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6화 〉39-3화. 대련 (66/116)



〈 66화 〉39-3화. 대련

"어디 간 거야... 여기 앉으세요."
"어, 응..."


크리스틴을 보건실로 데려왔지만, 정작 있어야  아네스가 보이지를 않았다.

'나중에 벌이다.'

알렌은 속으로 지금 있는 이 일을 기억하고는 아네스에게 벌을 준다고 다짐하며 서랍에 있는 연고와 거즈, 그리고 희석한 알코올 소독제를 꺼내기 전에 앞서 더러워진 손을 씻었다.

손을 깨끗이 씻은 알렌은 서랍에서 꺼낸 희석한 알코올 소독제를 거즈에 적시며 크리스틴에게 손을 달라는 제스쳐를 취한다.

"손바닥은 괜찮은데. 마나로 보호하기도 했고."
"손 줘요."
"어... 알았어."

손사래치는 크리스틴을 보며 알렌은 단호히 말투로 겁을 먹은 듯이 내미는 크리스틴의 손목을 살며시 잡는다.

알코올 소독제를 적신 거즈로 그녀의 뜨거운 손바닥을 식히니 웃음을 참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가, 간지러우... 후웃..!"
"거, 참. 가만히 계세요."

'것보다 손바닥에 상처 하나 없네. 화상은커녕 긁힌 자국도 없고. 진짜 멀쩡하네.'

다행이었다. 괜히  때문에 다치기라도 했다면. 혹여 흉터라도 남았다면 평생을 석연치 않은 마음으로 그녀가 불편하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무언가를 해줬을 것이다.

한편 크리스틴 에드니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도 어색했다.


그녀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말량광이 기질이 다분했던 소녀는 마을에서도 알아주는 말썽꾸러기였다.

3살이 된 크리스틴은 높은 산봉우리에 걸친 구름이 신기한 나머지 말도 없이 홀로 산을 올라가  마을 사람이 그녀를 찾기 위해 수색에 나섰던 적이 있었고.

5살 때는 또래 아이들보다 힘도 월등하며 본능적으로 전략이라는 것을 깨우친 것인지 어른들이 모여 어린 크리스틴은 잡지 않는 이상 그들의 말썽이 삼 일이나 계속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점차 나이를 먹어갈수록 크리스틴의 선을 넘는 만행에 그녀의 부모는 크나큰 결심을 한다.


'성당'


 10살이 되던 해. 크리스틴의 부모는 저녁 식사 도중 수녀 얘기를 꺼냈다.


평소처럼 반발하며 말썽을 피울 줄 알았던 소녀는 너무나도 싱겁게 수녀가 되라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를 황당하게 여긴 크리스틴의 부모는 어디가 아픈 것은 아닌지 그녀를 걱정하지만,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사실 크리스틴 에드니는 이번 기회를 통해 마을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자신이 속한 마을이 넓은 줄만 알았지만, 오히려 좁아터진 것에 통탄했기에 그녀는 더욱 넓은 세상을 나아가고 싶었다.

3살 때 올라간 산의 정상에서는 드넓게 펼친 광활한 대지. 하늘과 가까운 거리지만 손을 길게 뻗어도 닿지 않는 하늘처럼.


그녀는 불과 10살이 되던 해에 수녀들이 모인 수녀회로 떠나며 그녀는 지금의 선택이 막대한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며 기뻐했다.

12살이 되던 해. 2년이라는 세월 동안 크리스틴은 수녀의 가르침을 성실히 이행하며 크리스틴을 아는 이가 보았다면 다른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바뀌었지만...


크리스틴은 이 모든 것이 시시했다.


물론 수녀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과는 확연히 다른.


이곳 또한 마을처럼 크리스틴에게 있어서는 좁디좁은 세계일 뿐이었다.


그렇게 12월을 맞이하며 소복하게 쌓인 눈을 치우고 있을 때였다.


수녀원 근처 기사단들이 파견을 나온 것인지 아니면 갑옷을 입은 그들은 허리에 매단 칼을 빛내며 훈련하는 모습이 크리스틴의 눈에 또렷이 보였다.

이곳에서 수많은 기사를 봐오며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었지만, 차디찬 겨울에도 땀을 흘리며 훈련하는 광경은 크리스틴에게 있어 새로운 세상, 마치 그녀가 원하던 세계가 있는 것 같았다.


13살이 되기 전날.


그녀는 이제 곧 떠나는 기사단이 술을 마시며 떠들썩한 분위기에 취한 사람의 검을 몰래 가지고 나왔다.

행여 누구에게 들키지 않을까 사이즈가 큰 수녀복으로 미리 갈아입고 검을 숨긴 채로 서둘러 연회에 빠져나왔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이를 경고라도 하는 것일까.

얼굴에 달라붙는 새하얀 눈과 연회 분위기에 취해 뜨겁던 검은 어느덧 차갑게 변하며 싸늘한 감촉을 알린다.


크리스틴은 자신이 숨겨온, 몰래 가져온 때 묻은 검을 두 손으로 들며 조금은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겨울바람을 맞으며 정신이 든 크리스틴은 자신에게 들린 검이 사실은 도둑질이 아닌가 하며 멋쩍게 뺨을 긁적인다.


그러나 이내 차가운 눈보라는 크리스틴의 사념을 잠재우며 곧 검의 손잡이를 잡으며 검집을 잡는다.



묵직한 무게. 그러나 무겁지는 않았다.


은색의 검이 검집을 빠져나가니 낮은 짐승의 울음이 들리며 그녀는 월광을 맞아 유유한 은색 빛을 내는 검을 보았다.



