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48. 돌아왔다. (글을 다시 올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바깥세상은 이렇게 생겼구나.”
어두운 밤.
알렌의 뒤를 따르는 두 엘프는 펑퍼짐한 로브를 깊게 눌러 쓰며 처음 보는 도시에 놀라며 작은 탄성을 내뱉는다.
“촌뜨기마냥 두리번거리지 마.”
“누, 누가 촌뜨기처럼 두리번거린다고... 씨이..”
“벌써 삐쳤어?”
“이게 혼나려고 아주!”
에블린이 화를 내며 알렌의 어깨를 무자비하게 때린다.
“어후, 주먹 빠른 거 봐라. 그만 때려, 에블린.”
“아프라고 때리는데 왜 그만둬!”
뒤따라오는 로자리아는 둘의 모습을 보며 조용히 웃다가 화를 내던 에블린을 부른다.
“왜 그래, 로자리아? 무슨 문제라도 있니?”
“코렛트는 괜찮을까요, 장로님?”
“흐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지만, 어쩌겠니. 다시 마을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차라리 코렛트도 같이 데려올... 아, 죄송합니다 주인님.”
“괜찮아. 마을을 떠나기 전에 내가 녀석들에게 신신당부했으니 괜찮을 거야. 또 편지에도 우리 집, 아카데미 주소를 써놨으니까. 힘들면 찾아오겠지.”
“그렇... 겠죠?”
“마을 생각은 뒷전으로 하고, 일단 움직이자.”
알렌은 두 엘프와 걸으며 곧 익숙하고 화려한 저택에 도착했다.
“우와... 여기가 인간의 저택인가?”
“인간이 아니라 알렌이라 부르라니까. 혹시 로자리아가 옆에 있어서 부끄러우욱!!”
“그, 그만 놀리라고 했지...!”
“괜찮으세요 주인님?”
“아, 괜찮아. 그나저나 너희 전! 장로님은 주먹이 아주 맵네? 잘못한 엘프 여럿 팼나 봐? 주먹 솜씨가 아주 예술이야, 예술.”
“자꾸 비아냥거릴래!?”
“아, 알았어. 그만 놀릴게. 흠흠...! 어이, 나 왔어. 문 열어.”
초인종을 누르고 자신이 왔다고 알리는 알렌.
그러자 굳게 닫힌 궁궐 같은 문이 열리며 곧 메이드들이 나와 알렌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다.
“오셨습니까, 알렌 님.”
“어, 그래. 마로스는 안에 있나?”
“네. 저택에 계십니다. 그럼 옆에 계신 일행분과 함께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소곳하면서도 절도있는 동작과 함께 인사하는 메이드를 본 두 엘프의 입에서 작은 감탄이 들려왔다.
‘메이드도 처음 보는 건가?’
“그럼 이쪽으로.”
“자, 들어가자.”
“아, 네.”
“우와...”
메이드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마로스의 응접실이었다.
여전히 깔끔하고, 비싼 물건들로 가득한 녀석의 응접실을 보니 돌아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다른 아이가 주인님을 불러오는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고맙다. 그나저나 먹을 거 없나? 배고픈데.”
“금방 다과를 준비하겠습니다.”
다과를 준비한다며 응접실을 나가는 메이드.
그리고 메이드가 나가자마자 두 엘프는 알렌의 양옆에 달라붙어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그중에서도 제일 먼저 물어본 것은.
“저게 말로만 듣던 메이드인가요?”
“뭔가 고풍스러운 옷차림이구나.”
메이드, 그리고 메이드복이었다.
‘오늘 밤에 입혀볼까? 메이드복을 마음에 들어 하는 걸 보면 거부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렇게 그녀들의 거침없는 질문 공세에 하나둘 대답해주고 나니, 어느덧 노크 소리와 함께 메이드는 다과가 잔뜩 놓인 카트를 끌며 돌아왔다.
“홍차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홍차를 준비하며 따스하게 빛나는 주황빛 액체는 고급스러운 찻잔을 채운다.
“다과는 어떤 걸 드시겠습니까?”
메이드는 새하얀 트레이에 놓인 케이크를 가리키며 알렌 일행에게 어떤 케이크를 원하는지 묻는다.
“뭐 먹을래? 아, 나는 잼 바른 스콘이면 충분해.”
“알겠습니다. 그럼 두 여성분은 어떤 다과를 원하시는지 알려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어. 나는... 음... 인... 아, 아니, 알렌... 무엇을 고르는 게 좋아? 이렇게 호화스러운 다과는 처음이라.”
