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안내원과 능력 검사 (1)
그렇게 본인의 인생을 위한 다짐을 마치고 난 뒤,
유민은 커다란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헌터협회 제4광진지부였다.
가끔 빈 병을 반납하러 방문하는 것 외에는 전혀 접점이 없었던 곳인데,
이런 식으로 찾아오게 될 줄이야.
유민은 묘한 감정을 느끼며 자동문을 통과해 안쪽으로 발을 옮겼다.
그와 동시에 유민의 콧속으로 흘러들어오는 달콤한 냄새. 건물 내부에는 헌터유의 향기가 가득 퍼져있었다.
곳곳에 정화 마법이 걸린 도구들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이곳은 헌터 협회 지부.
남성 헌터보다 그 수가 많은 여성 헌터들이 건물을 오가며 흘려대는 헌터유의 자취를 완전히 없애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보라. 지금도 자신의 앞을 지나치는 여헌터 또한 사정없이 헌터유의 단내를 풍기고 있지 않은가.
“후.”
페티시를 사정없이 자극하는 향기에 저도 모르게 흥분이 끓어오른다.
앞으로 지겹도록 맡을 냄새인데, 익숙해져야겠지.
고개를 작게 도리질 치며 정신을 다잡은 그는 우선 빈병을 반납하는 창구로 이동하여 가방을 텅 비웠다. 일반적으로 지급되는 보통의 용기라 그리 큰돈을 받을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의 유민으로서는 이것도 감지덕지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헌터가 되어 큰돈을 벌면 저런 유리쪼가리 따위, 그 자리에서 바닥에 집어던져주마.
아니. 역시 그건 좀 아까운가.
헌터유의 달콤한 내음, 그리고 자신이 헌터가 되었다는 사실이 자꾸만 몸을 달아오르게 하여 머릿속에서 별별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그것들을 애써 무시하고 다시 로비로 돌아온 유민은 안내 표지를 따라서 2층으로 올라갔다.
1층은 빈병 반납 건으로 꽤나 익숙한 곳이었지만, 지금부터 발 딛을 장소는 유민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생소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자마자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전방에 설치된 프런트와,
단추를 끝까지 채운 흰색 블라우스에 완전히 감싸인 채로 그 위에 얹힌 커다란 젖가슴이었다.
“...!”
무심코 숨을 들이킬 정도로 충격적인 광경에 유민이 순간 굳어 있자,
유민에게 시선을 보낸 거유의 주인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움직임에 그녀의 유방이 출렁. 하고 위아래로 흔들렸다.
가슴의 양쪽 첨단에 부착된 주머니가 촉촉이 젖은 채 상하 운동을 실시했다.
하얀 천 너머로 비치는 분홍빛 무언가가 휙휙 움직이며 유민의 눈을 어지럽힌다.
저 터질 듯이 팽팽한 주머니들은 과연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건가.
헌터유가 나오는 것을 보니 그녀도 각성한 헌터였구나. 헌터 상대로 일해야 하니 당연한 일이겠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던 유민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 웅장한 가슴을 소유한 안내원에게 다가갔다.
흑빛 머리칼을 뒤로 묶어 단정히 정리하고 블라우스와 스커트로 몸을 감싼, 어딘가 피곤해 보이는 인상의 미인이었다.
안내원은 그가 다가올 때까지 가만히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가, 마침내 유민이 프런트 앞에 당도하자 입을 열었다.
“어떤 용무로 방문하셨나요?”
그 외형에 걸맞는 단정한 목소리가 2층 로비를 울렸다.
유민은 이쪽을 보라고 악을 쓰는 듯이 적나라하게 강조된 봉우리에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그녀에게 답했다.
“헌터 신규 등록을 하려고 합니다.”
“어머, 축하드려요.”
유민의 대답에 비즈니스 웃음을 지어 보이며 축하 인사를 건넨 거유 안내원은, 이내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수화기 너머의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유민은 풍성한 볼륨이 그대로 드러나는 안내원의 블라우스 속 옆가슴을 슬쩍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과연. 인터넷에 가끔 보이던 우리 동네 협회 지부의 거유 안내원 썰은 사실이었구나.
그러다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이 거유 오피스룩 안내원은 헌터유 등급이 어떻게 될까.
자신의 이름을 걸고 헌터유를 공공연히 거래하며, 헌터유를 배출하고도 계속해서 생산되는 잔여유 때문에 노브래지어가 유행이 되어 여성 헌터들이 젖은 천 너머로 유두의 형상을 흔히 드러내고 다니는 마당에,
여헌터에게 본인의 헌터유 등급을 물어보는 것 정도야 업계의 일상이었다.
헌데 그것이 손님과 안내원의 관계에서도 통용되는 것인가. 라는 내적 질문에 유민은 쉽사리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옆가슴을 감상하는 것도 잊은 채 미간을 찌푸리고 깊이 고민하던 유민.
그런 그의 의식을 안내원의 목소리가 흔들어 깨웠다.
“후우...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라와 주시겠어요?”
“아, 네.”
