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47-3 납치된 엘프
“엘프는 자신들을 구해준 답례로 화살 세례를 안겨주는 전통이 있나?”
솟구치는 불길을 거두며 다음 화살을 준비하는 엘프들을 노려보는 알렌.
알렌의 불꽃이 나무 위에 있는 그들의 기세가 주춤했으나 이윽고 화살을 겨누기 시작했다.
“불길한 마나가 느껴져서 빨리 돌아왔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이나 좀 해봐, 에블린. 어? 야, 왜 그래? 어디 아파?”
에블린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창백하다 못해 퍼렇게 질린 얼굴. 뜨겁게 흐르는 땀에 비해 에블린의 손은 너무나 차가웠다.
증상으로 보면 분명 마나 결핍증이 분명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뭐야. 마나가 뒤엉켰잖아?’
“야! 에블린 몸 상태가 영 아닌데, 빨리 내려와서 도와...!”
“더러운 마녀를 도와줄 필요는 없다, 인간!”
“뭐? 이 새끼들이 지금 장난치나? 개소리하지 말고 빨리...!”
타악!
바람을 가르는 화살이 우리 근처에 꽂히며 파르르 떨렸다.
“불길한 불꽃을 사용한 마녀는 우리의 장로가, 엘프가 아니다!”
“이 새끼들이 장난칠 시간이 없다니까!!”
“인간. 너도 죽고 싶지 않다면 당장 떠나도록! 엘프의 경고는 이게 마지막이다!”
강압적인 태도로 나오는 엘프의 말에 뭐라 하고 싶었지만, 알렌은 짜증이 난다는 한숨을 내쉰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이대로 조질 수는 없겠네. 에블린 상태도 많이 안 좋으니. 여기서는 내가 참자, 참아.’
“알았다, 알았어. 네 소원대로 나가주마.”
기절한 에블린을 업은 알렌은 월광초와 다른 약초가 든 가방을 가지러 집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인간! 지금 뭐 하는 짓이지?”
“그럼 이 꼴하고 나가리? 이 새끼가 사사건건 시비네, 진짜?”
“좋다. 그 대신에 마녀는 내려놓고 가도록! 그렇지 않다면 죽이겠다!”
“그, 그만 하세요...! 다들 제정신이 아니에요! 장로님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로자리아! 너의 눈은 장식이더냐? 지금 장로가, 아니, 자신을 마녀라고 증명하는 불꽃을 내뿜지 않았더냐! 그런데 그만하라고? 너야말로 제정신이더냐?”
로자리아가 열변하며 에블린을 위해 소리쳐보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아니면 너도 마녀의 편에 서겠다는 것이냐?”
알렌과 에블린을 향해 겨눈 화살의 끝이 어느새 로자리아를 향해 있었다.
“말해라! 불길한 마녀의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긍지 높은 엘프로 남을지!”
엘프들의 시선과 활이 로자리아에게 향하자, 알렌은 이 틈을 타 서둘러 에블린을 집으로 옮기고는 이마에 손을 얹어 뒤엉킨 마나를 빠르게 풀어나갔다.
“으으....”
“조금만 참아.”
뒤엉킨 마나를 하나둘 풀며 고통에 찬 신음을 차츰 멎어 들며 곧 에블린의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속을 갉아먹는 이상한 불꽃을 끄집어내자 한결 편안해진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고는 한결 마음이 놓였다.
“이런 불꽃은 처음 보는데. 특이하구만.”
손에 들려 타오르는 초록색 불꽃. 어쩐지 핼러윈을 떠올리게 하는 느낌이 들었다.
‘꺼림칙한 불꽃이네.’
축제의 불꽃과는 다르게 어딘가... 무거웠다. 낮게 타오르는 초록색 불꽃은 알 수는 없지만, 특이했다.
파앗!
“조금만 참아.”
압도적인 드래곤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초록색 불꽃을 집어삼킨 알렌은 곧 에블린의 한결 나아진 표정을 보고 집을 나서려고 하는 그때였다.
“...지.. 마... 우리 엘프... 건드리면... 안돼...”
“안 때려, 안 때려. 그냥 얘기만 할 거야. 얘기만.”
힘없는 손으로 나가려는 알렌의 손가락을 잡으며 바깥에 있는 엘프를 건들지 말라는 에블린의 애절한 목소리에 침착한 말투로 그녀를 안심시키지만, 속은 달랐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내 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나가 상당한 에블린이 마나 결핍 증상을 보일 정도인데, 그런 에블린을 죽이려는 엘프들에게 한마디 하려 했다.
