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42. 엘프는 똑똑하지 않아.
“그러면 나흘 후에 오겠네.”
“네.”
나흘 후에 이곳을 다시 온다는 말을 남긴 마부는 그대로 떠났다.
“여기부터 엘프들 영역인가?”
마차에서 내려 배낭을 고쳐매는 알렌은 바로 앞에 펼쳐진 광활한 숲을 보았다.
“아, 벌레 많을 것 같은데? 일단 드가야지.”
엘프들이 서식하는 숲에 들어오니 예상했던 것처럼 벌레 소리와 함께 알 수 없는 새소리가 들려왔지만, 마냥 싫지는 않았다.
왠지 진짜로 판타지 세계를 경험하는 기분이랄까.
도시를 처음 구경하는 시골 뜨내기처럼.
회사 생활에 지친 회사원이 양복을 벗어던져 자연의 일부가 된 것처럼.
숲으로 들어와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걸으니 아픔도 잊은 채, 기분이 한결 좋았다.
뭐랄까. 평화롭다고 해야 할까.
공기도 맑고, 머리도 맑아지고.
‘이게 말로만 듣던 음이온, 그런 건가?’
새로운 힐링이랄까.
이렇게 숲을 걷기만 해도 절로 기분이 좋아지니 마로스 녀석이 말한 월광초를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오, 다람쥐.”
나무 위를 뛰어다니며 웬 도토리 비슷한 것을 입에 넣더니 볼이 빵빵해지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째애액! 째애액! 째애액!!”
“뭔가 기대했던 거랑 거리가 머네?”
귀여운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면 다람쥐는 요상한 울음을, 내가 생각했던 다람쥐의 울음소리와 달랐다.
조금 전에 들었던 새소리와 흡사한 소리가 아마 이 녀석이 아닐까 싶었다.
“아무튼, 신기하네. 잘 있어라.”
이곳에 온 목적을 떠올린 알렌은 잔뜩 경계하는 다람쥐에게 인사를 남기며 다시 숲을 걸어갔다.
한참을 걸었을까.
어느덧 하늘에 높이 걸린 태양이 서서히 내려오며 알렌도 잠깐 휴식을 취하며 엘프들이 서식하는 숲의 지도를 펼쳐, 목을 축인다.
“꽤 걸었으니 아마 이쯤인가?”
오기 전에 새롭게 갱신된 숲의 지도를 보고 얼추 계산하는 알렌은 자신의 위치를 지도에 표기하고는 되도록 엘프들과 마주치지 않기를 빌었지만...
그러면서도 혹시나 만나지는 않을까 하며 육포를 씹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엘프’
판타지에서는 사람이 왕래하지 않는 숲에 터전을 이루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종족으로 알려졌다.
그들의 특징은 아주 간단했다.
타 종족과 다르게 유달리 길고 뾰족한 귀와 함께 미남미녀들로 이루어진 종족이라고 할 정도로 그들의 외모는 환상적이며.
자연의 정령과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종족이자 현 시점에서 소실 직전인 정령 마법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종족.
또 활을 능숙히 다루며, 손재주가 뛰어나 가끔 암상인이 파는 물건 중에서 엘프가 만든 아이템이 있다면 그 값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으니.
만약 엘프들이 인간과 비슷한 물욕이 있었다면, 대륙은 인간 사회가 아닌 엘프 사회라고 할 정도로 그들의 능력은 매력적이면서도 두려운 능력이었다.
“외곽 쪽으로 걸었으니 들키지는 않았겠...”
푹!!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알렌의 얼굴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치며 그대로 나무에 박혔다.
“인간이 함부로 들어와도 될 숲이 아니다. 돌아가라.”
청아한 목소리.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위쪽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리고 있었다.
“이런 미친년을 봤나? 대뜸 화살 날려놓고 돌아가라고? 이것 참.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리는데!”
알렌은 청아한 목소리를 낸 누군가를 찾는 시늉 하며 잠시 시간을 끌고 있었다.
그러고는 공기 중에 마나를 흩뿌리며 동시에 경고도 없이 날아와 나무에 박힌 화살의 깃 부분을 보았다.
“이봐, 긍지 높은 엘프가 비겁하게 숨어서는 민간인에게 활이나 쏘다니? 아무리 배타적 성향을 지닌 엘프라고 해도 이건 자기 종족의 명예를 먹칠하...”
푸우욱!!
