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늑대와 헌터 마켓 (1)
짝다리를 짚고 서서,
귀를 몇 번 까닥이며 유민을 쳐다보고 있는 수인형 헌터.
어제의 스쳐지나가는 만남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던 유민은,
마침내 그녀를 정면에서 마주하고, 그 외모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사납게 치켜뜬 눈매 속의 금빛 눈동자.
그 한 쌍의 눈은 마치 늑대의 그것처럼 야성이 담긴 눈빛을 쏘아내고 있었다.
정면에서 마주친다면 찔끔할 법한, 상당히 날카로운 인상의 미인이었다.
그녀는 후드가 달려있지 않은 트레이닝 집업으로 상반신을 가리고,
아래쪽에는 짧은 레깅스- 일명 스패츠를 입고 있었다.
밸런스를 해치지 않는 적당한 볼륨의 가슴.
그리고, 하반신 위쪽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는 커다란 골반의 실루엣.
허리에서 이어지는 골반 라인의 그 폭력적인 곡선은,
집업의 살짝 두꺼운 옷자락 따위로 결코 가려지지 않는 그녀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 극상의 골반과 잘 어울리는 두텁고 탐스러운 허벅지 또한,
검은 스패츠에 일부만 감싸인 채 살굿빛 피부를 그대로 드러내어 건강미를 뽐내고 있었다.
북슬북슬한 꼬리가 엉덩이 뒤에서 중간 높이로 천천히 살랑였다.
하반신이 굉장히 매력적인, 사나운 인상의 늑대 수인 헌터를 눈앞에 두게 된 유민.
허나,
유민은 뭇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던 그곳에 일말의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날카롭게 자신을 궤뚫어보는 맹수의 눈빛에 주눅들지도 않았다.
그저 어깨를 부딪힌 것에 대해 사과하며, 정중히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앞을 제대로 못 보고 걸었네요.”
“...허어?”
자신의 사과에 대한 반응 대신에 뜬금없이 탄성이 들려오자,
유민은 의문을 표하며 머리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밝은 회갈색의 늑대 귀를 쫑긋 세운 그녀는, 무언가 예상치 못한 것을 목격한 듯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유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건넨 사과를 미처 못 들은 건가 싶어 유민이 다시금 고개를 숙이려고 하자,
유민의 저의를 눈치 챈 그녀는 집업 앞주머니에 꽂고 있던 두 손을 빼들어 내저었다.
“어, 아냐, 아냐! 사과한 거 들었으니까 하지 마.”
“아, 네.”
그녀의 인상과 잘 어울리는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가 유민의 행동을 만류하자,
유민은 다시 원래 자세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이 입을 달싹이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하핫, 참 내. 신기하구만.”
잠시 그 미묘한 대치를 유지하던 도중,
먼저 입을 연 것은 늑대귀의 그녀였다.
멋쩍은 듯이 뒤통수를 긁으며 꼬리를 살랑거리던 그녀는 이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나도 미안하다. 옷차림 보니까 신입인가 보네?”
“네. 그렇습니다.”
“흐흠.”
잠깐 유민의 복장을 훑어본 그녀는 알만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된 옷 좀 입어보려고 온 거야?”
“맞습니다. 이 옷으로 일하기는 조금 불안한 감이 있어서.”
“뭐, 그렇겠지. 운동복 입고 하는 건 좀 빡세니까. 흐으음...”
그녀는 한쪽 늑대 귀를 까딱이며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결심한 듯이 양 손을 다시 집업의 앞주머니에 꽂고 사납게 미소 지었다.
“좋아.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내가 신입 들박- 아니 씹, 뭐래. 음. 내가 도와줄게.”
“네?”
“응? 뭐야, 싫어?”
그녀가 눈썹을 스윽 올리자, 엉덩이 뒤의 복슬복슬한 꼬리도 꼿꼿하게 몸을 세운다.
그 모습은 귀엽다기보단 그녀의 날카로운 인상이 덧붙여져 위협적이기 그지없었다.
유민은 그녀가 오해를 풀기 위해 서둘러 입을 열었다.
“아뇨. 그게 아니라, 제가 사려고 했던 건 바지랑 재킷 정도여서...”
“그게 뭐 어때서? 괜찮아, 괜찮아. 내가 하도 옷을 찢어먹어서 이쪽 동네는 잘 알아.”
도움은 고맙지만 재킷만 구입하면 끝나는 상황에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라는 뜻을 담아 유민이 그렇게 말을 전달했으나, 늑대녀는 상관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자, 따라와. 내가 오늘 파릇파릇한 신입 좀 꾸며 줘야지.”
“네... 감사합니다.”
“에이, 이 정도로 뭘.”
그렇게 말하며 앞서 걸어가던 그녀는 순간 멈칫하더니 유민을 돌아보았다.
“...근데 생각해 보니까 아직 이름도 안 물어봤네. 신입 이름이?”
“아, 김유민입니다.”
유민은 그렇게 대답하며, 등에 매고 있던 가방에서 헌터 명함 한 장을 꺼내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에게 명함을 건네주었다.
“오, 이거도 잘 들고 다니네. 좋아좋아.
근데 잠깐만... 내가 명함이 있던가.”
주머니에서 손을 빼 명함을 받아든 그녀는 자신의 허벅지 쪽에 손을 대어 바지 주머니를 뒤적이려는 듯하더니, 아. 지금 레깅스였지. 하고 중얼거리며 손을 턱 밑으로 올렸다.
