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안내원과 두번째 기회 (6)
“하아... 하아...”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의자 바닥에 기대고 있는 시현.
수유 절정의 여운에 의식이 반쯤 흐려진 채 숨을 가쁘게 몰아쉬던 그녀는,
귓가로 파고드는 유민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시현 씨, 괜찮으세요?”
“...아.”
시현은 잠시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어째서인지, 이전보다 시야가 낮아져 있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잠깐 살핀 시현은,
자신이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앉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덤으로 치맛자락까지 올라가,
애액으로 축축한 비부를 전부 드러내 놓고 있다는 것까지 파악하게 되었다.
“윽?!”
그녀의 귀가 확 붉어졌다.
시현은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에 마력을 일으켜,
황급히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재빨리 치맛자락을 내려 가다듬고 몸 이곳저곳을 살펴본 뒤에야, 그녀는 다시 의자에 정상적으로 엉덩이를 붙이고 앉을 수 있었다.
그 짧은 순간 동안 유민을 슬쩍 곁눈질한 시현은,
유민이 자신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바닥에 놓여 있는 수건을 집어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마치 흐트러져 있던 자신의 아래쪽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시현은 그가 자신의 추태를 제대로 목격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안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하게 자존심에 흠집이 생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젖가슴은 그렇게 진지한 눈빛으로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커다란 젖탱이와 비교해도 나름 꿀리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하반신에는 일말의 관심조차 주지 않다니.
“수건 드릴까요?”
“...그래요.”
약간 퉁명스레 대답하며, 시현은 유민에게서 수건을 받아들었다.
우선 그의 타액과 헌터유로 젖은 유방의 첨단 부분을 정리하고-
“...”
밀크커버가 벗겨져 드러나 있는 첨단 부위에 수건을 가져가려던 시현은,
자신의 앞에서 쏘아져 내려오는 뜨거운 시선을 느끼고 흘끔 그를 올려다보았다.
진지하기 그지없는 그 눈빛에서는 결코 음심을 읽어낼 수 없었지만,
그렇다 해도 흐트러진 몸을 정리하는 과정을 이렇게 빤히 관찰당하면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 쪽 보지 말아줄래요.”
“아, 죄송합니다.”
시현이 던진 한 마디를 듣고 흠칫한 유민이 재빨리 뒤를 돌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현은 헛웃음을 지으며 수건을 움직였다.
밀크마스터라더니, 젖가슴에 페티시라도 있는 건가.
허나 그렇다고 하기엔 성욕에 흥분한 모습이 아니었는데.
아직 유민의 헌터밀크에 대한 집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시현.
그녀는 유방의 첨단을 수건으로 조심히 닦아내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이내 생각의 화제를 돌렸다.
비록 자신이 구체적인 작업 내용을 지시하지 않아서 젖가슴을 두 쪽 전부 빨리기는 했지만,
어찌되었건 간에 유민의 기술은 제대로 작동하였고, 정신 회복 효과를 온전히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2번이나 수유 절정에 달해서인지,
이전보다 한층 더 개운한 기분이 느껴졌다.
마치 머릿속을 고압 분사기로 한번 싹 씻어낸 듯한 상쾌함이었다.
“흐흥.”
정신을 갉아먹던 스트레스가 전부 모습을 감춘 것을 체감하며, 시현은 옅은 비음을 흘렸다.
오늘이라면 중간에 깨어나는 일 없이, 아주 푹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두 번의 절정으로 인한 피로함까지 더해지자,
시현은 이대로 어딘가에 드러누워 자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래. 다음에는 아예 끝나고 바로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정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려면 이 남자를 어디로 불러야 하는가. 모텔?
“...”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시현은 순간 귀를 살짝 붉혔다.
모텔에 데려가서 가슴을 빨게 한다니. 유혹도 이런 천박한 유혹이 따로 없다.
연인들에게나 어울릴 것만 같은 그 상황을 떠올리며 속으로 고개를 젓던 시현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수건을 들고 있던 손을 멈칫했다.
아니.
유혹이 아니지.
어째서 그것을 유혹이라 생각한 것인가?
자신과 유민은 어디까지나 사무적인 관계이다.
헌터밀크를 그의 손길로 착유, 또는 수유하는 것은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한 행위일 뿐이다.
헌데 그런 정신 치료의 목적으로 행해지는 작업에 장소가 과연 중요할까?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서라면,
그곳이 모텔이든 어디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닐까?
“...으.”
효과가 탁월한 정신 회복 효과를 두 번이나 받아보게 되니,
시현은 이 성능 확실한 테라피와 연계되는 편안한 잠자리가 너무나도 탐이 났다.
그래. 지금껏 자신이 얼마나 일에 치여 가며 살았는가.
열심히 살아온 본인에게 이런 소소한 보상 정도는 지급해 주어도 괜찮을 것이다.
속으로 온갖 자기합리화를 늘어놓으며,
피곤한 안내원은 자신의 소소한 사리사욕을 위해 유민을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잘못한 건 당신이니까.