또 밖에서 들려오는 고함에 홀로 맞서는 로자리아가 걱정되기도 했으니까.
문을 열어 집을 나서는 순간. 께름칙한 소리가 숲에 울렸다.
짜아악!
“더러운 계집 같으니라고. 감히 마녀를 옹호하다 못해 인간의 편을 들어!”
뺨을 때린 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로자리아의 뺨이 순식간에 벌겋게 부풀며 찢어진 입술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모두 활을 들어라! 지금 당장 진흙탕만도 못한 계집의 목숨을! 하찮은 인간의 목숨을! 더러운 마녀의 목숨을! 긍지 높은 위대한 엘프들이여 모두 무기를 들어라!”
한 엘프가 활을 높이 들고 선동하자 로자리아를 제외한 나머지 엘프들은 옹호하듯 큰 함성을 지른다.
“야.”
“무스...!?”
턱이 부서지는 오싹한 소리. 새하얀 이빨과 핏물이 허공에 떠다니며 힘없이 추락한다.
“머, 머하눈 지시더냐아!!?”
“역시. 약속은 못 지키겠네.”
엘프들도 눈치채지 못하게 내리치는 벼락처럼, 엘프들이 모인 나무 위로 올라간 알렌은 엘프들을 선동하는 남자의 턱을 깨부순 다음 그의 머리카락을 잡으며 무심히 말한다.
“야. 적당히 해. 진짜 화나려고 그러니까.”
“이, 이, 이, 비러머글 닝가니!!”
짜아악!
“커으으억..!!”
“맞으니까 아프지?”
“머, 멋들 하거이서!!”
짜아악! 짜아악!
계속해서 엘프의 뺨을 때리는 알렌. 그리고 엘프도 얼마 남지도 않은, 입안에 있던 이빨이 하나둘 빠지자 곧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보호하기 시작하며 고개를 움츠렸다,
“맞으니까 아파. 그렇지?”
양쪽 뺨이 붉다 못해 이제는 검붉어진 남자 엘프는 뺨.
알렌은 또 손을 들어 그를 때리려고 하자, 눈을 질끈 감아 떨고 있던 두 손을 모으려는 모습에 뺨을 때리려는 손을 잠시 멈췄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잿더미와도 같은 자존심이 남아있던 것인지 입안을 맴도는 핏물을 알렌의 얼굴에 뱉는다.
“턱이 부서졌는데 잘 뱉네. 아예 대가리 뼈를 모래처럼 만들어줄까?”
“그, 그만 하세요, 주인님...! 이 이상 했다가는 정말로 죽어요!”
알렌의 손을 두 손으로 막는 로자리아.
“우끼디 마라...! 하차눈 닌간 따이가... 근지 노픈...!”
“새끼들이 아까부터 그놈의 긍지 타령은 시팔!!! 너흰 양심도 없냐!!!”
만신창이가 된 엘프의 멱살을 잡으며 포효하는 알렌의 모습에 모두가 귀를 막았다.
모든 걸 태워 버릴 정도의 분노가. 흔적조차 남기지 않게 모조리 불살라버리는 소년의 분노에 엘프들을 귀를 틀어막으며 두려움에 떨었다.
“긍지? 이런 개새끼들! 네깟 놈들이 무슨 긍지를 안다고 지랄이야!!”
멱살을 잡은 엘프를 집어던진 알렌은 마지막으로 두려움에 떠는 그들을 보며 지끈거리는 미간을 집으며 고함쳤다.
“버러지 새끼들...! 에블린 부탁만 아니었더라면 내가 이 새끼 죽여버렸을 거야. 그리고 긍지? 너희는 긍지를 논할 자격조차 없어...! 병신같은 새끼들!”
타오르는 분노가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이, 그들의 뼛속 깊은 곳까지 고통을 새겨주고 싶었다.
“저, 저기... 주인님.”
“왜.”
“죄, 죄송합니다... 엘프들은 원래 이런...”
“아니. 엘프가 아니야. 저 새끼들은 엘프가 아니라 그냥 귀만 큰 병신들이야.”
맨 처음에는 엘프 마을에 가는 것이 그렇게 좋았었는데.
하지만, 녀석들의 경악스러운 실체를 직접 보고 경험하니 실망하다 못해 이제는...