또다시 알렌을 말을 잇지 못하며 나무에 박힌 화살 바로 밑에 화살이 깃을 흔들며 박혀있었다.
“이번이 마지막 경고다. 이대로 숲에서 나간다면 죽이지는 않겠다.”
“사람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서운하게 왜 그래? 엘프들은 원래 그러냐?”
“10초라는 시간을 주지. 그때까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 심장을 향해 주저 없이 쏘겠다.”
“거, 사람이 참... 아니, 엘프가 뭐 그리 단호하냐? 그냥 툭 까놓고 얘기나 하자니까?”
“10, 9, 8, 7...”
알렌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것인지 유유히 초를 세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엘프.
천천히 숫자가 낮아지며 1에 가까워졌지만, 알렌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경고를 무시한 대가다. 잘 가라, 인간.”
그리고 엘프는 한껏 당긴 활시위를 놓자 안 그래도 빠른 나무 화살을 바람을 시원스레 가른다.
사실은 심장을 쏜다며 죽인다고 경고했으나, 혹시나 한낱 인간의 목숨의 대가로 인간들이 침략할지 모른다는 명분을 얻지 않나 싶기에 엘프는 심장이 아닌 알렌의 다리를 정확히 노려 상처를 치료하고 숲에서 쫓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엘프도 구라를 치네? 심장에 쏘는 줄 알고 개쫄았는데, 다리에 쏘는 건 뭐야?”
다리를 노렸던 나무 화살이 어느새 알렌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리고는 새빨간 마나를 흩뿌린 채로 힘을 주더니 잡아챈 나무 화살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이며 새까만 재가 되었다.
“어디 있는지 아니까, 좋은 말 할 때 내려올래. 아니면 내가 거기로 갈까?”
나긋한 말투.
그러나 엘프는 불의 마나를 흩뿌리며 손에 묻은 잿더미를 털며 다가오는 알렌을 향해 다시금 화살을 걸어 이번에는 있는 힘껏 당기며 바람의 정령의 힘을 빌려 초라한 나무 화살에는 바람이 모여들었다.
“와우. 이번에는 흔적도 안 남기게 죽이려고? 그런데 엘프치고는 마나 운용이 별로구나? 내가 가르쳐줄까?”
흩뿌려진 공기가 모여 자그마한 폭풍이 엘프의 나무 화살을 감싸며 소용돌이친다.
분명히 죽이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엘프는 알렌에 홍염을 보며 마음을 바꿨다.
‘저거, 바보 아니야? 자기 위치를 알려주다니?’
대기가 떨릴 정도로 한껏 모여든 바람. 아니, 작은 폭풍을 본 알렌은 엘프도 개체마다 지능이 높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알렌에게 남몰래 무시당한, 나무 위에서 자신의 존재를 대놓고 알리는 엘프는 활촉으로 알렌을 정확히 겨냥하며 최대로 당긴 활시위를 그대로 놓는다.
조금 전의 두 화살과는 다른 굉음.
근처 나무와 나뭇잎이 휩싸이며 작았던 폭풍은 거대한 짐승의 아가리처럼 커지며 알렌이라는 존재 자체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폭풍은 매서운 바람 소리와 함께 알렌을 갈기갈기 찢었다.
서서히 폭풍이 잔잔해지며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흩어졌다.
그리고는 바람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폭풍에 삼켜진 알렌은 그 자리에 없었다.
엘프는 나무 위에서 사뿐히 내려와 착지하고는 마지막으로 인간의 유품이 남아있다면 묘비라도 만들어 줄 셈으로 알렌의 유품을 집는다.
“진작에 경고를 알아들었다면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을 텐데.”
폭풍에 의해 더럽혀진 가방을 든 엘프는 무어라 중얼거리며 기도한다.
“뭐 하고 있냐?”
“무... 커억!?”
순간 기도하며 무방비하게 있던 엘프의 목을 거칠게 들어 올리는 알렌.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나 보네?”
“커으으...! 커어억...!”
“왜 살아있는지 궁금하다는 눈빛이네? 하지만 그 전에. 자고 있어라.”
자신의 목을 잡은 손과 팔을 손톱으로 연신 긁어대며 눈물을 흘리는 엘프.
그러다 알렌이 자고 있으라는 말을 하자 순간 커다란 고통이 복부를 강타하며 눈이 풀림과 동시에 침을 흘린 채로 머리를 숙인다.
“내 주먹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