이런 직장인의 필수요소 같은 효과로 유혹한 건 그쪽이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수건으로 어느 정도 수분 기를 빼낸 밀크커버 두 장을 제자리에 장착한 뒤,
시현은 나지막이 유민을 불러 다시 자신과 마주보게 만들었다.
“당신... 음. 저도 유민 씨라고 부르죠.
유민 씨는 한가한 시간대가 어떻게 되나요?”
“그... 평일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뭐, 평일 주말 상관없이요.”
“평일에는 저녁 7시쯤부터 괜찮고... 주말에는 대체로 한가합니다.”
아직 짐꾼이라서요.
유민은 그런 말을 덧붙이며 대답을 끝맺었다.
그 말에 시현은 손가락으로 갸름한 턱을 매만지며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표하더니,
이내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시간 맞을 때 연락할게요.”
다음 날,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유민은 이불 밖으로, 더 나아가 집 밖에 나와 있었다.
옷차림은 언제나의 트레이닝 복에, 예의 커다란 가방.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짐꾼이나 다름없는 복장이었다.
서울과의 짐꾼 계약은 평일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유민은 지금 일하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입고 있는 이 신입 짐꾼 패션에서 조금이나마 탈피하고자,
오프라인 헌터 마켓으로 장비를 구하러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 한두 정거장만 건너뛰면 도착하게 되는 헌터 마켓 제4지점.
백화점처럼 커다란 건물 앞에, 유민은 혼자 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서울에게 도움을 받아 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평일 내내 숨 가쁘게 던전을 돌다가 주말에 겨우 쉬는 사람에게 부탁을 하는 것은 유민에게 꺼려지는 일이었다.
어차피 그렇게 중요한 것을 사는 것도 아니니,
혼자 이것저것 구경하며 둘러보는 쇼핑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유민은 별 고민 없이 그렇게 결론지으며, 결국 서울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허...”
지나가다가 한 번씩 안에서 흘러나오는 달달한 헌터밀크의 냄새를 스치듯 맡아 보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렇게 헌터가 되어 마켓에 들어가게 될 줄이야.
감회가 새로움을 느끼며,
유민은 헌터마켓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건물의 크기만큼이나 커다란 정문이 유민을 맞이했다.
헌터마켓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전자는 쇼핑 사이트를 통해 물건을 구매하고 소재를 매입하며,
개인과 개인 간의 거래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온라인 마켓이다.
그리고 후자는, 사업자 등록까지 마친 전문직 헌터 또는 그런 헌터가 소속된 기업들이,
마켓의 섹션 곳곳에 자리를 잡고 물건을 진열하여 판매하는 오프라인 마켓이다.
사실상 일반적인 온라인 쇼핑몰, 백화점과 다를 것이 없다.
다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매장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고,
헌터 협회에서 마켓을 관리하고 있으며,
물건 또한 헌터 전용이라는 것 정도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음.”
유민은 그런 헌터 마켓, 그 중에서도 오프라인 마켓에서,
현재 옷가지 하나를 들고 유심히 살펴보는 중이었다.
겉보기에는 그저 평범하게 주머니가 몇 개 달려 있는 카고 바지일 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평범한 기능성 바지와 비슷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통이 넓고 아랫단에 탄성 밴드 처리가 되어 있어 움직이기 편하며, 세탁하면 빨리 마른다.
차이점이 있다면,
주머니 쪽은 저급 몬스터 가죽을 사용해서 조금 더 질기다는 것뿐이었다.
이제 막 보수를 받기 시작한 F급 짐꾼.
그런 초짜의 지갑 사정으로 구매할 수 있을 법한 장비란, 보통 이런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유민은 이것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어찌 되었든 간에 자신이 지금 입고 있는 후줄근한 트레이닝 바지보다는 훨씬 형편이 좋아 보였다.
그는 지금 자신이 들고 있는 기능성 카고 바지를 이리 저리 돌려보다가,
적당히 튀지 않는 어두운 카키색으로 한 벌 구매했다.
이로써 하반신은 대충 신입에서 벗어난 건가.
유민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이번에는 상의에 걸칠 녀석을 찾기 위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 때.
한쪽 진열대의 모퉁이를 도는 순간,
유민은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치고 말았다.
생각보다 강한 충격에, 그는 비틀비틀 스텝을 밟아 균형을 잡으며 바닥에 나동그라지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와 동시에,
유민의 콧속으로 이질적인 향기가 스며들어왔다.
아니.
이것은 섣불리 이질적이라는 평가를 내려선 안 될 냄새였다.
“...?”
사고의 흐름이 거기까지 진행된 유민은,
이 상황에서 어딘가 기시감을 느끼게 되었다.
후각을 자극하는 고소한 내음.
달콤함과 공존하지 않고, 그것을 난폭하게 짓눌러 발판으로 삼는 곡물과 견과류의 향기.
그것에서 일말의 익숙함을 느끼며,
유민은 몸의 균형을 잡느라 잠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보았다.
등허리까지 내려오는 밝은 회갈색의 머리칼.
머리 위로 삐죽하니 솟은 개과 동물의 귀.
“응? 뭐야?”
“...!”
어제의 수인형 헌터가,
오늘의 유민 앞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