그곳에는 목 끝까지 잠긴 트레이닝 집업의 지퍼가 있었다.
-주욱!
그녀는 거침없이 상의의 지퍼를 절반까지 내려 버리고,
그로 인해 생긴 틈으로 팔을 쑤욱 넣어 집업 안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늑대녀의 행동에 기겁한 유민이 슬쩍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진열대로 시선을 피신시켰다.
그 눈을 돌리는 극히 짧은 순간에, 유민은 지퍼 틈새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흉부를 확인했다.
살굿빛의 유육이 적당한 크기로 덩어리진 채, 그 안에서 살짝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진열대 쪽에 시선을 못 박은 채로 그녀의 집업 안쪽에서 점차 흘러나오는 고소한 향기를 음미하고 있던 유민은,
자신이 방금 스치듯 보았던 풍경이 무엇을 뜻하는지 뒤늦게 깨닫고 속으로 흠칫했다.
저 집업 속에, 아무것도 받쳐 입지 않은 건가?
어떠한 것에도 보호받지 않고 있는 젖가슴에서 잔여유가 조금씩 새어 나와,
농밀한 고소함이 느껴지는 향기가 점점 응축되어 진해지며,
트레이닝 집업의 옷자락 안에 한가득 갇혀 있었다는 것인가.
순간 저 집업의 틈새에 얼굴을 박아 한껏 숨을 들이마시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었으나,
유민은 탐구자의 굳건한 의지를 발휘하여 그 자리에 꿋꿋이 버티고 서 있었다.
아쉬운 대로 집업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곡물과 견과류의 자취를 느끼는 수밖에 없었다.
짧지만 길었던 한순간이 지나가고,
마침내 무언가를 찾았는지 손을 집업 안주머니에서 뽑아내는 늑대녀.
“다행히 있네. 좀 구겨지긴 했는데... 자.”
“아, 네. 감사합니다.”
그녀에게서 하얀 카드를 받아든 유민은,
뒷면의 헌터 협회 로고 위로 ‘C’가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앞면의 문구를 읽었다.
[강다희]
[컴뱃 울프]
역시 그녀는 늑대 수인이었던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유민은 여기저기 구겨졌다 펴진 흔적이 남아 있는 명함을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한순간,
유민의 의식이 흐려졌다.
아니, 이것은 사고가 희미해진 것이 아니었다.
오직 하나의 감각에 집중하기 위해, 나머지가 퇴화에 가까운 수준으로 격하된 것이다.
유민이 무의식적으로 모든 것을 올인하게 된 감각.
그것은 바로 후각이었다.
늑대녀- 강다희의 집업 안주머니에 방치되어 있던 헌터 명함.
그 안에서 이리 저리 흔들리고, 뒤집히고, 구겨지는 동안,
그 명함은 다희의 젖가슴에서 흘러나오던 헌터유, 또는 잔여유의 짙은 향기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었다.
난폭할 정도로 고소한 견과류와 곡물의 내음이 그녀의 집업 옷자락 안에서 맴돌며 점차 응축되어 갈 때마다, 그 일부가 고스란히 헌터 명함에 축적되어 온 것이다.
시간과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구겨진 헌터 명함’은,
그녀가 흘리는 헌터밀크의 고소한 향이 농축된 디퓨저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명함에서 흘러나온 극상의 향기가 유민의 코에 직격하는 순간,
그 무엇보다 헌터밀크를 우선시하던 유민의 뇌는 곧장 하던 일을 중지하고, 그 황홀한 자극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모든 자원을 밀어 넣은 것이다.
유민의 눈꺼풀이 닫혔다.
고개가 살짝 젖혀지며 후각을 위한 완벽한 각도를 맞추었다.
명함을 들고 있는 손이 서서히 얼굴 쪽으로 올라갔다.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릿속으로,
유민은 멍하니 한 마디를 읊조렸다.
이건,
못 참지.
“오... 밀크마스터?”
“...”
“이건 또 처음 들어 보는 직업인데.”
“...”
“뭐 밀크를 마시면 더 강해지는 그런 건가? 하핫.”
“...”
다희는 집업의 지퍼를 다시 올리며 명함을 살펴보다가,
유민이 묘하게 조용해진 것을 눈치 채고 미간을 살짝 좁혔다.
불만을 담아 꼬리를 살랑 흔들면서.
그녀는 고개를 들어 유민을 마주 보고 입을 열었다.
“아니, 아까부터 왜 말이 없-”
“...”
그리고,
다희는 목격하게 되었다.
와인의 시향을 진행하는 소믈리에와도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한없이 경건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자신이 준 명함을 코 근처에 갖다 댄 채,
그것에서 흘러나오는 향기를 놓치지 않으려 집중하는 유민의 모습을.
“...?”
잠시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다희의 고개가 꺾이고, 늑대귀가 한 차례 까닥였다.
뭣 때문에 저렇게 명함 냄새에 집중하는 거지?
저건 그냥 내 윗도리 안주머니에 들어 있던,
“어.”
거기까지 생각을 진행한 다희는,
그대로 꼬리의 움직임을 우뚝 멈춰 세웠다.
저건, 저 명함은.
옷 안에 처박힌 채,
자신의 냄새가 배어든 물건.
그런 거를,
저렇게 코를 박고 집중해서.
그녀는 뚝뚝 끊어진 사고를 하나로 연결시켜,
지금의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데에 성공했다.
“...어어?!”
그 직후,
다희의 얼굴이 삽시간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