곧 안내원이 앞장서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뒷모습에서도 커다란 가슴은 여실히 그 존재를 과시하며, 양 옆으로 슬쩍 튀어나온 채로 실룩거리는 봉우리를 통해 웅장한 바스트 모핑을 유민으로 하여금 떠올리게 만들었다.
마음속이 번뇌로 물들기 시작한 유민이 그녀와 함께 들어선 곳은, 작은 방이었다.
방의 한가운데에는 일반 책상보다 약간 더 높은 받침대가 세워져 있었고, 그 위에는 주먹 두 개를 합쳐 놓은 크기의 구슬이 놓여 있었다.
유민에게 잠깐 기다려 줄 것을 당부한 거유 안내원은 한 손을 들어 구슬에 얹고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어두침침한 색의 구슬이 푸르게 빛나며 들릴 듯 말 듯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뿜었다.
작업을 마친 그녀는 구슬에서 손을 떼며 옅게 한숨을 쉬었다.
“먼저 헌터님의 직업명과 기본적인 신체 스펙을 검사할게요.”
그녀의 안내에 따라 손을 구슬에 얹자, 몸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이 마력인가.
유민이 몸속의 마력을 느끼기 위해 집중하고 있자니, 피로한 듯 눈을 깜빡이던 안내원이 뭔가 발견한 듯 허공을 쳐다보았다.
“확인됐습니다. 김유민 헌터님, 직업명은 밀크...”
유민의 직업명을 읽다 말고 순간 멈칫한 안내원은, 이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마스터시고, 신체 스펙은 평균적인 F급 헌터와 비슷하네요.”
역시 F급 헌터인가. 직업명이 범상치 않아서 뭔가 특별할 줄 알았더니, 특별한 건 직업과 그 능력뿐이었나 보다.
약간 실망감이 들면서도, 이런 능력을 얻었는데 무얼 더 바라겠냐며 스스로를 위로하던 유민에게 안내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
“그... 밀크마스터라는 직업명은 아주 생소한데, 구체적인 특성을 알 수 있을까요?”
“아, 네. 그러니까...”
직업의 특색을 설명해 달라는 안내원의 말에, 아까 전의 다짐대로 알려 주려던 유민은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구슬을 활성화하면서 마력을 사용했는지, 눈에 띄게 헌터유를 질질 흘리며 흰색 블라우스 자락이 점차 젖가슴에 달라붙어오는 안내원을 앞에 두고 ‘헌터밀크를 마시면 버프를 얻습니다’ 같은 소리를 지껄이려니 뭔가 미묘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결국 유민은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헌터유. 헌터밀크를 마시면, 버프를 얻습니다.”
“아...”
“등급에 따라,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버프 내용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럼 헌터밀크는 지참해오셨나요?”
“네?”
살짝 공백을 둔 그녀의 질문에, 유민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래. 능력을 증명하려면 헌터밀크를 복용해서 스텟이 상승한다는 것을 보여줘야지.
그런데 그 헌터밀크는? 집구석 냉장고 안쪽에 고이 모셔 두고 나왔지.
헌터밀크도 없이 밀크마스터로서의 능력을 입증하려 했다는 사실에 당황하던 그는,
저도 모르게 안내원의 촉촉이 젖은 블라우스에 시선을 꽂았다.
그녀의 유두는 헌터밀크를 뱉어내기 위해 빳빳이 곤두선 채로 가슴 주머니의 한복판을 뾰족하게 들어올리고 있었다.
여기 있긴 하네. 아주 신선한 헌터유가.
하얗게 변한 머리통 어딘가에서 그런 문장을 떠올리던 유민은, 이내 지금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닫고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안내원은 이미 표정을 굳힌 뒤였다.
그녀의 상태를 목격한 유민은 황급히 뒤로 물러서며 손을 내저었다.
“아, 그, 죄송합니다! 집에 헌터유를 두고 와서, 빨리 가지고 오겠-”
“잠시만요!”
허둥거리며 스펙 측정 방을 빠져나가려는 유민의 팔이, 안내원의 손아귀에 덥썩 붙들렸다.
헌터를 상대하는 여자답게 악력이 상당했다.
“네, 에?”
“헌터밀크를 마시면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데, 그 헌터유가 수중에 없으신 거죠?”
“아, 네. 그래서 지금 잠깐 집에...”
“헌터님이 자리를 비우신 사이에 다른 손님이 오시면, 검사 스케줄이 꼬일 수 있어요.”
그 다음에 올 말은, 안내원의 피로에 찌든 눈빛이 대신했다.
당신이 그 꼬인 스케줄 책임질 수 있겠냐.
물론 유민은 그럴 자신이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떻게...?
그의 물음에도 그저 유민을 묵묵히 바라보던 안내원은, 이내 시선을 낮추어 본인의 가슴께를 내려다보았다.
방금 마력을 사용하여 신선한 헌터유가 절찬리에 생산되고 있는 자신의 유방.
그 커다란 봉우리를 잠시 쳐다보던 그녀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피로감이 절절히 묻어나는 직장인의 한탄이었다.
그리고 다시 유민에게로 시선을 되돌린 안내원은,
유민이 반쯤 꿈꾸고 있다가 머리 한 구석에 치워놓았던 소망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일단, 제 밀크를 마셔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