메이드의 물음에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에블린은 잼을 잔뜩 묻힌 스콘을 먹는 알렌의 귓가를 속삭이며 묻는다.
“케이크 먹어본 적 없어? 로자리아 너도?”
“네... 책에서만 본지라 실물을 본 적도, 맛을 본 적도 없습니다...”
‘인간 사회에 녹아들려면 힘들겠구만.’
“이름이 뭐지?”
“아리아나입니다, 알렌 님.”
“아리아나. 거기 딸기 생크림이랑 과일이 듬뿍 들어간 케이크로 줘.”
“알겠습니다.”
케이크 서버를 든 아리아나의 손은 부드러이 움직이며 내가 말한 케이크를 각자 무늬가 든 접시에 옮기며 기품있게 건네는 모습이 어째 메이드 같지 않았다.
“고맙다, 아리아나. 그러면 딸기는 로자리아가 먹고, 과일은 에블린이 먹어.”
“고, 고마워...”
“감사히 먹겠습니다, 주인님.”
알렌이 각자 건네준 케이크 접시를 들며 은빛의 포크로 케이크를 먹는 두 엘프는 눈이 번쩍 뜨였다.
자연에서는 절대로 맛볼 수 없는 감미로운 단맛.
무엇보다 과일의 풍미와 함께 얽혀드는 부드러운 빵과의 조합.
입안에 부드럽게 퍼지는, 마치 구름과도 같은 푹신한 크림의 맛을 느끼는 그녀들이 각자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포크를 움직이는 속도가 점차 빨라졌다.
“맛있어?”
“그, 그럭저럭...”
어느새 다 먹은 케이크 접시를 아쉽다며 내려놓는 에블린.
“그럭저럭? 별로였어?”
“그, 그냥 먹을만했어.”
‘입가에 묻은 생크림이나 닦고 말하지. 툴툴대기는.’
“흐음. 로자리아는 하나 더 먹을래?”
“어? 그, 그래도 되나요? 이렇게 맛있는 다과를 또 먹어도 되는 건가요?”
“마음껏 먹어. 이번에는 농후한 맛을 자랑하는 치즈 케이크? 아니면 그윽한 향과 더불어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커피 티라미수? 마음껏 골라. 아, 에블린은 별로라고 했으니 안 줘도 상관없지?”
“다, 당연...히! 괘, 괜찮지... 다과를 못 먹는다고 해서 실망하지는... 않아...”
눈에 띌 정도로 시무룩한 에블린을 보던 알렌은 겉은 어른인데 알맹이는 아이 같은 에블린을 보며 작게 웃는다.
“아리아나. 이번에는...”
조금 전까지는 케이크를 먹을 때 그렇게 신이 나 하더니 지금은 멸망하는 세상의 끝에서, 벼랑 끝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것만 같은 표정으로 로자리아가 먹는 케이크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에블린.
“이럴 때는 조금 솔직했으면 좋겠네, 에블린. 자, 입 벌려.”
“응? 아, 아니. 정 그렇게 먹여주고 싶으면야...”
“싫으면 말고.”
“누, 누가 싫다고 했니? 빠, 빨리 줘.”
눈을 살짝 치켜뜨며 포크 위에 놓인 부드러운 케이크를 보는 에블린은 살짝 입을 벌리며 손가락으로 자기 입을 툭툭 친다.
“흐으으으응...!”
알렌이 먹여준 케이크를 음미하며 기쁨에 몸서리치는 에블린.
그리고 계속해서 먹여주는 이 남사스러운, 보기에도 부끄러운 광경에 무표정을 일삼던 아리아나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며 조용히, 아주 조용히 부럽다고 혼잣말한다.
똑똑.
“들어와.”
하인처럼 에블린에게 케이크를 먹여주던 알렌이 노크 소리를 듣자 무심히 들어오라고 말한다.
“알렌 형님 오셨습니까.”
“오냐. 잘 있었냐.”
“반갑습니다. 저는 알렌 형님의 믿음직한 아우, 마로스라고 합니다.”
알렌의 일행, 로브를 깊게 눌러 쓴 에블린과 로자리아를 향해 인사하는 마로스는 곧 알렌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알렌 형님. 그...”
“알았다, 인마. 에블린, 로자리아. 나는 잠시 마로스랑 얘기하고 올 테니까, 편히들 쉬고 있어.”
“알겠습니다.”
