기에 흥분해 있던 유민이 흠칫 놀라 입을 다물었다.



“후우... 후우...”



꼬리를 빳빳이 세운 채,
머리를 쥐어 잡고 심호흡을 하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다희.




“...후, 그래. 어쨌든 간에 결론은 내 냄새가 좋다, 그런 거냐?”


“네. 맞습니다.”

“하이씨...”

눈앞에서 자신의 냄새를 음미할 때부터 심상치 않은 놈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면전에서 이렇게 진지한 분위기로 인상적이니 매력이니 뭐니 하며 칭찬을 할 줄이야.

뭐지 이건. 요즘은 고백을 이딴 식으로 하냐? 그린라이트인가?
다희는 무심코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마른세수를 했다.


 와중에,
다희의 마음속에 숨어 있던 늑대의 본성은, 주인의 마음도 모르고 자신의 파트너를 만났다며 자꾸 흥분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오늘 처음 만난 남자한테 파트너는 무슨.

뭣도 모르고 날뛰는 녀석에게 닥치고 있으라 일갈하며,
다희는 붉은 기가 빠지지 않는 얼굴로 몸을 돌려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알았으니까, 따라와. 윗도리인지 재킷인지 뭔지 부터 골라 보게.”


“아, 네.”

퉁명스러운 말투와 달리,
다희의 북슬북슬한 꼬리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마구 살랑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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