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화 〉분홍바위꽃과 연금술사 (2) (16/116)



〈 16화 〉분홍바위꽃과 연금술사 (2)

허나 그가 아무리 탐구자의 눈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녀는  상태로 가만히 대치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은 손님과 공방 주인 간의 첫 만남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녀는 훤히 드러난 윗가슴의 살갖을 상대의 시선으로부터 가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슬쩍 봉우리 위로  손을 올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으음, 손님? 탐구욕은 나중에 채우시고, 일단 본인 소개부터 해줄래요?”


“...! 아, 죄송합니다.”


이러한 극상의 크기와 형태, 탄력감을 지닌 젖가슴에서는 과연 어떠한 헌터밀크가 생산되어 나오게 될지 매우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던 유민.
그는 검은 나비 머리띠를 한 여인의 말에 마치 속내를 궤뚫린 듯이 흠칫 놀라, 다시 시선을 위로 올렸다.

약간은 어리숙해 보이는 모습에, 그녀는 짙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아직 완숙해지지 못했음에도 그런 눈빛을 가지고 있다니. 더더욱 흥미가 느껴진다.

그녀가 눈앞의 초짜 탐구자를 흐뭇하게 지켜보는 사이에,
유민은 서둘러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내리고, 앞주머니의 헌터 명함 뭉치에서  장을 끄집어냈다.


뒷면에 ‘F’가 새겨진 하얀 카드에 마력을 불어넣은 뒤,
그것을 카운터 위에 조심히 올려놓는 유민.


가슴에 얹고 있던 손을 내려 유민의 F급 헌터 명함을 가져온 그녀는,
명함에 적힌 유민의 이름 석 자와 그 밑에 위치한 직업명- ‘밀크마스터’를 확인했다.

그것을 본 여인의 고운 눈썹이 슬쩍 위로 올라갔다.
밀크, 마스터?

과연. 어째서 탐구자의 시선을 자신의 젖가슴에 던지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각성자의 직업으로 발현될 정도라면 보통의 유(乳)류는 아닐 터이고, 분명 헌터밀크와 관련이 있을 테지.


유민의 탐구 대상에 관련하여 빠르게 생각을 마친 그녀는,
자신의 결론을 확정 짓기 위하여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김유민 씨는 헌터유, 헌터밀크에 관심이 많나 보네요?”

“그렇습니다.”


“역시나.”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곧은 눈빛으로 내놓은 긍정의 대답.
그에 여인은 만족스러운 기색을 희미하게 내비쳤다.
그렇지. 탐구자라면 자신이 나아가려는 길에 어떠한 부끄러움도 없이 당당해야 한다.

잠깐 자신의 입가를 매만지던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에게,
헌터유의 대가(大家)로 거듭날 새싹이 이렇게 찾아올 줄이야.

갑작스럽게 웃기 시작한 그녀의 모습을 유민이 의아하게 바라보거나 말거나,
검은 나비의 여인은 카운터 안쪽의 얕은 서랍을 열어  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들었다.

“아아, 맞다. 이게 아니지.”


그녀는 그 하얀 카드를 유민에게 건네려다가, 순간 멈칫했다.
그러더니 명함을 꺼내기까지의 일련의 행동을 역행하여 다시 서랍을 닫았다.

뭘 하려는 건가. 싶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유민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 그녀가 입을 열었다.


“우리 신입한테는 특별히 ‘진짜’를 줄게요.”


“네?”




친근함이 묻어나오는 여인의 말에 유민이 의문을 표하려던 그 때,
그녀의 가느다란 검지와 중지가 깊은 가슴골 속으로 매끄럽게 쑥 들어갔다.


두 손가락이 들어옴에 따라 살짝 벌려진 유육의 틈새.
그 자극적인 골짜기는 손가락의 움직임에 의해 조금씩 꿈틀대며 유민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여인의 갑작스러운 기행을 마주한 그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의 가슴골 사이에서 다시 손가락들이 빠져나왔다.


두 손가락 사이에는 카드 한 장이 붙잡혀 있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헌터 명함의 밋밋하고 단순한 흰색이 아니었다.

빛을 빨아들이는 것만 같은 어둠의 색.
그 검은빛의 카드는 매우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휘감고 있었다.




“자아, 신입. 받아요.”

여인은  검은 명함에 보란 듯이 마력을 불어넣고, 그대로 유민에게 내밀었다.
이걸 받아도 되나 싶었지만, 일단 명함의 주인이 받으라고 하니 그 뜻을 따른 유민이었다.

검은 카드의 뒷면에는, 희미하게 새겨진 검회색의 헌터 협회 문양 위로 알파벳 ‘A’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 문자에는 찬란한 금빛이 녹아들어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을 본 유민은 속으로 살짝 의문이 들었다.


A가 분명 높은 등급인 것은 맞지만, 이렇게까지 고급스러운 명함을 사용해도 되는 것인가.
엄연히  위에는 최강의 헌터들, S랭크가 자리하고 있는데.


단순한 그녀의 취향일 수도 있겠거니 생각하며 카드를 뒤집어 보자,
그런 유민의 안일한 생각은 단번에 깨져 버리고 말았다.

최시영.
그 이름 아래에 우아한 필체로 새겨져 있는 직업명을 보고,
유민은 저도 모르게 괴상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리퀴드 위치]

리퀴드 위치(Liquid Witch)!
그가 아무리 광기의 수준으로 헌터유에 빠져 있어도,
헌터가 존재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면 그  단어의 조합을 결코 모를 수가 없었다.