“어, 하읍. 흐으응~”
‘로자리아는 나를 보고 다녀오라고 인사하는데, 어째 에블린은 케이크에 정신이 팔렸네.’
“아리아나.”
“네, 주인님.”
“알렌 형님의 일행이니 정중히 모셔.”
“알겠습니다.”
“그런데 얼굴이 살짝 빨갛다?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아뇨, 살짝 더워서 그렇습니다.”
“그럼 잘 부탁한다.”
“네, 다녀오세요, 주인님. 알렌 님.”
응접실을 나온 두 소년.
그리고 마로스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은 아주 식당이었다.
그것도 육류 가득, 육즙이 흐르는 스테이크가 테이블 위에 먹음직스럽게 올려져 있었다.
“새끼. 눈치 하나는 빠르네.”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렌 형님.”
“그럼 나도 보답해야지. 자, 받아라.”
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를 먹기 전. 알렌은 가방에서 꺼낸 월광초 묶음을 마로스에게 건넨다.
“알렌 형님. 그... 월광...”
“구해왔다, 새끼야.”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죽기 직전까지 갚도록 하겠습니다!!!”
“알았으니까, 밥이나 먹자.”
의자에 앉아 김이 올라오는 스테이크를 포크로 찍으며 밥이나 먹자는 알렌.
마로스는 푸른 월광을 내는 월광초 묶음을 아주 살며시 품에 안으며 또 알렌에게 감사하다고 울부짖는다.
‘새끼... 그렇게나 좋구나. 하긴. 나 같아도 발기부전인데 치료제를 구해왔다고 하면 눈물 흘리면서 좋다고 난리를 쳤겠지.’
“밥 먹는데 울지는 마라. 밥맛 떨어진다.”
“네엣! 안 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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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접시들이 정말인지 천장에 닿을 정도로 수북이 쌓였다.
“잘 먹었다. 쩌업...”
“입에 맞으십니까?”
“음. 아주 좋아. 특히 소스가 아주 맛깔나더라. 쓰읍.”
알렌은 이빨에 낀 고기 조각을 혀로 빼내며 숨을 들이마신다.
“디저트도 내올까요?”
“아냐. 디저트는 무슨. 것보다 월광초를 캐왔으니 약을 만드는 시간은 어느 정도 걸리냐?”
“보름이 뜬 날에 캐오셨으니 사흘 내에 만들 수 있습니다.”
“나쁘지 않네. 그런데 다이스 녀석은 뭐 하는데 인사도 안 와?”
“요 며칠 동안 혹사해서 일단 쉬라고 놔뒀습니다.”
“어찌 조금 쓸만해 졌어?”
“괜찮은 녀석입니다. 머리가 비상한 것이 몇 년 정도만 굴리면 약도 제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쪽 일은 정리됐고. 그러면...’
“전에 내가 준 리스트는 괜찮았냐?”
“네. 그것도 차질없이 진행 중입니다.”
“그래. 차질없이 진행되면 좋은 거지. 아, 월광초로 만든 약 나한테도 주는 거 맞지?”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제가 마음 같아서는 전부 알렌 형님께 드리고 싶지만, 아시다시피 제가 조금 그래서, 하하...”
“새끼. 이빨을 잘 터네. 그리고...”
알렌은 향후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마로스와 진지하게 나누었다.
“그래. 유통은 일단 그 상태로 멈추고, 우선 변태 새끼들이랑 새끼 트는 게 중요하니까, 로비도 준비해 둬.”
“네, 알겠습니다.”
“아, 맞다. 혹... 아니다.”
“왜 그러세요? 물어보시다 말고?”
알렌은 어제 엘프 마을을 침입했던 그들에 대한 정보를 마로스에게 부탁하고 싶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괜히 알아내 보라고 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안 되니까. 그냥 내가 알아봐야겠네.’
“아니다. 오늘은 이쯤하고. 혹시 남는 방 있나?”
“네. 그럼 일행분까지 해서 방 세 개를 준비...”
“아니. 같이 잡아. 세 명이 누울 수 있는 넓은 침대가 있는 방으로 준비해.”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방에 무슨 도청이나 엿보는 아이템 있으면 알지?”
“제가 감히 형님께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하겠습니까? 진짜 서운합니다.”
“뭘 서운해 새끼야? 저번에 거리에 나왔을 때 미약 처 쓴 새끼가 뭘 잘했다고 서운해?”
“그, 그때야 뭐... 하하.”
“아무튼, 그리 알고 있고. 우선 목욕물 좀 받아놔라. 몸이나 좀 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