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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 〉4등급 헌터와 초짜 짐꾼 (4) (9/116)



〈 9화 〉4등급 헌터와 초짜 짐꾼 (4)

서울의 허락이 떨어지자,
유민은  자리에서 곧바로 헌터유 보관 용기의 마개를 열어젖혔다.



“앗...”

설마 자신을 앞에 두고 그대로 헌터밀크를 들이켜려  줄은 몰랐던 서울이 입을 벌리며 당황했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 같은 것은 이미 유민의 관심사에서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지금 유민은, 오직 자신의 손 안에 쥐어진 이 신선한 액체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사실 그가 이리 신선한 헌터유를 마시는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안내원의 젖가슴을 움켜쥐고 직접 입을 대어 빨아 마신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행동은 자의가 아니라 능력에 의해 강제된 것이었고,
유민 본인도 해당 상황의 비현실감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불행하게도 그리 열심히 탐했던 그 헌터유의 향미를, 본인은 기억하지 못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유민에게 있어서는 지금의 기회가 온전한 첫 경험이나 다름없었다.



-스읍.




고급 와인을 앞에 둔 소믈리에의 심정으로,
유민은 헌터유가 담긴 유리병을 천천히  근처에 가져다 대며 눈을 슬쩍 감았다.

갓 짜낸 헌터밀크가 뿜어내는 유당의 신선한 존재감.
그 달콤한 향내가 유민의 비강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향긋한 젖의 단내를 맡으며, 유민은 냉장고에 박혀 있던 헌터유의 향을 떠올렸다.
차갑게 식어, 기지개를 채 펴지 못하고 웅크러든 그 삭막함이란.


품질을 보존하는 것이 아닌,
그저 하락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전부인 냉장보관의 한계였다.


허나 여성 헌터가 갓 짜낸 이 신선한 헌터유를 보라.
잔여 마력과 기타 영양분이 블렌드되어 젖샘에 담겨 있다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이 향유를.
싱그럽기 그지없는 녀석의 체취가 유민의 콧속으로 들어와 마음을 달래준다.

한없이 진지하던 그의 표정이 행복감에 젖어 천천히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민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헌터유 용기를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똑바로 세워진 유리병의 입구가 유민의 입가에 닿자, 그는 용기를 살살 기울였다.


좁은 통로를 따라 느긋하게 그의 입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헌터유.
유민은 그것이 조금이나마 점성을 띠고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냉장 보관되었을 때는 그저 물과도 같았던 녀석에게 이런 반전이 있었다니.

역시 젖은 갓 만들어 신선한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그는 자신의 구강에 채워진 한 모금의 헌터밀크에 혀를 적시며 음미했다.

미약한 달콤함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녀석에겐 신선함이라는 동료가 있었다.
차가워진 그것에서 결코 느낄  없었던 감칠맛이 아주 살짝 고개를 내밀어 밀크마스터의 미각을 톡톡 건드렸다.


그것을 만족스럽게 느끼던 유민은 이내 꿀꺽 하고 목구멍으로 넘겨 보냈다.
병을 끝까지 기울여 남은 헌터유까지 모두 들이켰다.


흐뭇한 미소를 지은 그는 곧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리며, 속으로 한 마디를 되뇌었다.


이게, 인생이지.

“...으읏.”

그리고 눈을  유민이 처음으로 보게  것은,
커다란 묵빛 방패 위로 우윳빛 머리만 빼꼼 내밀고 있는 서울의 모습이었다.


진지한 태도를 나무랄 것은 아니었지만,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자신의 가슴에서 나온 액체를 저리 보물 다루듯이 소중히 취급하며 신중하게 냄새를 맡고, 와인마냥 입에 넣어 굴리며 음미하고 있다니.

그 광경을 바라보던 서울은 뭔가 자신의 소중한 것이 유민의 코와 입에 철저하게 분석되어 파헤쳐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에 몸 속 깊숙한 곳이 뜨거워지고,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며 팔로 가슴 부분을 감싼 채 방패 뒤로 숨게 된 것이었다.


그녀는 영문 모를 부끄러움에 얼굴과 귀가 벌겋게 달아오른 채로,
타워 실드 뒤에서 라임색 눈빛에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담아 유민을 째려보았다.