현재 헌터 시장에는 다양한 효능을 지닌 포션들이 유통되고 있다.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고,
다른 포션들의 베이스가 되어 포션계의 근간을 이루며,
가장 처음으로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최초의 포션이 있었으니.


바로 헌터의 생명과 직결되는 힐링 포션이었다.


그리고 이 힐링 포션을 개발하여 유통시키는 회사의 이름은 바로 리퀴드 위치.
포션의 최초 개발자이자 회사의 주인으로 알려진 헌터의 직업명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한다.

허나 지금까지도 그 헌터, 리퀴드 위치의 정체는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 있었는데,
 장본인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태평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는 말인가.

차라리  명함이 가짜이고, 그녀가 사칭을 하고 있다는   설득력이 높을 지경이다.

그런 생각을 한 유민이 애매한 표정으로 명함과 그녀- 최시영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자,
액체의 마녀로 추정되는 여인은 큭큭 웃으며 느긋한 움직임으로 손을 살랑살랑 저었다.


“아아, 뭐. 당연히 믿기 힘들거에요. 그 정체불명의 마녀가 여기서 느긋하게 조그만 공방이나 운영하고 있었다니.”


“...그렇습니다.”

“근데에, 그거 알아요?”



갑자기 그녀가 자리에서 스윽 일어나더니,
 손으로 카운터를 짚고 얼굴을 유민 쪽으로 들이밀었다.

하얀 오프숄더 셔츠자락 위로 훤히 드러난 가슴골과 윗가슴이 더욱 강조되어 보였지만,
코앞까지 다가온 신비로운 자색의 눈동자가 유민의 시선을 강제로 붙잡아 놓고 있었다.



“믿기 싫어도, 우리 신입은 믿어야 돼요.”


“...네?”


“내가 신입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 명함을 줬고, 나는 내 정체를 들키기 싫으니까.”



서늘한 눈빛으로 유민을 궤뚫듯 직시하고 있던 검은 마녀는,
이내 싱긋 웃었다.




“알겠죠?”




마녀가 뒤로 물러서자, 유민은 무심코 목 뒤를 쓸었다.
무형의 살기에 털이 바짝 곤두서 있었다.


진실과 상관없이, 상대는 유민에게 본인이 리퀴드 위치임을 밝혔다.


누군가에게 비밀을 알려 주었는데 어느 날 그 비밀이 퍼지게 된다면,
비밀을 알려 준 상대는  범인이 누구라고 생각할 것인가.


일방적으로 알려  것이지만, 퍼뜨리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
이것은 다소 터무니없는 협박과도 같았다.

아연한 표정으로 유민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자,
검은 마녀는 싱글싱글 웃으며 다시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래서, 우리 신입은 뭐가 필요해서 찾아왔나요?”


“네?”


“가방 들고 왔으니까, 재료 구하러 온 거 아니에요?”

“아... 네. 그렇긴 한데.”



되도 않는 협박으로 사람 가슴을 철렁하게 해 놓고,
태연하게 다시 본래의 용건으로 돌아가는 마녀의 행동에 유민은 헛웃음을 지었다.
리퀴드 위치로 추정되는 그녀는 지독한 마이페이스의 괴짜였다.


그나마 상대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고 있다는  위안으로 삼아야 하는 것인가.

유민은 마녀에게 뭐라고 따져 봤자 시간 낭비일 것이라 판단하고,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분홍바위꽃을 구하러 왔습니다.”


“분홍바위꽃? 분홍바위꽃... 아아.  잡초같은 꽃.”

유민의 대답에 잠시 카운터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기며 생각에 빠져 있던 마녀는, 이내 자리에서 느긋하게 일어났다.
 움직임에 마녀의 거대한 젖가슴이 묵직한 무브먼트를 보이며 위아래로 출렁였다.

거유에 걸맞는 큼지막한 엉덩이를 씰룩이며 한쪽 벽의 진열대로 다가간 검은 마녀.
그녀를 따라 근처에 멈춰선 유민은, 진열대의 구석에 소담히 쌓여 있는 분홍색의 작은 꽃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꽃들은 꽃받침 밑으로 줄기가 모두 잘려나가고 없었다.




“여기 있어요. 양은 얼마나 필요해요, 우리 신입?”

“아, 30그램이면 됩니다.”

“30그램? 구체적이네요. 이걸로 만드는 포션이 있었나?”

“...”


그녀의 혼잣말 같은 물음에 유민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모습을 관찰하듯이 자색 눈으로 빤히 바라보던 마녀는, 이내 큭큭 웃으며 정확히 30그램의 분홍바위꽃이 담긴 종이봉투를 유민에게 건넸다.

“그래요. 뭐어, 신입한테도 말할  없는 비밀이 있겠지.
소문은 안  테니까 걱정하지 마요.”


“...감사합니다. 가격은 어떻게.”



지갑을 꺼내드려는 유민에게, 검은 마녀가 느릿하게 손사래를 쳤다.



“아아, 됐어요. 우리 신입이랑 처음 만난 기념으로 그냥 줄게요.”

“네? 그래도.”


“쓰읍. 이 마녀님 두  말하게 하지 마요.”



잘록한 허리와 이어지는 골반 부분에  손을 얹은 채 짐짓 엄격하게 말하는 그녀.
그에 유민이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래요. 아, 오늘 지나면 다음 주 화요일에나 열 거 같으니까, 재료 구해야 되면  때 와요.”

“아, 네.”


“용건 없어도 꼭 놀러 와야 돼요. 알겠죠?”

“...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