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3화 〉44. 이 집 엘프는 예쁘네. (73/116)



〈 73화 〉44. 이 집 엘프는 예쁘네.

“장로님. 숲에 몰래 침입한 인간을 데려왔습니다.”


가죽 주머니를 쓴 채로 걷고 걸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어떤 높은 엘프가 사는 건물의 안인  같았다.

‘장로라고 말하는 걸 보면 높은 양반인가 보네.’


“어이, 빨리 이거나 벗겨. 답답해 죽겠어.”
“무례하기는. 감히 인간 따위가.”

차가운 말투로 로자리아는 알렌에게 입을 닥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윗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딱히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그대로 입을 다문 채로 장로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고했어요. 로자리아, 코렛트. 둘은 나가봐도 좋아요.”
“네, 알겠습니다. 가자, 코렛트.”
“응.”


 여성 엘프는 장로의 말마따나 그대로 나갔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계속 뻘쭘하게  있던 알렌은 바닥에 앉아 장로의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봐. 엘프들은 손님을 맞이하는 방법을 모르나?”
“몰래 숲을 들어오신 인간이 할 말은 아닌  같은데.”

마나를 손에 집중시켜 손목을 묶은 밧줄을 말끔히 태우며 가죽 주머니를 벗어 던지는 손목을 잡아 가볍게 돌렸다.

“방대한 마나를 지닌 인간이시군요. 그런데 어찌 순순히 잡혀 온 것인지 의문이 드는군요.”
“그냥. 쓸데없는 분란 일으키긴 싫으니까. 그런데 얼굴을 보일 생각은 없는 건가?”
“무엇을 원하기에 이곳에 온 거죠.”

알렌의 질문에 답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엘프 장로는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저 커다란 천이 가려진 채로 가련하게 앉아있는 그녀의 실루엣만이 보일 뿐이었다.

“...뭐, 약에 쓰일 재료가 필요해서 말이야.”
“약에 쓰일 재료라면 인간 사회에서도 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월광초. 그게 필요해.”
“그건  되겠군요.”
“왜지? 코렛트라는 엘프는 월광초 군락지가 있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몇 뿌리 정도는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월광초 군락지를 언급하자, 엘프 장로는 머리를 집으며 말을 이어간다.

“코렛트는 착한 아이죠. 우리를 지키기 위해 낮과 밤, 경계 없이 숲을 돌아다녀서 그런지 마을의 소식에 상당히 어두운 편이죠.”
“돌려 말하지 말고, 본론만 말해.”


돌려서 말하는 것에 짜증이 난 알렌은 빨리 말하라며 엘프 장로를 재촉한다.


“최근에 어떤 몬스터가 월광초를 하나도 빠짐없이 먹어치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데. 돌려 말하는 거 질색한다니까.”
“좋습니다. 필요하시다면 미리 캔 월광초를 내어 드릴 수 있습니다. 대신에 숲에 들어온 몬스터를 없애주셨으면 합니다.”
“엘프들은 인간보다 뛰어난 종족이라 자부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고작 인간 따위에게 부탁하다니. 지나가는 엘프도 웃겠군.”
“맞습니다. 인간에게 부탁한다는 것은 엘프의 긍지에 흠이 가는 일이지요. 그러나 부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방대하고 강렬한 마나를 지닌 당신에게 부탁하는 겁니다.”

단호한 목소리와 함께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부탁하는 엘프 장로.


“수지에 맞지 않는데.”
“네?”
“내가 필요한 월광초는 하늘을 가득 채운 보름달의 정기를 쬐며 피어난 월광초야.”
“그러시다면 보름에 캔 월광초를 드리지요”
“그게 아니라, 수지타산이 맞질 않는다고. 엘프들도 어찌할 줄 모르는 몬스터를 죽여서 겨우 얻는 것이 월광초 몇 뿌리라니. 하물며 당신이 한 말을 내가 어떻게 곧이곧대로 믿지? 월광초를 먹어치우는 몬스터? 그리고 외부인에게 몬스터 퇴치를 부탁하는 엘프? 이상하잖아?”
“욕심과 의심이 많은 인간이시군요.”
“욕심? 계산에 능한 것을 잘못 말한 거 아닌가? 또 의심이 지나친 것이 아니라 세세하게 신중한 거지.”
“그러시다면야...”