몬스터라도 나타난 건가.
하고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던 유민은,
이내 지금까지 자신이 무슨 짓거리를 했는지 떠올리고선 표정을 굳혔다.
이거 남이 보기엔 완전 이상한 놈이잖아.

“그, 아닙니다.”

“...뭐가요.”

여전히 붉은 얼굴로 웅얼거리듯 따져묻는 서울의 목소리에,
유민은 그녀의 모습에서 적대적인 기색보다는 뭔가 다른 쪽의 감정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자신은 서울에게 잘못을 저질렀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직업도 그렇지만 헌터밀크에 아주 관심이 많아서... 저도 모르게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유민은 그냥 솔직하게 털어놓고 사과하기로 했다.
헌터밀크는 그의 인생이고, 동반자이다.
지리멸렬한 변명으로 이를 배신하는 일 따위,  수 있을 리가 없다.

바닥에 엎드릴 기세로 넙죽 허리를 숙이며 죄를 고백하는 유민.
그 모습을 가늘게  눈으로 쳐다보던 서울은, 이내 맥이 탁 풀려 입을 비죽 내밀었다.
그놈의 헌터밀크가 뭐라고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지 원.

원인 모를 수치심이 가라앉자, 뜨겁게 달아올랐던 서울의 몸 또한 어느 정도 식게 되었다.
그에 따라 곧 원래의 컨디션으로 돌아온 그녀는, 에휴 하고 한숨을 내쉬며 방패를 치웠다.




“...앞으론 그러지 마세요. 되게 이상해 보이니까.”


“명심하겠습니다.”


“버프는, 어떻게 됐어요?”

“아, 확인해 볼게요.”

유민은 자세를 바로 하고 서둘러 상태창을 열어 밀크 감별사 스킬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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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 감별사]
○ 패시브 스킬


▶ 헌터밀크 복용 시 해당 헌터밀크의 생산자를 확인 가능하다.
▶ 복용한 헌터밀크의 특성과 복용량에 따라 일시적인 버프를 부여한다.

-버프 부여 중 (유서울)
-힘 8% 증가
-지속 시간 : 1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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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프의 내용이 바뀌어 있었다.
기존의  남아 있었음에도 다른 헌터밀크를 마시자 버프가 갱신된 것이다.

효과는 힘 상승. 그러나 짧아진 지속 시간.

처음의 7시간짜리 버프는 분명 헌터유 복용량이 상당했을 것이다.
상대의 기력이 다 빠질 때까지 있는 젖 없는 젖 다 빨아댔으니 말이다.


헌데  버프에 비해 지속 시간이 턱없이 짧은 것을 보면,
이는 분명 복용량과 큰 연관이 있으리라.


그렇게 결론지은 유민은 서울에게 버프의 내용을 알려주었다.
힘이 증가했다는 말에 서울이 오. 하고 입술을 동그랗게 말았다.

“확실히 제 특성과 비슷한 버프네요.”

“그런가요?”




저 거대하고 무거운 실드를 휘두르려면 당연히 근력이 필수겠지.
유민은 그리 생각하며  헌터용기를 가방에 넣었다.


“그럼 이제 슬슬 다시 가볼까요?”

그 뒤로 실더와 밀크마스터는 계속해서 던전 돌파에 힘썼다.
다가오면 박살내고, 부산물을 줍는 것의 반복.

유서울은 그 과정에서 2번  가슴 갑옷을 열고 헌터유를 쏟아냈으며,
김유민은 그녀에게서 한 번  헌터밀크를 즉시 구매하여 복용했다.

동일한 상태의 헌터유를 같은 용량으로 마셨을 때 버프가 동일한지에 대한 실험이었다.
이번에는 그녀에게서 받은 헌터밀크를  멀리 떨어져서 등을 돌리고 홀짝였다.

허나 그것은 결국 짐꾼의 안전을 위해 유서울의 시야 내에서 벌어지는 일이었기에,
그녀는 다시 한 번 정체불명의 뜨거움을 느끼고 애꿎은 방패를 통통 두들겼다.


