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안내원과 두번째 기회 (1)
-띠리리링! 띠리리링!
어디선가 들려오는 벨소리에, 유민이 힘겹게 눈꺼풀을 올렸다.
몸 전체를 누르는 무게감과 함께, 흐린 시야 사이로 하얀 색의 무언가가 일렁거렸다.
“...?”
눈을 몇 번 깜빡거리며 초점을 맞추니, 그것은 서울의 우윳빛 머리카락이었다.
그녀는 반라 상태로 자신의 위에 엎드린 채 곤히 자고 있었다.
커다란 봉우리 한 쌍의 존재감이 유민의 가슴팍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서울은 흥건했던 땀이 말라 부스스해진 머리카락을 뺨에 붙인 채,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흘렸다.
그 모습을 유민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그는 곧 하반신에서 우람한 무언가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유민의 남성기가, 잘 잤냐는 듯이 커다랗게 발기된 상태로 불끈거려왔다.
헌데, 유민은 그런 자신의 자지를 무언가가 감싸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실제로 유민의 남성기는 바깥공기를 쐬고 있지 않았다.
따뜻하고 말랑한 무언가가 수컷의 기둥을 빈틈없이 감싼 채, 이따금씩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제서야, 유민은 지금의 상황을 자각하게 되었다.
승급 미션의 부작용으로 인해 괴로워하던 서울. 그녀를 위해 밤새도록 성관계를 맺다가, 피곤한 나머지 삽입을 한 채 그대로 잠에 들어 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서울의 안에 씨를 뿌려댔음에도 멀쩡하게 아침 발기를 유지하고 있다니.
괴물이나 다름없는 녀석의 번식력에 질린 듯이 쓴웃음을 짓고 있는 유민에게, 다시금 시끄러운 벨소리가 짓쳐들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자신을 잊지 말라는 듯이 크게 울어대는 휴대전화.
유민은 서울을 껴안은 채로 재빨리 몸을 옆으로 굴려, 그녀가 등을 대고 눕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온갖 액체로 질척해진 결합부에서 자신의 굵다란 성기를 쭈욱 빼냈다.
-쯔즈즙.
“흐으으...”
천박한 마찰음과 함께, 백탁액과 읍즙 그리고 파과의 흔적이 혼합된 대량의 액체를 동반하며 서울의 보지에서 빠져나오는 수컷의 기둥.
우산 모양의 두꺼운 귀두갓이 질주름을 긁어내리는 것을 느꼈는지,
서울은 곤히 잠든 와중에도 나지막이 신음성을 흘리며 미간을 좁혔다.
서울에게서 해방된 유민은 서둘러 자신의 스마트폰이 시끄럽게 울려대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녀석을 집어 들어 착신 화면으로 상대편의 정체를 확인했다.
[최시현 안내원님]
“...?”
유민은 방금 잠에서 깨어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려,
그 이름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최시현이라면, 분명 협회 지부 안내원이었지.
이틀 전에 있었던 ‘그 사건’ 이후, 자신에게 명함을 주며 주말에 연락할 것이라 예고했었다.
어제가 금요일이었으니, 오늘은 분명 주말이다.
그것을 기억해 낸 유민은 화면 중앙의 통화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헌터협회 제4광진지부 최시현 안내원입니다.
잠시 본인 확인 진행 도와드리겠습니다. 김유민 헌터님 본인 맞으신가요?]
“...?”
유민이 기억하고 있던 다소 차가운 말투 대신에,
안내원의 업무에 본질을 둔 사무적이고 단정한 목소리가 스피커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에 살짝 당황하면서도, 유민은 일단 그녀의 질문에 긍정을 표했다.
“아, 네. 맞습니다.”
[네, 확인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헌터님께서 헌터협회 지부에 신청하신 능력 재측정 예약 처리 건으로 연락을 드렸습니다.]
능력 재측정.
그 단어를 듣게 된 유민은 혼란이 가중되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은 그게 가능한 것인지를 떠나서 애초에 존재 자체조차도 모르고 있었는데,
본인이 언제 그것을 예약까지 했단 말인가?
“...네?”
[지부 일정 상 오늘 재측정이 가능한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3시간 뒤인 오후 2시입니다.
해당 시간대에 예약 진행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민의 머릿속이 의문으로 가득 차거나 말거나,
상대는 자신의 용건을 담담히 늘어놓을 뿐이었다.
주말에 연락한다더니 뜬금없이 재측정 예약을 잡아 주겠다는 그녀의 말에,
유민은 혹시 시현이 잘못된 사람에게 예약 관련 전화를 준 것이 아닌가 싶어 입을 열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안내원의 말이 한 발 앞서 있었다.
[이대로 진행시켜 드려도 괜찮을까요?
‘밀크마스터’ 김유민 헌터님?]
살짝 한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유민의 직업명을 한껏 강조하며 그를 부르는 시현.
유민은 그것을 듣고 순간 팔에 소름이 돋았다.
시현의 물음은, 결코 사무적인 용건으로 연락한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에 유민은 직감적으로 이 상황의 전말을 파악했다.
그녀는 결코 용건을 잘못 전달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본인이 있는 곳으로 자신을 불러내기 위해,
그럴듯한 사유를 만들어 내어 당사자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그 곳에서 개인적인 만남을 가질 수는 없으니,
미리 이런 식으로 알리바이를 만들어 놓는 것이겠지.