“후우... 로자리아. 너는 여기 남을 거냐.”
“잘... 모르겠어요. 이제껏 제가 태어난 곳을 벗어나 다른 곳을 간다는... 코렛트도 걱정이 되고.”
“미안한 말이지만, 에블린을 옹호해준 시점부터 이딴 놈들이 너를 받아주겠어?”
“...알겠습니다. 짐을 챙겨 빨리 가겠습니다.”
“판단 빨라서 좋네.”
부어오른 뺨을 만지자 로자리아는 아프다며 신음과 함께 한쪽 눈을 감았다.
“가만히 있어.”
알렌의 마나가 손바닥에 모이며 곧 따스한 기운이 로자리아의 부어오른 뺨과 입술을 어루어만진다.
“회복 계통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좋아질 거야.”
“...감사합니다, 주인님.”
침울하던 로자리아가 알렌의 따스한 손을 만지며 싱긋 웃었다.
“그럼 빨리 짐을 챙기도록 하겠습니다.”
“천천히 해. 천천히.”
나무를 내려가는 로자리아를 노려보는 엘프들의 시선.
그러나 알렌의 불타는 시선에 그들은 고개를 숙이며 두려움에 떨었다.
“너네. 경고하는 거 좋아하더라. 그래서 나도 경고한다. 오늘부로 에블린, 로자리아에게 복수한답시고 오는 새끼는 팔다리 힘줄 끊어버린다. 다시는 아침을 맞이할 수 없게 두 눈을 뽑는다. 마지막으로 몸부림칠 정도로, 죽지 않을 정도의 상처를 새겨줄게. 그러니 찾아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 말을 엘프들에게 남기고 에블린에게 돌아가는 알렌.
그리고 엘프들은 알렌이 사라지자 참았던 숨을 들이마시며 그 경고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느낀 엘프들은 서둘러 나무에 내려와 각자의 보금자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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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좀 들어?”
“...엘프들은?”
“거, 서운하게. 일어나자마자 하는 소리가 그거냐?”
머리가 어지러운 에블린을 보며 서운하다는 표정을 짓는 알렌은 미리 준비한 물을 마시라며 건넨다.
“아무도 안 죽였어. 다만, 손을 좀 봤을 뿐.”
“소, 손대지 말라고 했잖...! 쿨럭!”
“진정해. 그리고 내 여자를 건드린 놈들을 그냥 놔둘 리가 있나.”
“누, 누가 네 여자라고 지껄...! 아! 머리 아파아...!”
알렌은 사례 걸린 에블린의 입가를 닦으며 말한다.
“에블린. 이제부터 어쩔 거야.”
“으으으... 응? 뭘 ?”
“로자리아한테서 얘기 들었어. 마을에 침입한 마법사를 몰아내기 위해 금지된 마법을 쓴 걸 들었다고.”
“어? 아, 그거? 벼, 별거 아니야. 내가 정신이 없어서 그랬지! 마을 엘프도 다 이해해 줄 거.... 야...”
알렌의 진지한 표정에 에블린은 말끝을 흘리며 곧 고개를 떨궜다.
“나와 함께 나가자.”
“어?”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야. 나와 같이 떠나자, 에블린.”
손에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에 몸이 따뜻해졌다.
“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껏 자라왔던 고향을 버리고 다른 곳에서 살 수 있을까?”
“떠나자, 나랑 같이. 마을을 나가서 보란 듯이 행복하게, 환하게 웃자.”
“나, 나는... 별로 성격이 좋다고 할 수는 없어. 나랑 같이 있어봤자 너만 피곤할 거고. 또...”
손가락이 꿈틀거리며 고개를 숙였던 에블린은 살짝 알렌을 보며 얼굴을 붉혔다.
“내가 좋아서 그래. 가자, 에블린.”
앞머리를 쓸어넘겨 이마를 맞대는 알렌은 아름답게 빛나는 에블린의 눈동자를 보며 말한다.
평소의 알렌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언행이지만, 이상하게도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었다.
“어, 어... 그러면 앞으로 잘 부탁해, 인간...”
“알렌 메스티아. 이름으로 불러줘.”
“아, 앞으로 잘 부탁해... 아, 알렌 메스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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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자식들...! 죽일 거야...!”
깊은 새벽.
한 엘프가 횃불을 들고 복수심에 타올랐다.
“뭐야. 이빨 벌써 자랐네?”
