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신규 회원과 첫 솔루션 (2)
카페에서 가장 싼 음료인 아메리카노를 앞에 두고,
서울은 자신이 들고 왔던 자그마한 종이백의 입구를 열었다.
그 안에 손을 집어넣어, 조그마한 유리병들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그녀.
헌터유가 가득 찬 보관 용기 5병이었다.
“갑자기 이렇게 불러내서 미안해.”
“아뇨, 괜찮아요. 저도 마침 냉장고가 비어서.”
“냉장고...”
유민의 입에서 냉장고가 언급되자 본인의 박살난 그것이 생각났는지, 금세 풀이 죽어 버린다.
당황한 그가 뭐라 하기도 전에, 울상을 지은 서울의 입에서 한탄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3년은 더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몇 년이나 쓰셨는데요?”
“중고라서 몰라아... 판 사람 말로는 15년 썼대는데...”
그녀의 말에 유민은 기겁하고 말았다.
판매자가 사실만을 전했더라도, 15년은 이미 냉장고의 수명을 훌쩍 초과한 햇수였다.
그런데 그걸 중고로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었다니. 냉장고의 영혼까지 끌어다 쓸 셈인가.
“이미 15년이나 된 걸 계속 쓰고 계셨어요?”
“그래도 헐값에 샀으니까 뭐.”
“아니,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아쉬운 표정으로 아메리카노를 쪽 빨아마시는 서울.
말문이 막힌 채 입을 살짝 벌리고 있던 유민은, 자신의 머릿속 기억들을 하나씩 끄집어냈다.
방금의 고물 냉장고와 서울의 낡은 옷차림, 그리고 제대로 된 방어구 없이 휑한 하반신.
유민은 그 모든 것을 조합하여 도출한 결론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 선배님. D급 헌터는 돈을 잘 못 버는 편인가요?”
“흐큽-!”
약간의 안쓰러움과, 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담긴 유민의 질문.
서울은 그 말을 듣고 그만 사레가 들려 격하게 콜록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놀라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유민은 그녀의 앉으라는 손짓을 보고 멈칫했다.
이내 상황이 정리된 후,
서울은 살짝 붉어진 얼굴로 헛기침을 한 뒤, 유민의 오해를 풀어 주었다.
“흠...크흠! 아냐, 그런 거. D급 정도면 충분히 먹고 살 만 해.”
“그런가요. 죄송합니다.”
“후배님이 뭘 보고 그런 말을 하는지는 대충 알겠지만, 이건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야.”
“이유요?”
서울이 검지와 엄지로 ㄱ자를 만들고, 양손의 그것을 서로 맞대어 직사각형을 만들었다.
유민은 그 모양에서 그녀가 등에 지고 다니던 묵빛의 대형 타워실드를 떠올렸다.
“내 방패 봤으니까 알지? 엄청 큰 거.”
“그렇죠. 무겁기도 하고.”
“그거 수리하고 정비하는 데 들어가는 유지비가... 응. 좀 그래.”
그 커다란 타워실드는 서울이 오랫동안 돈을 모은 끝에 장만하게 된 것이다.
크고 무겁다. 또 강력한 성능을 자랑한다.
허나 그만큼 많은 양의 재료가 복잡하게 얽혀 방패를 구성하고 있기에,
전투를 치른 후 정비를 하지 않으면 방패 안쪽에 있을지 모르는 균열을 지나치게 된다.
그러면 언제 어느 순간에 그 틈새가 크게 갈라져,
방패를 조각내버려도 이상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던전에서 무기를 잃는다는 건 죽음을 선고받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서울은 자신의 생계를 위해, 그리고 방패를 지키기 위해 매일 던전을 돌았다,
하지만 무기를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녀석은 막대한 유지비를 빨아먹어 주인의 생활을 궁핍하게 만들었다.
헌터유의 등급이 높았다면 유지비는 물론 그녀에게도 어느 정도 자금의 여유가 생길 수 있겠지만, 불행하게도 그녀의 헌터밀크는 4등급이었다.
그녀의 일상은 방패를 지키기 위해 방패를 휘두르는 아이러니의 연속.
그 흑색 방패의 묵직함은 그녀가 거기에 쏟아부었던 돈의 무게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쓴웃음을 머금으며 말끝을 흐리는 그녀의 모습에,
유민은 자신의 의문점이 싹 쓸려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군요.”
“어쩔 수 없지 뭐. 나한텐 그것뿐인데.
파티에서 탱커로 뛰면 허구한 날 맞고 맞으니까 수리비가 감당이 안 되고...“
“...”
“일단 헌터유부터 챙기자. 상하겠다.”
서울은 애써 웃었지만, 그 얼굴에서 묻어나는 근심은 결코 감추지 못했다.
유민이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 서울은 정말 위기에 처해 있었다.
부산물과 헌터유를 팔아 방패 유지비를 충당해야 하는데, 지금 그 헌터유를 보관할 냉장고가 고장나지 않았는가.
그것을 깨달은 유민은, 이내 상태창을 열었다.
비록 그녀와 함께한 시간은 하루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 내에도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좋은 사람이었다.
