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51-1 어지러운 머릿속.
“잘 마실게요, 파멜라 선배.”
“에이, 더 골라도 되는데~”
“녹차 라떼면 충분해요.”
차가운 잔을 들며 빨대를 빨자 차가운 얼음알갱이와 함께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녹차 라떼로 목을 축였다.
‘맛있게도 먹네.’
케이크를 맛있게 먹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파멜라를 다른 사람이 본다면 정말 귀엽고 깜찍한 소녀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달랐다.
저 가식적인 가면에 속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계약한 돈과 아이템 위치만 알려준다면 다시는 볼 일도 없는 여자다.
“후배. 나랑 사귈래?”
“...네?”
분홍 솜사탕의 트윈테일을 손가락으로 꼬며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진짜 뭐지? 너무 뜬금없는데? 뭐지?’
“왜? 내가 싫어?”
“아뇨... 싫은 건 아닌데.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그럼 사귀는 거야?”
“아뇨. 그건 아니죠.”
“흐으응~? 이상하네~? 나는 돈도 많고,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아름다운데~?”
‘진심일까? 아니면 함정일까?’
알렌은 차가운 녹차 라떼를 마시며 당황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장난스럽게 웃는 파멜라를 보았다.
분홍색 솜사탕의 머리칼.
트윈테일을 고수하고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묘하게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외모도 뭐... 장난기가 가득한 눈빛. 웃으면 살짝 입꼬리에 손가락을 대며 소악마스러운 웃음을자아내는 모습은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고백한 이유가 뭐지? 뭔가 이득이 되니까 내게 고백한 것 같은데.’
“하하~ 엄청 고민하고 있네~?”
“장난치시는 거죠? 여태까지 저한테 장난...”
“장난이라니~ 나는 후배랑 있으면 뭔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데~? 그리고 나라는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잘 알면서도 자연스럽게 대하는 태도도 마음에 들었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생크림이 묻은 포크로 나를 가리키는 소녀의 웃음은 도저히 18살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매혹적이었다.
‘예뻐. 진짜 예쁘긴 한데, 불안해!’
겉으로 드러나는 미소와 다르게 그녀의 속내를 모르는 알렌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차라리 농담이라고 말했으면 좋겠다.’
“천천히 고민해도 좋아~ 나는 언제든 준비됐으니까~”
여유로우면서 심술궂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파멜라.
‘여기선 단호하게 거절해야지. 나중에 달라붙으면 귀찮아지니까.’
“파멜라 선배.고백은 감...”
“으응~? 답변이 너무 빠르다~”
“아, 아니... 언제든 준비되셨다고 하셔서... 지금.”
“나는 말이야. 어렸을 때부터 갖고 싶은 건 뭐든 소유하며 살아왔거든? 그게 물건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나는 무조건 손에넣어야 만족해.”
불안했다. 미치도록 불안했다.
“차라리 손에 넣지 못할 거라면, 내 것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나올지는 후배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니?”
‘아무래도 좆된 것 같은데.’
물론나이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고백을 받는다는 것은 기분이 날아갈것만 같다.
더불어 아주 예쁜 미소녀가 내게 고백했다는 것이 아주 기뻤지만, 이건 아니다.
그녀의 곁에서 도박 기술을 배우며 지켜본... 아니, 그냥 캐릭터 설명에도 나왔다.
‘얀데레’
뭐, 처음에는 맹목적인 애정을 쏟아붓는 것이 마음에 들었으나.
어디 까지나 게임 이야기고 현실은 다르다.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하하.”
얀데레도 뭐, 여러 타입이 있다고 들었는데.
내가 봐온 파멜라의 타입은 아마 고립유도형, 이 아닐까 싶다.
나와 친하게 지내는 여성을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한 다음, 조금이라도 관계를 지녔다고 해도 파멜라는 무조건 그들을 배제할 것이다.
그렇게 내 주위 인간관계를 파멸로 끌고 간 후, 나중에는 자신에게 의존하게 하는.
악랄한 방법을 주저하지 않고 실행할 것이 분명했다.
막대한 돈과 그녀의 나사 빠진 정신 상태.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다른 사람을 배제. 또는 나락이라는 깊은 어둠에 떨어트리는 행동을 하는 그녀는 떨어지는 자의 절망으로 물든 얼굴을 보아도 일말의 죄책감도들지 않을 터이니.
“후배는 내가 마음에 안 들어~? 아니면 내 겉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 건가? 머리 자를까?”