“!?”
“놀라기는. 그나저나 내가 경고했잖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도 안 자고 대기한 보람이 있네.’
“이, 인간 따위가 어째서 배신자들을...!?”
“그러거나 말거나, 강냉이 털렸던 놈이 내 경고를 귓등으로 안 들어? 이거 나를 무시하는 거지?”
“오, 오지 마으흐흐으읍?!!”
“시끄러워 새끼야. 애들 깰라.”
“흐으으브으음읍?!!!!!”
“어허. 조용.”
“흐으으으으으읍브브으븡!!?!!?!?”
알렌은 대량의 마나를 사용하여 절대로 움직일 수 없는, 언젠가 클로 세로 같은 존재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미래를 대비해서 만든, 복잡하고 어려운 술식으로 이루어진 구속 마법으로 녀석을 묶었다.
“도대체가 이상하단 말이야. 그렇게 압도적인 차이를 보여줬는데도 왜 덤벼들까? 내가 만만한가?”
압도적인 마나에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엘프는 공포에 떠는 두 눈동자는 횃불을 주워든 알렌을 절로 쳐다보았다.
“흐으으으으으읍!!!!!!!”
“남자가 앙탈 부리는 거 싫어하는데?”
치이이익....!
살과 털이 타는 역한 냄새.
“에이, 이 정도로 안 죽어.”
“흐브으으브으으읍!!!!?”
소리를 질러 도움을 요청하지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들리는 것은 오직 자신을 태우는 소리.
“뜨끈~~ 하지? 이게 정력에 그렇게 좋다네? 불꽃 남자! 불좆. 파이어 스틱 매앤~”
허공에 매달려 구속된 엘프의 가랑이가 불타올랐다.
횃불에 닿은 모든 살이 검게 변하며 뜨거운 피와 함께 불투명하고 물컹한 구슬 두 개가 바닥에 떨어진 것을 본 알렌은 그대로 발을 들어 구슬 두 개를 주저 없이 밟고 비틀었다.
“아, 그리고 정신을 잃지 않게 하는 마법도 걸어줬으니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끄으으으으으으읍!!!!!!”
“기뻐서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흐뭇하네.”
탁!
횃불을 꺼트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녀석의 가랑이를 차버리는 알렌.
“흐그극으그으그브그므!?!!?”
“야, 이게 진짜 마지막 경고야. 불로 생긴 상처는 내가 바로 치료해주지. 그 대신에 앞으로 우리를 쫓아온다면 그때는 이걸로 안 끝내. 정말 벼룩보다 못한 삶을 죽을 때까지 살게 될 거야.”
****
“잘 잤냐? 아침 차렸으니까 먹고 출발하자.”
“너, 요리도 할 줄 알았어?”
졸린 듯이 눈을 비비는 에블린은 알렌이 차린 아침을 보고 깜짝 놀라 다가간다.
“에게게. 벌꿀 토스트?”
“먹기 싫으면 말...”
“아냐! 먹을 거야!”
“맛있게 먹어라.”
의자에 앉아 알렌이 차려준 벌꿀 토스트를, 아직 따뜻한 접시를 들며 에블린은 요리조리 쳐다보며 의심의 눈초리로 알렌을 노려보았다.
“뭐... 탄 건 아니지?”
“음식 가지고 장난 안 쳐. 정 못 믿겠으면 내가 먹을까?”
“이, 이번만 믿어볼게.”
뺏기기 싫은 것인지 에블린은 꿀이 떨어지는 토스트를 들고 크게 한입 베어 물더니 행복한 미소를 내보였다.
“저기, 더 있어?”
“더 만들어줄까?”
“어? 아, 아니. 혹시 남았나 해서 물어본 거야. 음식을 남기면 아깝잖아, 하하..”
“그래서?”
“또... 만들어주면 좋겠는데...!”
꿀이 살짝 묻어난 빈 접시로 넘기며 조금 더 달라는 부끄러운 모습은 정말인지 귀여우면서도 질릴 때까지 먹여주고 싶었다.
“이번에 더 맛있게 만들어줄게.”
“고, 고마... 로, 로자리아. 거기서 뭣 하느냐...?”
“아, 아뇨. 두 분의 분위기가 아주 좋으셔서 저도 모르게 그만... 훔쳐봤습니다.”
“분위기가 좋기는 무슨...!”
“로자리아도 여기 와서 앉아. 곧 만들어줄게.”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주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