어쨌건 간에, 실험은 ‘동일한 버프가 부여된다.’ 라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해가 슬슬 떨어질 무렵 던전에서 빠져나와 온라인 헌터마켓으로 부산물을 팔아치우는 작업까지 끝마쳤다.


거래 장소를 근처로만 한정했음에도, 이 나무토막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금방 나타나서 대금을 치루고 나무토막과 함께 홀연히 사라졌다.

“...진짜 금방 팔리네요.”

“그렇다니까. 어디다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늘 하루 수고했어, 유민아!”


“네. 선배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던전에서 몇 번의 쉬는 시간을 거치며, 그들은 호칭 정리를 끝낸 상태였다.
서울 또한 그에게 말을 놓는 것을 허락했으나, D급의 무력이 뇌리에 인상깊게 새겨진 유민으로서는 그것이 꽤나 부담이었기에 한사코 거절했다. 그에 대한 절충안이 바로 선배였다.


내일 보자는 인사를 끝으로 우윳빛 헌터와 헤어진 그는 곧장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유민이 가방을 한구석에 던져두었다.
헌터유 보관용기들이 담긴 주머니를 서울에게 돌려주었기에, 가방은 헌터 명함 뭉치를 제외하면 텅 비어 있었다.


유민은 느긋하게 샤워를 마친 뒤, 목에 수건을 걸친 채 냉장고 앞에 섰다.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 일과를 떠올렸다.

먼저,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유서울의 헌터밀크를 마셔 신선도에 따른 버프의 차이를 확인하기.

마지막으로,
밀크 솔루션의 조건 A인 ‘동일한 생산자의 헌터밀크 3회 이상 복용’.
이를 만족시켜  결과 확인하기.

던전 안에서 그녀의 헌터유를 마신 다음에 두 번째 것을 복용할 때,
유민은 그가 각성하기 직전에 마셨던 헌터밀크가 솔루션의 조건에 포함이 된 것인지 긴가민가한 상태였다.

결국 조건 A는 지금까지 충족되지 않았으니,
진정한 3회째 복용은 지금 유민이 냉장고에서 꺼내고 있는 헌터밀크로 이루어질 것이다.


약간 긴장된 얼굴을 하고 헌터유의 마개를  유민.
그는 달달한 젖의 냄새를   쓱 맡고, 그대로 입 안으로 쏟아부었다.



[조건 A를 달성했습니다.]
[생산자 ‘유서울’을 4급 회원으로 등록할  있습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헌터유를 꿀꺽 삼키자마자,
유민의 눈앞에 상태창의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조건 A는 일단 성공적으로 달성되었다.
게다가 그대로 유서울을 솔루션의 회원으로 등록시킬 수 있게 되었다.

“오...어?”


그것에 기쁨을 표하며 팔을 번쩍 들어올리려던 유민은,
무언가 신경 쓰이는 문구를 발견하고 우뚝 움직임을 멈췄다.

“4급 회원?”

회원에 등급이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보지 못한 유민이 황망히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3급으로 올라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회원 등록이 가능하다는 것은 분명 좋은 소식임에도,
그는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졌다.



[등록하시겠습니까?]

유민은 미간을 찌푸리고  문장을 노려보다가, 일단 회원 등록을 해 보기로 했다.




“등록.”

그렇게 입을 열어 등록을 수락한 유민은,
얼마 가지 않아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되었다.



[4급 회원 ‘유서울’이 신규 등록되었습니다.]
[해당 회원에게 버프가 제공됩니다.]


“...뭐?”



누구한테 뭐가 제공된다고?
순간 머릿속이 하얘진 유민이 식은땀을 흘렸다.

유민은 회원에게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문장을 보고,
회원이 되어도 자신이 솔루션을 제공하지 않으면 상대에게 스킬을 들키지 않을 것이라 

그렇기에  고민 없이 유서울을 회원에 등록한 것인데, 그만 자신의 능력에게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되어 버렸다.


버프를 준다는 문구는 분명 스킬의 설명에 없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솔루션에 버프가 포함되어 있던 건가?

아니.
지금 유민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솔루션 스킬의 버프가 유서울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그녀가 솔루션의 존재를 눈치챌 수-



-띠리리링! 띠리리링!


“흐억!”



매트리스 위에 던져두었던 휴대전화가,
시끄럽게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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