“저를 원하는 이유가 뭐죠?”
“말하지 않았나? 후배랑 있으면 재미있는 일이 일어난 것만 같거든. 그리고 내 앞에서 벌벌 떨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지 않는, 배짱 있는 태도가 마음에 들어.”
늘어지는 목소리를 감추며 파멜라는 진지한 목소리로 알렌에게 답한다.
“세상은 넓죠. 그러니 저보다 트러블 메이커인 남자도, 저보다 배짱이 넘치다 못해 흐르는 남자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아니. 그건 사양하겠어. 눈앞에 보물이 있는데 그걸 포기하고 다른 보물을 찾으라고 하다니. 너무 바보 같은 말이잖니?”
이 여자. 절대로, 나를 포기할 생각이 없는눈빛과 말투였다.
“하긴~ 갑작스러운 고백에 당황할 법도 하지.”
반쯤 남긴 케이크와 홍차를남기며 원래 톤으로 돌아온 파멜라가 일어선다.
“그럼 천천히 마시렴. 아주 천천히. 후훗~ 그리고 계약은 오늘부로 파기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 말을 남기고는 가벼운 인사와 함께 파멜라는 떠났다.
“천천히... 아무래도 망한 거 같은데.”
반쯤 남은 녹차 라떼를 마시며 알렌은 파멜라가 먹다 남긴 케이크의 달콤한 향기와 홍차의 그윽한 향기가 머릿속을 어지럽게 했다.
****
“후...”
카페를 나와 아카데미 기숙사에 돌아온 알렌은 침대에 누워 한숨을 쉬었다.
분명 마로스의 저택을 나오기 전까지는 기분이좋았거늘.
아카데미로 가는 도중 파멜라와의 만남과 고백이 알렌의 심장에 박혀 머리가 어지러웠다.
“피곤하다. 피곤해.”
살며시 눈을 감으며 알렌은 어지러운 머릿속을 진정시키며 뒤가 걸리는, 마음에 걸리는 일들을 떠올린다.
엘프들을 납치하려는 노인.
그러면서도 내가마음에 들었다고 기껏 잡은 엘프를, 코렛트를 놓아준 것이 묘하게 걸렸다.
물론 코렛트를 구출하고 나서 마나로 몸을 탐색해보았지만, 걸리는 건 수면제뿐이었으니 그 점은 안심해도 되겠지만...
“이상해... 정말 이상해.”
몸을 뒤척이며 이번에는 오늘 겪은 일을, 파멜라에게 고백받은 일을 떠올렸다.
“미치겠네.”
두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조용히 곡소리 내는 알렌은 답답할 노릇이었다.
“푸후우우...! 머가리 아프네. 그냥 자자, 자.”
어지러운 생각은 관둔 알렌은 숨을 일정히 내쉬며 곧 편안한 자세와함께 긴장한 몸에서는 힘이 빠진다.
.....
[오랜만이구나]
“그러게요.”
감았던 눈을 뜨자 익숙한 공간.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은 잘 해결하고 온 것이냐?]
“뭐, 잘 해결하고 왔죠. 원하던 것도 손에 넣었으니. 아, 그리고 수련이나 할까요?”
[웬일이더냐. 평소에는 교미를 위해 몸을 움직이는 짐승이?]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무의식의 공간.
클로 세로의 레어에 오랜만에 들어온 알렌은 수련을 원했다.
[바깥에서무슨 일을 겪은 모양이구나]
“네.”
간결한 대답. 그렇지만 당찬 대답에 왕좌에 앉아 턱을 괴며 뚱한 표정을 짓는 클로 세로는 눈빛이 변했다.
[좋다. 따라오도록]
클로 세로는 왕좌에서 일어나 허공에 주먹질하자 곧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일그러지며 곧 창문이 깨진 것처럼 공간을 품은 조각이 하나둘 떨어지며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보금자리에서 수련한다면 내 재물이 남아나질 않겠지. 그러니 수련하기좋은 곳으로 가자꾸나]
깨진 공간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말라 비틀어진 나무 한 그루와 쩍쩍 갈라진 대지가 보였다.
[이곳에서 수련한다면야 조금은 강해지지 않겠느냐. 그럼 따라오도록 하여라]
클로 세로는 자신이 깨트린 공간 너머로 몸을 돌리며 따라오라는 손짓으로 알렌을 부른다.
****
무언가에 열중한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