빼어든 검신 자체에는 여러 흠집이 새겨져 있었으나 크리스틴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욕망에 져버려 죄악까지 범하며 뽑아낸 은색 검을.


기사를 동경하며 나뭇가지를 휘두르는 아이처럼.

크리스틴의 검은 수녀복이 겨울바람에 흩날리며 월광에 물든 은색 검은 고고한 빛을 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처음 검을  사람이 멋들어진 움직임이 가당키나 할까.


허나 크리스틴은 달랐다. 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움직임.


그리고 처음부터 크리스틴의 행동을 눈여겨본 한 남자는 크리스틴의 검이 멈추자 가볍게 손뼉을 치며 다가가며 자신의 검을 되돌려 달라고 한다.

빼어낸 검을 다시 검집으로 되돌리는 남자는 자신의 검을 다시 크리스틴에게 넘기며 나지막하게 말한다.


'생각이 있다면 수녀원을 나와 기사가 되지 않겠느냐고?'

이 말을 들은 크리스틴은 심장이 요동치며 알 수 없는 흥분은 차가운 겨울바람을 알몸으로 맞이한다 해도 문제가 없을 만큼 후끈한 열기가 솟아올랐다.

다음 아침. 해가 바뀌며 13살이 되던 해에 크리스틴은 수녀복을 벗어 던지며 기사가 되겠다며 다시금 세상 밖으로 도약했다.

종기사를 걸쳐 꽤 1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정식 기사가 되어 겉모습과 어울리지 않게 뛰어난 성과를 쟁취했기도 했고.


그녀가 어린 나이에 일찍이 공을 올려 시기하는 여러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그녀의 페이스에 휘말려 남녀노소 불구하고 다들 그녀를 뒤따랐다. 그 후에는 전쟁에 참여해 막대한 공을 올리며 기사단장과 더불어 작위를 하사받아 이제는 평민이 아닌 어엿한 귀족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성장 과정 때문일까.


크리스틴의 인생을 통틀어 지금껏 남자에게 대쉬를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릴 적에는 본인의 무력과 지력이 월등하며 동년배를 부하처럼 다루기는 했으나 아직은 사랑을 깨닫기에는 어린 나이이기도 했으며.

수녀원 시절에는 남자와의 접촉을 금하기도 했지만, 그 당시의 크리스틴에게는 남자라는 생물이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기사 시절에는 날이 가면 갈수록 다양한 것을 배우며 살아갔기에 여자라는 성별을 제쳐놓고 남자처럼 행동하고 다녔기에 만약 전쟁에서 공을 세우지 못하였더라면 다른 사람은 아직도 크리스틴을 남자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그녀가 남긴 위대한 업적은 남자의 자존심을, 얄팍한 위상을 팍 죽일 정도로 대단했으니 누구도 쉽게 크리스틴에게 다가갈 수가 없고, 그저 동경하는 눈빛으로 보는 이가 다수였다.

연회장에서 칠흑의 드레스를 입은 채로 고고한 암표범의 자태를 뽐내던 그녀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자신보다 어린.

자신이 가르치는 소년을 보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킨다.


"화상에 좋은 연고도 발랐으니까 괜찮을 거에요."
"진짜 괜찮은데... 뭘 이렇게까지. 그냥 놔두기만 해도..."
"혹시 모르잖아요."

알렌은 자신의 아둔함을 깨닫고는 이와 같은 실수를 다시는 저지르지 않는다고 다짐한다.


"손바닥이 아프시면 바로 말해주세요."
"에이, 뭘 그렇게 까..."
"말해주세요. 아셨죠."
"아, 알았어."

강압적이고 단호한 말투로 주의를 듣자 크리스틴을 입술을 삐죽 내밀며 알았다고 답한다.

그 답을 들은 알렌은 서랍에서 꺼낸 물품을 다시 넣고는 의자에 앉아 소녀처럼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크리스틴을 보며 일단은 수업을 정리하기로 했다.

"아네스 선생님이 오시면 다시 봐달라고 하세요. 오늘 수업은 제가 정리할게요."
"어, 그러렴. 그럼 수고해줘."
"네. 다음 쉬는 시간에 찾아올 테니까 필요한  있으면 생각해두세요."

알렌이 다음 쉬는 시간에 찾아온다는 말을 남기며 그대로 보건실을 나갔고.


점점 멀어지는 알렌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때.

크리스틴은 조금 전의 감촉을. 손바닥을 간지럽히며 진지하게 자신을 걱정해주는 알렌의 얼굴을 떠올리더니 얼굴이 화끈거리며 손부채 질로 더위를 식힌다.

"하아... 이러면 안 되는데. 난 선생이고... 알렌은... 아니야. 너무 오랜만.. 아니 처음... 그런... 아으으으!"


의자에 일어난 크리스틴이 화끈거리는 얼굴을 베개에 파묻힌 채로 콧소리가 가득한 아우성을 내지르며 두 다리가 먼지를 일으킨다.


만약에 이 모습을 알렌이 남아서 보았다면 귀엽다는 말을 했을 것이 당연하다 할 정도로 크리스틴은 나이에 맞지 않은 행동은 상당한 파괴력이었다.

"앞으로 얼굴 어떻게 봐..."

얼굴을 들며 베개를 껴안은 채로 몸을 돌려 천장을 바라보던 크리스틴이 또다시 알렌의 얼굴을 떠올리자 베개를 다시금 얼굴을 파묻히며 잡념을 떨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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