자리에서 일어나는 엘프 장로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는 천을 걷으며 손에는 웬 목걸이  채로 얼굴을 보였다.

일정 장식 하나 없는 백금의 긴 머리칼.
조금은 졸린 듯한 눈매를 지녔지만, 상당한 외모를 지닌 여성이었다.

‘이래서 노예상이 그렇게 엘프를 죽어라 죽어라 할 정도로 잡으려는 이유가 있었구나.’


엘프 장로는 우아한 발걸음으로 한쪽 다리를, 허벅지까지 훤히 드러나는 플릿 스커트를 입은 채로 새하얀 각선미를 뽐내는 다리를 보았다.

‘풋잡 받고 싶네, 검스도 좋고, 니삭스도 좋고... 한번 당해보고 싶은데?’

“이 목걸이는 엘프 왕가에 내려오는 유서 깊은 목걸이로써 착용자의 마나를 증폭시키는... 어딜 보고 계신 거죠...?”
“응. 다리 보고 있어.”


다리를 보고 있다는 솔직한 말에 엘프 장로는 허리를 숙이며 손으로 슬릿 스커트 사이로 드러내는 허벅지를 감추자 손에 들린 목걸이를 떨구며 짧지만 강렬한 탄식을 내뱉는다.

“이봐, 엘프 왕가에서 내려오는 목걸이를 이렇게 떨어트리면 쓰나.”
“부, 불경한 인간이로군요.”
“인간이 아니더라도 모든 종족이 당신을 바라볼 것 같은데.”

떨어진 목걸이를 들고 일어선 알렌은 다시금 엘프 장로의 손에 목걸이를 얹으며 그대로 손을 잡았다.

“이, 이거 놓으세요!”
“알았어. 놓도록 하지.”


맥없이 손을 놓아주는 알렌을 보며 놀라던 엘프 장로는 이내 얼굴을 붉히며 치켜뜬 눈으로 알렌을 노려보았다.


“무례한 행동은 미안하다고,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엘프 왕가의 비보는 내게 필요하진 않아. 오히려 다른  원하는데.”
“...무엇을 원하시는 겁니까.”


경계를 풀지 않고, 몸을 튼 채로 나를 노려보는 엘프 장로를 보니 이것 참... 소유욕이 들끓었다.

“그 건은 나중에 얘기하고, 배고픈데 혹시 밥 좀 줄  있나?”
“...알겠습니다. 일단 식사라도 하며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그러니 이만 나가주셨으면 합니다.”
“쌀쌀하네. 겨우  한 번 잡았던 걸로 난리네.”
“빨리 나가주세요.”
“알았어. 그러면 빨리 준비해달라고 배고프니까.”


알렌은 문득 나가기 전에 좋은 생각이 난 것인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


“준비는 이 정도로만 하고. 읏차차차!”


숙였던 허리를 펴는 동시에 곡소리를 내는 알렌은 가볍게 몸을 풀며 숨을 한껏 들이쉰다.

“후우우... 마을 공기 한  좋네. 할아버지가 된다면 오고 싶을 만큼 좋은 곳이네.”


저녁이 되자 조명 같은 빛을 내는 벌레들과 여기저기 굵은 고목을 파낸 엘프들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인지 창문에는 그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엘프들은 나무를 파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건가. 그런데 상당히 조용하구나. 아파트 형식으로 된 것 같은데, 저렇게 조용하면 층간소음은 문제없겠네.”


마을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는 알렌은 하품하며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다시 하품을 쏟아내니 눈물이 고였다.


“피곤하네... 쩝. 그런데 엘프 장로는 뭐하길래 저녁 준비를 이렇게 늦게 하는 거야. 배고파 죽겠네.”
“뭐야?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이때 나무에 기댄 채로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하던 도중,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뭐야, 딱밤이냐? 여긴 웬일이야?”
“그, 그러는 너야말로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혹시 유령?”
“뭔 개소리야... 그나저나 어디 가는 길이야.”
“응? 아, 수련하러 가는 길이야.”
“수련?”
“응. 아! 그러고 보니 너 때문에 수련하는 건데...! 으으으윽!!”