이제 막 헌터가 된 F급 짐꾼과 흔쾌히 계약해주고,
그런 신입을 배려해 긴장을 몸소 풀어주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친절히 가르쳐준 데다가,
심지어 자신의 기행까지 별 말 없이 넘어가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의 헌터밀크.
4등급임에도 불구하고 단맛이 느껴질 정도로, 서울의 헌터밀크는 맛의 포텐셜이 뛰어났다.
유민은 그 헌터유가 더 높은 등급을 달성했을 때 과연 어떠한 맛을 낼지 너무나도 기대되었던 것이다.
신뢰감 있고 성격 좋은 우윳빛의 거유 미녀 헌터.
그리고 잠재력 넘치는 헌터밀크.
서울은 유민의 밀크 솔루션에 충분히 부합하는 인재였다.
“...선배님.”
“응? 왜?”
“그 헌터밀크 관련해서, 진지하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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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서울 (4급)
버프 부여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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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밀크에 관련되기만 하면 종종 튀어나오는 진지한 탐구자의 얼굴로,
유민은 그녀의 솔루션 회원 정보에 표기된 버프를 가시화하였다.
“선배님. 상태창을 확인해 주세요.”
“어? 내 상태창은 왜...”
하도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길래, 일단 유민의 말을 따라 보기로 한 서울이 상태창을 확인했다.
“...어라?”
그리고는, 멍한 얼굴로 라임빛 두 눈을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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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 솔루션 : 회원 전용]
○ 고유 스킬
(밀크마스터 ‘김유민’에게서 공유됨)
▶ 헌터 밀크의 품질 상승을 위한 솔루션.
▶ 밀크마스터에게서 솔루션을 제공받을 수 있다.
▷ 현재 회원 등급 : 4
▽ 버프 부여 중
- 헌터밀크 생산량 15% 증가
- 헌터밀크 저장량 15% 증가
- 유방 감도 30%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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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보는 새로운 스킬이, 그녀의 상태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신기한 일이지만, 스킬의 설명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 내용을 찬찬히 읽어본 서울은,
이내 경악하여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진정하세요, 선배님.”
“아니... 유민... 그...”
서울이 입을 뻐끔거리며 무엇인가 말하려 했지만, 머릿속이 뒤엉클어져 단어 몇 개만이 겨우겨우 튀어나올 뿐이었다.
결국 다시 털썩 주저앉은 그녀가, 설명을 바라는 눈빛으로 유민을 쳐다보았다.
유민은 여전히 밀크마스터의 진중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제게는 스킬이 하나 더 있어요. 그 효과는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
비록 잘못된 선택으로 자신의 무기에게 휘둘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결코 멍청하지 않았다.
서울이 방금 보았던 충격적인 스킬의 효과를 생각하면, 유민이 그것을 있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이 세상에는 저등급의 헌터밀크를 가진 이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녀들은 등급 상승에 목말라 있었고, 이를 위해 온갖 노력을 쏟아붓는다.
당장 서울도 그 중 하나였다. 지금이야 그럴 돈도 없어서 반쯤 포기 상태였지만.
어찌됐든 그런 헌터들에게 유민의 스킬이 노출되게 된다면, 분명 큰 혼란을 가져올 터.
자신이 유민이었어도 이 스킬만은 반드시 꽁꽁 숨겼으리라.
감정을 차분히 가라앉히려 애쓰며, 서울은 조심스레 유민에게 물었다.
“그러면... 왜 이걸 나한테?”
“선배님은 그럴 만한 자격이 있으니까요.”
“내가...? 나는 오늘 후배님이랑 거의 초면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초면인 상대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좋은 분입니다, 선배님은.”
급작스럽게 들이닥친 칭찬 세례에, 서울의 귀가 확 붉어졌다.
얘가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니 무슨... 그게...”
“그리고, 저는 선배님의 그런 점이 참 마음에 듭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민은 계속해서 서울의 심장을 뛰게 할 만한 멘트를 던졌다.
“그, 그런 점...?”
“헌터밀크의 맛이요.”
물론 그것은 그녀의 착각이었다.
“...”
참으로 진지하기 그지없는 유민의 대답에,
서울은 방금까지 두근거리고 있던 자신의 가슴이 급브레이크를 밟는 것을 느꼈다.
자위행위 후에 찾아오는 현자의 시간처럼 급격한 변화였다.
“...맛.”
“네. 맛.”
“그럼 앞서 말한 그건 뭐였는데, 후배님.”
“그것도 포함해서입니다.”
포함하긴 뭘 포함해. 밀크에 미친놈아.
서울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가늘게 뜬 눈으로 유민을 흘겨보았다.
어쨌든 유민 덕분에 다시 평정을 되찾게 된 서울이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헌터밀크 쉐이크 카페는 헌터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장소.
밀크 솔루션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위험한 곳이었다.
“일단 자리를 옮기자.”
“그러죠. 일단 저희 집으로 갈까요?”
“...냉장고에 내 헌터밀크 넣어야 되니까?”
“그럼요.”
“아, 예. 그러세요.”
만난 지 하루도 채 안 되었지만,
서울은 유민의 사고방식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