유민은 잘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간신히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네, 그렇게 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오후 2시에 협회 제4광진지부 2층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안내원 최시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수고하세요.”
[그래요.]
전화가 끊기기 직전에 들려 온 시현의 다소 퉁명스러운 대답에, 유민은 어깨를 움찔했다.
이쯤 되니, 오후 2시의 그곳에서 겪게 될 일에 대해 점점 두려워지는 유민이었다.
다시 잠잠해진 스마트폰을 잠시 바라보던 유민은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2시의 약속도 약속이지만, 유민에게는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매트리스 쪽을 바라보았다.
유민이 통화를 하는 소리에 깬 것인지, 서울이 상반신을 일으켜 앉아 있었다.
그 움직임에 쇄골 위까지 올라가 있던 오버핏 티셔츠의 자락이 다시 내려오려 했으나,
옷을 흠뻑 적시고 있던 땀과 잔여유 등의 액체가 완전히 마르지 않은데다가 몸도 끈적끈적한 상태였기에, 옷자락은 더 이상 내려오지 못 하고 가슴 위에 얹힌 채 정체되어 있었다.
덕분에 유민은 서울의 젖가슴과, 그 아래로 이어지는 서울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시야에 담을 수 있었다. 특히 온갖 액체로 난리가 나 있는 고간 근처가 눈에 띄었다.
우윳빛의 단발머리를 부스스하게 흩트려 놓은 채 잠이 덜 깬 듯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넋을 놓고 있던 그녀는, 유민의 시선을 느끼고 눈을 돌려 그를 마주 보았다.
“...”
잠시 유민을 쳐다보던 서울은 다시 고개를 움직여 방의 풍경을 쓱 훑었다.
조금 익숙한 곳이기는 했으나, 자신이 살던 방은 절대 아니었다.
서울은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자신의 몸과, 그 몸뚱아리가 올라가 있는 매트리스에 시선을 던졌다.
땀을 잔뜩 흘린 듯이, 온몸이 끈적끈적하다.
특히 자신의 음부 근처는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질척하기 그지없었다.
매트리스는 곳곳에 하얀 얼룩이 져 있어, 어제의 격렬한 전투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서울의 시선이 다시 유민에게로 돌아갔다.
아니, 정확히는 유민의 하반신을 겨냥했다.
여전히 빳빳하게 몸을 곧추세운 채, 우람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남성기.
그 녀석 역시 자신의 보지처럼 온갖 액체가 얽혀 반들거리고 있었다.
방금 잠에서 깨어 제대로 작동하지 않던 서울의 뇌가,
그 모든 것들과 함께 머릿속에 흩어져 있는 기억의 파편을 조합하여 가까스로 결론을 도출해 냈다.
자신과 유민은,
밤새도록 끈적하고 격렬하게 정을 나누다가,
성기를 결합한 채 그대로 잠에 들었다.
“하.”
그 사실을 자각한 서울은, 해탈한 듯이 허허. 하고 공허한 웃음을 흘렸다.
첫 경험 한 번 거창하게도 치렀구나. 대단하다, 대단해.
어디부터 자기 자신에게 딴죽을 걸고 화를 내야 하는 것인지 감조차 안 잡히는 이 상황에,
서울은 그냥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합의 하에 저지른 것인데, 무엇이 문제인가.
“끄으...”
이젠 수치심은커녕 개운하기 그지없는 감정까지 느끼며 그대로 쭉 하고 기지개를 켜는 서울.
그 모습에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자의 여유가 담겨 있었다.
두 팔을 위로 뻗으며 깨끗한 겨드랑이를 드러내고 있던 서울은, 이내 팔을 매트리스 위에 털썩 내던지며 유민에게 인사를 건넸다.
“잘 잤어, 후배님?”
“아, 네. 선배님도 잘 주무셨어요?”
“으응, 뭐어... 덕분에?”
“...”
밤새 누가 놓아주지 않은 덕분에. 라는 뜻이 함축된 대답.
서울이 씩 웃으며 은근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그 농담 같지 않은 농담에 유민은 순간 말을 잃었다.
밤새 관계를 맺게 된 것에는 분명 자신의 영향도 없지 않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유민이 약간 착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어 사과하려 하자,
낌새를 눈치 챈 서울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냐, 후배님 아냐. 책임져달라고 한 건 난데 후배님이 사과하면 내가 뭐가 돼?”
“그래도 그 책임의 원인은.”
“어허, 쓰읍! 자꾸 그러면 또 매트리스에 메쳐 버리는 수가 있어!”
“...하하, 그건 봐 주세요.”
장난스러운 서울의 일갈에,
유민은 그제서야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응수했다.
그 모습에 서울은 히히 웃으며, 무심코 자신의 가슴에 얹혀 있던 옷자락을 내리려 했다.
“으엑.”
그러나 이내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축축하고 찝찝한 감각에 흠칫하며 손을 뗐다.
그러고 보니 이 옷, 처음부터 끝까지 입고 있었던 거지.
서울의 구겨진 표정을 본 유민이, 조용히 화장실 쪽을 가리켰다.
“...먼저 씻으실래요?”
“으응...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