종잡을 수가 없는 엘프다. 도대체 이랬다저랬다 하니 어느 장단에 녀석을 맞춰줘야 하나...

“어쩌겠어. 내가 너무 잘났는데.”
“으윽! 재수 없어...!”
“하하, 재미있네. 그보다 너, 아까 보니까 마나 운용도 제대로  줄 못하던데, 용케 문지기 역할을 하네? 인력... 아니, 엘력난인가?”
“이, 이게에히히이익!?”
“안 때려니까, 쫄지 마.”
“ㄴ, 누가 겁먹었다고...!”

성질을 내며 제 갈 길을 가는 코렛트를 향해 알렌은 잠시 그녀의 걸음을 멈춰 세운다.

“뭐, 뭔데?”
“다음에 화살에 마나를 부여할 때나, 정령의 힘을 빌릴 때는 섣불리 부여하지 마. 소리가 하도 요란해서 들키잖아. 또 파괴력은 매우 별로였고.
”거, 거짓말하기는...!“
”내 몸에 상처 하나 안 났잖아? 아, 그리고 상대를 효과적으로 죽이려면 계속해서 움직여. 괜히 한 장소에 머물렀다가는 오히려 역공당한다? 또...“
“에베베베베!!!  들려!!! 에베베벱!!”


귀를 막고는  들린다고 호들갑 떨며 빠르게 뛰어가는 코렛트.


“저거, 도대체 몇 살이길래 정신연령이... 유아 수준인 거지?”


그렇게 저 멀리 사라져 코렛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알렌은 한숨을 쉬며 이내 굶주린 배를 문지르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던 것인지 그냥 엘프 장로를 만났던 그곳으로 올라가 문을 벌컥 열고 팔짱을 낀 채로 의자에 앉았다.

“배고파, 밥 줘!”
“아직 식사 준비를 끝마치지 못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아니,  참아. 빨리 줘, 그냥.”
“정말이지. 인간이라는 종족은 참을성이 그리 없습니까?”

나무 그릇에 담긴 맑은 수프를 알렌에게 건네는 장로 엘프.


“에이... 무슨 수프가 풀떼기만 있어... 다른 반찬도 풀떼기네...”
“무, 무슨 소리를...! 제가 제일 잘하는 요리이니, 그게 싫다면 억지로 드시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먹지 마세요!”
“누가  먹는데? 그냥 투정부린 거야, 투정. 자, 얼른 먹자.”


테이블을 두드리며 빨리 자리에 앉으라고 재촉하는 알렌.

그리고 자신의 요리를 부정당한 장로 엘프는 성질을 부리며 맞은편 자리에 앉는다.

“뭐, 잘하는 요리라고 하니 내 특별히 먹는 거야.”


숟가락을 들어 처음에는  내음이 가득한 수프를 뜨고 한 입 먹어보았다.

‘오... 꽤 담백하니 나쁘지는 않네. 뭐랄까 콩소메 맛?’


말도 없이 맑은 수프를 말도 없이 계속해서 흡입하는 알렌을 보니 화가 났던 엘프 장로도 곧 당연하다며 위풍당당하게 웃으며 숟가락을 든다.

“고기가 없는 건 조금 아쉽지만, 맛있었어.”
“제 요리를 이해하는 인간이라니. 조금이나마 기본 소양은 있는 모양이군요.”


그릇까지 싹 비운 나무 그릇을 보이자 엘프 장로는 자신의 요리는 당연히 맛있다며 어깨를 으쓱한다.

“배도 부르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몬스터를 퇴치한다고 해도 보상이 겨우 보름달의 기운을 받은 월광초라니? 오히려 내가 손해가 아닌가?”
“그러면 무엇을 원하십니까.”
“장로, 당신 이름이 뭐지?”
“...에블린이라 합니다.”
“나는 후작 가의 차남 알렌 메스티아라고 한다. 뒤늦은 소개지만, 반가워.”

알렌은 뒤늦게 엘프 장로, 에블린에게 신사다운 면모를 보이며 악수를 청한다.


에블린도 무례하게 나오지 않은 인간의 악수를 마다할 정도로 냉혈한 엘프는 아니었기에 알렌이 내민 손을 잡으며 가볍게 악수하는 그때였다.


“지금 저와 뭐 하자는 거지요?”
“당신이 마음에 들었어, 에블린. 그래서 말인데, 내 것이 되는 게 어떻겠어? 차라리 이번 몬스터 퇴치에 월광초말고 당신을 원하는데.”

에블린의 손을 놓아주지 않고 억지로 붙들며 자신의 것이 되라 말하는 알렌.


“싫습니다. 제가 어찌 인간의 것... 이건 또 무슨 짓이지요?”
“잘 생각하라고. 어차피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월광초는 금방 얻을 수 있어. 그렇지만, 에블린이 내게로 와준다면 이 숲에 오는 몬스터, 인간, 다른 종족이든 내 선에서 처리할 수 있지.”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마나를 새기는  노예가 되라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당신도 여타 인간들과 똑같군요.”

에블린은 자신의 팔뚝까지 차오르는 불꽃의 마나를 여유롭게 밀어내며 차가운 목소리로 테이블에 엎어져 있는 알렌을 천박하다는 말과 함께 노려보았다.

“당신은 제가 약하다고 생각했습니까? 그저 인간들이란 잠깐 칭찬해주며 좋다고 하니 헤벌쭉한 것이 참으로 다루기 쉽네요. 제가  당신에게 부탁했는지 아십니까? 물론 우리가 퇴치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몇 엘프의 희생이 따르겠지요. 하지만. 때마침 방대한 마나를 가진 소년이  것을 보고 그리 기뻤던 적은 없었습니다.”


에블린의 차가운 마나는 알렌의 팔뚝, 아니, 어깨까지 얼어붙으며  안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이대로 제 마나가 당신의 심장에 닿는다면 필시 죽겠지요. 이번에는 제가 제안하도록 하죠. 열등한 인간이여. 우리의 것이 되어 우리의 영역을 침범하는 몬스터를, 아니 우리를 적대하는 모든 것을 죽이세요.”


점차 어깨를 넘어 이제는 심장 부근까지 침식하는 에블린의 마나.

그러나, 알렌은 웃고 있었다.

“왜 웃으시죠. 이름을 들어보니 귀족이신  같은데, 설마 자존심 때문에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하려고 그러십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당신의 심장에 술식을 새길...?”
“크크크...! 크하하하하핫!!!”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다. 변수가 있을 줄 알았으나 이렇게 쉽게 흘러갈 줄은 몰랐다.

“이런 바보 같으니라고. 그렇게 마나를 쏟아부으면 안 되지, 안돼. 그러면 본진이 털리잖아?”


 수 없는 말로 자신을 뒤흔들 셈인가 생각한 장로 엘프는 더는 주저하지 않고 코가 닿으면 엎어질 거리만큼, 조금만 움직여도 심장은 그대로 얼어붙을 것이다.

그러니 살기 위해서는 복종의 한마디가 필요하...

화르르륵!!!


알렌의 심장에서부터 시작되는 생명의 불꽃이 닿는 모든 것을 태우며 가슴까지 얼린 얼음이 순식간에 녹으며 증발해버린다.


“무, 무슨!?”
“나는 말이야, 아주 고귀하고 대단하신 분의 총애를 받는 몸이라서 말이지. 그분의 존함을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너는 상대도 되지 않아, 에블린.  그분의 총애가 없다고 해도 너는 어차피 내 발밑을 기어 다닐 셈이었지만.”
“바, 밖에 누구우으으으읍!!?”
“어허, 안 되지 안돼. 그렇게 엘프를 불렀다가는 안 될 일이지.”


알렌은 자리에서 일어나 도움을 요청하는 에블린의 입을 막으며 연인처럼 다정하게 새하얀 귓가에 속삭이며 말한다.

“걱정하지 마. 곧 있으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테니까. 그때까지 정신 잃으면 안 된다, 에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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